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42)
마존현세강림기-1043화(1041/2125)
마존현세강림기 42권 (24화)
5장 미묘하다 (4)
‘뭔 말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 네.’
귀로는 듣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는 것 같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그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
은 다들 재경의 사무직들이다. 하지 만 배재민 역시 총회에서 사무직으 로 일해왔다.
사무직으로 일하던 사람들이 사무 직에 필요한 일들을 가르치는데, 몇 년 동안 사무직으로 일하던 사람이 그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 다는 건 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리고 배재민은 그 아이러니함이 대체 어디서 발생하는지 알 것 같았 다.
“왜 몰라, 왜!”
양진찬 대리라고 했던가?
연수생들을 교육하던 양진찬 대리 가 숫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아니! 아니! 여러분!”
양진찬이 불같은 노호성을 뿜어냈 다.
“모를 수 있지. 사람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으니까. 업무에 관련된 일이라도 모를 수는 있지. 그런데!”
양진찬의 손이 스크린을 쾅쾅, 때 렸다.
“내가 지금 뭐 대단한 거 바라는 거 아니잖아요! 이건 컴활 2급도 하 는 거란 말입니다. 여러분, 대체 그 동안 어떻게 일하신 겁니까?”
그러게요.
다들 무척 동의한다는 얼굴로 고 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동안 딱히 실감하지 못했는 데…….
—
이걸 모르세요?
—
아니, 이걸 왜 몰라?
—
아니!
그들을 가르치는 교관들의 반응을 보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모를 수 가 없다. 사람이 최소한의 눈치라는 게 있으면 뭔가 잘못되도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우리가 능력이 이렇게 없었나?’
물론 그들의 업무 능력이 일반 회사원들에 비해 못하다는 인식은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한 인식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능력이라는 건 결국 상대적인 비 교를 통해 측정되는 것 아닌가.
안타까운 일인지, 다행스러운 일 인지 몰라도 총회의 사무직들은 바 깥세상의 회사원들과 직접적으로 자 신을 비교할 일이 없었다. 그들의
능력의 기준이 되는 이들은 바깥세 상의 사무직들이 아니라 총회의 선 임 사무직들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그리 부족하지 않 은 능력을 갖췄으니, 이 정도면 됐 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 니다.
하지만 지금 배재민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
‘ 지옥같다.’
멘탈이 바스라진다.
그도 나름 무인이라 혹독한 수련 같은 건 수도 없이 경험해 봤다.
재능이 없어서 결국은 그 대열에
서 이탈하기는 했지만, 노력이 부족 하거나 의지가 없어서 무인의 길을 포기한 건 아니다. 오히려 의지력만 은 평균을 한참 상회한다고 자부한 다.
무인들이 겪어야 하는 그 지옥같 은 수련을 감안한다면, 배재민이 가 지는 자부심이 오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의지력과는 조금 다른 부류 였다.
“요새 신입 사원들도 이런 건 다 합니다! 아니, 신입 사원이 뭐야? 대학생! 아니, 고등학생도 이 정도
는 할 줄 알아요!”
‘세상이 많이 발전했네.’
과학은 인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 다더니, 과연.
멘탈이 쩌적쩌적 갈라지고 있지 만, 티를 낼 수 없는 이유가 있었 다.
‘저러다 숨 넘어가겠는데?’
배재민의 멘탈이 바스라지고 있다 면, 양진찬은 그냥 사람이 바스라지 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저 핏대가 터지며 출혈을 일으킬 것 같다.
수업을 시작할 무렵에는 새하얀 얼굴 때문에 햇빛 한 번 안 보고
산 사람 같았는데, 지금은 얼굴이 얼마나 빨간지 쉬는 시간에 깡소주 를 세 병 정도 들이켜고 온 것처럼 보일 정도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보다 더 답답해 돌아버리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게 있으면 그 앞에서 짜증을 부릴 수는 없었다.
“아니••••••
몇 번이고 ‘아니’를 중얼거리던 양진찬이 마른세수를 했다.
