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89)
마존현세강림기-1090화(1088/2125)
마존현세강림기 44권 (21화)
5장 처리하다 (1)
‘이게 뭐야?’
이현수가 일그러진 눈으로 모니터 를 바라보았다.
손끝이 벌벌 떨리고, 이마에 땀이 차오른다.
“아니••••••
이현수가 이마에 흐른 땀을 소매
로 홈쳤다.
“커피 한 잔 가져다 드릴까요?”
“아, 아니, 괜찮습니다.”
“커피 싫어하십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만……
“아이스로?”
“……부탁드립니다.”
비서가 싱긋 웃으며 밖으로 나가 자, 이현수는 의자가 삐걱이도록 몸 을 뒤로 젖혔다.
‘어이가 없네.’
이현수가 지금 앉아 있는 곳은 마스터의 집무실 옆에 마련된 사무 실이었다. 원래는 비어 있는 사무실
을 이현수가 온답시고 새로 꾸민 것 이다.
이런 과분하고 황송한 대접은 상 상도 하지 못했다. 그냥 남아 있는 컴퓨터나 하나 던져 주고 자리는 복 도만 아니면 되는데…….
여하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 니라…….
마스터는 이현수를 이 자리에 안 내하고 나서 내일까지 이현수가 처 리해야 할 일거리들을 던져 준 후, 위긴스와 수련을 하러 나가 버렸다.
영국이라는 타지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외로움?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애초에 이런 대접을 받는 건 예 상하고 있었다. 심지어 마스터가 조 금 더 사람다운 대접을 해주려고 했 어도 위긴스가 용납하지 않았을 것 이다.
지금의 위긴스는 마스터에게서 뭐 라도 더 뽑아내야 하는 입장이고, 이현수에게 말을 건네는 시간도 아 까워할 테니까.
물론 이현수도 뭔가 거창한 대접 을 바란 게 아니다.
애초에 죽을 정도로 굴려질 것을 각오하고 왔다. 어설프게 하는 것보
다는 확실하게 하는 게 이현수의 스 타일이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서 임 할 생각이었다만…….
“허.”
헛웃음을 지은 이현수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걸 내일까지 끝내라 고?”
이걸?
사람이 진짜 화가 나면 손발이 덜덜 떨린다더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끼익.
비서가 쟁반에 아이스커피를 받쳐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 감사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비서가 빙그레 웃는다.
“업무를 보는 와중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필요 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 주십시 오.”
“그, 그럼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 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이게 평소 마스터가 처리하는 업 무량인가요?”
“음, 그건 제가 대답드리기 어렵
겠네요. 제가 마스터의 업무를 정확 하게 파악한다는 건 월권 아니겠어 요‘?”
“아, 그렇죠. 죄송합니다. 멍청한 질문을 했네요.”
비서가 빙그레 웃는다.
금발의 미녀가 웃는 모습을 보자 이현수의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다만, 제가 듣기로는 마스터께서 남은 업무를 거의 모두 넘기셨다고 들었습니다. 보여 드릴 수 없는 것 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아••••••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합니다.”
“업무가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네 요.”
“하하••••••
“그럼.”
이현수가 다급하게 비서를 다시 불렀다.
“아, 하나만 더.”
“네.”
“마스터께서 업무를 보는 시간이 어떻게 되십니까?”
“보통은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하셔 서 저녁 열한 시 정도까지는 이곳에 계십니다. 개인적으로 처리할 업무
는 집에서 따로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렇게 오래?”
“최근 들어 시간이 늘어나기는 했 습니다. 다만, 전에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또 궁금한 건?”
“아니요. 괜찮습니다.”
“네. 그러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비서가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이현수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가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봤다.
“그러니까……
그럼 이게 마스터가 하루에 처리 하는 업무량이라는 것 아닌가.
“이게?”
우물 안에 살던 개구리는 우물 밖을 알지 못한다.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 재였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이건 조금 경우가 달랐다.
“뭐, 이걸 하루 동안 해!”
