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00)
마존현세강림기-1101화(1099/2125)
마존현세강림기 45권 (7화)
2장 짓누르다 (2)
저벅저벅.
원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이트 벨링거는 기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 었다.
‘괴이하군.’
그가 지금까지 원탁을 방문한 일 이 몇 회나 될까.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적 어도 세 자릿수는 가볍게 넘길 것이 다.
아무리 나이트들이 각국에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잦고, 대부분의 회 의는 원격으로 하는 시스템이 갖추 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이 트라는 이름을 가진 이상 반드시 원 탁에 직접 방문해야 하는 일은 존재 하기 마련이다.
전통을 지켜 나가는 그들의 입장 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나이트 벨링거도 수없이 원탁을 드나들었다.
길고 긴 수련과 헌신의 나날 끝 에 조국을 대표하는 나이트로 선정 되어 처음 원탁에 발을 들인 그날의 감동은 아직도 나이트 벨링거의 가 슴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후, 나이트 벨링거는 원탁에 들 때마다 그때의 마음가짐을 떠올 렸다. 원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 치는 것이 조국을 위하는 동시에 원 탁을 위하는 길이라 믿으며 말이다.
나이트 벨링거가 슬쩍 고개를 들 었다.
언제나 보던 풍경이다.
이 조금은 어두운 복도를 꽤나
오래 걷고 나서야 원탁이 있는 홀에 도달할 수 있다.
언제나 이 복도를 걸을 때면 절 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전 에도 수많은 나이트들이 걸어간 복 도다. 이 복도를 걸으면서 그들 역 시 원탁의 부흥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이트 벨링거는 오 래도록 보던 익숙한 복도에서 색다 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무거움인가?’
그게 아니면 어색함인가.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다.
확실한 것은, 늘 걷던 이 복도가 지금 이 순간만은 전혀 다른 느낌으 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둘 중 하나.
그가 변했든가, 아니면 원탁이 변 했든가.
어느 쪽이든 좋은 일은 아니다.
복도의 공기가 그를 짓누르는 것 만 같다. 어쩌면 공기가 무거운 게 아니라 그의 마음이 무거운 건지도 모른다.
“나이트 벨링거.”
“ o ”
나이트 벨링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 으로 충분했는지 바로 말이 이어졌 다.
“협조를 구한 나이트들 중 대부분 은 저희에게 찬동하기로 했습니다.”
“대부분이라 하셨습니까?.”
“예. 그게……
나이트 크라머르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이트 베슬리 일파가 끝까지 대 답이 없습니다.”
“찬동도, 거절도 아니고, 그저 묵 언이 라……
“그렇습니다.”
“으음, 그렇군요.”
나이트 벨링거의 미간이 살짝 좁 아졌다.
‘끝까지 도와주지 않겠다는 건 가?’
나이트 벨링거가 슬쩍 고개를 꺾 었다.
“혹여 마스터 쪽으로?”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일 이 있을까 봐 최대한 감시를 하고 있지만, 마스터와의 교감은 보이지 않습니다.”
“확실합니까?”
“죄송합니다, 나이트 벨링거. 확신
은 할 수 없습니다. 마스터는 그만 큼 무서운 분이니까요. 하지만 제 예상으로는 나이트 베슬리의 성격상 마스터와 손을 잡았다면 저리 두문 불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예상이라…….
예상.
그런 불확실한 것에 매달리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녹록치가 않다.
‘이건 단순한 회의가 아니다.’ 앞으로 원탁이 나아갈 방향을 정 하는 회의다. 다시 말하자면, 마스터 와 나이트, 원탁을 유지하는 그 두 개의 축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상
황이나 다름없다.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원 탁의 운명이 바뀐다.
‘칼날 위를 걷는 것이나 마찬가 지.’
세력은 충분히 모았다.
그리고 마스터를 압박할 수 있는 힘을 갖추었다.
그럼에도 벨링거는 조금도 안심하 지 않았다. 그가 상대해야 하는 이 가 그가 아는 마스터가 맞다면, 벨 링거가 이 정도의 힘을 모아 온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도 분명히
했겠지.’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다.
마스터.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갑갑해져 온다.
마스터라면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를 상대하는 데 예상 같은 불확실한 것 을 믿으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 다른 방법이 없다.
시간은 결코 나이트 벨링거의 편 이 아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유 리해지는 것은 마스터다.
그러니 결정해야 한다.
불확실함을 두려워해 한발 물러서 는 것으로 기르는 가축에게 주어진 사료 같은 안전을 취할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목숨을 걸고 건곤 일척의 승부에 나설 것인가.
‘무겁군.’
나이트 벨링거가 슬쩍 뒤로 고개 를 돌렸다.
단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나 이트 크라머르의 눈이 보인다.
그리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 을 부추길 게 아니라 직접 나서면 될 것을.
‘안 될 일이지.’
나이트 벨링거가 한숨을 내쉬었 다.
생각 같아서는 나이트 크라머르에 게 다 떠넘겨 버리고 싶었지만, 그 꿈은 이뤄질 수 없다. 총대를 메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이트 크라머르는 다른 나이트들 들 대표할 만한 경륜과 인망이 부족 하다. 그가 선두에 나선다면 절대 지금만큼 많은 이들이 모이지 않을 것이다.
나이트 위긴스와 나이트 르보가 실각해 버린 지금, 중지를 모을 수
있는 나이트는 그와 나이트 베슬리 밖에 없다.
그러니 그에게는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나이트 벨링거.”