“일단, 일단 지금까지 가르쳐 드 린 것 복습하고 계세요. 잠시 나갔
다 오겠습니다.”
말은 ‘나갔다 오겠습니다’이지만, 양진찬은 얼굴로 ‘어차피 이대로는 수업이고 뭐고 하나도 안 될 테니 까, 내가 회의를 통해서 대책을 마 련해 오겠다’라는 말을 전달하고 있 었다.
“다녀오십시오.”
“죄송합니다.”
양진찬이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 며 밖으로 나가자 웅성거림이 커지 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걸 못하는 게 이상 한 건가?”
“이상하겠지. 이상하니까 저러시 는 거 아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던 데?”
“나도 모르겠더라.”
“그럼 그동안 우리 일은 어떻게 한 거야? 이 실장님은 그거 받고도 괜찮다고 했잖아.”
“괜찮다고 한 적은 없지 않나?”
마지막 말이 정곡을 찔렀다.
그러고 보면 보고서나 결제 서류 를 들고 갔을 때, 이현수는 언제나
심드렁한 얼굴로 놓고 가라고 말하 든가, 멍한 눈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편이었다.
“……그 히스테리의 이유가 있었 구나.”
“몰랐지.”
배재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이현수가 항상 히스테리를 부린다 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보니 왜 이현수가 그렇게 신경 질을 부렸는지 이해가 갈 것 같다.
“우리 업무 능력이 그렇게 엉망인 가?”
“내가 입장 바꿔 생각해 봤는
데……
“응‘?”
“니가 쓴 보고서로 뭔가를 해야 한다면, 나도 속이 터질 것 같기는 하다.”
“……팩트 폭력을 멈춰주세요.”
배재민이 미묘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단순 워드 작성도 잘 안 된다는 건가?’
새삼 그들이 얼마나 무능력한지가 실감이 갔다. 그리고 황정후가 말한,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향상심이 없
는 거라는 말도 이해가 간다.
‘하긴 나도……
자신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 알려 고 하지 않았다.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배재민이 사무직을 선택한 이유가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
결국 총회의 사무직이라는 건 무 인에서 탈락한 이들이 총회에 붙어 있기 위해서 선택하는 마지막 단계 같은 의미다. 딱히 이 일을 통해 뭔 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을 수밖
에 없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벌컥.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 어왔다.
“어엇!”
살짝 놀란 탄성이 흘러나온다. 문 을 열고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강 진호였다.
“ 주목.”
단상으로 향한 강진호가 모두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전하고 가야 할 일이 있 는 것 같아서 들렀다.”
“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기합이 바짝 들어간 목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이번 연수에 성적이 좋지 않은 이들은 따로 면담이 있을 거라고 이 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반대 상황은 이야기를 안 한 것 같군. 이번 연수 상위 입상자는 새 로 신설된 부서의 부장으로 임명할 생각이다.”
사무직들의 눈이 커졌다.
“부장이요?”
“그래.”
“아, 아니……
상사가 발표를 하는데 그 자리에 서 되묻는 건 예의가 아니다. 아무 리 이들이 예의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도 그 정도의 분별력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의 발언은 그 분별력을 일시적으로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부장?’
지금 이곳에 와 있는 이들 중 가 장 높은 이가 과장급이다. 최소한 한 직위는 높여준다는 뜻이 된다.
“그, 그래도 되는 겁니까?”
“안 될 이유라도?”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 아니, 그래도 부장이면……
경력이 어느 정도 되거나, 경험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아무래도 새로운 것을 같이 배운 다면 젊은 쪽이 앞서 나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경력이나 경험 없는 신 입이 부장이 되어버리는 사태가 벌 어질 수도 있다.
‘공수표 아냐?’
‘저러다가 나중에 말 바뀌는 게 보통인데.’
강진호가 주변의 반응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전체적인 평을 들어봤다.”
“직급과 상관없이 역량 미달이라 는 평가더군.”
