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30)
마존현세강림기-1031화(1029/2125)
마존현세강림기 42권 (12화)
3장 출근하다 (2)
“상황은?”
“……영 좋지가 않습니다.”
수령이 가만히 부복해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고전적인 하오리를 입 은 사내가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 나직하게 말을 이어갔다.
“정예들을 잃은 구미들의 반발이
상당합니다.”
“상당하다?”
“예. 무엇보다……
사내가 마른침을 삼키고 말을 이 었다.
“반도를 통해 대륙까지 나아가겠 다는 큰 구상에 동참하였더니, 반도 를 밟아보지조차 못하고 전멸당했다 는 것에서……
“ 흐음?”
“……죄송합니다.”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의 지도력을 의심하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뜻이겠지.
’승냥이 같은 것들.‘
위에 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일이 잘 풀릴 때는 반발하는 이 들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는 그동안은 지적되지 않 은 일들까지 한 번에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고, 물어뜯 을 이를 찾는 것은 인간의 습성. 수 령 역시 그러한 습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부질없구나.”
신니치카이를 관서 최대의 구미로
만들기까지 오십 년이 넘게 걸렸다. 무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칼날로 만들어진 외줄을 타는 것과 다름없 다.
세력이 모이고 더 유명해질수록, 더 많은 인망과 평판을 손에 넣을수 록 점점 더 위험해지는 게 무인의 삶이다.
높이 올라간다는 건 그만큼 추락 이 위험해진다는 뜻이고, 높이 올라 갈수록 그를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니까.
하나…….
‘고작 이런 일로.’
뼈아픈 실패였다는 것은 인정한 다.
나카타 유지가 바람을 넣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바람에 호응한 것 역시 수령이다. 위에 선 자는 타인 의 핑계를 대서는 안 된다.
다른 이의 제안 때문에 실패했다 는 말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인간이라는 걸 자인하는 꼴 아 닌가.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하의 잘못은 그가 부하를 제대 로 통제하지 못한 탓이고, 다른 이 들이 낸 의견이 잘못되었다면 그건
그가 제안을 제대로 검토하고 결론 짓지 못한 탓이다.
모든 것이 그의 잘못이다.
수령은 오로지 그런 생각으로 살 아왔다.
“사노스케.”
“예, 수령.”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알 겠는가?”
사노스케는 감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로서는 답을 알지 못했거니와, 설사 답을 알고 있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입을 열 수는 없었다. 그건 수령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다.
“기이한 일이지.”
수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나카타 유지의 충성심을 신 뢰한 적이 없지만, 그의 능력만큼은 신뢰했네. 그가 나를 따름으로써 이 득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 는 동안에는 일을 믿고 맡겨도 되는 자라고 여겼지. 그런데 결과는 이렇 구만.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충성 심을 입증하는 대신 자신의 무능을 증명했지.”
죽음으로 그의 명을 지켰고, 죽음
으로 무능함을 알렸다.
그가 알던 나카타 유지의 마지막 이라기에는 너무도 기이하지 않은 가.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그리 부 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이번만 은 뼈아프군.”
“수령.”
사노스케가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바람은 불기 마련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신경을 써서는 대업을 이 룰 수 없는 법입니다.”
“바람이라……
수령이 가볍게 웃었다.
바람도 바람 나름이다.
불어오는 산들바람 정도는 무시할 수 있지만, 상륙하는 태풍을 무시할 수는 없잖은가.
지금 수령이 처한 입장이 그렇다.
일엽편주에 몸을 실은 채 태풍을 기다린다. 운이 좋다면 살아남은 수 도 있겠지만, 열에 아홉은 배가 뒤 집히고 말 것이다.
정확한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배 위에서 기도 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만 은 확실하다. 지금은 기도하고 기다
릴 때가 아니라 움직여야 할 때다.
“ 요구는?”
“감히 말씀드리기가……
“시간 끌 것 없다. 네가 말하지 않는다고 요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 니니까.”
사노스케가 머리를 바짝 바닥에 대고는 입을 열었다.
“입에 올리기도 불경스럽습니다 만, 그들은 수령의 퇴진을 원하고 있습니다.”
“나의 퇴진이라……. 그럼 신니치 카이의 집권은 허하겠다는 건가?”
대답은 없었다.
수령이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바 라보았다.
‘ 간악하군.’
상대의 힘이 강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상대가 약점을 보이면 물어 뜯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라 고는 하나, 이건 너무 치졸하지 않 은가.
“겨우 젊은 정예들을 잃은 정도로 전쟁에 진 듯 굴고 있군. 심지어 히 데요시마저도 전쟁에 패했다 하여 퇴진을 요구받지는 않았는데.”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지.”
수령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처음 듣는 목소리.
감히 그의 처소에서는 들릴 리 없는 목소리였다.
“ 누구냐?”
“이것들을 좀 물러주면 좋겠는데? 절대 들여보낼 수 없다는군. 이러다 죽여 버릴지도 모르겠어.”
수령이 눈을 가늘게 떴다.
“ 열어라.”
“하나 수령……
수령이 사노스케를 가만히 노려보 았다. 그 눈빛에 눌린 사노스케가 재빠르게 손짓했다.
드르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며 바깥의 광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수십 자루의 일본도가 한 사내의 목을 겨누고 있 다. 하지만 목을 노려진 사내는 여 유가 가득한 얼굴로 수령을 바라보 고 있었다.
“ 누구냐?”
“차이커창이라고 한다. 이름은 들 어봤겠지?”
“차이 커 창?”
그제야 사내의 일본어가 조금 어 색하다는 것을 알아챈 수령이 눈을 찌푸렸다.
“홍왕계?”
“그렇다.”
