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66)
마존현세강림기-1067화(1065/2125)
마존현세강림기 43권 (23화)
5장 움직이다 (3)
부우우웅.
붕붕이가 산길을 타고 내달렸다. 강진호는 액셀을 꾹 밟으면서 보고 서의 내용을 다시 되새겼다.
‘알 수가 없군.’
61세의 존경받는 경제학자.
국내 굴지의 대학에 교수로 재직
했고, 현 정권의 경제를 이끌어 나 간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 한 손에 틀어쥔,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 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석동수는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 누구도 그의 삶을 실패했다 말하지 못할 것이다. 장관 이라는 자리가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잖은가.
그저 무난하게 임기를 마치기만 해도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이 내민 손을 잡고 정권에 저항
한다?
강진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정권에 저항한다는 게 문제가 아 니었다. 만일 그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정권에 저항했다면, 강진호는 되레 박수를 쳤을 것이다.
강진호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정 치라는 게 신념을 방패 삼아 가시밭 길을 돌파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 다.
방향은 문제가 아니다.
강진호는 과거 마교의 교주였다. 그렇기에 정도를 걷는 이들과는 서 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적인 정파들이 모두 사라져야 하는 암적 인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때로는 그들의 위선에 역함 을 느끼고, 때로는 그들의 갑갑함에 소리치고 싶은 때가 없는 건 아니었 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의 삶을 부 정하지는 않았으니까.
‘들어보면 알겠지.’
강진호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꾸욱.
액셀을 밟는 발에 힘이 들어간다. 그에 따라 강진호의 스포츠카가 비 를 가르며 도로를 내달렸다.
[자네, 정말 이럴 건가?]“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 르겠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대통령님이 자네를 얼마나 생각해 주셨는데, 중국 놈들의 말을 듣고 이런 식으로 나온단 말인가!]“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사람을 비 방하는 건 멈춰주셨으면 좋겠습니 다.”
[뭐라고?]“말 그대롭니다, 총리님.”
석동수가 유들유들한 얼굴로 손에 든 와인을 입가로 가져갔다. 코끝에 닿는 향을 음미하던 석동수가 와인 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대신 담배를 입에 문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이고 폐 속 깊이 빨아들인 석동수가 길게 담배 연기 를 뿜어냈다.
“저는 누구의 사주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번 일이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제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저
를 경질하시면 됩니다.”
[이, 이 사람이 정말!]“그렇지 않다면 이런 식의 압박은 멈춰주시길 바랍니다.”
“총리님.”
석동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 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시기 바 랍니다. 애초에 그 무뢰배 같은 놈 들의 사정을 봐주는 건 불법입니다. 지금 총리님은 제게 불법을 자행하 라고 지시하시는 중입니다.”
[자네, 말 다했나?]“할 말은 한참 더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다 하면 총리님께 너무 큰 무례가 될 것 같아서 넘어가는 것뿐 입니다. 여기서 멈추신다면 저도 더 는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걸고넘어 지신다면, 저도 제 자리를 걸고 꿈 틀거려 볼 수 있잖겠습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씩씩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노친네, 혈압으로 쓰러지겠군.’ 석동수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목소리
하나하나에 섞인 감정까지 생각해 가며 깍듯이 모시던 총리다. 하지만 지금의 석동수에게는 더 이상 의미 가 없는 이였다.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
[이보게! 자네!]뚝
전화를 끊어버린 석동수가 살짝 거친 동작으로 휴대폰을 테이블 위 로 던졌다.
“임기 끝나면 사라질 영감이 시끄 럽기는.”
석동수가 피식 웃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액션을 취하기는 했지만, 사실 총리 는 그가 왜 이러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느끼는 답 답함을 똑같이 느끼고 있을 테니까.
대한민국에서 총리라는 자리는 일 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다.
대통령 외에는 누구도 총리의 위 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갑갑한 자리지.’
총리라는 자리에 오른 이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임명직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가 바로 총리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을 노리 기 위해서는 임명직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져야 한다.
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실적을 남긴다면 훗날 총리 의 자리를 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르 지만, 거꾸로 말하면 장관 자리에서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올라갈 수 있 는 곳은 총리가 한계라는 뜻이다.
막대한 실권을 휘두르는 것 같지 만, 실제로는 대통령의 방패막이나 하다가 짓지도 않은 죄를 덮어쓰고 하야하는 자리. 그게 대한민국 임명 직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총리직의 실체였다.
“안 되지.”
누군가는 그런 자리라도 감지덕지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석동수는 그런 자리에 만 족하기에는 야망이 너무 큰 이였다.
그가 노리는 것은 더 높은 곳.
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었다.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 감 히 꿈꿀 수조차 없던 곳이 이제 눈 에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는 앞으로도 길고 긴 가시밭길을 걸 어야겠지만, 가시밭길 끝에 도달할 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분명 달
랐다.
“ 후후후후.”
석동수의 눈에 확고한 미래가 보 이기 시작했다.
‘당 내의 친중파들을 규합할 수만 있다면 세력을 확고히 할 수 있다. 중국이 나를 직접 밀어준다면 얼마 든지 가능한 일이야. 그렇다면 차기 대선은 몰라도 차차기 대선은 노려 볼 만해.’
미약한 가능성이다.
