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28)
마존현세강림기-1029화(1027/2125)
마존현세강림기 42권 (10화)
2장 취업하다 (5)
“재경에 입사?”
“네.”
보조석에 앉은 최연하가 재미있다 는 얼굴로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재경에요?”
“네.”
“갑자기 웬 취업이에요?”
“어쩌다 보니……
“아, 대충 알겠네.”
“ 네?”
최연하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확실히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하 기는 하죠. 큰 그림? 자연히 프로포 즈로 이어지는 각?”
“프, 프로포즈는 무슨!”
“농담한 건데 그렇게 정색하지 마 세요. 기분 나쁠 뻔했어.”
새초롬하게 고개를 돌리는 최연하 를 보니 정말로 화를 내는 건지 아
니면 놀리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강진호가 우물쭈물하자 최연하가 피식 웃는다.
“진짜 농담이에요. 놀라지 말고.”
“네.”
최연하가 고소를 머금었다.
‘이럴 땐 귀엽다니까.’
강진호가 진지할 때 얼마나 카리 스마가 있는지 최연하는 아주 잘 알 고 있는 사람이었다. 웬만해서는 누 군가에게 기가 눌려본 적이 없는 최 연하지만, 강진호가 화가 났을 때는 입도 열지 못하니까.
하지만 평소의 강진호는 어디 하 나 나사가 풀려있는 것 같은 허당에 가까웠다. 그 갭이 최연하를 즐겁게 한다.
‘나사 풀린 미남보다 재미있는 캐 릭터는 없다니까.’
물론, 그게 최연하가 강진호를 좋 아하는 이유는 아니지만.
잘생기고 아니고, 재미있고 아니 고,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사람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긴 하네요.”
“뭐가요?”
“정장 입고 출근하는 강진호 씨의
모습은 상상이 잘 안 가요.”
“안 되겠다. 출근하는 첫날에 보 러가야지.”
“참아주시죠.”
“왜. 재밌을 것 같은데.”
최연하가 깔깔거리며 웃자 강진호 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신입 사원 연수를 받는 것 뿐인데, 가족도 그렇고, 최연하도 그 렇고 반응이 격하기 짝이 없다.
그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도 강진호가 일반적인 삶과 멀어져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 인식에서
미묘함을 느끼는 강진호였다.
‘부정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처음 이 세계로 돌아왔을 때, 강 진호는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다. 평 범하지 않은 삶에서 느꼈던 피로와 고통을 이번 삶에서는 겪고 싶지 않 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뿐만 아니라 다 른 이들조차도 강진호가 평범한 삶 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 다.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린 것일까.
딱히 후회를 하는 건 아니지 만……. 조금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음, 기분 나빴어요?”
강진호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알 아챈 최연하가 조심스레 묻는다.
“아니, 그런 게 아니에요. 생각 좀 하느라.”
강진호가 손을 내저었다.
‘귀신같네.’
나름 표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강 진호이건만, 이제 최연하는 그의 미 묘한 표정 변화를 현미경처럼 알아 챈다.
“걱정 안 돼요?”
“ 네?”
“재경에 입사하는 거잖아요. 신입
사원 연수든 인턴이든 어쨌든.”
“네. 그렇죠.”
“그런데 걱정 안 되냐구요.”
“네?”
강진호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 를 갸웃했다.
최연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그렇지.’
강진호의 둔함과 민감함은 대중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일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 하면, 다른 사람이라면 긴장돼서 팔다리가 동시에 움직일 만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지금도 그렇다.
재경은 기업 문화가 빡세기로 유 명하다. 그런 곳에 연수를 가는 취 준생이라면 긴장에 잠도 제대로 이 루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이번 연 수가 강진호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 을 주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저리 무덤덤한 모습이라니.
담대한 건지 둔한 건지.
‘하기야.’
생각해 보면 강진호가 걱정할 것 이 뭐가 있겠는가. 되레 재경이 강 진호의 입사를 걱정해야지.
