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27)
마존현세강림기-1128화(1126/2125)
마존현세강림기 46권 (9화)
2장 쉬어 가다 (4)
‘이 새끼는 언제 철이 들지?’
주영기가 허탈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여유로운 얼굴로 ‘그래, 유민이 내가 한 번 도와주마.’같은 표정을 짓고 있더니, 지금은 어디서 한 대 맞은 양아치같은 얼굴로 모니
터를 부술 기세로 노려보고 있다.
손은 어떻고.
잘하면 마우스 패드가 마우스와 마찰해서 눌어붙는 역사적인 광경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키보드를 치는 손은 이제 잘 보 이지도 않는다. 얼마나 현란하게 움 직이는지 피아노 리사이틀을 여는 피아니스트가 보고 배워야 할 지경 이다.
주영기는 게임을 잘 모른다.
솔직히 화면을 보고 있어도 누가 이기고 지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다. 그냥 죽이면 죽였구나, 죽으면
죽었구나 할 뿐이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 것 같다.
모니터를 부술 기세……. 아니, 모니터를 잡아먹을 기세로 눈을 희 번덕거리고 있었다. 옆에서 건드리 기만 해도 살인 날 기세다.
‘미친놈.’
물론 게임에 몰입하는 걸 폄하할 생각은 없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도 프로게 이머를 친구로 둔 사람이다. 게임을 하는 것도 돈이 되는 세상에 게임에 몰입하는 게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박유민의 수입을 대충 알고 있던 주영기는 도저히 프로게이머라는 직 업을 폄하할 수 없었다.
피자집을 두 개나 돌리고 있는 주영기지만, 그가 버는 수입은 박유 민의 수입에 비하면 쥐꼬리라 불러 도 이상하지 않다.
연봉에 스트리밍 수입을 다 따지 면 박유민은 억억대는 수입을 올리 고 있으니까.
다만…….
‘그래도 정도가 있지.’
지나가다 애들이 보면 경기를 일 으킬 것 같다. 고개는 획획 돌아가
고 손은 잔상을 남긴다. 아, 저게 삼두육비의 괴물이구나.
주영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 다.
‘꼭 게임도 못하는 것들이 더 티 를 낸다니까. 유민이 봐. 얼마나 침 착하게… 어? 유민아?’
조금 전까지 편안한 자세로 게임 을 하던 박유민의 고개가 점점 앞으 로 쏠리는 것을 본 주영기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이상한 것 닮아가지 마라, 친구 야.
‘ 역시.’
박유민이 자신도 모르게 마우스를 꽉 잡았다. 손바닥에서 축축한 물기 가 느껴진다.
프로 경기도 아니고 피시방에서 하는 솔로랭크를 하면서 이리 긴장 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게임이 일상이나 다름없는 박유민이 라면 더더욱.
박유민의 눈이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화면 안에서 강진호가 날뛰고 있 다.
투박하다.
그리고 과격하다.
프로인 박유민의 눈으로 보기에는 약점투성이나 다름없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강진호를 상대하는 이들은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강진호와 듀오를 돌리느라 ELO 가 조금 낮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소에 익숙히 보이던 아이디들과 매칭이 잡혔다.
박유민과 경기가 잡힌다는 것은 저들도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게이 머들이라는 뜻이다.
그런 이들이 지금 기겁을 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하지.
모든 분야는 그렇다. 처음에는 감 각으로 하게 되지만, 일정 수준 이 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성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프로급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 거라고 예측 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스킬과 나의 스킬, 그리고 상대와 나의 상성. 주변의 움직임까 지 순간적으로 측정을 끝내고 내가 해야 할 가장 온당한 수를 찾아내야 한다.
바둑이 일정 수준까지는 감각의
승부가 되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 면 누가 더 빠르고 반복적으로 계산 을 할 수 있느냐의 승부가 되는 것 과 비슷하다.
그런데 강진호는 계산하지 않는 다.
고수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밀고 들어온다. 그럼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고 되레 목을 따서 돌아간다.
그러니 연산회로가 꼬이는 것이 다.
지금도 보라.
강진호의 캐릭터가 움직일 때마다
서너 명이 기겁을 하며 일단 뒤로 물러선다.
‘공격성, 그리고 의외성.’
알 것 같다.
룰이란 건 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암묵의 룰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딱히 그렇게 움직이 라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살아가는 이들이 편의를 위해서 알게 모르게 지정하고 지키는 것들.
