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04)
마존현세강림기-1105화(1103/2125)
마존현세강림기 45권 (11화)
3장 겁박하다 (1)
꿈을 꾸는 것 같다.
현실이라 느껴지지 않으니까.
나이트 벨링거는 취한 듯한 기분 으로 나이트 얀코바의 머리를 바라 보았다. 조금 전까지 말을 하고 소 리치던 자의 머리가 목과 분리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다.
찌익, 찌익.
기묘한 소리와 함께 쓰러진 목에 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아직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듯 심장이 요동칠 때마다 갈라진 동맥이 피를 뿜어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경련하던 나이트 얀코바의 육체의 떨림이 이내 잦아졌다.
죽음.
그래, 죽음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치고 죽음이 익 숙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수없는 죽음을 봐왔다. 그리고 그들의 손으
로 수많은 죽음을 만들어냈다.
일반적인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살인귀라고 불리기에 충분할 만큼의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다.
그렇기에 익숙해야 한다.
하나…….
지금 이 죽음은 느낌이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죽음은 비일상 의 영역이다. 조금 전까지 일상의 영역에 존재하던 그들이 강제로 비 일상의 영역으로 구겨 넣어진 듯한 위화감.
그 끔찍한 위화감이 모두를 뒤틀 기 시작했다.
‘ 언제?’
나이트 벨링거를 더욱 납득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나이트 얀코바의 죽음이 아니었다.
바로 나이트 얀코바의 죽음이 이 루어진 과정이다.
보지 못했다.
듣지 못했다.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나이트 얀코바가 하던 말을 멈추 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이트 벨링거는 그의 죽음을 알아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 말인즉…….
‘그가 죽이려고 한 자가 나였다 면, 나는 내가 죽는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가?’
나이트 벨링거는 그게 무엇을 의 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결국 스스로의 선택 이다.
수명이라는 절대적인 법칙이 아닌 이상, 죽음은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만큼은 아니 다.
강진호가 있고, 그가 있는 공간.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만큼은 그
의 생사는 나이트 벨링거 자신이 아 니라 강진호의 선택에 맡겨진다.
무인으로서 이보다 더 큰 모멸감 이 있겠는가.
나이트 벨링거의 눈에 강진호의 손이 들어왔다. 옆으로 뻗어진 강진 호의 손에 장검이 잡혀 있었다.
뽑아 들었겠지.
그런 후, 그 검을 그어 나이트 얀 코바의 목을 날렸을 것이다.
검을 잡은 자세와 나이트 얀코바 의 목이 떨어진 것을 보면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트 벨 링거는 그 광경을 자신의 눈으로 확
인할 수 없었다.
얼마나 큰 격차가 있으면 바로 눈앞에서 검을 휘둘러 사람의 목을 베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말인 가.
“ 다음.”
나이트 얀코바의 시체에 쏠려 있 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일제히 돌 아갔다.
조금 전에도 그들은 일제히 강진 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의 시 선과 지금의 시선이 같을 수는 없었 다.
목줄기에 날카로운 짐숭의 이가
반쯤 틀어박힌 느낌이다. 조금만 힘 을 더 주면 동맥이 끊길 만큼.
강진호가 모두를 한 번 쭉 둘러 보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는 용기 있는 자를 좋아하지.”
“다음은 누구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강진호를 바라보던 시선이 아래로 슬그머니 내려간다. 이런 상황에서 눈을 맞춘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적 의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이트.
원탁을 지배하는 지고의 지위.
각국을 대표하는 정상의 무인.
그런 이들만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감히 강진호와 눈을 맞추려 들지 않았다.
‘ 알겠군.’
마스터는 기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 강진호가 나이트 얀코바의 목을 베어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스터가 느낀 것은 극심한 분노였 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아무리 강진호라고는 하지만, 원 탁에서 나이트를 죽일 수는 없다.
이건 원탁을 완전히 깔아뭉개는 행 위다. 그가 아무리 지금 당장은 강 진호와 손을 잡고 나이트와 적대하 는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본질 은 원탁의 무인이 아닌가.
나이트가 강진호의 손에 죽었는데 손뼉을 치며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하지만 그 분노는 금세 식어버렸 다.
저항하지 않는다.
이 신성한 원탁에서 외부인에게 나이트가 살해당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누구도 저항하
려 들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강진호의 시선을 피할 뿐이다.
그제야 마스터는 이현수가 한 말 이 무슨 뜻이었는지 제대로 이해했 다.
‘권위는 불합리에서 나온다.’
지금 이 광경이, 그 말이 무슨 의 미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불합리가 눈앞에서 벌어진다. 하지만 누구도 그 불합리 에 저항하려 하지 않는다. 되레 불 합리를 만들어낸 장본인을 두려워하 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마스터가 원탁
에서 해온 일들은 다 무엇이었단 말 인가.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그가 존중하려 했던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이 마 스터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마스터의 기분을 아 는지 모르는지, 강진호는 태연한 얼 굴로 나이트들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없는 모양이군.”
강진호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으로 던지고는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느긋한 동작으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일련의 과정이 이뤄질 동안 움직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말이란 건 허무한 거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은 강진 호가 적루를 아공간으로 밀어 넣었 다.
“마스터.”
“예, 회주님.”
“계속해.”
마스터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 덕였다.
피 냄새가 자꾸만 코를 파고든다.