아주 미약한.
하지만 석동수는 정치판이라는 곳 이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력한 대권주자가 하루아침에 몰락하기도 하고, 누구 도 신경 쓰지 않던 이가 자고 일어 나니 대선 후보 1순위가 되기도 하 는 곳이 정치판이다.
다시 말해 정치판에는 확고한 가 능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미약해 보이기 짝이 없는 가 능성이라고 해도, 진심으로 밀고 나 가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비웃을 테면 비웃으라지.
석동수가 내려놓은 와인 잔을 들 고 천천히 와인을 마셨다. 입안에
알코올의 향과 포도향이 감돌자 정 신이 확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그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한국 무도 총회.
중국의 요구는 아주 간단했다.
한국 무도 총회의 발목을 잡을 것. 그 어떤 방식이든 좋다. 종회의 발목만 확실하게 잡아준다면, 그들 역시 석동수에 대한 무제한 적인 지 원을 약속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석동수가 그들을 직접 막아야 한 다면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저들의 발 목을 잡는 것은 별것도 아니다.
더구나…….
석동수가 옆에 놓여 있던 보고서 를 집어 들어 펼쳤다.
“제 손으로 이리 가져다주니 더욱 쉬운 일이고 말이야.”
석동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 다.
‘어리숙한 놈들.’
하기야 놈들을 어리숙하다고 말할 건 아니다. 석동수 역시 그 상황에 서 당 중앙위원의 전화를 직접 받지 않았다면,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저놈들이 어리숙했다기보다는 중 국의 대처가 남달랐다고 봐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중국이 왜 저놈들을 이리 경계하 는 거지?’
아주 몰랐을 때는 생각도 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적당히 상황을 알게 되자 신경 쓰이는 게 생겨난 다.
그가 입수한 정보대로라면, 중국 이 한국에 비견될 수 없을 만큼 거 대한 나라인 것처럼 중국의 무인계 도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강하다.
그렇다면 대체 왜 중국은 총회를 저리도 견제하려고 드는 것일까?
그것도 석동수에게 무한한 지원을 약속해 가며 말이다.
‘모를 일이군.’
그리고 굳이 석동수가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
저들과 총회의 사정 같은 건 관 심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삶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만 관심이 았을 뿐이다.
‘이걸로 나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생각만 해도 뒷목이 짜르르 울리 는 것 같다.
총리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 다.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을 맡겼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이렇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줄이야.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은혜를 입은 것 아닌가.
날이 밝는 대로 질 좋은 산삼이 라도 주문해서 총리댁에 보내야겠다 고 생각하며 석동수가 자리에서 일 어났다.
이제 슬슬 잠을…….
그 순간, 석동수가 고개를 갸웃했 다.
숨만 쉬어도 땀이 나는 날씨가 아니던가. 그런데 조금 전부터 팔뚝 에 닭살이 돋아 있었다.
오한이 들고 몸이 으슬으슬 떨린 다.
‘에어컨을 과도하게 틀었나?’
아무래도 낮에 틀어놓은 에어컨을 낮추지 않은 모양이었다. 리모컨을 찾던 석동수가 기이한 느낌을 받으 며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에어컨을 껐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해 봤지만, 에어 컨에서는 냉기는커녕 바람조차 나오 지 않고 있었다.
그럼?
그럼 이 한기는 뭐란 말인가.
‘한기라고?’
석동수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 저었다. 하지만 손끝에 걸리는 공기 에는 도무지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 다. 오히려 후덥지근하기까지 한 공 기였다.
“……몸이 안 좋은 건가?”
아무래도 몸살에 걸린 모양이다.
하기야 그런 일을 겪었는데, 스트 레스가 극심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 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이쯤하고 쉬어야…….
그때 였다.
부르르.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대체 뭐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건 병 같은 게 아니다. 몸살 같 은 게 절대 아니었다.
몸의 중심부에서 시작한 떨림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팔다리가 후
들후들 떨리고, 턱이 절로 잇소리를 내며 덜컥거린다.
그와 동시에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대체••••••
석동수가 막 고함을 쳐 사람을 부르려는 찰나였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낮은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을 만큼 낮고 싸늘한 목소리가 석 동수의 귀를 파고들었다.
움찔.
석동수의 몸이 정지했다.
단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는 일이 다. 하지만 석동수의 본능은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이 뭔지 절로 알아냈 다.
숨을 죽인다.
동작을 멈춘다.
어깨를 움츠리고 눈을 크게 뜬다.
‘누구?’
석동수의 고개를 천천히, 아주 천 천히 움직였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 으로.
방의 한구석.
무드등만 켜둬 어둑어둑한 방 안 에서도 가장 어두운 곳.
아니, 본래 가져야 할 어둠보다 한없이 더 어두워진 그곳으로.
석동수가 숨을 멈췄다.
어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짙고 짙어 도무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깊은 어둠이 천천히 일 렁인다 싶더니, 이내 꿈틀거리며 방 안을 모두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어둠.
너무도 검어 이질감마저 느껴지는 짙은 어둠 속에서 새빨간 불빛이 피 어올랐다.
핏빛으로 빛나는 두 개의 안광.
그 안광을 마주한 순간, 석동수의
심장이 박동을 멈췄다. 악마.
이 방에 악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