“무도한 자로군. 연락도 없이 쳐 들어오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것 정 도는 알 터. 홍왕은 그런 것도 가르 쳐 주지 않는가?”
“저열한 일본 놈들에게 예의를 차 릴 필요는 없지. 홍왕께 배운 것이 다.”
수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자이지만, 저 배짱만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 었다. 홍왕의 뇌 역할을 한다더니, 그 소문이 과장된 건 아닌 모양이
다.
“들여보내라.”
차이커창의 목을 겨누던 일본도들 이 일제히 회수되었다. 차이커창은 당연하다는 듯 안으로 걸어 들어왔 다.
“의자라도 내오지.”
“……거기 방석이 있다.”
“손님이 왔으면 손님의 입장에 맞 추는 것도 예의다. 섬놈들은 그런 예의도 모르는가?”
“이놈이!”
사노스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 다.
하지만 수령은 재미있다는 듯 피 식 웃었다.
“의자를 내와라.”
“수령!”
“사노스케.”
“……예.”
수령이 사노스케를 가만히 노려보 며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더 내가 두 번 말하게 한다면, 네 배부터 갈라 버리겠다.”
“……죄송합니다.”
“의자를 내와라.”
“예!”
사노스케가 뒷걸음질 치며 의자를
가지러 가자, 차이커창이 피식 웃었 다.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 데.”
“흐..”
권위는 바깥에서 무너지지 않는 다. 권위가 무너질 때 가장 먼저 그 기색을 드러내는 곳은 바로 주변이 다.
사노스케 스스로는 알지 못할지 모르지만, 얼마 전까지였다면 그가 수령의 말에 토를 다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너지기 시작한 수령의 권위가 이런 곳에서
마저 드러나고 있었다.
수령이 가만히 차이커창을 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텐데?”
“중국 놈들이 건방지다는 건 알고 있지. 하지만 너는 유독 더 건방진 것 같군.”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그쪽을 도와줄 생각으로 이 곳에 왔다는 거겠지.”
“ 도와?”
수령이 살짝 눈을 일그러뜨렸다.
“그쪽이 등을 떠밀지 않았다면 상
황이 이리 악화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걸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닐 텐데?”
“그건 이쪽이 좀 억울하지. 설마 그렇게 무능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
수령이 살짝 이를 갈았다.
웬만하면 감정의 동요를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그이지만, 지금의 발언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저 말은 수령의 아픈 부분을 정 확하게 찌르고 있었다. 그 역시 한 국으로 원정을 떠난 이들이 그리 무 능하게 패하고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수령은 아무 말 없이 차이커창을 노려보았다. 말싸움을 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지금 굳이 차이커창과 드잡이질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달아오른 얼굴이 순식간에 제 색 을 되찾는 걸 보며, 차이커창이 입 맛을 다셨다.
‘과연 신니치카이의 수장이라는 건가?’
역시나 만만하지는 않다.
제아무리 작은 섬나라의 반쪽밖에 는 먹지 못한 이들이라 하더라도 한 국가의 수장쯤 되는 이들은 그에 걸 맞은 격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다.
차이커창은 이쯤에서 톤을 낮추기 로 했다. 무작정 상대를 흥분시키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다.
“말해보라.”
“흠?”
“이곳까지 굳이 찾아왔다는 것은 제안할 것이 있다는 말일 터. 홍왕 계에서 직접 온 밀사라면 제안 정도 는 들어주고 보내는 것이 예의겠 지.”
“두 가지를 정정하지.”
차이커창이 손가락을 펴 들었다.
“하나, 나는 그저 밀사라고 지칭 될 만한 이는 아니다. 나는 곧 그분
의 의견을 대변하는 자. 하찮은 밀 사 따위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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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차이커창이 이를 드러냈다.
“제안 정도는 들어준다는 식의 건 방진 말은 두 번 다시 입에 올리지 마라. 나는 홍왕계를 대표해서 왔 다.”
수령이 침음을 흘렸다.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공적인 말 을 섞어야 한다면 상대를 대우해 주 는 것이 당연하다. 제아무리 신니치 카이가 관서를 제패한 구미라고는
하나 감히 홍왕계와 비견될 수는 없 다.
신니치카이는 관서 연합의 수장일 뿐이지만, 홍왕계는 그 이상의 세력 을 명백히 지배하는 지배자다. 그 격이 다르다.
“실례했소이다.”
수령이 태도를 바꾸자 차이커창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별말씀을.”
“하면 이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논의를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논의라 하시면?”
두 사람은 언제 으르렁댔냐는 듯 부드러운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서둘러 의자를 들고 온 사노스케가 당황할 정도의 온화한 분위기로.
“물론 한국에 대한 논의입니다.” 수령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논의……. 물론 이루어져야 할 논의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 리 여의치 않다는 것은 그쪽도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만?”
“아니, 지금이 적기입니다.”
“……무슨 의미신지?”
“역사적으로 내부의 혼란을 다스 리는 방법은 빤하지 않습니까? 외부
의 적을 만드는 거지요.”
수령이 가라앉은 눈으로 차이커창 을 바라보았다.
빤한 방법이다.
빤한 방법이라는 말은 그만큼 정 석적이라는 말도 되겠지만, 다른 이 들도 예상하는 말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한국으로의 침공.
다른 구미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 이게 할 수만 있다면 최고의 수가 되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여의 치 않다.
“수가 있으시오?”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빤한 말씀을 하시는구려. 반도의 정벌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 오.”
“물론입니다. 말이 통해서 다행입 니다.”
차이커창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 다.
“그 마음이 확고하시다면 길게 이 야기할 필요가 없겠군요. 설득시켜 야 할 이들을 모아주십시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홍왕계는 신니치카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 니다.”
수령의 고개가 묵묵히 끄덕여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