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7)
마존현세강림기-107화(107/2125)
마존현세강림기 5권 (7화)
2장 — 고민하다 (2)
“건배!”
술잔이 서로 부딪친다.
강진호는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친구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명목상은 강진호의 휴가를 축하하는 자리였건만, 지금 이곳은 광란의 현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만 마시는게 좋을 것 같은
“ 진호야.”
“으음.”
“오늘 아니면 먹을 일도 잘 없으니까 일단은 좀 내버려 둬봐.”
“……그래.”
강진호는 눈이 풀려 버린 정인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힘드냐?”
“힘들긴 무슨.”
정인규가 클클대며 웃더니 소주잔을 훅 넘겼다.
이태호가 그런 정인규를 보며 못
말린다는 듯 주먹감자를 날렸다.
“야, 저 새끼, 재수 학원에서 눈 맞아서 연애하고 장난도 아냐.”
강진호의 얼굴이 뚱해지자 정인규가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다. 그런 거 아냐.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다.”
“너, 모의고사 폭망했다며?”
“……”
정인규가 어색한 웃음으로 사태를 얼버무렸다.
“이번 모의고사가 난이도가 높아 서 그런 거야. 진짜야. 석차는 안 떨어졌어.”
“저번 모의고사에서 석차 박살 났 다며? 그럼 박살 난 거 유지한 거 아냐?”
“그냥 넌 좀 닥칠래?”
정인규가 면박을 주자 이태호가 낄낄대며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 렸다.
“그러게 재수는 미쳤다고 재수 냐.”
“요즘 재수는 기본이야.”
“그런 공부 머리가 있는 애들 이야기고, 너나 나나 재수한다고 잘될 타입이냐? 있는 성적만 까먹는 거 지.”
“……쩝.”
정인규가 할 말이 없는지 입맛을 다시다가 옆에서 잔을 홀짝이고 있는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나도 유민이처럼 재능이 있었으 면 좋았을텐데.”
“응‘?”
“부럽다. 유민이는 공부고 뭐고 할 필요 없이 자기 할 것만 하면 되잖아. 내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유민이처럼 대한민국 최고 자리에 올라갈 수는 없을 테니 까.”
박유민이 조금 어두운 얼굴로 고
개를 저었다.
“그냥 운 죻아서 한번 우승한 거 지 뭐.”
“마, 말을 왜 그렇게 하냐. 더 열 심히 해서 다음에도 우승해야지! 내가 학원에서 내 친구 박유민이라고 목에 힘을 얼마나 주고 다니는데.”
“그래?”
박유민이 뜻밖이라는 듯이 정인규를 바라보았다.
사실 정인규는 박유민을 별로 좋 아하지 않았다. 강진호가 박유민을 챙겨주니 같이 노는 것이었지, 둘이 서는 따로 대화를 별로 해본 적도
없었다.
박유민이야 원죄가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그러한 대접을 받는게 당연하 다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정인규가 박유민을 친구라 말하고 다녔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내 어깨에 힘 좀 실리게 열심히 해라!”
오민재가 혀를 찼다.
“미친놈. 유민이가 너 기분 좋으 라고 열심히 해야 하냐? 지 직업인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정인규가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
르더니 한 잔을 훌쩍 들이켰다.
“왜 자작을 하고 그러냐.”
“괜찮아, 괜찮아.”
정인규의 발음이 꼬이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강진호가 눈살을 찌
푸렸다.
“그만 먹어라.”
“괜찮다니까.”
“……”
강진호가 뭔가 한마디 더 하려고 하자 박유민이 슬쩍 눈치를 줬다.
“음……”
박유민의 눈치를 받은 강진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을 털
어 넣었다.
“군생활은 할 만해?”
“별것 없어.”
“ 진짜?”
오민재가 그걸 믿느냐는 듯 핀잔을 준다.
