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71)
마존현세강림기-1072화(1070/2125)
마존현세강림기 44권 (3화)
1장 찾아내다 (3)
이현수가 가만히 김명찬을 바라보 았다.
‘이 영감님, 장난 아니시네.’
근육이 절로 조여진다.
딱히 위협을 가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할 말을 하고 있을 뿐이지 만, 천하의 이현수를 긴장하게 만든
다.
‘예전에 황 회장님을 뵈었을 때의 느낌 같군.’
물론 그때만큼의 패기가 느껴지지 는 않지만, 사람을 절로 압도하는 힘이 느껴진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 하는 면이 있었다.
‘석동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에게도 정치인으로서의 힘이 보 인다고 생각했는데, 김명찬을 만나 보니 석동수는 애송이였다는 게 확 연히 느껴진다. 물론 모든 것은 상 대적인 것이겠지만.
“저희는 그럴 의사가 없습니다.”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개입은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현수 씨라고 했던가요?”
“예, 총리님.”
“정치인이 입에 가장 잘 담는 거 짓말이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김명찬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입니다.”
말문이 막힌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은 없습
니다. 다른 방법은 언제나 있습니다.
다만, 조금 귀찮고, 시간이 더 걸릴 뿐이죠.”
“••••••예.”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그만한 수고를 감내하고 싶지 않았다는 의 미일 뿐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석동수의 일도 해결하려고 했다 면, 결국에는 해결할 수 있었을 것 이다. 강진호가 나서면 어떻게 될지 이현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그 방법이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이 기에 선택했을 뿐이다.
“세상을 뒤흔든 수많은 일들은 그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시작됩니 다. 나라가 너무 혼란스러우니 어쩔 수 없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 았다. 군의 진격이 불가하니 어쩔 수 없이 위화도에서 회군을 해야 한 다.”
“아••••••
김명찬이 어깨를 으쓱했다.
“예. 그럴 수도 있겠지요. 문제는 그 어쩔 수 없음이 거기에서 끝나느 냐입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정리했다 하더라도 민주적으로 해결 한다면 영웅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위화도에서 회군을 했다 하더라도
고려를 지켰다면 충신이 되었겠지 요. 하지만 보통은 ‘어쩔 수 없다’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젭 니다.”
김명찬의 눈빛이 날카롭게 이현수 를 훑었다.
“어떻습니까, 총회는? 당신들의 ‘어쩔 수 없다’는 여기에서 끝난 겁 니까?”
이현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면도날로 썰어 대는 느낌이군.’ 이제야 왜 정계에 괴물이 산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명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
현수를 난도질한다. 반박의 여지조 차 남는 게 없다.
이현수가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 다.
“총리님,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 는 대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석동수 장관에 대한 일은 깊은 사유 끝에 나온 게 아닙니다.”
“그 말은?”
김명찬이 가만히 이현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총회라는 곳의 체계는 합리적이 라기보다는 회주의 의도에 따라 급 변할 수 있는 체계다, 이런 의미입
니까?”
“아, 그건……
이현수가 입을 다물었다.
‘아, 이 병신.’
할 수만 있다면 주먹으로 자신의 얼굴을 갈겨 버리고 싶다. 지금까지 누구와도 대화를 하면서 일방적으로 말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김명찬은 이현수를 말 그대로 가지 고 놀고 있었다.
대화를 시작한 지 5분도 안 됐는 데 밑천까지 다 털리는 느낌이었다.
“그런 의미까지는 아닙니다.”
“다시 말해……
김명찬이 가라앉은 눈으로 이현수 를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든, 회로 돌아가 회주의 마음에 들지 않 는다면 모든 이야기가 다 엎어질 수 있다는 뜻이군요.”
이현수의 근육이 좀 더 오그라들 었다.
“그런 얼굴 할 것 없어요. 생각보 다 흔한 이야기니까요. 국내 대기업 이 얼마나 총수 독재인지를 아신다 면, 그리 민망한 얼굴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거긴 정말 마굴이죠.”
쥐었다 풀었다, 그야말로 능수능
란하다.
잔뜩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면 저 말에 헤헤, 웃고 있었을지도 모르겠 다. 이현수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 아냈다. 이런 모습도 보이면 안 되 겠지만, 땀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 다.
“그래서 말인데……
“ 예.”
“총회의 회주님과 따로 만나뵐 수 있을까요?”
“……회주님과요?”
“ 예.”
이현수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 다.
“아아, 직접 만나는 게 어렵다면 전화라도 상관없습니다.”
“저, 전화요?”
“예. 이왕이면 총회의 회주에게 확답을 듣고 싶어서 말이죠. 총회라 는 곳이 회주에게 크게 좌우되는 곳 이라면, 그분의 대답을 직접 듣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요.”
이현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 다.
총리가 뭘 원하는지는 이해했다.
“그럼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되겠 습니까? 회주님과 연락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세요.”
이현수가 고개를 꾸벅이고는 자리 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김명찬이 식어버린 커피를 들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차 한 잔 내주지 않았군.’ 여유로운 척을 했지만, 긴장하고 있던 건 그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 다.
하기야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상대하는 사람은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한국 무 도 총회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 다.