우물 밖에서 죽도록 혹사당하던 노예는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얼마나 편히 사는지를 알지 못한다. 태생부 터 일과 함께했고, 이제는 일과 삶
이 같은 의미가 되어버린 이현수는 타인의 삶에 분노했다.
끝났다.
더 할 일이 없다.
이곳에 들어온 지 불과 세 시간 만에 내일까지 처리하라던 서류 작 업이 완벽하게 끝나 더 이상 할 일 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마스터가 원래 하는 업무량이란다.
이현수의 뇌리에 비서를 처음 보 았을 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심하는 눈치였지.’
그건 진짜다.
누가 봐도 마스터가 과로로 쓰러 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 현수가 일을 분담해 주러 왔다는 말 을 듣자마자 동양인인 이현수의 출 신도 묻지 않고 환한 얼굴로 환영해 주지 않았던가.
아니…….
“그럼 이게 이쪽 동네에서는 과중 한 업무량이란 말인데……
우물 밖에서 인간이 어떻게 사는 지를 알게 된 개구리가 당황하기 시 작했다.
“이 게을러 터진 유럽 놈들!”
이 정도로 버거워한다고?
이건 총회에서 이현수가 맡는 업 무량을 굳이 끌고 올 정도도 되지 못한다. 영남회 시절, 김석일 밑에서 나름 웰빙 라이프를 즐길 때도 이 두 배의 업무는 소화했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로 우는소리 라니!
마스터가 게으를…… 리는 없고.
그렇다고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럼 합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나 지금까지 대체 무슨 대접
을 받고 산 거지?”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 했다.
돌이켜 보면 이현수는 자신이 어 느 정도의 일을 처리하는지 알지 못 한다. 그는 회사원으로 성장한 게 아니니까.
계책을 짜내는 모사로 신임을 받 아 올라왔는데, 다른 놈들이 일 처 리하는 꼴을 보다 속에 천불이 나서 귓방망이를 후려치고 일을 떠맡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다시 말하자면, 대학교 조별 과제 조장의 최종 진화판이 이현수인 것 이다.
문제는 조별 과제는 양이 정해져 있고, 다른 조장들이 맡는 업무량과 서로 비교가 가능하지만, 이현수는 자신이 얼마만큼의 업무를 처리하는 지 비교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비상식적으로 일이 많다고 우는소리를 하면서도 어떻게 든 해냈던 것이다.
그런데…….
남들은 날이 벼려진 검으로 집단 을 베고 있는데, 이현수는 목검으로 나무를 베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불합리하다.’
총회는 더없이 불합리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그러고는 마스터와 위긴스가 웃는 낯으로 안으로 들어온다. 무딘 이현 수의 기감으로도 두 사람에게서 홀 러나오는 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변화가 없 지만, 분명 제대로 한바탕 하고 돌 아오는 길이다.
“어떤가, 할 만한가?”
마스터의 물음에 이현수가 뚱한 얼굴을 했다.
“……이걸 말입니까?”
“후후, 쉽지 않겠지. 일단 언어가
맞지 않고, 이쪽의 사정도 잘 모를 테니까 말이야. 자네가 많은 업무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네. 그러니 배운다고 생각하고……
“다 했는데요?”
“그래그래, 그 정도만……. 뭐?” 마스터의 부드럽게 말린 눈이 순 식간에 팽창하며 이현수에게 틀어박 혔다.
“다, 다 했다고?”
“……예.”
“그걸?”
마스터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하나다.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 아서 일 처리가 엉망으로 이루어졌 을 경우. 제대로 된 과정을 밟지 않 아서 본인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데, 오히려 꼬여 버리는 경우다.
“자, 잠시 비켜보게. 확인하겠네.” 잘하면 오늘도 집에 돌아가지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스터가 다 급하게 이현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여기 홍차 한 잔, 아니, 두 잔 주게.”
하지만 위긴스는 그런 마스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한 얼
굴로 자리에 앉아 비서에게 홍차를 주문했다.
