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82)
마존현세강림기-1083화(1081/2125)
마존현세강림기 44권 (14화)
3장 돌진하다 (4)
“홍차 한 잔 부탁해도 되겠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이 돌 아왔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마스터.”
“고맙네.”
비서가 밖으로 나가자 마스터가 이마에 손을 올렸다.
‘사람 할 짓이 아니군.’
예전에도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 던 마스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소화하고 있는 업무량은 과거의 자 신이 소화하던 업무량을 어린애 장 난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과도했 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마스터가 원탁의 일원으로 나이트들에 비해 조금 많은 권한을 가진 것에 반해, 지금의 마스터는 원탁의 지배자로서 모든 의사 결정 에 관여하는 권한을 손에 넣었기 때 문이다.
‘전제왕권의 가장 큰 피해자는 왕 자신이라더니……
그 말이 왜 나왔는지를 알 것 같 다.
권력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는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실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나이트들에게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마스터에게 허락을 받아 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 요했다.
자율권을 준다면 좀 더 부드럽게 원탁을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래서야 과거와 다를 게 없다. 지금 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상황을 유 지해야 한다.
“알고는 있지만, 이 나이에…… 마스터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나이가 열 살만 젊었더라도 조금 더 의욕적으로 나이트들을 짓 누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 금 그는 체력적인 한계에 봉착해 있 었다.
무인이 무슨 체력의 한계냐고?
체력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중력을 유지하 는 것 역시 체력이다. 하루 종일 앉
아서 공부만 하는 수험생들도 체력 이 중요하지 않은가.
육체적 피로를 느낄 일이야 없지 만, 정신적 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마스터니까 이만한 일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는 것이 다.
‘예전의 왕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군.’
마스터조차 버거워하는 일을 과거 의 왕들은 어찌 처리했는지 모를 일 이다. 물론 과거의 왕들이 받은 보 고서는 지금 마스터가 처리하는 것 처럼 자세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에
게 마나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피 로는 별다르지 않을 테니까.
“휴우.”
그때, 비서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 나는 홍차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마스터.”
“신경 써줘서 고맙네.”
마스터가 살짝 윙크를 했다.
“그래도 아직은 일을 할 때라서 말이야.”
“건강을 해치실까 염려됩니다.”
“허허허.”
무인이 건강을 해친다니.
예의상 하는 말이겠지만, 그 말이 꽤나 재미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그 정도 관리는 할 줄 아니까.”
“예. 그럼.”
비서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 가자, 마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거짓말이 능숙해졌군.’
사실은 꽤나 무리를 하는 중이다. 그가 생각하는 적정한 밸런스는 이 미 한참 전에 깨졌다.
하지만 우는소리를 할 때가 아니 다.
사실 지금 원탁의 상황은 매우
미묘했다.
엘더 나이트들이 무너지고 나이트 르보의 쿠데타가 진압되면서 겨우 안정을 되찾기는 했지만, 그 이후 마스터가 원탁의 전권을 틀어쥐려 하면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 는 상태다.
사람은 손에 쥔 것을 놓으려 하 지 않는다.
그게 설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버릴 수는 있을지언정 남에게 빼앗기려 하지는 않는다. 이건 이성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이다.
어린아이가 손에 쥔 것을 강제로 빼앗으려 들면 울음을 터트리는 것 과 같은 이치다.
한낱 어린아이도 자신의 손에 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데, 나이 트들은 어떻겠는가.
각각 하나의 일가를 이룬 이들이 다. 그런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쉬이 내려놓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으려 한다고 해서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트들은 각자 자신의 나라를 대 변하는 이들. 자신의 것이라면 내놓 을 수 있겠지만, 나라의 것을 내놓
을 수 있겠는가.
마스터가 그와 같은 입장이라 할 지라도 격렬하게 저항했을 것이다.
그런 입장을 알면서도 몰아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마스터다. 이미 원탁이 가지는 한계를 뼈저리 게 경험했으니까.
다만…….
‘이상할 정도로 정면으로 치고 들 어오지 않는군.’
원탁이란 기본적으로 합의체.
모든 의사는 원탁에서 대화로 결 정한다. 그런 방식에 익숙해진 이들 이라면 회의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
려 할 공산이 높았다. 하지만 마스 터가 전권을 잡은 이후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마스터의 의견을 정면으 로 반박해 오지 않는다.
“절대 굴복한 건 아닐 텐데 말이 지.”
그럴 리가 없다.
손안의 것을 빼앗기고도 참을 만 큼 저들은 고분고분하지 않다. 더구 나 마스터가 반발하라고 엉덩이를 쿡쿡 찌르고 있음에도 신음조차 흘 러나오지 않는다는 건 확연히 이상 하다.
생각되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강진호의 지배력이 마스터 가 상상한 이상으로 저들을 억제하 고 있을 확률.
‘가능한 일이야.’
마스터 역시 충분히 강진호에게 놀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마스터에게는 강진호 란 존재에게 적응할 시간이 존재했 다.
이미 한국에서 그를 만나보았고, 그와 손을 섞어보기까지 했다.
확실히 다를 것이다.
강진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를 알고 강진
호를 대면하는 것과, 아무런 정보도 없는 채 강진호가 엘더 나이트를 썰 어버리는 것을 보는 건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강진호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있던 마스터조차 강진호가 엘더 나 이트를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다른 나이트들이 받았을 충격이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목격이 소문이 되고, 소문이 공포 가 되는 과정이야 빤한 것.