지금 이곳에서 그가 어떻게 말하 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대한 민국이라는 나라가 뒤흔들릴지도 모 른다. 지금 당장이야 큰 문제가 없 겠지만, 이 작은 씨앗이 발아한다면 수십 년 뒤에는 어떤 모양으로 자라 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이현수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회주님께서 지금 통화가 가능하 다고 하십니다. 만나야 한다면 따로 약속을 잡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 금……
“굳이 약속까지 잡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중요한 건 얼굴을 맞대 는 게 아니니까요.”
“예. 그럼 지금 바로 연결하겠습 니다.”
“예.”
이현수가 몸을 돌려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강진호인가.’
김명찬이 마른침을 삼켰다.
강진호라는 이름이 그에게 주는 울림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단순히 석동수의 일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 다. 석동수의 일 이전에 문제는 이 미 벌어졌다.
‘따로 연락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강진호라는 이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건 사실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그 이중걸에 비해 딱히 큰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김명찬 총리가 생 각을 바꾼 것은 영국에서 온 연락을 받은 이후였다.
‘우호 관계라니……
딱히 별일도 없는데 수상 관저에 서 연락이 와 양국의 우호를 증진하 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그동안 영국과의 관계가 딱히 나쁜 것은 아 니지만,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사이 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례적인 일 이었다.
영국에서 ‘강진호’라는 이름을 직 접적으로 언급하기 전까지는 말이 다.
‘그만한 거물일 거라고 누가 상상 이나 했겠는가.’
무인계에 휘둘리는 다른 나라들을 비웃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의 배 속에서 시커먼 것이 자라나 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김명 환은 그 어둠의 실체와 대면해야 한 다.
“연결됐습니다.”
이현수가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 다.
슬쩍 이현수와 시선을 교환한 김 명찬이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총리 김 명찬입니다.”
평소 김명찬은 자신의 직급을 내 세우는 걸 그리 즐기지 않는다. 그
럼에도 직급이 먼저 나간 것은 상대 에게 밀리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생 각 때문일 것이다.
[강진호입니다.]“예.”
하지만 상대는 담백하게 나온다.
김명찬은 이 순간 자신이 밀렸다 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자신은 직 급을 내세우는데, 상대는 담담하게 이름만을 내민다. 누가 누구를 더 의식하고 있는지 명확해지는 순간이 다.
하지만 대화는 이제 시작이 아닌 가.
“이런 식으로 연락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바쁘신 분 오래 잡 고 있을 생각 없으니, 본론으로 바 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김명찬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 였다.
스타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현수 와는 다르게 말이 쉽게 이어지지 않 는다. 어쩌면 그가 강진호라는 존재 자체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석동수 장관의 일 때문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예.]끌려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 다. 상대가 직설로 찌른다면, 이쪽도 직설로 간다.
“이번에 석동수 장관의 일로 폐를 끼친 것은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 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석동수 장관은 한 나 라의 장관입니다. 그가 옳지 않은 선택을 했다고는 하나, 법이 아닌 무력으로 그를 억압하는 것은 대한 민국의 국민이자 한 나라의 총리로 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계속하세요.]“이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하겠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에 대한 회주님의 대답을 듣고 싶습 니다.”
대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토하듯 내뱉은 말에 잘못된 것은 없는지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었으 니까.
[조금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
“오해?”
[얽히지 않기를 원하는 건 그쪽만
이 아닙니다. 이쪽도 정계와는 엮이 고 싶지 않습니다. 이번 일만 해결 된다면, 다시는 정계 쪽과 엮일 일 이 없을 겁니다.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확실합니까?”
[세상에 확실한 건 없습니다. 아 직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뿐입니 다.]“ 으음••••••
[먼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이쪽 에서 뭔가를 하려 드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약속드립니다.]‘먼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이
라…….
그 기준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가.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여기에서 더 나가는 것은 무리수였다. 일단 저 말을 이끌어낸 이상, 여기서 물 러나야 한다. 괜히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다가는 풀 속의 뱀이 머리를 치켜들 수도 있으니까.
완전한 분리는 이뤄내지 못했지 만, 시간을 벌었다는 것만으로 의미 가 있다.
“회주님의 말을 믿겠습니다.”
[원만한 관계를 위해 이쪽에서 도 와드릴 일은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
다. 하지만 그쪽에서 해야 할 일도 있겠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럼.]이현수가 전화기를 회수한다. 그 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명 찬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통하는 상대라 다행이군.’
이미지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젠틀
하다. 물론 짧은 전화 통화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우리 쪽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이현수가 서류 가방을 열고 그 안에 든 보고서를 테이블 위에 올렸 다.
그러고는 보고서를 김명찬 쪽으로 가볍게 밀어놓았다.
“저희 쪽에서 파악한 친중파 명단 입니다.”
“회주님께서는 이들에 대한 처리 를 원하십니다.”
김명찬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마귀 같은 놈들.’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구실로 원치 않는 이들을 밀어내겠다는 소 리다. 문제는 김명찬으로서는 이 제 안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 었다.
“모두 밀어낼 수는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밀어낼 수 없는 이들은 저희 쪽에서 정리하겠습니 다.”
“……이보시오, 이현수 씨.”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절대 불법적인 방법은 아닐 테니까요.”
어느새 여유를 되찾고 싱긋 웃는 이현수를 보며 김명찬이 낮은 한숨 을 내쉬었다.
‘잘하는 짓인지.’
물러서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김명찬이 눈을 딱 감고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