이 장소에 있는 이상, 이 피 냄새 를 피할 도리가 없다. 마스터에게는 그저 심기를 자극하는 냄새에 불과 하겠지만, 이곳에 있는 나이트들에 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 다.
“이번 결정에 이견이 있는 나이트 들은 지금 의견을 표해주시오.”
턱이 삐걱거린다.
목각 인형처럼.
그의 의지로 말하고 있지만, 전신 에 실이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이 제는 그가 그의 의지로 말하고 있는 건지, 단순히 강진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 경이었다.
이후,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 다.
그전까지 서로 핏대를 세워가며 싸운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모 든 안건이 통과되기까지 불과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더는 상정할 안건이 없다는 걸 확인했을 때, 마스터는 이해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이런 것인가?’
과거처럼 회의를 통해 처리하려 했다면, 단 하나도 해결되지 못했을 일들이다.
이런 안건이 아니라 평범한 안건 이라 해도 모두의 의견을 듣고 조율 하는 과정을 거치는 원탁식으로 진 행했다면, 하루를 꼬박 할애해도 모 자랐을 것이다.
그런 일들이 한순간에 끝나 버렸 다.
가슴을 지배하는 상실감 속에서 마스터는 왜 인간이 권력을 잡지 못 해 안달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권력은, 즉 편리다.
통과할 수 없던 일이 통과된다.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던 일이 순
식간에 처리된다.
그래.
어쩌면 별것 아닌 일일지도 모른 다. 그저 조금 편리해졌을 뿐이다.
안건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서로 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면 된다. 설사 마지막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시간이 걸리는 것?
시간을 할애하면 그만이다. 시간 이 무한한 것은 아니지만,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니까.
다시 말하자면, 오늘 이곳에서 처 리된 안건도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
었을지 모른다. 몇 달의 시간이 소 모되고, 수많은 심력이 낭비되겠지 만, 결국에는 어떻게든 합의점을 찾 았을 것이다.
강진호라는 권력을 휘둘러 그가 얻은 것은 조금의 편리함뿐이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지금 이 순간 마스터에게는 더없이 거대하게 다가 왔다.
인간은 편리함을 잃을 수 없다.
차에 익숙해진 이는 제 발로 걷 는 법을 잊어버린다. 엘리베이터에 익숙해진 이는 굳이 계단을 제 발로 오르려 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편리함을 잠시 밀어 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 그 편리함을 완전히 배제하려 들지 않 는다.
그러니 돌아갈 수 없다.
한 번 조율하지 않는 과정의 편 리함을 느껴 버린 마스터는 다시는 과거의 그 지난한 회의 속으로 돌아 갈 수 없다.
그 불필요한 과정 속에서 낭비되 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느껴 버렸 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의 의견에 토를 달지 않는다.
의견을 제시하라고 했음에도 그저 그의 눈치만 바라볼 뿐, 입을 열 생 각도 하지 않는다.
나이트라는 지고한 지위를 가진 이들이 그에게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 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마스터는 자 신의 가슴속에 기이한 감정이 스멀 스멀 밀려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저열한 쾌감.
상대를 짓누르고 우위에 섰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다.
그가 가장 경계해 오던 것.
결코 느껴서는 안 된다고 여긴
감정이 지금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 다.
‘ 타락.’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안건이 끝났으면 여기서 폐정하 겠소.”
마스터의 말에 나이트들의 시선이 슬쩍 강진호에게로 향했다. 마치 폐 정을 하는 것도 강진호의 허락이 필 요하다는 것처럼.
“발언하실 나이트 계시오?”
없다.
그저 슬쩍슬쩍 마스터와 강진호의 눈치를 살필 뿐이다. 심지어 여기까 지 몰렸음에도 나이트 벨링거에게 눈치를 주는 이조차 없었다.
그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 다.
어설프게 신호를 보내는 모습을 보여 나이트 벨링거의 세력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마스터는 자꾸만 입가로 흘러나오 려는 쓴웃음을 필사적으로 내리눌렀 다.
나이트다.
이들이 그가 지금까지 함께해 온
나이트들이다. 더없이 듬직하고 믿 을 수 있던, 원탁의 힘이라고 느껴 온 나이트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들에게서는 그가 지금까지 봐온 것들이 조금도 보이 지 않았다.
마스터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결국 사람이란 어떤 곳에 서 있 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이다. 같은 위치에서 바라본 나이트 들은 더없이 듬직하고 강했다. 하지 만 권력을 쥐고 내려다보는 순간, 그 나이트들조차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마스터는 이 순간, 그 사실을 뼈 저리게 깨달았다.
“그럼 오늘 회의는……
“잠시.”
강진호가 마스터의 말을 끊었다.
“……예.”
마스터가 입을 닫자 강진호가 가 만히 나이트들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고분고분하군.” 나이트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고분고분한 이들을 좋아하 지.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주면 날 만날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기억 해 둬. 다시 나를 만나는 일이 벌어
진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쉽게 넘어 가지는 않을 테니까.”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나이트들과 눈을 맞췄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나이트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좋아.”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원탁을 벗어나 복도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위긴스와 이현 수가 그의 뒤를 따라 원탁을 떠난 다. 이제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남아 있는 이들을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폐정하겠소.”
마스터의 목소리만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홀에 조용히 울려 퍼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