“흐응, 그래서 귀국하고도 바로 안 만나러 오고 시간을 끌었구나? 그런 거 처리한다고?”
“그, 그럼요.”
“ 진짜?”
“……그럼요.”
최연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강진호 씨.”
“네?”
“요즘 사람됐네요.”
“네?”
“거짓말도 할 줄 알고.”
강진호는 요즘 날씨가 무척 덥다
는 말이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있 었다. 자꾸 땀이 나지 않는가. 에어 컨을 켰는데도 말이다.
“혼나요.”
“……미안합니다. 워낙 처리할 일 이 많아서.”
“그렇게 처리할 일이 많으신 분이 신입 사원 연수를 가시네! 신입 사 원 연수를!”
강진호의 몸이 시트로 점점 파묻 혔다.
‘이현수한테 잘해줘야겠다.’
매번 그가 구박하는 입장일 때는 몰랐는데, 하루 만에 만나는 모든
이에게 구박을 받는 입장이 되자, 그동안 이현수가 그의 구박으로 얼 마나 괴로웠을지 알 수 있을 것 같 았다.
“혼자서 해외를 다녀왔는데, 돌아 오고 제대로 연락도……
강진호가 서둘러 주머니에서 무언 가를 꺼내 최연하에게 내밀었다.
“여, 여기.”
“응? 뭐예요? 이거?”
“말씀하신 선물입니다.”
최연하가 강진호가 내민 열쇠고리 를 바라보았다.
“……선물?”
“네. 선물 사오라고 하셔서.” 열쇠고리.
영국을 다녀왔다는 것을 증명하겠 다는 듯이 영국 국기 모양의 펜던트 가 달린 열쇠고리였다. 해외여행을 다녀오며 사온 여자 친구 선물로는 이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없을 것이 다.
하지만 최연하는 말을 잊고 멍하 니 그 열쇠고리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안 드시나 보네요.”
“아니,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최연하가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 다.
갑자기 급변하는 분위기에 강진호 가 움찔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선물이 마음에 들 수 있을 거라 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강진호는 자신이 그런 감각이 없다 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 람이다. 욕이나 안 먹는 수준이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최연하의 반응이 그의 예상 이상으로 격하다.
“……바꿔올까요?”
최연하가 대답 없이 강진호의 손 에 들린 열쇠고리를 낚아챘다. 그리 고는 눈앞으로 가져가 가만히 바라
보았다.
“하……
한숨을 푹 내쉰 최연하가 열쇠고 리를 꽉 움켜잡았다.
“나름 고른다고 골랐는데……. 마 음에 안 드시면.”
“그런 거 아니에요.”
최연하가 눈가를 훔쳤다.
“가, 갑자기 왜.”
최연하가 조금은 그렁그렁해진 눈 으로 강진호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상상도 못했어요. 말을 하긴 했는데, 까먹을 거라고 생각했 거든요.”
사실 반쯤은 까먹은 것도 맞았다.
“중요한 일 하러 가는 게 뻔한데, 내 선물 같은 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아니……
“비꼬는 거 아니에요. 진짜 그렇 게 생각해요.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뭘 받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거든 요. 그런데 안 잊고 사왔다 그러니 까 좀……
최연하가 눈가를 훔쳤다.
“아, 주책이네. 왜 이러지.” 강진호는 할 말을 잊었다.
싸구려 열쇠고리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시간에 쫓겨서 대충 골라온 것에 가까웠다. 비싼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뻔한 열쇠고리였다.
최연하쯤 되는 배우가 그런 열쇠 고리 하나에 저렇게 감동한다는 게 이상하게까지 느껴진다.
“진짜 한 번씩 이상하게 사람 건 드린다니까.”
최연하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의 미심장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 다.
강진호가 주춤하며 살짝 물러났
다.
“어디 가요. 이리 와!”
“넵.”
강진호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자 최연하가 손을 뻗어 강진호를 끌어 안는다. 좁은 차 안이라서 제대로 포옹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어쨌거 나 포옹은 포옹이다.
