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54)
마존현세강림기-1055화(1053/2125)
마존현세강림기 43권 (11화)
3장 대응하다 (1)
“상황은?”
수령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 다.
평소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여유 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같은 여유는 눈 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소 신경질적인, 그리고 초조함 이 가득 어려 있는 목소리였다.
요헤이가 그런 수령의 변화를 보 며 살짝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초조하더라도 겉으로나마 평정을 유지해야 하는 게 위에 선 이의 의무다. 지금까지 수령은 그 의무를 잘 지켜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그 의무를 저버리고 있 었다.
‘나쁜 뜻은 아니지.’
지금 이곳에 있는 이는 수령과 요헤이, 그리고 차이커창이다.
차이커창에게 여유를 보이는 건
의미가 없다. 그는 그런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는 자였고, 신니치카이 보다 더 신니치카이의 입장을 잘 알 고 있는 이였으니까.
재미있는 것은 수령이 요헤이의 앞에서마저 가면을 벗어던졌다는 점 이다.
그 말인즉슨.
‘나 역시 측근으로 분류를 마쳤다 는 뜻이겠지.’
요헤이는 말려 올라가려는 입꼬리 를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닌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요헤이는
수령을 가장 적대하던 이들 중 하나 였고, 그 대표 격이 될 뻔한 인물이 다. 그런 이가 지금 수령의 마음속 에서 측근으로 분류가 되고 있다니.
더 아이러니한 것은 요헤이 역시 그런 수령의 인식에 딱히 반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옛말이 틀린 게 없지.’
내부의 적이 문제가 된다면 외부 의 적을 만들어라.
흔들리는 내부를 단속하는 데는 전쟁만 한 것이 없다. 국가와 국가 의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만큼은 균 열은 봉합되고, 갈등은 묻히기 마련
이니까.
“우선 대놓고 반대하는 이들은 더 이상 없습니다.”
요헤이의 말에 수령이 가만히 고 개를 끄덕였다.
설명은 충분히 했다. 그럼에도 아 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수장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그렇다고 다들 협조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겠지.”
수령이 눈을 찌푸렸다.
반대로, 말로 한 설명만으로 모두
가 납득해 주기를 바라는 것 역시 무리였다.
“이쪽에서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 겠지. 부정적인 이들을 따로 분류해 주게. 내가 직접 만나서 고개를 조 아리는 한이 있더라도……
“ 멍청하긴.”
수령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갔다.
그의 눈에 혀를 차고 있는 차이 커창의 모습이 들어왔다.
“……지금 뭐라고 했지?”
“멍청하다고 했다.”
차이커창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수령의 콧수염이 부르르 떨린다.
아무리 차이커창이 홍왕계의 실권 자이고, 신니치카이가 감히 홍왕계 와는 비교될 수 없는 세력이라고는 하나, 한 세력의 수장에게 할 수 있 는 말이 아니었다.
“네놈……
“덕장 흉내는 그 정도로 하지.”
수령이 입을 꾹 다물었다.
차이커창의 말이 그를 쿡 찌르는 느낌이다.
수령의 반응을 본 차이커창이 피 식 웃었다.
“흉내라는 말이 기분 나쁜 모양이
군. 그렇다면 사과하지. 하지만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다. 사실 자신 의 모습을 숨기고 적당히 군자인 척 하는 건, 수장들에게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다만……
차이커창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평시일 때의 이야기다.”
“전시는 평시와 다르다. 평소에는 덕장의 밑에서 지내고 싶어 하는 이 도 전쟁이 벌어지면 맹장을 원하는 법이지. 이런 시기에 아랫것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협조를 구하는 건, 되레 스스로를 깎아먹는 일이지.”
“ o w
•三r.•
수령의 눈이 좁아졌다.
요헤이가 적당히 둘의 반응을 보 다가 입을 열었다. 그가 중재에 들 어가야 할 타이밍이다.
“협조를 구하지 않는다면 세력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 습니다.”
“ 천만에.”
