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87)
마존현세강림기-1088화(1086/2125)
마존현세강림기 44권 (19화)
4장 파견하다 (4)
“무슨 일이야, 바쁠 텐데?”
강진호가 시트에 등을 기대며 전 화를 받았다.
[별일 없어?]“딱히.”
강진호가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 었다.
‘무슨 일이 있나?’
전화를 건 사람은 박유민이었다.
강진호가 알기로 지금 박유민은 무척 바쁜 시기다. 세상에는 바쁜 일과 주변 관계를 동시에 챙길 수 있는 능력자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박유민은 명백히 그런 부류가 아니 었다.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건 다 까먹는 사람이 박유민이다.
그런 박유민이 이런 시기에 전화 를 했다는 건, 분명 뭔가 중요한 일 이 있다는 뜻이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있는 것 같은데.’
목소리가 살짝 뻣뻣한 게, 그런 느낌을 더욱 확연히 주고 있었다.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면 좀 이상하네.’
눈치 없다는 말을 수집하듯 듣는 강진호가 아닌가.
그런데 박유민에 관련된 일은 목 소리만 듣고도 상황을 짐작하고 있 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 이다.
[시간 좀 나? 얼굴 한 번 보려고 하는데?]“시간?”
강진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시간이라……
솔직하게 말하면, 시간이 없다. 막 수련에 대한 감을 잡은 처지고, 내일부터는 이현수가 자리를 비운 다. 그 업무를 대신하는 것도 오늘 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맞겠지만…….
“네가 편한 시간 잡아. 내가 맞출 게.”
강진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
다른 사람이 시간을 요청했다면 당연히 거절했겠지만, 박유민은 아 니다. 박유민은 그의 가족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과 지인을 지키기 위해 강해 지는 것이다. 강해지기 위해 그들과 의 관계를 멀리한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수련을 한단 말인가.
[그럼 내일 저녁 정도 괜찮을까? 오늘은 늦은 것 같고.]
“나는 상관없어. 그런데 너는 괜 찮아? 바쁠 시기잖아.”
[머리가 잘 안 돌아서 기분 전환
좀 하려고.]
“그렇다면야 뭐.”
딱히 다른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박유민은 프로다. 그리고 신출내 기가 아닌 베테랑이다. 컨디션 관리 나 일정 조정은 당연히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이 이상 간섭하는 것 은 배려가 아니라 무시다.
“그래, 그럼 내일 저녁에 보자.”
[아, 그런데…….]이응?”
박유민의 목소리가 살짝 다급하 다.
[한 명 더 봐야 할 것 같은데…….]
“영기‘?”
[아, 영기도 있었지.]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영기 아니면 누구?”
[아, 그게…….]박유민의 목소리에 머뭇거림이 담 긴다. 하지만 강진호는 재촉하지 않 고 가만히 기다렸다.
[그…… 세연이가 한 번 같이 보 자고 해서…….]“ 웅?”
세연?
한세연을 말하는 건가?
[아니, 뭐, 이유가 딱히 있나. 친 구끼리 얼굴 한 번 보자는 건데.]강진호의 살짝 미간을 좁혔다.
박유민이 한 말에 반감이 들어서 가 아니라, 박유민이 말하는 ‘친구’ 라는 단어가 무척 어색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 친구인가?’
그와 한세연이?
아니면 한세연과 박유민이?
모를 일이다.
“나는 별 상관 없는데, 너 괜히 시간 내는 거 아냐?”
[아냐. 나도 요즘 머리가 좀 복잡 해서 기분 전환이 필요하거든.]“흐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럼 내일 보자.”
[어디서 볼까?]“영기네 매상 좀 올려줘야지.”
[그래. 그럼 내일 보자.]전화를 끊은 강진호가 피식 웃으 며 핸들을 잡았다.
‘어디 보자……
살짝살짝 액셀을 밟아본다. 위화 감이 조금 느껴지기는 하지만, 운전 을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혹여 문
제가 생기면 바로 차를 세우면 된 다.
부우우웅.
붕붕이를 몰아 정문을 빠져나온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문제는 없네.’
웃음이 나온다.