“야, 진호한테 그걸 물어보면 제 대로 된 대답이 나오겠냐? 쟤 고등 학교 내내 놀다가 수험 직전 되어서 ‘아, 공부 좀 해볼까’ 하더니 재경대 간 애 아냐.”
“……그랬지.”
“쟤한테 공부하는 거 어렵냐고 물 어봐 봐. 별것 없다고 할걸?”
강진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생각을 해보니 확실히 그것 말고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사람은 다들 그릇이 다른 거야. 쟤한테는 그런 것 묻지 마라. 세상 에 어려운 것 없는 애니까.”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말이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민재도 강진호에게 악의가 있어 서 한 말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말을 그저 홀 려듣지 못한 것은 지금 강진호가 어 려움에 직면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잔하자.”
어색한 기분을 풀기 위해 강진호가 잔을 들었다.
“건배!”
술이 조금 더 들어가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제 겨우 4개월 남짓 되었지만, 다들 새로운 생활이 영 편하지만은 않은 모양이 었다. 그래서인지 간만에 만난 친구 들에게 투정도 부리고 서로 놀리기도 하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 고 있었다.
“정인규의 삼수를 위하여!”
“이 미친놈아!”
아무래도 개중에가장 상황이 힘 든 건 정인규라는 걸 다들 인정하는 지, 모두가 정인규의 생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진호야, 공부 쉽게 하는 방 법은 없냐?”
“집중하면 된다.”
“그게 잘 안 되니까 묻는 거 아니 냐?”
“안 돼?”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하자 오민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인슈타인한테 산수 묻는 짓거
리 하지 말고, 차라리 학원 선생님 하고 상담을 해라.”
“그래야겠다.”
정인규도 자신의 실수를 알았는지 우울한 얼굴로 술잔을 비웠다.
“대학 생활들은 할 만하냐?”
“대학가면 다 논다고 그러더니, 전부 구라였어.도서관에 자리 없다.”
“술도 안 먹어. 다 지들 공부하고 학점 따기 바쁘더라. 우리과에 여자 애 하나는 벌써 세무사 준비한다고 세법 끼고 공부하던데?”
“야, 말도 마. 우리 과 애는 벌써
AICPA 땄어.”
“그게 뭔데?”
“천조국 세무사.”
“히익.”
엄마 친구 아들이나 할 짓을 태연 히 저지르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에 오민재가 기겁을 했다.
“와, 걔들은 대체 뭐하는 애들이 냐?”
“대단한 애들이지. 근데 솔직히 우리도 꿇릴 것 없잖아.”
“왜?”
“AICPA라고 해봤자 붙는 애들 한둘이냐. 우리한테는 유민이가 있
다는 말씀! 박유민 뜨면 다 죽는 거야.”
“그건 그렇지.”
친구들의 말에 박유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요즘 세연이는 뭐하냐?”
“한세연?”
“응.”
아이들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향 했다.
“몰라.”
강진호의 깔끔한 대답에 시선이 다시 흩어졌다.
“쟤도 대단하다.”
“저런 놈은 다시없어. 진짜로.”
오민재와 이태호가 서로를 보며 주억거렸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강진호라는 인간이도무지 이해가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사고 이후로 사람이 바 뀌어 버린 것 같았다.
“사람이 무심해도 정도가 있지.”
갑자기 그에 대한 비난으로 여론 이 흐르자 강진호는 헛기침을 하며 잔을 들었다.
“한잔하자.”
“저거, 말 돌리는 거 봐?”
“군대에서 좋은 거 배워 왔네.”
입은 있지만 할 말은 없었다.
“조심해서 들어가라.”
“어, 너희도.”
오민재와 이태호가 인사불성이 된 정인규를 부축하며 손을 흔들었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그들이 정인규를데려다 주기로 한 것이다.
“4차가……
“4차는 얼어 죽을!”
민재화 태호가 살기 띤 눈으로 정 인규를 노려보았다.