가슴을 콕, 찌르는 말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어차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 이니까, 누가 부장이 되어도 상관없 다. 능력 위주로 가지. 능력만 된다 면 나이와 경력에 상관하지 않고 직 급을 올려주겠다. 물론, 음……
강진호가 살짝 고민하는 듯 볼을 긁었다.
“이 말을 지금 하는 게 도움이 될 지, 아니면 화가 될지 몰라서 좀 망 설여지는데…… 어차피 알게 될 거 니까 그냥 이야기하도록 하지. 평가 상위자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무직들 의 연봉도 현실화할 생각이다.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인지, 제대 로 된 돈을 받지 못하고 있더군.”
“그리고 직급에 따른 연봉 차등도 조금 더 높일 생각이다. 그러니 열 심히 해서 직급과 연봉을 모두 가져
가도록.”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끈한 반응은 아니지만, 그걸로 도 충분한지 강진호가 미소를 짓고 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강진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웅성거림이 다시 커졌다.
“진짜일까요?”
“의심할 게 따로 있지, 새끼야! 회주님이 거짓말하시는 거 본 적 있 어?”
“없죠. 생각해 보면 회주님이 한 말은 다 지켜졌죠.”
“그렇지. 그리고 회주님이 거짓말
할 이유가 어디 있어.”
“그것도 그렇죠.”
상황에 대한 신뢰는 없지만, 강진 호에 대한 신뢰는 확실하다. 강진호 는 지금까지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켰고, 지금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총회를 발전시키고 있다.
배재민은 강진호가 나간 문을 바 라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른 하나가 이거지.’
총회의 사무직은 떨거지로 평가된 다?
정확하게는 아니다.
총회의 사무직은 평가받지 않는
다. 애초에 이중걸을 위시로 한 총 회의 간부진들은 사무직을 그저 비 서처럼 생각할 뿐이었다. 능력이 있 고 없고를 따지지 않는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것처럼 기대가 없으니 평가도 없다.
그러니 일을 잘해도 달라지는 것 이 없고, 능력에 따른 진급도 이루 어지지 않았다.
이현수가 들어오면서 뭔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지만, 이현수는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데도 바빠서 사무직 들까지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여 직위를
쟁취한 사람은 오로지 이현주뿐이 다. 하지만 이현주와 다르게 그들에 게는 회주와 독대할 방법도 없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도 없었 다.
노력해서 달라지는 게 없는데 누 가 노력을 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그들에게 당근을 던지고 있었다. 노력하면 달 라지게 해줄 테니, 이제부터라도 노 력하라는 뜻이다.
의도가 빤히 눈에 보이는 말이지 만…….
“부장이라……
배재민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강진호가 쏠 때는 화끈하게 쏘는 성격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그 강진호가 연봉을 현실화한다고 했으 니, 부장의 연봉은 분명 그들이 생 각하는 이상이 될 것이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배재민이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 다.
다들 심드렁한 척하고 있지만, 묘 한 열기가 느껴진다.
‘해볼 생각이군, 이것들.’
하기야.
교관이 그들의 전반적인 업무 능
력에 실망했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출발점이 다 같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누가 더 열심히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이런 공평한 싸움은 웬만해서는 해볼 수 없다.
‘나도 한 번 해볼까?’
배재민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자리 에 앉았다.
벌컥.
“여러분, 제가…… 어? 뭐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양진찬 이 일변한 분위기를 보며 깜짝 놀랐 다.
“전달하겠습니다. 교육과정의 근 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판단, 오 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퇴 근하시고, 내일 출근 시간 맞춰 나 오시기 바랍니다.”
“저, 교관님.”
“ 예?”
“이해가 안 가는게 있어서 그러는 데,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습니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대사 같은 데…….
“뭐, 뭐가 이해가 안 가시는데 요?”
인간은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하 기 마련이라는 걸, 퇴근이 세 시간 늦어진 뒤에야 깨닫는 양진찬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