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
마존현세강림기-1화(1/2125)
마존현세강림기 1권(1화)
서장 1 – 하나의 죽음
노을이 지고 있다.
세상을 밝게 비추던 태양이 서산 너머로 그 자취를 감추고 붉게 물든 하늘은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인다.
드넓은 대지마저 하늘처럼 온통 붉게 물들어있다.
붉게 물든 대지.
그곳에 한 사내가 서 있다.
사내.
노을과는 조금 다른 색으로 물든 대지 위에 서 있는 사내.
온통 피로 물들어 버린 들판 위에 고고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
세상은 사내를 적천마존(赤天魔尊)이라 부른다.
적천마존(赤天魔尊).
강호에 출두한지 오 년 만에 천하에 그 이름을 각인시키고, 칠 년 만에 강호공직이 된자.
팔 년째 되는 해에는 마교에 투신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천 년을 이어온 천마신교의 역사상 최초로 외부인 출신의 교주가 된자.
그의 이름은 신화였고. 그의 이름은 전설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희대의 살성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그를 운명을 이겨낸 영웅이라 불렀다.
그의 출신은 비천하고 삶은 힘겨 웠으나, 그는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사내.
적천마존은 붉게 물든 대지 위에 우뚝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니, 우뚝이라는 말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신이 쩌적쩌적, 갈라져 피를 뿜어내고 있는 이에게 우뚝이란 말은 확실히 어울리지 않았다.
또옥.
적천마존의 명치를 관통한 검을 타고 핏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적천마존은 자신의 명치를 관통한 푸른 검신(劍身)을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검의 이름은 청루라 했다.
청루는 천마신교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寶劍)이다. 평소 보물에는
관심이 없는 적천마존도이 검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검은 그가 교주에 오른 뒤 그동안 그를 따랐던 수하에게 상으로 내린 것이었다.
적천마존은가만히 청루를 내려다 보았다.
청루의 푸른 검신은 그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
어째서 청루가 그의 몸에 박혀 있는 것일까?
그뿐이 아니다.
그의 우측 어깨를 파고들어 좌측 옆구리로 튀어나와 있는 흑염창(黑炎槍)의 주인은 구마(九魔)의 일인인 구마(鬼魔)였고,
오른쪽 허벅지에 박혀 있는 태현검(太賢劍)의 주인은 당금 무당의 장문인인 태극자(太極子)였다.
그의 등에 박힌 한철검의 주인은 남궁세가의가주인 남궁주(宮珠)였고,
그의 단전에 꽂혀 있는 쇄겸도(碎鍊刀)의 주인은 사피 중 하나인 사황성(邪皇城)의 성주 혈사(血邪)모장공(模長攻)이었다.
게다가 좌측 발등을 풇고 바닥까지 박혀 있는 비수,은월아(隱月牙)의 주인은 황실을 어둠 속에서 수호한다는 밀영(認影)의 밀주였다.
천마신교(天魔新敎).
구파일방(九派一方).
오대세가(五大世家).
사패(四覇).
그리고 황실(皇室).
천하를 지배하는 모든 세력의 칼날이 지금 적천마존의 몸을 꿰뚫고 있다.
그런 적천마존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
청루의 주인.
세상으로부터 청마(靑魔)라 불리는 자.
적천마존이 교주의 자리에 오르기 이전, 적마(赤魔)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부터 그의 수족이었고,
현재는 마교의 이인자로서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청마(靑魔) 과월(果越).
그가 만신창이가된 적천마존을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아닌 누가 보아도 적천마존은 위중하기 그지없는 상대였다.
전신을 여섯 개의 병장기가 꿰뚫고, 평범한 이였다면 하나만 입어도 절명했을 상처를 수도 없이 지니고 있는 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이를 당금 강호의 지배자들이 둘러싸고 있다면?
게다가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 없는 독에 중독(中毒)까지 당한 상태라면?
누가 보아도 적천마존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청마는 안심하지 못했다.
안심은커녕 그의 눈에는은은한 두려움마저 떠올라 있었다.
“ 지독한……”
청마 과월은 신음을 흘렸다.
이곳에는 강호에서가장 강하다고
평가 받는 이들이 모여 있다.
스물아홉의 절대자.
이들이 강호에서가장 강한 서른은 아닐지 몰라도 오십 대 고수를 뽑으라면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 없는 이들이었다.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된 스물아홉의 절대자.