“아, 집에가기 싫거든?”
“야, 택시 태워라!”
정인규가 뭐라 말을 하든 택시를 잡은 둘은 강제로 택시에 태우고는 소리쳤다.
“마, 들어가기 전에 한잔 더 해야 돼!”
“ 알았다.”
강진호의 말에 씨익 미소를 지은 둘이 택시에 탔다. 차가 출발하고 둘만 남은 박유민과 강진호가 멀어 지는 택시를 바라보았다.
“택시 탈 거냐?”
“술 좀 깨고가자.”
강진호와는 다르게 술이 약한 박 유민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지 구석
으로가 건물 계단에 걸터앉았다.
“이렇게 들어가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
“그렇겠네.”
강진호도 그 옆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복귀해야지?”
“그렇긴 한데……
박유민도 걱정이 많은 얼굴이었다.
며칠만 연습을 쉬어도 따라잡기 힘들다는 프로씬에서 벌써 한 달이 넘도록 제대로 된 연습을 못하고 있 으니 걱정이 클 만도 했다.
선천적인 장애 때문에 다른 사람 들에게 무시를 당하던 박유민이 처 음으로 찾아낸 자신의 적성이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도 이룬 만 큼 애착도 상당할 것이다.
그렇게 쌓아 올린 것들이 지금 무 너지고 있으니 박유민이 느끼고 있을 불안함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네 인생이 우선이야.”
“네 말이 맞아.”
강진호는 박유민의 이런 점이 좋
았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상 대의 말을 일단 반박하지 않는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천천 히 자신의의견을 말하는 것.
그것이 박유민의 화법이고, 박유 민의 인성이었다.
“알긴 알아. 아는데, 나도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것 알지.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니까. 최근에는 연습실로 복귀했는데, 연습생한 테 발리는 꿈도 꿔.”
“끔찍하군.”
“태연한 척하려고 하는데, 나도 불안하긴 한가 보더라. 그래도 뭐
어쩌겠어.”
강진호는 고개를 돌려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담담해 보이는 그의 표 정을 보고 있자니, 원장 수녀님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어쩌면 박유민에게 있어서 진정한 부모는 원장 수녀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부모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사경을 헤매게 되었고, 동생 이라고 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상황이 되
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박유민이 할 수 있는게 무엇이었을까.
“그래도 애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그도 그렇지.”
강진호가 박유민의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해. 좀 더 벌고, 좀 더 어깨에 힘도 주 고, 다른 사람들에게 ‘거 봐라, 나 성공했잖아’ 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 음도 있어. 그런데 내가 지금 보육
원에 손을 떼고 얻은 성공이 과연 나한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 면……
박유민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 날 내가 손에 넣은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릴까 봐 무서운 거야.”
마음이 약하다고 해야 할지, 정이 많다고 해야 할지.
진짜가족도 버려가며 돈과 명예를 탐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데, 그런 세상에서 버텨 나가기에 박유민은 생각이 너무 많았다.
강진호가 돌아오기 전까지 박유민
혼자서 이 모든 상황을 감내하며 얼 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면가슴이 갑갑해 온다. 전화라도 한 통 해서 투정이라도 부릴 만도 할텐데, 아 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상황을 버텨 온 박유민이 대견하기도 하고, 대단 하기도 하다.
“괜찮을 거다.”
“응?”
“넌 괜찮을 거야.”
박유민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이
익숙하면서도 갑갑하다.
“그래, 괜찮을 거야.”
어쩌면가장 듣고 싶던 말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계획과 지금의 상황을 해 결해 줄 구명줄보다 그저 그 한마디의 말이 지금의 박유민에게는 필요 했을지도 모른다.
박유민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괜찮을 거야.”
둘은 그렇게 더 이상의 대화를 나 누지 않았다.
어둑한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어가고 동쪽에서 붉은빛이 감돌 때까
지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렇게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