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92)
마존현세강림기-1093화(1091/2125)
마존현세강림기 44권 (24화)
5장 처리하다 (4)
몇 분 전.
“언니, 여기 마스카라 다시 바르 실게요.”
“움직이지 마세요, 은솔 씨! 차 좀 살살 몰아요! 흔들리잖아!”
한은솔은 세상에서 제일 슬픈 눈 으로 액셀에서 발을 슬며시 뗐다.
‘내가 무슨 마법사도 아니고……
달리는 차를 무슨 수로 흔들리지 않게 만든단 말인가. 이건 한은솔이 아니라 슈마허가 와도 불가능한 일 이다.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이 천 문학적인 돈을 투자해도 잡지 못하 는 흔들림을 인간의 능력으로 잡으 라고 하는 것부터가 과한 것 아닌 가.
하지만 한은솔은 단 한 마디의 불만조차 털어놓지 못했다.
슬쩍.
고개를 들어 룸미러를 본 한은솔
의 눈에 최연하의 무시무시한 눈빛 이 들어온다.
“그 감독 새끼, 내가 꼭 죽여 버 릴 거야!”
한은솔이 아무 말 없이 눈을 내 리깔았다.
사정은 그러하다.
원래 오늘은 스케줄이 없는 날이 었다. 하지만 어제 찍은 CF의 필름 이 유실되는 사태가 벌어져 오늘 급 하게 재촬영이 잡혔다.
최연하는 촬영장에서는 폭군이지 만, 촬영 자체를 뒤집어엎지는 않는
다. 강짜를 부릴 수 있는 부분과 강 짜를 부려서는 안 되는 부분은 확실 하게 구분해야 한다.
그걸 구분하지 못하는 이는 이 업계에서 살아갈 수 없다.
촬영장에 늦게 나타나거나, 촬영 장에서 왕처럼 구는 인성 쓰레기들 도 인기만 있다면 되레 칭송받는 게 이 업계라지만, 촬영을 펑크 내고 자기 마음대로 구는 이는 업계에서 퇴출되기 마련이다.
최연하는 그 부분만은 철저했다.
중국에서 그 지옥 같은 촬영을 이어가면서 단 한 번도 촬영을 펑크
내본 적이 없는 최연하다. 대략적인 일정조차 듣지 못한 상황에서 밴에 타고 24시간을 대기하면서도 욕은 했을지언정 촬영장을 이탈하지는 않 는다.
일과 감정은 별개니까.
그러니 도리가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래퍼가 쏟아내는 랩처럼, 쉬지도 않고 속사 포처럼 욕을 쏟아내면서도 촬영장으 로 가 촬영을 했다.
그런데…….
“컨셉을 바꿔? 유실이 됐으면 지 들 잘못인데, 유실된 것만 찍는 게
아니라 컨셉을 바꿔? 대가리 컨셉을 바꿔 버릴라!”
“언니, 말하지 마세요!”
“아, 은솔 씨, 차 좀 살살 몰라구 요!”
한은솔이 해탈한 얼굴로 운전대를 꾹 잡았다.
이래서 사람은 교육을 받아야 한 다.
‘차를 살살 몰아라’와 ‘늦었으니 빨리 가자’가 서로 상충된다는 생각 은 왜 하지 않는가.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단 하나만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하나만 물어도 됩니까?”
“뭐!”
물으라는 건가, 묻지 말라는 건 가.
“말을 꺼내놓고 왜 말을 안 해? 너 시비 거냐?”
“아니, 그게 아니고……
한은솔이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 지금 화장을 하시는 거잖아 요.”
“메이크업이라고 해주세요.”
“차이가 뭔데요?”
“느낌?”
“••••••아, 네.”
한은솔은 더는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촬영장에서 이동하 는 거잖아요. 그럼 화장은 이미 다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왜 굳이 이 난리 통에 화장을 새로 해야 하는 거죠?”
“은솔 씨, 안 되겠다. 어떻게 매 니저라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하지?”
“ 네?”
최연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코디 가 소리쳤다.
“촬영장에서 하는 메이크업이랑 평소에 하는 메이크업이 다른 건 당 연하잖아요. 조명 받으려고 오버해 서 해놓은 메이크업을 다른 사람들 이 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화장했구나 하겠죠.”