그것마저 불안해 미리 당가(唐家)의 무형지독(無形之毒)과 오독문(五毒門)의 천살지독(天殺之毒)마저 구해 미리 중독시키는 치밀한 사전 작업까지 마쳤다.
그럼에도 결과가 이것이었다.
한 사람을 합공한 스물아홉.
그중 지금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은 아홉뿐이다.
열아홉은 바닥에 누워 생사를 알 수 없고, 한 사람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다리로 힘겹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중이다.
청마는 바닥에 누워 있는 이들을 보았다.
하나하나가 한 문파의 수장이고, 강호를 움직이는 거인들이었다.
처음 그를 중독시키고 이곳까지 유인해 냈을때, 청마는 자신이 있었다.
단순히 그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이 많은 이들을 모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노린 것은 중독된 적천마존을 피해 없이 처리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그를 죽이는 것이 목표였 다면 구마만으로 중분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모음으로써 청마는 타 문파에 빚을 지울 수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적천마존이 없어진 천마신교의 균열을 극복할 시간을 벌 셈이 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청마를 살렸다.
‘구마만으로 충분하다고?’
가능하다면 청마는 그렇게 생각했던 조금 전까지의 자신을 날카로운 비수로 난도질해 버리고 싶었다.
만약 구마만으로 적천마존을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면 지금쯤 청마는 육편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을 터였다.
적천마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적천마존과 청마의 눈이 마주쳤다.
청마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 물러서고야 말았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자 청마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챘다.
하지만 청마는 치욕스럽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치욕이란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생겨나는 감정이다. 평범한 사람이 범을 두려워하는 것을 치욕스러 워할까?
청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올 열었다.
“……나에게도 모두 보여주시지 않으셨군요.”
그가 알고 있는 적천마존이라면 지금쯤 그는 고혼이 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자는 그가 지 금까지 알고 있던 적천마존이 아니었다.
그가 마교에 들어온 이후 수십여 년을 넘도록 보필했음에도 적천마존은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적천마존은 청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 끝났나?”
적천마존의 말에 남아 있는 이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앞의 상대는 이미 숨이 끊겨가고 있는 자였다.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이였다.
그런 적천마존을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그들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조금 전에 본 광경이 너무도 생생했다.
호기롭게 적천마존에게 달려든 종남의 장문인은 일수에 머리가 터졌다.
귀마는 그의 몸에 창을 박아 넣은 대가로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몸이 되었고, 태극자는 그가 원하는 대로 육신이 둘로 갈라져 음과 양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항상 자신의 검을 제왕의 검이라 칭하던 남궁주는 진정한 제왕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밀영은 영원한 어둠속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들이 죽음을 대가로 남긴 것은 상처뿐이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누구도 적천 마존의 몸에 새겨질 상처와 자신의 목숨을 교환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신이…… 당신이 원했다면 천하가 당신의 것이었을텐데……”
청마의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그가 지금 보이고 있는 무력과 구마, 그리고 천마신교의 힘이라면 강호를 손에 넣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그걸 원하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그저가만히만 있었더라면 제왕처럼 평생을 누리고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당신이 수라기를 일반 교도들에게 내놓으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청마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중오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안타까움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그게 이유인가?”
“……당신은 위대했습니다. 너무 위대했죠. 그렇기에……” 누구도 당신 같은 이가 또 나오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적천마존이 천마신교의 교주에 오른 이후 천하에 선언했다.
– 자신의 무공인 수라기를 천하의 누구라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풀어놓겠다.
그 충격적인 선언에 강호는 들끓어 올랐고, 미증유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구마 모두가 그를 만류했고, 천마신교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마저 사신을 보내 재고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지만, 적천마존은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당신이 하려고 한 일은 천마신교의 법칙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청마의 말에 적천마존은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소림의 장문 방장 혜인대사(惠仁人師). 그의 노안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대사도 같은 생각인가?”
혜인대사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아미타불. 시주가 하려고 한 일은 진정으로 공(空)을 바탕으로 한 것. 소유하지 않음을 탓할 불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혜인 대사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하나…… 시주. 세상은 시주의 생각보다 더 간악한 이들이 많은 곳이오.