다른 사람이 지금의 강진호를 본 다면 어이없다고 웃어 댔을 것이다. 강진호쯤 되는 이가 수련을 좀 과하 게 했다고 운전을 제대로 못할까 봐 걱정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차를 운전
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다리가 후들 거릴 정도로 수련을 해본 적이 없다 는 뜻이겠지.’
물론 그 이전에도 말이다.
우스운 일이다.
마염들과 다른 이들에게는 한계를 뛰어넘는 수련을 강조하면서도 강진 호 본인은 땀조차 제대로 흘려본 적 이 없다. 물론 수련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미 강진호는 육체적인 수 련의 의미가 없는 단계라고 생각했 을 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최근까지 그리 틀리지 않았다.
과거의 감각을 되찾고 내공을 올 리는 것만으로도 강해질 수 있었으 니까.
‘그래봐야 변명이지.’
강진호가 피식 웃는다.
그래도 상관없다.
너무 늦지 않게 알아챘으니까. 실 수는 누구나 저지른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얼마나 바로잡을 수 있느냐 다.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러니…….
그때, 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 다.
액정에 뜬 최연하라는 이름을 확
인한 강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전화 를 받았다.
“네, 강진호입니다.”
[뭐 해요?]“퇴근하는 중입니다.”
[요즘 영 수상한데? 어제부터 톡 하나도 없고?]“아••••••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걸 신경 쓰지 못하는 쪽은 박유민이 아 니라 자신인 모양이다. 머릿속에 최 연하의 존재가 아주 사라졌던 걸 보 면 말이다.
“생각할 일이 좀 있었어요.”
[그럼 내가 지금 방해하는 거예 요? 나중에 전화해도 되는데?]“괜찮습니다. 해결됐어요.”
[그럼 다행이구요. 그런데 혼자 알아서 고민하고, 혼자 해결하는 건 좀 불만인데.]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건 다른 사람과 상의할 수 있 는 고민이 아니다. 무에 대한 강진 호의 고민은 바토르조차 상담역이 되지 못한다. 오로지 강진호 홀로 외로이 걸어야만 하는 길이다.
“아, 그게……
[됐어요. 상의할 일이면 상의했겠 지.]그렇죠.
그건 그런데…….
[그건 됐고, 내일 시간 어때요? 내일 나 스케줄 비는데.]“내일요?”
[네. 내일요.]“내일은 좀 곤란할 것 같은데요.”
[바빠요?]“아뇨. 바쁜 게 아니라 내일은 친 구들이랑 간만에 얼굴을 보기로 해 서요.”
[유민 씨하고 영기 씨?]“유민이는 맞는데…… 아, 영기도 맞네요. 영기네 가게에 가기로 했으 니까.”
[아, 그렇구나. 그럼 뭐, 어쩔 수 없죠.]“다음에 스케줄 빌 때는 시간 만 들어볼게요.”
[네, 알았어요. 꼭이에요.]“ 네.”
[그럼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네.”
강진호가 전화를 끊고 가볍게 웃 었다.
슬슬 운전에 익숙해진 강진호가
액셀을 꾹 밟았다.
최연하가 휴대폰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등받이에 몸을 한껏 기댔다.
“흐으으음.”
최연하의 미간이 살짝 좁아진다.
긴장한 눈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최연하를 보고 있던 코디와 스타일 리스트가 뒤로 움찔 물러난다.
“언니 기분 다운된 거 같은데?”
“방금 전화한 거 아냐? 누구랑
한 건데?”
“모르지. 전화 할 때 주변에 얼씬 대면 짜증 내잖아. 난 반경 50미터 안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아.”
“그래? 전화 한 통 한다고 기분 이 다운될……
앞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던 코디 가 고개를 뒤로 쭉 뺀다.
‘저기압이다.’
‘그렇죠?’
‘조용히 해. 저럴 때 눈만 마주쳐 도 난리가 난다.’
최연하의 옆에서 살아남는 법은 그리 특별할 게 없다. 최연하가 언
제 기분이 나쁜지만 제대로 파악하 면 된다.
물론 최연하는 기분이 좋은 상태 에서도 웬만큼 성질 더럽다고 욕을 퍼먹는 톱스타를 깨갱하게 만들 정 도지만, 그래도 그게 낫다.
기분이 나쁜 최연하는 마녀로 전 직하니까.