강진호가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최연하가 한동안 강진호를 안고 있더니 그의 등을 두드리고는 자세 를 바로 했다.
“한 번씩 이뻐. 한번씩.”
“……감사합니다.”
뭔가 남녀의 역할이 바뀐 것 같 은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려면 어떠 랴?
“안 그래도 연락도 늦게 오고, 뭐 하고 왔는지 제대로 말도 안 해줘서 내가 벼르고 있었는데.”
“운 좋은 줄 알아요. 싹 풀렸으니 까.”
싸구려 열쇠고리 하나가 큰일을 한다.
‘저거 안 사왔으면 지옥 봤겠네.’ 새삼 그 와중에도 선물을 사겠다 고 다녀온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
는 강진호였다.
“하, 진정해야지. 후, 하.”
심호흡을 몇 번 한 최연하가 한 결 더 부드러워진 얼굴로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그럼 언제부터 출근하는 거예요?”
“내일부터 요.”
“준비는 다 했고?”
“ 준비••••••
강진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끔찍한 백화점을 생각하니 속이 거 북해진다.
‘왜 내 옷을 사러갔는데 여성복
매장을 돌아야 하는 거지?’
강진호의 옷을 사는 일은 ‘불과 1 시간’ 만에 끝났다.
정장 하나 맞추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기겁할 일이었지만, 백현정과 강은영의 스타일을 아는 강진호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릴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 쉬울 리가 없는 법.
강진호의 옷을 산 두 모녀는 강 진호를 이끌고 그때부터 6시간 동안 쇼핑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강진호가 폐쇄공포증을 걱정하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쇼핑 이 끝났다. 다시는 생각지도 않고 싶은 끔찍한 기억이다.
“대충은 다 됐어요.”
“그럼 오늘은 나랑 놀아주면 되겠 네. 그죠?”
“안 바빠요?”
“네, 안 바빠요.”
“인터뷰하고 할 게 많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 그거요?”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미친년이 하나 있어서 머리채 좀 잡아 뜯었더니 소문이 안 좋게 나서
한동안 자숙하기로 했어요.”
강진호의 눈이 떨렸다.
미친년?
머리채?
살짝 가슴이 떨린 강진호의 무의 식적으로 주머니로 손을 넣어 담배 를 꺼내들었다.
“아니, 왜?”
“화장실에서 담배 피잖아요.”
강진호의 손이 멈춘다.
꺼냈던 담배가 슬그머니 다시 주 머니 안으로 들어간다.
“아, 펴도 되요.”
“괜찮습니다.”
“아니, 짜증 나 있는데 화장실에 서 담배 펴서 그런 거예요. 여긴 괜 찮아요. 피세요.”
“괜찮습니다.”
“ 야.”
“ 예?”
“피라고.”
강진호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살면서 이렇게 긴장되는 담배는 처음인 것 같았다. 차마 불을 붙이 지 못하고 있는 강진호를 보며 최연
하가 피식 웃는다.
“그러니까 오늘은 나랑 놀아줘 요.”
강진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어제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느낀 게 많았다. 무언가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 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 다.
딱히 큰 의미도 없고, 대단한 일 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 지 않은 게 아니다. 그 작은 시간 시간이 쌓여 관계는 만들어진다.
“그럼 일단.”
최연하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하나 확인할 게 있는데.”
“……네?”
“영국에서 별일 없었어요?”
강진호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1mm 이동했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 없었습니다.”
“흐으으으으으음?”
그 미묘한 눈동자의 이동을 최연 하는 놓치지 않았다.
“자 바른 대로 불어보실까?”
“아,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요.”
“눈이 수상한데? 눈이?”
의심의 눈초리로 강진호를 바라보 던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뭐 좋아요. 오늘은 기분이 좋으 니까. 일단 드라이브부터 가요. 맛난 것도 먹어야지. 자, 출발!”
“넵.”
강진호가 액셀을 밟았다.
둘을 태운 붕붕이가 도로를 미끌 어지듯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