차이커창이 몸을 뒤로 기대며 심 드렁하게 말했다.
“게으른 돼지를 움직이게 하는 방 법은 두 가지지. 먹이로 유인을 하 거나, 엉덩이를 걷어차거나.”
요헤이가 굳은 얼굴을 숨기지 못 했다.
아무리 비유적인 표현이라고는 하 나 중국 놈이 일본인들을 게으른 돼 지라 비유하는 것이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평소에는 먹이로 유인하는 게 좋 지. 감정이 상하지 않을 수 있으니 까. 하지만 돼지우리에 불이 났는데 도 우왕좌왕하는 멍청한 돼지 새끼 들은 엉덩이를 걷어차 줘야 하는 법 이지.”
“말은 잘하는군.”
수령이 이를 갈 듯 말했다.
“내게 덕장 흉내를 내지 말라고 하더니, 네놈은 선문답을 할 생각인 가 보군.”
“아아, 미안하군. 듣는 사람의 지 능도 생각했어야 하는 건데.”
수령이 아무 말 없이 차이커창을 노려보았다. 차이커창이 그 시선을 받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지. 그런 눈으로 봐야 지.”
차이커창이 어깨를 으쓱했다.
“더 긁었다가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으니, 이쯤하지. 방법은 간단해.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서 협
조를 구해.”
“다를 게 없지 않나.”
“그리고 협조하지 않는 구미 중 하나를 본보기로 삼아 모두 죽여.”
요헤이와 수령이 고개를 번쩍 들 고 차이커창을 바라보았다.
“ 모두?”
“순진한 척하지 말자고.”
차이커창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알고 있겠지? 권력의 강 화는 피를 동반한다. 그리고 피는 구실을 필요로 하지. 역사적으로 가 장 완벽한 구실은 전쟁이다. 전향적
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패 할 수도 있다는 구실은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지.”
“너는 일본의 사정을 모른다.”
“지금 일본의 사정이야 모르지만, 일본의 역사는 잘 알지. 일본이 권 력을 강화하는 방식은 오히려 빤할 정도로 전쟁 아니었나?”
수령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반박하고 싶지만, 차이커창의 말 은 틀린 게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 지. 그쪽은 나름의 정당성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며 줄타기를 하고 있
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 기에는 그냥 나약한 것뿐이야.”
“말을 삼가라.”
“손에 피를 묻힐 각오가 없는 이 는 위에 설 자격이 없는 법이지. 적 당히 피를 묻혀왔다고 생각할지 모 르겠지만, 그건 피를 묻힌 게 아니 야. 방해물을 치운 것에 불과하지.”
차이커창이 이를 드러냈다.
“피를 묻힌다는 건 공포로 지배한 다는 뜻이다. 권력의 공포라는 것은 불합리에서 나온다. 납득할 정도의 죄를 지었을 때, 납득할 정도의 처 벌을 받는다면 누구도 공포를 느끼
지 않아. 오히려 우습게 보지. 납득 하지 못할 정도의 약한 죄에 상식을 초월하는 과격한 처벌이 뒤따를 때, 인간은 공포를 느끼는 법이야.”
수령이 딱딱하게 굳은 눈으로 차 이커창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곳까지 올라오는 데 시련 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수령은 그 모든 것을 돌파하여 이곳까지 왔다 는 것에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 었다.
하지만 지금 차이커창의 말을 듣 고 있으려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자가 내 옆에 있었다면 지금
나의 위상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 다.
지금까지 그가 한 정략이라 해봐 야 상대의 약점을 찌르고, 숙여야 할 때와 몰아붙여야 할 때를 구분하 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방 식으로 권력을 손에 넣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결국 수령은 해냈다.
하지만…….
이자의 말 역시 틀리지 않다.
힘으로 찍어 누르지 못하는 권력 이란 결국 말 몇 마디에 뒤집힐 수
도 있는 것이다. 고작 젊은 무인들 몇몇을 잃었다고 폭동이라도 일으킬 듯 발악해 대던 놈들의 모습을 이미 보지 않았던가.