그렇다면 지금의 침묵도 이해할
수 있다. 강진호가 마스터의 지위를 보증한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으 니까.
또 하나는…
‘어설프게 나이트 르보처럼 일을 벌이는 게 아니라 완벽하게 내 목줄 을 쥘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거겠 지.’
이것 역시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느 쪽일까?
‘둘 다겠지.’
강진호는 부담스럽다. 그렇기에 마스터를 견제하려면 좀 더 확실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아마 그런 눈으로 보고 있을 것 이다.
아마 뱃속이 끓는 느낌이겠지.
‘너무 탓하지들 말게나.’
나이트들이 느끼는 부담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마스터가 받는 부담은 그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버텨내야 한다.
고착화되어 있던 시스템을 뜯어고 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 시작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 익숙 함은 습관으로 이어지고, 습관은 관 습으로 발전한다. 이윽고 관습이 규 칙으로 발전하게 되면 사람이 만든
시스템이 사람의 목을 죄게 된다.
이미 원탁은 그 단계까지 왔다. 여기서 뒤엎지 못한다면 발전은커녕 썩어가게 될 것이다.
‘그 중대한 역할을 이 늙은이가 맡게 된다는 게 문제겠지.’
마스터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말하자면 이건 업보였다.
마스터는 원탁과 다른 시스템을 차용한 무인계를 비웃어왔다. 인간 이 발전하고 시스템이 발전하는데, 여전히 일인 독재로 굴러가는 무인 계라니, 너무도 미개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저들을 우습게 봤던 것이 사실 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인간들이 아니구만.’
홀로 한 집단를 이끌어 나간다는 건 어마어마한 심력이 소모되는 일 이다. 권한은 반드시 책임을 동반한 다. 권한을 나눠 가질 때는 적당히 넘겨도 되는 일들마저 하나하나 신 경 쓰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대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까?
“후우.”
마스터가 낮은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였다.
그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음‘?”
마스터가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는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댔 다.
“자네는 항상 사람이 휴식만 하려 고 하면 방해하는군. 어디에 감시 카메라라도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의 심이 될 정도로.”
[영국은 아직 시간이 늦지 않았을 텐데요. 이 시간에 휴식을 하실 줄
은 몰랐습니다. 조금 여유가 생기신 겁니까?]
“반댈세. 휴식 시간이라는 걸 따 로 가질 여유가 없으니, 틈틈이 어 떻게든 시간을 내는 걸세.”
[이런, 실례했습니다.]마스터가 피식 웃었다.
위긴스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능글맞다. 물론 목소리만은 아니다. 사람 역시 능글맞다.
“무슨 일인가?”
[이런 건 찾아뵙고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찾아뵙는 것도 마스터의 시간을 땟는 일이 될것 같아 전화로 하는 무례를 용서하 십 시오.]
“혀가 길군. 그런 사람이 아니었 는데 말이야.”
[나름의 처세라고 생각해 주십시 오.]“처세를 논할 거라면 빨리 말하 게. 지금 나에게 있어서 가장 끔찍 한 사람은 내 시간을 뺏는 사람이니 까 말이야. 자네는 이미 근접했어.”
[그럼 시간 끌지 않고 바로 말씀 드리겠습니다.]“그래주면 좋지.”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말과는 달
리 위긴스는 바로 말을 잇지 못했 다. 하지만 마스터는 위긴스를 재촉 하지 않았다.
언변이 좋은 사람이다. 좋게 말하 면 언변이 좋고, 나쁘게 말하면 한 없이 능글맞은 인간이 위긴스다. 그 런 이가 말을 쉽게 잇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부탁을 하려 한 다는 뜻이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그 ‘어려움’이 다.
과연 위긴스가 머뭇거리는 이유가 지금부터 할 부탁이 마스터에게 어 렵기 때문일까, 아니면 위긴스가 어
렵게 느끼는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홍미가 돋는다.
잠시라도 일을 잊고 이런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치유 되는 느낌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 천천
[아닙니다. 말하겠습니다.] ‘내가 곤란하다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마스터!]항상 말을 안 듣지.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마스터가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 그러고는 액정에 뜬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위긴스가 맞는데?’
마스터의 얼굴에 놀람이 어린다.
어색한 얼굴로 전화기를 다시 귀 에 댄 마스터가 허허롭게 웃으며 말 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말해주겠나?”
[마스터께 가르침을 구하고 싶습 니다.]잘못 들은 건 아니다.
두 번이나 잘못 들을 리는 없으
니까.
마스터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내가 한 말을 내가 뒤집 는 것 같아서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 만, 이거 전화로 할 말은 아닌 것 같군그래. 지금 시간이 있다면 이쪽 으로 건너오지 않겠는가? 게이트를 열어두지.”
대답은 조금도 지체 없이 홀러나 왔다.
[바로 가겠습니다, 마스터.]“그럼 끊겠네.”
전화를 끊은 마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래서야……
할 일은 넘쳐 난다. 오늘도 과연 퇴근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간이 침대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가의 싸 움이 었다.
‘이걸로 쪽잠 확정이군.’
조금 서글퍼졌지만, 괜찮다.
덕분에 꽤나 즐거운 꼴을 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마스터가 피식 웃고는 게이트를 향해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