“저, 저••••••
한은솔은 백 마디의 욕보다 단 한 번의 눈빛이 사람을 더욱 비참하 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멸과 짜증이 잔뜩 담긴 눈빛에 바 짝 쫄은 한은솔이 몸을 움츠렸다.
“화면으로 보는 거랑 실제로 보이 는 건 달라요!”
“언니쯤 되는 얼굴이 메이크업을 풀로 하고 다니면, 최연하 화장발이 구나 하는 소리 나온다구요!”
“한 듯 안 한 듯! 화장 안 한 거 같은데도 화장한 얼굴! ‘아, 저 사람 은 쌩얼로 다녀도 저렇구나’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자연스러운 메이 크업! 그거 몰라요?”
아, 쌩얼 같아 보이려는 거구나.
쌩얼?
“……그럼 안 하면 되잖아요.”
“뭐래?”
“미쳤나 봐.”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최연하 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은솔아.”
“예, 누나.”
“그냥 하던 일이나 하면 안 될 까? 듣고 있자니 내가 속이 터져서 너도 터뜨려 버리고 싶거든?”
“……죄송합니다.”
목소리에 담긴 살기에 한은솔이 깨갱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니들.”
“네, 언니!”
“집중해라.”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언니!”
“오늘 화장 완전 잘 받아! 완전!”
최연하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거 울을 들어 얼굴을 보았다.
“살짝 진한 거 같은데?”
“밤이잖아요, 언니. 살짝 어두운 거 감안했어요. 밖에서 볼 때 더 쩔 거예요.”
최연하가 거울을 이리저리 돌리며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썹 조금 더.”
“언니, 여기서 더하면 과해요.”
“믿으세요. 저희 믿으셔야죠. 저희
실력 아시잖아요.”
“으으음.”
최연하가 눈살을 한 번 찌푸리고 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터치만 살짝 더 할게요. 활력 있 어 보이게!”
“그래.”
한은솔은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 다.
‘같은 한국언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가 없다. 나름 그대로 연예인 매니 저를 하면서 꽤나 지식이 있다고 생
각했지만,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거의 다 왔습니다.”
“언니 다 왔대요. 마무리할게요!”
“머리 한 번 더 만지고 싶은 데……
“아냐, 아냐. 여기서 만지면 너무 과해. 내추럴하게 가자, 내추럴하게. 딱 지금 회사에서 퇴근한 사람처럼. 오버할 것 없어.”
이미 오버는 충분히 하고 계십니 다만?
하지만 한은솔은 입을 꾹 닫았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을 하
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이 타 이밍에 무슨 말을 해도 좋은 소리 듣기 힘들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 었다.
“근데 너무 일찍 가는 거 아닙니 까?”
“왜‘?”
“아니, 조금 뜸을 들이고……
“뜸들이다 밥 되면?”
“……그죠. 그럼 안 되죠.”
아니, 그 쌀은 안 익는 쌀 같던 데,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나?
알다가도 모르겠다.
‘에이, 몰라. 나는 시키는 것만 하
면 되지.’
애초에 이 거대한 흐름(?)에 한은 솔의 자리는 없다. 지금의 그는 철 저하게 운전기사다.
“그 감독 놈이 촬영을 질질 끌지 만 않았어도 완벽하게 하고 오는 건 데.”
지금도 딱히 부족해 보이지 않습 니다, 누님.
제발 적당히 좀 하세요, 제에발!
한은솔의 눈에 익숙한 피자 가게 가 보였다.
“다 왔습니다.”
“앞에 대.”
“바로 들어가시게요?”
“차 빼놓고 있다가 톡하면 와.”
“……예이, 예이.”
한은솔이 군말 없이 차를 피자 가게 앞에 댔다.
“간다!”
“언니, 파이팅!”
“죽여 버려요! 아주!”
최연하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방긋 웃는 자신만만한 얼굴을 만들 어냈다. 그러고는 버튼을 눌러 차 문을 열었다.
“언니, 자연스럽게! 최대한 자연 스럽게!”
“어깨 펴시고!”
드르르륵.
문이 다시 닫히자 한은솔이 차를 살살 몰아 가게 앞을 빠져나왔다. 백미러로 피자 가게 안으로 들어가 는 최연하의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대체?’
동참하고 있기는 하지만, 황당함 은 사라지지 않는다.
“잘되겠지?”