‘결국 권력이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
평온해 보이는 와중에서도 오르내 림은 있기 마련이다. 위기가 찾아와 도 흔들리지 않는 권력이 진정한 권 력이다. 그 작은 위기만으로도 태풍 을 맞은 조각배처럼 흔들리는 권력 은 권력이라 할 수 없었다.
왜 권력을 잡은 이들이 독재자가 되지 못해 안달을 부리는지 이해하
게 된 수령이었다.
“그건 이쪽의 방식이 아닙니다.”
요헤이가 중재에 들어갔지만, 차 이커창은 요헤이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마치 그는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는 듯이 수령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요헤이.”
“예, 수령.”
“각 구미에 연락을 넣어라. 원정 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니 지원하라 고.”
“ 예?”
요헤이가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하, 하나…… 수령, 자금의 지원 은 조금 뒤에……
“시키는 대로.”
요헤이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자금에 대한 문제는 협조를 끝냈다. 그런데 그 일정을 논의도 없이 급하 게 당긴다면 반드시 반발이 생겨날 것이다.
문제는 수령 역시 그걸 몰라서 지시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반발을 만들겠다는 거로군.’
차이커창의 말대로 하기 위해서.
“수령••••••
뭔가 말을 하려던 요헤이가 입을 다물었다.
반발하는 자를 본보기로 잡아서 처형한다.
그 ‘반발하는 자’에 요헤이 자신 도 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 다. 마른침을 삼키며 수령을 보니, 어느새 수령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요헤이는 고개를 숙였다.
‘빌어먹을.’
달라진 건 그저 방향만이 아니었 다.
어쨌거나 관서는 강진호와 한국에 대항한 전쟁을 치르기로 결정을 내 린 상태다. 그리고 그 전쟁의 진두 지휘는 수령에게 맡겨졌다.
그 사실만으로 입장이 달라진다. 수령은 전쟁의 승리라는 명분으로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입장이 되었 다. 그리고 그 칼은…… 한국뿐 아 니라 일본으로도 휘둘러질 수 있다.
요헤이는 지금 이 순간 그 사실 을 실감했다.
‘이게 잘하는 짓일까?’
과거 역사적으로 주화파는 언제나 존재했다. 목적이 분명한 전쟁조차 반대하는 이들이 나온다. 역사를 보 며 언제나 그런 이들을 답답하게 생 각해 온 요헤이지만, 막상 자신이 그 입장에 처해보니 왜 그들이 전쟁 을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 았다.
국가의 이득은 개인의 이득과 동 일하지 않다.
설령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한들, 수령이 그것을 명분 삼아 반대파들 을 모조리 처내고,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해버린다면 요헤이는 대체
뭘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늦었어.’
하지만 반발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여기서 수령에게 반발하는 순 간, 그의 머리가 가장 먼저 떨어질 것이다.
“상황 파악이 끝났나 보군.”
요헤이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차 이커창을 바라보았다.
차이커창이 오싹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전쟁은 원래 피로 시작하는 법이 지. 하지만 진짜 전쟁은 적의 피가
아니라 나의 피로 시작하는 법. 피 를 두려워하는 자는 승리를 얻을 자 격이 없지.”
“옳은 말이다.”
수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시간 만에 수령의 얼굴 이 조금 변해 있었다. 여유와 부드 러움은 완전하게 사라졌다. 초조함 과 불안함도 그 모습을 감췄다.
남은 것은 독기와 악의.
그 온화하던 수령의 두 눈에서 살기가 뚝뚝 떨어진다.
요헤이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차이 커창.
이자는 독사다.
홀로 일본으로 걸어 들어와 수령 을 뒤흔들고, 일본마저 그 또아리 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독사.
맹독을 지닌 독사가 희게 웃었다.
‘저 독이 한국으로 향한다면 좋겠 지만……
독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어쩌면 저 독에 무너지는 건 한 국이 아니라 일본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