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02)
마존현세강림기-1103화(1101/2125)
마존현세강림기 45권 (9화)
2장 짓누르다 (4)
느껴본 적 있을 리 없다.
단 한 번도.
나이트 벨링거는 강자다.
아니, 그저 강자라는 말로 표현하 기에도 모자란 존재였다.
나이트란 그런 자리니까.
원탁에 소속된 무인이 얼마나 많
은가.
무인이 쇠퇴하는 시기라고는 하 나, 원탁은 유럽 전체의 무인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각국의 정예를 거 르고 걸러 보냄에도 원탁에 모여드 는 무인의 수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많았다.
그렇게 모인 무인들 중에서도 격 이 다른 존재들이 나이트가 된다.
나이트가 되었기에 격이 다른 게 아니다. 격이 다르기에 나이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의미냐고?
나이트 벨링거의 눈에 앞쪽에 앉
아 있는 이가 들어왔다.
나이트 브뤼네(Brunet).
나이트 르보의 뒤를 이어 프랑스 의 나이트가 된 자다. 하지만 나이 트 벨링거는 나이트 브뤼네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무려 몇 십 년 전부터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이트라는 건 그저 노력한다고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나이트가 될 자들은 애초부터 또래 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앞서 나가기 마련이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도
누가 후대의 나이트가 될지를 모두 가 알게 된다. 주머니 속의 송곳을 감출 수 없듯이, 능력과 재능을 갖 춘 이는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아도 결국은 튀어나오기 마련이니까.
나이트가 되는 이들은 그만큼 뛰 어나다. 동 세대의 모두를 절망하게 만들 만큼 말이다.
그래.
다시 말하자면 강자다.
나이트가 된 이들은 대부분 그렇 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 지, 단 한 번도 약자의 입장에 서본
적이 없다.
타고난 재능이 달랐으니까.
그 재능을 개화하기 위한 노력이 달랐으니까.
약자일 수도 없고, 약자이고 싶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자신이 약자의 입장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
그래, 그저 발소리일 뿐이다.
위협을 하기 위해 힘을 준 것도 아니다. 나이트 벨링거가 무인이기 에 이 작은 소리가 귀를 파고들 뿐, 평범한 이라면 저 발소리를 들을 수 도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에 불과했 다.
감추려면 감출 수 있는 소리.
하지만 감추지 않고 그저 내딛는 발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그 발소리 가 지금 나이트 벨링거의 심장을 옥 죄고 있었다.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홀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마치 홀린 듯이 어두운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강진호라는 이름을 들었기 때문 에?
아니.
아니다.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해도 그 들의 반웅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 다.
생각해 보라.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와중에 고 개를 돌렸더니, 그곳에서 커다란 호
랑이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면?
눈을 뗄 수 있겠는가?
아니.
눈을 깜빡일 수조차 없을 것이다. 잠시라도 시선이 떨어지면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을지도 모르니까.
달아난다?
생각도 할 수 없다.
지근거리에서 맹수를 만나면 등을 돌릴 수조차 없다. 그저 저 맹수의 관심사가 자신에게 있지 않기를 빌 면서 돌처럼 굳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
이건 약자의 방식이다.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 서 있 는 게 호랑이가 아니라 작은 강아지 였다면 누구도 동작을 멈추지 않는 다. 강아지를 맞이하든 관심을 끄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것이다.
상대의 존재에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은 약자가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나이트 벨링거는 당황하고 있었다.
약자라고?
나이트 벨링거가?
이곳에 있는 모두가?
나이트와 약자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나이트는 강자다.
강자이기에 나이트가 될 수 있다. 강자가 아닌 나이트 따위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이트는 강자여야 한다. 언제 어 떤 순간에도!
하지만 그렇다면…….
왜 나이트 벨링거는 지금 이 순 간에도 저 복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 고 있는가.
그리고 왜 낮은 발자국 소리가 귀를 찌를 때마다 심장박동이 높아 지는가.
‘도대체……
무엇이 오는 건가.
무엇이…….
발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저벅저벅.
낮고 빠르지 않은 발소리. 그 발 소리가 점점 커진다 싶을 무렵, 어 둠 속에서 한 사람의 실루엣이 드러 났다.
저벅.
그리고 마침내 사내의 다리가 어 둠을 뚫고 홀 안으로 물 흐르듯 뻗 어 졌다.
텅.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밟는 소리 가 쥐 죽은 듯 고요한 홀 안에 퍼 져 나간다.
‘저 사람이 강진호……
나이트 벨링거가 두 눈을 부릅뜨 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크지 않다.
들려오는 소문이 워낙에 무지막지 하기에 막연하게 거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아 있던 모양이다. 실제 로 본 강진호는 그의 기준으로 보자 면 오히려 조금 작은 축에 속했다.
평범한 동양인 같은 인상.
살짝 서구적인 느낌이 드는 외모
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특징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았 다.
강렬한 근육도 보이지 않는다.
날카로운 인상도 없다.
지금 당장 원탁 밖으로 나가 런 던의 거리를 걸으면 종종 마주칠 수 있을 만큼 평범한 동양인 남성의 모 습이다.
하지만…….
알 수 있다.
저자는 절대 평범하지 않다.
평범한 이라면 지금 나이트 벨링 거의 상태를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근육이 마치 돌처럼 굳어진다.
부러질 것처럼 이가 맞물리고, 전 신에 힘이 들어가 얼굴로 피가 몰리 고 있었다. 주먹은 피가 통하지 않 을 만큼 꽉 쥐어졌고, 발은 바닥을 부숴 버릴 듯 내리누른다.
몸이 먼저 알아챘다.
저자가 얼마나 위험한 자인지.
