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11)
마존현세강림기-1012화(1010/2125)
마존현세강림기 41권 (18화)
4장 친교하다 (3)
저벅저벅.
발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사내는 느긋한 걸음으로 홀 안에 들어섰다. 드러난 사내의 모습을 보 는 순간, 나이트들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젊은 동
양인.
겉모습만으로는 딱히 특이할 게 없는 사내였다. 인종이 다름에도 잘 생겼다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외 모가 준수하다는 점만 뺀다면, 관광 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동 양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그 누구도 저 사 내를 평범하다 생각지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평범한 세계에서 통용되는 이 말 은 무인계에서는 조금 다른 말로 쓰 인다.
강한 만큼 보인다.
강하면 강할수록 상대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이곳에 모인 나 이트들은 하나같이 국가를 대표하는 강자였고, 그렇기에 강진호의 평범 한 겉모습 안에 숨어 있는 막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입이 얼어붙는다.
그제야 이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엘더 나이트들이 어떻게 단 한 사람에게 패했는지.
어째서 저 자부심 강하던 마스터 가 저리 힘없는 말을 해 대는지.
그리고 원탁의 나이트라는 지고한
위치에 있던 위긴스가 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총회에 투신했는지.
저 한 사람의 존재가 모든 것의 이유가 되고 있었다.
“방해했나?”
“아닙니다, 회주님. 기다리고 있었 습니다.”
원탁의 회의다.
그 자리에 외부인이 참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딱히 율법으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누구도 그 상황이 정상적이라 생 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지적하
지 못했다.
아니, 감히 지적할 수가 없었다.
위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 레 의자를 다시 배치하고, 자신이 앉을 새로운 의자를 가지러 갔다. 그 모습은 많은 것을 상징하고 있었 다.
위긴스는 꽤나 오만한 자다.
그 스스로는 겸손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원탁의 나이트 중 위긴스 가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 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위긴스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자다. 하지만 그걸 위긴스의 단점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위긴스는 오만할 자격이 있는 이 였기 때문이다.
그 오만한 자가 강진호의 권위를 떠받들며 자신의 자리를 내준다. 그 것도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자세로.
별것 아닌 일이지만, 그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 확연하게 박 혀들었다. 위긴스의 동작 하나만으 로도 강진호가 가지는 위상이 확연 히 높아진다.
그리고 강진호의 반응도 조금 남 달랐다.
턱.
손을 뻗어 의자를 잡은 강진호가 의자를 뒤로 뺀다. 마스터의 옆자리 가 아니라 뒤쪽으로. 그것도 바로 뒤가 아니라 비스듬히 뒤로 빼낸다.
순간적으로 해석이 두 가지로 갈 렸다.
누군가는 이 동작을 ‘내가 이곳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나는 그저 참관 자이니 대등한 위치에 앉지 않겠다’ 라는 겸손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뒤쪽으로 빠 진 의자의 위치를 감시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강진호만
알 것이다.
새 의자를 가지고 온 위긴스가 강진호의 의자 위치를 보더니, 그의 옆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의자를 내려놓고 앉는다.
“계속하지.”
“예.”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맹의 문제는 부차적인 일이 오.”
마스터가 격식을 갖췄다.
강진호가 지켜보고 있다 한들, 이 회의는 원탁의 정식 회의라는 걸 강 조하는 듯했다.
“중요한 것은 그대들이 나를 다시 한 번 마스터로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겠지. 나를 신뢰한다면 내가 추 진하는 정책도 신뢰해야 할 것이고, 나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 정책 역 시 의심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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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에 정책을 동시에 묻겠다는 뜻이다.
나이트들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스터.”
그때, 나이트 네그리가 입을 열었 다.
슬쩍 강진호 쪽의 눈치를 한 번
본 나이트 네그리가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표결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 묻고 싶습니다.”
“그러시게나.”
“……총회와의 동맹이 필요한 이 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강경한 발언이었다.
마스터가 침중한 눈으로 나이트 네그리를 바라봤다.
강진호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 말을 꺼낸다는 건, 상황에 따라 서는 반기를 들 수도 있다는 의미였 다. 죽음을 불사하고 원탁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 그 대답은 마스터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대신 대답하지.”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나이트들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향했다.
“아까 오다 들었다. 발전을 위한 것인지, 생존을 위한 것인지를 물었 지.”
“……그렇습니다.”
“멍청한 질문이지.”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발전이라는 건 살아 있을 때나
도모할 수 있는 일이다. 발전과 생 존은 별개의 것이 아냐. 발전하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니 생존을 우선할 수밖에 없지.”
“그 말씀은……
나이트 네그리가 입술을 꽉 깨물 었다.
“원탁이 동맹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원탁을 제거할 수도 있다 는 협박으로 들립니다.”
“협박이라면?”
“••••••예?”
“협박이라면 어떻게 할 텐가?” 나이트 네그리의 입이 다물어졌
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이트 네그리는 실감했다.
‘이 사람은 내가 아는 타입의 지 도자가 아니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 말을 다르게 해석하자면, 어떤 사람이든 일정한 직위에 오르는 순 간 갖춰야 할 격식과 태도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자는 그런 격식에서 완 전히 벗어나 있었다.
세상 그 어떤 무력 집단의 주인 을 이 자리에 가져다 놓아도 저런
식으로 말을 하고, 저런 식으로 반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를 대놓 고 겁박하는 것은 그 자리가 갖춰야 할 예의와 격식에서 벗어나는 일이 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지금 총회의 회 주가 아니라 악당처럼 굴고 있었다.
“못할 것 같나?”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비릿한 웃음이 나이트 네그리 의 눈에 섬뜩하게 틀어박혔다.
“내가 선호하는 해결책이지. 겪어 보길 원한다면 말리지 않아.”