“잘되지. 당연히 잘되지. 솔직히 우리 언니면 화장도 필요 없어. 그 냥 앞에 가서 고개만 들고 있어도 입을 못 떼지. 거기에 준비까지 했
으면 아주 죽여 버릴 수 있어.”
한은솔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요.”
“네?”
“ 뭐요?”
오늘따라 이 사람들 왜 이리 비 협조적이지?
“저기, 두 분은 지금 누나가 뭐 하는지 아시는 거예요?”
“남자 친구 전 여친 만나러 간다 면서요?”
한은솔의 눈이 흔들렸다.
그걸 니들이 왜 알지?
“그, 그걸 누가?”
“언니가 말해주던데요?”
아, 네.
그냥 차라리 광고를 하시죠.
신문 1면에 ‘최연하, 강진호와 교 제 중’이라고 광고를 내시면 전 국 민이 아는 데까지 삼 일이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이리 빙빙 돌아가는 방법을 쓰시는지.
“그걸 알고도 그렇게 난리를 치신 거예요?”
“알고도 난리라니?”
“그럼 이게 난리칠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날카로운 눈빛이 운전석으로 쏟아 진다. 한은솔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 아니, 좀 과한 것 같아서.”
“저러니까 여자 친구가 없지.”
“앞으로도 없겠네.”
팩트 폭력을 멈춰주세요.
무심코 던진 팩트에 모솔은 맞아 죽습니다.
코디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여자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물론 당연히 제가 알 리가 없겠 지요.”
뭘 말해도 틀렸다고 할 거잖아.
“자존심이에요.”
아, 말할걸.
그거 생각했는데.
“이건 자존심 문제예요. 어디 건 방지게 남의 밥상에다 슬그머니 손 을 뻗어?”
“조져야 돼. 확실하게 조져야 돼.”
“아주 그냥 다시는 톡도 못하게 박살을 내버려야 돼. 사람이 상도의 가 있는 거지.”
한은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 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진짜.
“어? 여.기. 있.었.어.요‘?”
어색하다.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말이었다.
주영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아, 연기라도 잘하든가!’
연기로 먹고산다는 사람이 그것밖 에 안 돼?
저번에 리뷰 보니까 연기가 물이 오르다 못해 찰찰 넘친다더니! 이게
무슨 발연기야?
하지만 어쩌면 연기를 잘하고 못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도 모 른다.
최연하가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가게의 모든 시선이 최연하에게로 집중된다.
그건 정말 신기한 광경이었다.
여기는 피자를 파는 가게다. 그러 니 식사를 하는 와중에서도 여러 사 람이 문을 열고 가게를 들락거린다. 등 뒤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 다고 해서 굳이 고개를 돌려 들어온 이를 확인하려 들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다르다.
최연하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 간, 사람들의 시선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최연하에게로 꽂힌다.
신기하기 짝이 없다.
‘이게 그, 뭐, 아우라인가 뭔가 하 는 그런 건가?’
또각또각.
최연하가 카운터로 천천히 걸어온 다.
아마 지금쯤이면 저 사람이 최연 하라는 걸 알아본 이들도 있을 것이 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멍하니 최연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운터까지 다가와 주영기를 본 최연하가 빙긋 웃는다.
그 와중에 진짜…….
더럽게 예쁘다.
최연하를 실물로 몇 번이고 본 주영기이지만, 오늘의 최연하는 뭐 랄까…… 클래스가 다르다는 느낌이 었다. 얼굴에서 빛이 나 눈이 부실 정도라고 해야 하나.
등 뒤에서 칼날 같은 눈빛이 느 껴지지 않았다면 정신을 차리지 못 했을 것이다.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셨어요오?
주영기는 자신도 모르게 최연하의 뒤쪽을 확인했다.
저 뒤에 여우 꼬리가 아홉 개쯤 은 흔들리고 있을 것 같다. 이쯤 되 면 요괴도 아니고, 대요괴다, 대요 괴.
“무, 무슨 일로?”
“에이.”
최연하가 다시 방긋 웃는다.
“피자집에 무슨 일로 와요. 피자 사러 왔지.”
“……아, 네. 그러시군요. 피자. 네, 피자.”
“네. 피자 사러 온 건데……
최연하의 고개가 천천히, 아주 천 천히 돌아간다.
우아하기 짝이 없게.
“아는 얼굴이 있네요. 신.기.하게. 도.”
주영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홀러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