머리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 기 전에, 단련된 육체가 먼저 비명 을 지르고 있었다.
나이트 벨링거를 괴롭히는 것은 무엇보다 혼란이었다.
단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지금 그가 느 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달아나고 싶다는 건가?’
이 자리에서 당장?
어째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서 달아나 본 적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 물러난다는 것은 죽음과도 다름없는 일이다. 그 어떤 적 앞에서도, 그 어떤 위기 앞에서 도 달아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 다.
전략적인 후퇴는 있었을지언정,
적이 두려워 물러선다는 건 결코 있 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가.
홀 안으로 들어온 강진호가 천천 히 원탁에 앉은 모든 이들을 둘러보 았다.
나이트 벨링거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말 았다.
‘마치 여기가 거대한 식탁이 되어 버린 것 같군.’
신성한 원탁에서 감히 할 수 있 는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나이트 벨링거는 자신의 머릿속을 채운 생각을 도무지 밀어 낼 수가 없었다.
“방해한 것 같군.”
강진호가 마스터를 보며 말하자, 마스터가 빙그레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어서 오십시오, 회주 님. 참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홈.”
마스터가 자신의 옆, 비어 있는 자리를 양손으로 가리켰다.
“여기에 앉으시면 됩니다.”
강진호는 두말없이 걸어 마스터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동시에 그 광경을 모두가 아무 말 없이 지켜보 았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나이트 베슬리.
그의 시선은 강진호에게 향해 있 지 않았다. 그의 눈은 다름 아닌 나 이트 벨링거에게로 고정되어 있었 다.
그의 눈이 말한다.
– 그 말을 잊지 마시오.
나이트 베슬리는 나이트 벨링거에
게 말했다. 그 어떤 문제가 있다 하 더라도 마지막까지 원칙을 지키기를 바란다고.
그 말이 지금 비수가 되어 나이 트 벨링거의 가슴에 꽂히고 있었다.
원탁의 법도대로라면 나이트가 아 닌 자는 원탁에 앉을 수 없다.
참관이 허용되고, 홀에 들어오는 것도 허용되지만, 원탁에 앉을 수 있는 이는 오로지 나이트뿐이다. 그 건 원탁이 처음 생겨난 이래로 단 한 번도 어겨지지 않은 절대의 법칙 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법칙이
깨어지고 있다.
지적해야 한다.
분노해야 한다.
지금 당장 소리쳐야 한다. 당장 그곳에서 일어나라고.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접착제로 입술을 서로 붙여 버린 것처럼 그의 입은 도무지 떨어 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이트 베슬리의 눈이 묘한 호선 을 그렸다.
비웃음.
그건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짓이겨진 입술에서 피가 흐른다.
모멸감에 눈앞이 새하얘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이트 벨링 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전신을 타고 흐르는 지독한 모멸감을 억누를 뿐이다.
“회의를 계속하지.”
마스터가 고개를 돌렸다.
“참관인이 회의를 지켜보는 건 모 두에게 흔치 않은 일이겠지만, 그리 신경 쓸 것 없네. 회의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마스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이곳의 그 누구도 목소리 에 담긴 부드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목에 칼을 들이밀고 부드럽게 말 한다고 해서 누가 그걸 협박이 아니 라고 생각하겠는가.
“자, 이제는 격이 맞는가?”
조롱.
부드러운 목소리에 조롱이 담긴 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스터의 조 롱을 무례하다 탓할 수 없었다.
이미 주도권은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갔다. 단 한 사람이 둥장한 것 뿐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총회의 회주님께서 발
언하는 데는 아무도 불만이 없는 걸 로 알겠네. 회주님, 그럼.”
강진호가 슬쩍 마스터를 바라보고 는 고개를 돌렸다.
“이 현수.”
“예, 회주님.”
“말해.”
“예!”
발언권이 넘어갔다.
딱히 대단한 절차를 거친 게 아 니다. 그저 강진호가 자신의 발언권 을 이현수에게 넘겼을 뿐이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 누구도 감히 이 절차가 올바
른지 따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흠흠, 이어서 발언하겠습니다.” 살짝 헛기침을 한 이현수가 웃으 며 입을 연다.
“엘더 나이트들이 다시 봉인되며 의결권을 넘기지 않은 이상, 여러분 에게는 의결권이 없습니다. 현재 원 탁의 의결권은 유일하게 마스터만이 가지고 계십니다.”
억지다.
누가 봐도 이건 억지였다.
엘더 나이트가 그들의 의결권을 가져갔다면, 그들이 모두 죽어 없어 진 순간 의결권은 자연히 나이트들
에게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그건 법칙으로 정해져 있 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그런 상황 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문제가 생긴다.
애매한 법칙은 해석에 따라 이견 이 생기는 법이다. 이견이 생기는 순간, 어느 쪽이 옳은가는 이치가 아니라 힘으로 정해진다.
“그렇기에 마스터께서 명을 내릴 권한은 있습니다. 이것으로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현수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바통을 넘겨받은 마스터가 웃는
낯으로 나이트 벨링거를 바라보았 다.
“어떤가? 대답이 되었는가?”
“……마스터.”
나이트 벨링거가 입술을 질끈 깨 물었다. 얼마나 잘근잘근 씹어 댔는 지 입안에 피 맛이 감돈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 는 법입니다.”
“그렇지, 그렇겠지. 그건 알고 있 네. 다만……
마스터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말려 올라간다.
“쥐에게 물리는 걸 두려워하는 고
양이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 는데 말일세. 그렇지 않은가?”
협상의 여지는 사라졌다.
나이트 벨링거가 살기를 담은 눈 으로 마스터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