시주의 무공이 풀리게 된다면 악을 좇는 이들이 수양을 쌓지 못하고 힘만을 얻게 될터. 나는 그것으로 초래될 혼란을 좌시할 수 없었소이다.”
적천마존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찮은 이유군.”
“……”
“이런저런 같잖은 이유를가져다 붙여도 결국 너희는 쥐꼬리만한 권력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것뿐 아닌가.”
적천마존의 말이 그들의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청마는 고개를 저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당신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당신은 죽을겁니다.”
적천마존은 청마에 말에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단지 그뿐.
적천마존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짙어지고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어둠이 완전히 하늘을 뒤덮을 터였다.
“그렇다면 조금 서두르지.”
죽음에 거의 이르러 있음에도 적 천마존의 목소리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이미 삶과 죽음이란 굴레에서 초연한 듯했다.
“밤이 오고 있어. 나는…… 밤하 늘을 좋아하지 않거든.”
적천마존의 말에 청마는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청마의 시선을 피했다. 상대를 이 지경까지 몰아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누구도 적천마존을 상대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믿고……
청마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누굴 탓하겠는가. 이들을 믿고 거사를 준비한 것은 다름 아닌 본인이었다. 청마는은근히 그를 떠미는 시선을 등으로 받으며 입을 열었다.
“……허세를 부린다 해도 당신은 죽어가고 있소. 아무리 당신이라도 죽음은 두렵겠지.”
말을 하면서도 청마는 자신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적천마존은 이제 그의 적이고, 지금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처 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손을 써 그의 명줄을 끊어 버리면 될 것 아닌가.
그의 시선을 외면하던 다른 이들올 경멸했건만, 청마 역시도 감히 그의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쓸데없는 말을 해 대며 시간을 끄는 것뿐.
그렇게 적천마존이 스스로 죽어주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이 적천마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두렵냐고?”
“……”
적천마존은 나직하게 말했다.
“너는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가?” “누가 죽음을 알 수 있겠소?” 적천마존은 고개를 저었다.
“죽음은 두려운게 아니야.”
“……”
“두려운 것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지.”
빤한 말이었다.
너무도 빤한 말이지만, 청마는 적천마존의 말을 빤하다고 비웃어줄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은 빤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그리고 어투가 그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난 죽음 같은 건 두렵지 않다. 지금 나를 이곳에 잡아두고 있는 것은 두려움 같은게 아니야.”
“……그. 그럼 뭐란 말이오?”
그때, 적천마존의 입가에 희미한 선이 그어졌다.
기묘한 모양으로 피어난 선은 살짝 벌어지며 피로 붉게 물든 적천마존의 이를 밖으로 드러냈다.
미소.
마치 사신의 그것과도 같은 섬뜩한 미소였다.
청마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너는 알잖아?”
적천마존의 육신이 그 순간 꺼지 듯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진 적천마존의 몸이 청마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여전히 섬뜩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콰득!
적천마존의 손이 청마의 목줄기를 움켜잡았다.
너무도 쉽사리 청마를 제압해 버린 적천마존이 청마의 몸을 자신에게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 멈춰라!”
“얼마나 더 죄를 지을 셈이오, 시주!”
그 광경을 지켜본 이들이 소리를 질렀지만, 쉽사리 달려들지는 못했다.
청마가 이미 적천마존의 손안에 있고, 달려들었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그들의 움직임올 무시한채 적천마존은 청마의 귓가에 입을가져다 뎄다.
그의 입술이 벌어지며 나직한 속삭임이 청마의 귀를 파고들었다.
“알고 있지?’
청마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왜 모르겠는가.
그가 적마가 되었던 이유.
그가 외부인 출신이면서 마교의 교주에 오를 수 있던 이유.
그가가진 무위 이상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바로 그 이유.
그를가장가까운 곳에서 보아온 청마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난…… 절대 원한을 잊지 않아.”
스륵, 스르륵.
기이한 소리였다.
우수로 청마를 제압한 적천마존은 좌수로 천천히 자신의 명치에 박힌 청루를 뽑아냈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뽑혀 나오는 청루가 적천마존의 살을 베어내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스륵.
이윽고 청루가 모조리 뽑혀져 나왔다.
적천마존은 예의 미소를 입에 머금고는 청마를 바라보았다.
“이건 내가 네게 준 것이다.”