마스터의 눈이 빠르게 문서들을 훑었다.
“이건 됐고, 이것……도 됐고. 음? 이거? 어…… 어?”
말이 사라진다.
클릭이 빨라진다.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한 기세 로 맹렬하게 클릭질을 하던 마스터 가 얼이 빠진 얼굴로 이현수를 바라 보았다.
“……이걸 다 했어?”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제 말을 안 믿으셨군요.”
“아, 아니, 안 믿었다기보다는 과 장이 있다고 생각했지. 그게 당연한 것 아닌가. 사람이 이만한 일을 이 정도 시간에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쪽 분야에 있어서는 사람이 아 닙니다.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계 속 굴려지다 보니 이상한 방향으로 진화를 한 모양입니다. 사무 기계라 고 할 수 있죠.”
“세상에……
이현수가 물기 젖은 얼굴로 천장 을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이거, 칭찬 아닙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울컥울컥 올라온다.
전쟁터에서 태어난 아이가 나무껍 질을 벗겨 먹고 사는 걸 당연하게 알다가 평범한 가정으로 옮겨져 처 음으로 고기를 구워 먹어본 느낌이 었다.
“아, 아니, 그럼 자네는 총회에서 대체 무슨 업무를 보고 있는 건가?”
“그게••••••
이현수가 처연한 얼굴로 자신이 하는 업무를 설명했다.
“그걸 왜 자네 혼자?”
설명하자면 길다.
설명하자면 매우 길다.
더욱 큰 문제는 설명을 시작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사나이 체면 에 일하다가 울 수는 없지 않은가.
“허, 허허허허허……
마스터가 허탈한 웃음을 홀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현수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허허, 세상에. 내가 온갖 경험을 하면서 여러 분야의 천재들을 봐왔 지만…… 허허허허, 일의 천재가 있
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 기가 막히는군.”
“자네, 이 기회에 원탁으로 옮길 생각은 없나? 내가 보수는 섭섭찮게 쳐주겠네! 연봉에 빠져서 익사할 수 있게 해주지!”
이현수가 반색하며 마스터를 돌아 봤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소리에 어깨 를 늘어뜨렸다.
“로드의 허락를 받아야 할 텐데 요. 아마 무리일 겁니다.”
“아깝군. 정말로 아까워.”
험하고, 거칠고, 불합리하게 굴려 진 대가로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
이게 기뻐할 일인가, 슬퍼할 일인 가.
“제가 더 해야 할 일은 없습니 까?”
“아니, 괜찮네. 오늘은 이걸로 끝 이야. 일은 더 하지 않아도 좋으니, 수련이 끝날 때까지 적당히 쉬도록 하게. 놀아도 좋네.”
“……놀아요?”
“왜 그러나?”
“그냥 일할 걸 더 주시죠.”
“오늘은 끝났다니까?”
마스터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그냥 놀다 가게나. 자네, 평소에 쉴 때는 무얼 하나?”
“……쉬어요?”
“그래. 휴일이라든가.”
“휴일요?”
이현수가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휴일이라는 말을 모르는 게 아니라, 대체 자신이 휴일에 뭘 했는지 기억해 내지 못하는 눈치였 다.
“……자네, 마지막으로 쉰 날이 언젠가?”
“올초…… 아니, 작년이었나?”
마스터의 목소리가 점점 더 무거 워졌다.
“아, 아니면 퇴근하고 나서 즐기 는 취미라든가?”
“잡니다.”
“출근하기 전에……
“눈 뜨면 출근합니다.”
“짬을 내서 휴식을 하거나 기분 전환을 할 때?”
“••••••네?”
마스터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더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노예제가 세상에서 사라진 지 벌
써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가.
그런데 여기에 현대의 노예가 있 었다. 심지어 묶어놓지 않아도 달아 나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하는 자발형 노예가.
이현수의 어깨에 올린 마스터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잠이라도 잘 텐가?”
위긴스조차 차마 더는 못 보겠다 는 듯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광경이 원탁 에서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