“하지만……
살짝 앞쪽으로 쏠린 강진호의 등 이 다시 의자에 들러붙었다.
“그럴 필요도 없겠지.”
“ 예?”
“굳이 내가 손을 쓸 필요도 없다. 원탁은 알아서 무너질 테니까. 처음 부터 힘이 없던 자와 힘을 가졌다가 잃은 자는 다른 법이지.”
나이트 네그리의 눈가가 떨렸다.
자신도 모르게 납득했다.
원탁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반수에 가까운 나이트가 죽었고, 엘더 나이트를 잃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큰 것을 잃고 있었 다.
나이트 네그리가 다른 이들을 둘 러 보았다.
이곳에 열이 넘는 나이트들이 모 여 있지만, 그 누구도 강진호와 눈 을 마주치지 않는다.
원탁의 자부심이 완전히 무너졌 다.
이대로라면 설사 강진호가 물러난 다고 해도 원탁은 내부로부터 썩어 들어간다.
나이트 네그리가 갈피를 잡지 못
할 때, 마스터가 입을 열었다.
“나이트 네그리.”
“예……. 마스터.”
“하나 묻고 싶은데.”
“ 예?”
“내가 그리 멍청해 보이나?”
나이트 네그리의 고개가 저어졌 다.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 직였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 마스터는 멍청하다는 말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원탁을 위한 최선의 방향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네. 그리고 이게
최선이라 확신했다네. 일일이 설명 할 수는 없지만, 나를 믿어주게나. 내가 그대들을 실망시킨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을 테니까.”
나이트 네그리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리고 그 동작에 다른 나이트들 도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 로 호응했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들 은 이 자리에 그저 거수기로 나왔을 뿐이다. 마스터가 나이트들의 투표 를 통해 선출되어야 한다는 율법.
그 율법을 어기지 않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만약 거부한다면?
‘절대 그냥 물러나지는 않겠지.’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저 강진호 라는 자는 절대 말처럼 쉽게 물러날 이가 아니다. 아니, 설사 강진호가 그리 물러나려고 해도 위긴스는 절 대 물러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반대하는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나이트들은 모두 죽는다. 그리 고 새로운 나이트들이 선출될 것이 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새 로운 나이트들이 이 과정을 다시 반
복한다.
반대하면?
또 죽겠지.
결국은 총회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반대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목숨을 잃는 것은 자 기만족일 뿐이다. 그들의 후임으로 선출되는 나이트들은 꼭두각시가 될 것이고, 원탁은 저들의 마음대로 좌 지우지될 것이다.
최소한의 견제라도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살아남아야 한다.
“ 질문은?”
“ 없습니다.”
“투표를 진행하겠소. 새로운 마스 터의 후보에 나 토니 밸러드가 입후 보하겠소. 나이트들께서는 전통과 율법에 따라 자신의 검으로 찬반을 표해주기 바라오.”
나이트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 나 검을 뽑아 자신의 머리 앞에 댔 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고 앞을 바라보았다.
검을 올려두어야 할 원탁이 없다.
나이트들에게는 그 모습이 선택권 을 잃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상징하
는 것처럼 느껴졌다.
탁.
누군가 처음으로 검을 바닥에 내 려놓았다. 중앙을 향하도록.
물꼬가 트이자 나이트들이 다들 바닥에 검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엘더 나이트들의 신전으로 향하는 계단.
그 계단을 중심으로 검이 놓인다. 마치 그들의 자부심이던 엘더 나이 트들을 겨누는 것처럼.
모든 검이 놓이자 마스터가 가만 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탁의 율법에 따라 나 토니 밸
러드가 새로운 마스터로 추대되었음 을 선포하는 바요.”
무겁게 공기가 내려앉았다.
“나이트들께서는 원탁을 떠나지 마시고 각자 휴식을 취해주길 바라 오. 회의는 좀 더 이어져야 할 테 니.”
“예.”
나이트들이 검을 집어 들어 검집 에 넣고는 몸을 돌려 홀을 빠져나갔 다.
적막해진 홀에 마스터와 강진호, 그리고 위긴스만이 남아 서로를 돌 아보았다.
“원하시는 대로 되셨군요, 회주 님.”
“네가 원한 것이겠지.”
마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이리되었지만, 저들의 불 만이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 오. 어떻게든 표출이 될 겁니다. 어 쩌면 생각 이상으로 과격할지도 모 릅니다.”
“바보 같은 소리군.”
“……무슨 말씀이신지?”
“그걸 막기 위해 네가 있겠지.”
“그리고 그게 딱히 나쁜 것도 아
니야. 차라리 부추기는 걸 추천하지. 한 번에 정리가 될 테니까.”
마스터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분명 그게 정리가 빠를지도 모른 다. 반란을 일으키는 이들을 싸그리 죽여 버리면 확실한 경고가 될 테니 까.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 다.”
“그러도록.”
강진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 다.
이걸로 강진호가 원탁에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마
스터와 위긴스의 일이다.
“돌아간다.”
“……벌써 말입니까?”
“머무르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 지.”
“비행기는 이쪽에서 준비하겠습니 다. 최대한 빠르게.”
마스터의 너스레에 강진호가 웃음 을 머금었다.
“남은 건 위긴스와 상의해.”
“예. 그럼.”
몸을 돌려 복도로 걸어가던 강진 호가 갑자기 멈춰 섰다.
마스터가 의문 어린 눈으로 바라 보는 순간,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몸을 돌렸다. 그 얼굴을 본 마스터 가 움찔했다.
무슨 문제라도?
“ 영국에……
“••••••예?”
“영국에서 돌아갈 때 어떤 선물을 사 가야 하지?”
며칠간 본 얼굴 중 가장 심각한 강진호의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