“……말하시오.”
“오늘 반드시 결과를 내야 합니 다.”
“알고 있소.”
“아시다시피 우리에게는 더는 물 러설 곳이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 에서 마스터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 한다면, 남은 것은……
남은 것은?
남은 것은 뭐지?
순순히 마스터에게 고개를 숙이고 그의 개로 살겠다고?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라면 이런 일을 벌이 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뒤에 붙을 말은 하나밖에 없다.
실력 행사.
말로, 법도로 막아낼 수 없다면, 힘으로 막아낸다.
아마 그런 생각이겠지.
나이트 벨링거가 피식 웃었다.
‘잘도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군.’ 저 무도하던 나이트 르보조차도
힘으로 마스터를 억압하려 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가 행한 행위는 힘으로 마스터를 누른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최소한 원탁의 의결 을 따르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지금 나이트 크라머르는 최소한의 절차마저 지키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중이다.
원탁의 법을 수호하는 나이트라면 결코 입에 올릴 수 없는 말이다.
그만큼 저들이 극한에 몰려 있다 는 뜻일까, 아니면 원탁의 법도라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과거만큼의 신 성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
일까.
‘이것도 어느 쪽이든 다를 바가 없군.’
저벅저벅.
나이트 벨링거는 굳이 대답을 하 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나이트 크 라머르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달라 질 것은 없다. 결국 마스터가 어떻 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두운 복도 끝에 환한 빛이 보 인다.
‘잘 지었군.’
과거에는 저 광경이 무척이나 신 성해 보였다.
살짝 어두운 복도 끝에 보이는 환한 빛. 그 빛이 원탁이라 믿어 의 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입장에서 다시 보 면?
‘조악하지.’
원탁을 과거와 같은 눈으로 볼 수 없게 되자, 이 복도와 저 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조차 모두가 연출 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 설계 당시부터 고려되어 있 던 것이다.
나이트들이 긴 복도를 걸으며 먼 곳의 빛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
다.
빤하지만 좋은 설계다.
하지만 이제 나이트 벨링거는 그 런 수작에 당하지 않았다.
저벅저벅.
환한 빛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홀이 보인다. 그리고 그 홀 중앙에 커다란 원탁이 놓여 있었다.
나이트 벨링거가 살짝 심호흡을 하고는 원탁을 향해 다가갔다.
이미 대부분의 나이트들이 원탁에 앉아 있었다.
‘이만한 이들이 모인 게 얼마 만 인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이트들은 원탁의 업무와 국가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한다. 그런 바쁜 업무에 시달리는 이들이 시간을 내 한곳에 모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딱히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이번 일이 중 요하다는 뜻이겠지.
“오셨습니까, 나이트 벨링거.”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원탁에 앉아 있던 나이트들이 자 리에서 일어나 나이트 벨링거에게
예를 표한다.
나이트들은 서로 대등하다.
연륜과 경력으로 나름의 서열이 나뉘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모 두가 같다. 나이트 벨링거가 왔다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할 필 요는 없다.
그럼에도 저들이 굳이 예를 표하 는 것은 이번 일에 있어서 나이트 벨링거를 밀겠다는 암묵적인 표현이 었다.
“다들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이트 벨링거도 고개를 숙여 그 들의 인사를 받았다. 평소에 사이가
좋은 이도 있고, 개인적인 감정이나 국가 간의 이득 문제로 영 껄끄러운 이들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 요하지 않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어차피 한 배를 탄 이들이다. 과거는 묻어두고 지금은 협력해야 한다.
나이트 벨링거가 자리에 앉으며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시간이 있군.’
될 수 있으면 마스터가 좀 천천 히 와줬으면 한다. 이미 교감은 나 눴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다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참여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나이트 벨링거께서 나서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호의적인 말들이 이어졌다.
그저 겉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고마워한다는 게 느껴진다.
그렇겠지.
나이트 벨링거가 총대를 메고 마 스터에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다른 나이트들은 눈뜬 채 자신의 권리를 뺏겨야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과격하게 저항하려 하다가 진압되든가.
‘그건 안 되지.’
마스터가 뭘 노리는지는 이미 알 고 있다.
그리고 나이트 벨링거는 절대로 마스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줄 생 각이 없었다.
그때 였다.
철컹, 철컹.
플레이트 메일이 서로 스치는 쇳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자연히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두운 복도 너머에서 몇몇 사내 가 안으로 들어온다. 선두에 선 자 를 본 나이트 벨링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나이트 베슬리.’
원래라면 지금 나이트 벨링거의 자리에 있어야 했던 자.
그가 원탁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철컹철컹.
완전한 중무장을 하고 들어오는 그의 모습에 나이트 벨링거가 눈을 찌푸렸다.
“오셨습니까?”
나이트 벨링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지만, 나이트 베슬리 는 슬쩍 그를 일별하고는 대답도 없 이 자리로 가 앉았다.
“아니!”
“저런 무례를!”
다른 나이트들이 분개했지만, 나 이트 베슬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이트 벨링거가 한숨을 내쉬었 다.
“나이트 베슬리.”
나이트 베슬리의 고개가 살짝 벨 링거 쪽으로 향한다.
“연락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다른 나이트들이 모두 고민하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최소한 의견……
“거기까지.”
“••••••예?”
나이트 베슬리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그대와는 대화를 하고 싶은 생각 이 없소. 어차피 곧 알게 될 테니 까. 지금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싸늘한 나이트 베슬리의 일갈에 장내 공기가 급격하게 식어가기 시 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