“자자, 준비 다 되셨어요?”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스탭이 최 연하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디와 스타일리스트가 입을 틀어 막고 격렬하게 손을 휘저었지만, 그 들의 손짓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
양이었다.
“자, 최연하 씨, 촬영장으로 이동 하실게요.”
최연하가 얼굴을 앞으로 고정한 채 눈만 살짝 옆으로 돌려 스텝을 바라보았다.
“ 지금••••••
스텝이 입을 다문다.
“촬영 좀 있다 할게요.”
“네? 지금 감독님이 모시고 오라 고……
“있다가. 한다고.”
최연하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가
다시 슬쩍 시선을 돌려 스텝을 바라 봤다.
“저기요.”
“ 예?”
“제 말 안 들려요?”
“……아, 아닙니다. 지금 가겠습니 다.”
스텝이 ‘아, 뜨거라’ 뒤로 물러났 다. 그러고는 벌게진 얼굴로 다급하 게 어디론가 달려간다.
그 광경을 보며 코디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어쩜, 요즘 우리 언니 너무 착해 진 것 같지 않아?”
“천사지, 천사. 옛날 같았으면 얼 굴에 커피 날아갔을 텐데.”
“요즘 성당 다니나 봐.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저리 착해질 수가 있 지?”
다른 사람들이 들었으면 미쳤냐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말이지만, 두 사 람의 대화는 일말의 거짓도 없는 진 심이었다.
예전이었으면 최연하가 기분 나쁠 때 근처로 접근했다는 것만으로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렇게 뒤집힌 촬영장이 한둘이 아니다.
기가 세기로 유명한 여배우계에서
도 독보적인 마녀라 불리던 최연하 가 아니던가.
남들이 지금 모습을 보았다면 싸 가지가 없다고 욕을 했겠지만, 업계 인이 본다면 ‘우리 최연하가 달라졌 어요’를 촬영하자고 달려들 판이었 다.
물론 그렇다고 상황이 좋은 건 아니지만.
“촬영 급한 거 아냐?”
“급하지.”
“오늘 내로 끝내야 한다며?”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해? 감독이 직접
올까?”
“언니한테 직접 말하는 감독 본 적 있어?”
“ 없지.”
“망신당하기 싫으면 안 오겠지.”
“그럼 어떻게 해?”
코디가 피식 웃는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저 기 오네.”
스타일리스트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헐레벌떡 뛰어오는 한은솔 의 모습이 보였다.
“고생하네.”
“아냐. 쟤도 요즘 빠졌어.”
“ 웅?”
최연하의 바로 앞까지 달려온 한 은솔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다.
“누나! 또 왜 그래요? 뭐가 문젠 데요?”
한은솔의 말을 들은 스타일리스트 가 입을 벌렸다.
“헐……
“내 말 맞지? 쟤도 요즘 맛 갔어. 옛날에 저랬으면 하이힐이 이마에 꽂혔을 텐데.”
“언니가 저걸 듣고 참아?”
“그러게. 사람이 이상해졌어.”
사실 예전의 최연하였다면 한은솔
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그저 바로 촬영장을 이탈하여 회사로 돌아가 사장실을 뒤집어 버릴 뿐이다.
갈굼의 최고봉은 내리갈굼 아니던 가.
그때, 최연하가 입을 열었다.
“야, 은솔아.”
“예, 누나! 뭐가 문젠지……
“내일 우리 스텝 애들 쉬기로 했 지?”
“예.”
“취소시켜.”
“예?”
최연하가 미간을 확 일그러뜨렸
다.
“내일 풀메 해야 돼.”
“……풀 메이크업이요?”
“어.”
“어, 어디 가시는데요?”
“어딜 가는 건 아니고……
최연하가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포스와 위압감에 한은솔이 자 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내가 저번에 감이 온다고 말했 지?”
“……그렇죠.”
“내일이다.”
“ 예?”
최연하가 더없이 단호한 얼굴로 선언하듯 말했다.
“내일 내가 수고비 따로 챙겨 줄 테니까, 애들 다 대기시켜. 풀 업하 고 간다.”
“구, 굳이 풀 메이크업까지?”
“ 야!”
“•…”예?”
최연하가 미간을 확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이건 자존심 문제야! 찌발라 버 리겠어!”
그런 데서 진지해지지 말라구요!
제발 좀!
울고 싶은 한은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