청마는 다음에 적천마존이 할 말을 알고 있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비상한 그의 머리는 너무도 완벽히 적천마존의 다음 말을 예상하고야 말았다.
“그러니 다시가져가야지.”
서걱.
적천마존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청루를 청마의가슴 한가운데에 박아 넣었다.
청마의 몸이 학질에라도 걸린 듯 부들부들 떨렸다.
한번에 박아 넣었다면 고통이라도 적을 것이다. 하지만 적천마존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의 명치에 박혀든 청루가 선사한 고통만큼 그 이상의 고통을 청마에게 주어야 했다.
“ 끄으으윽……”
청마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튀어나왔다.
청루에 주입된 수라기가 그의 육신을 헤집어놓고 있을 것이다.
청마의 떨리는 동공이 적천마존의 눈과 마주쳤다.
적천마존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너만은 알았어야 해, 나를 건드리는게 무엇을의미하는지.”
청마의 입에서 피가 폭포처럼 흘러나왔다.
적천마존은 기이한 눈으로 청마를 바라보았다. 청루는 아직 청마의 심장에 닿지 않았다. 고통에 이기지 못한 청마가 심맥을 끊어버린 것이다.
“나…… 나는……”
적천마존은 고개를 저었다.
청마는 무언가 말을 하려 애썼지만, 그의 입은 굳어지고의식은 아득히 멀어져만 갔다.
이윽고 청마의 고개가 꺾였다. 적천마존은 숨이 끊어진 청마를가만히 바라보다가 그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의 눈을 감겨 주었다.
청마가 비록 마지막 순간에 그를 배신하고 함정에 빠뜨렸다고는 하나 수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적천마존의 수하를 자처한 이였다.
적천마존은 청루의 시신을가만히 주시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보았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을 수많은 별들이가득 채우고 있었다.
적천마존은 비애 어린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은하수가 손에 잡힐 둣 보이는 아름다운 하늘이지만, 적천마존은 본래 이 하늘을 좋아하지 않았다.
손에 잡힐 듯 별이 보이는 밤하늘을 볼 때마다 적천마존은 어두운 하늘을 떠올렸다.
‘마지막인가?’
이렇게 하늘을 지켜보는 것도 마지막일 터였다.
그의 몸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인데다 방금 청마를 제압하면서 육 체에 박혀든 병장기들이 내부를 완 전히 휘저어 버렸다.
감각이 둔해져가고, 시야가 흐려져 간다.
언젠가 경험해 본적 있는 감각. 죽음이었다.
‘이걸로 끝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에도 그랬으니까.
‘다시 한번 무언가가 시작된다면……’
쉴 새 없이 달려온 삶이었다.
목적도 없이 그저 운명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살아서 지옥을 걸어왔다.
‘그땐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적천마존은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감겨진 그의 눈은 다시 떠지지 않았다.
피로 물든 들판.
별이가득한 밤하늘.
그 사이에서 적천마존은 그 등을 바닥에 누이지 않고 선채 눈을 감았다.
“……아미타불.”
망연자실한 이들 사이에서 혜인 대사의 불호 소리만이 숨막히는 적막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적천마존.
그는 죽었다.
서장 2 – 하나의 삶
위一윙一 위一윙!
커다란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며 옹급실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다급한 얼굴로 달려온 응급실의 스탭들이 앰뷸런스에서 내려지는 환자에게 달려들었다.
환자를 싣고 달려온 구급대원들이 커다랗게 소리쳤다.
“교통사고 환자입니다!”
“의식은요?”
“세미 코마입니다! 혈압 92에 58. 맥박 115!”
“외부 출혈은 없습니까?”
환자 주위로 달려온의사들이 환자의의식을 체크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혈압이 너무 낮아! 내출혈가능 성이 있다! 우선 CT실로!”
다급한 목소리와 발소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과도 같은 고함 소리들.
사내는 귓가에 들려오는 이명에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이는 빛.
길게 세로로 늘어진 빛이 그의 눈 앞을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사내가 천천히 눈을 돌렸다.
백색의가운.
그리고 다급한 얼굴의 안경을 쓴 남자.
녹색의 셔츠를 갖춰 입은 여성.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물건들.
생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광경이기도 했다.
사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돌아……왔어.’
사내.
적천마존은 천천히의식을 놓았다.
‘돌아왔어……
적천마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