자연스레 그런 것에 익숙해진 이 들은 그런 암묵의 룰이 있다는 걸 모른다. 사람이 자신의 주위를 공기 가 채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
하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이레귤러가 끼 어드는 순간,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 던 암묵의 룰이 보이기 시작한다.
게임 안에서는 강진호가 그런 존 재였다.
‘예전에도 그랬었지.’
갤럭시 크래프트에는 빌드라는 게 존재한다. 최적의 타이밍에 건물을 올리고 일꾼을 뽑고, 공격을 한다.
그 타이밍을 최적화한 완성된 빌 드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실력이 결정 나는 게임이다.
하지만 대회에서는 그런 빌드가
활용되지 않는다.
뻔히 아는 것들은 대처가 가능하 다. 그렇기에 토너먼트에서는 각자 가 필살기성으로 새로운 빌드를 짜 서 나온다.
1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빌드. 평 소에 사용하는 완성된 빌드에 비하 면 쓰레기나 다름없이 불완전한 빌 드지만 단 한 판으로 승부가 갈리는 토너먼트에서는 그런 1회용 빌드가 더 유용할 때가 있다.
박유민 역시 과거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빌드를 만들어 내기 위해 밤 을 새워 연습하고 또 연습하지 않았
던가.
그런 큰 틀에서 보자면 이 게임 도 다를 게 없다.
남이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을 기계적이고 정석적으로 해낸다면 1 류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고가 될 수는 없다.
‘내가 그랬구나.’
최근 박유민이 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박유민은 게임을 잘한다.
이건 자만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박유민은 게임을 잘한다. 날고 긴다는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도 돋보
일 수 있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프로 생활을 한 시즌 겪으면서 좀 더 완숙해지고, 좀 더 깔끔해졌 지만 그만큼 둥글어졌다. 그 때 그 때 가장 정답에 가까운 플레이를 해 낼 뿐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최고의 농구선수나 최고의 축구선 수가 정석적인 플레이를 하던가?
아니다.
그들은 비정석을 뒤틀어 정석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당연하지 않다 고 생각하는 플레이를 당연하게 만
들기에 최고가 되는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의 강진호처 럼…….
‘아니, 진호는 좀 과하기는 하지.’
강진호가 워낙 미쳐 날뛰다 보니 게임이 너무 쉽게 풀린다. 강진호가 있는 쪽으로 시선이 모두 집중되다 보니 다른 이들에게는 견제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다.
그러니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 아니, 미 X놈. 약 빨았나. 뭔 게 임을 이렇게 해.
-네 다음 070. 국제전화 거는 줄.
-니가 한 번 상대해 보던가.
-네 다음 패배자.
-안해. 니들끼리 이겨보든가.
상대팀에서 내분이 일어난다.
게임도 잘 풀리는데 상대 멘탈까 지 바스라진다.
‘이거 5판 3승이면 영향이 엄청 나겠는데?’
다전제에서는 상대의 멘탈을 부수 는 것도 주요한 전술이다. 플레이
자체로 멘탈을 부수는 이라면 승리 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박유민이 눈을 빛낸다.
‘공격성.’
이미 박유민은 한 번 저 플레이 를 카피한 적이 있다. 입단을 위해 테스트를 받았을 때, 부족한 공격성 을 채우기 위해 강진호를 참고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한 번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박유민은 천성이 공격적이지 못하 다. 그냥 내버려두면 채워 넣은 공 격성이 점점 깎여 나간다.
일정한 공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는 자동차가 연료를 주입받듯, 틈틈 이 공격력을 채워 줄 필요가 있다.
‘쭉쭉 빨아들여야지.’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스타일을 확립해야 한다.
이 이틀 동안
“담배 한 대 피고 할까?”
“음, 그럴까?”
박유민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이쯤이면 강진호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할 거라 생각했다.
“한 판만 더 돌리고 하자.”
“아, 그럼 그래.”
박유민이 들뜬 마음으로 마우스를 움켜잡았다.
‘4승 2패라.’
승률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중요 한 건 승률 같은 게 아니다. 애초에 이 게임은 이기기위해서 하는 게 아 니니까. 지더라도 강진호의 플레이 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만 있 다면 남는 장사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순조롭다.
한 판 한 판 홀러갈수록 강진호 는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자신의 라인에 있는 놈만
죽어라고 패더니, 이제는 세 명, 네 명이 있는 곳에도 미칠 듯이 달려들 어 싸워댄다.
그래서 이기냐고?
‘아니, 맞아죽지.’
네 명을 어떻게 이겨. 게임인데.
평범한 이들은 현실에서는 다수를 상대 못하고, 게임에서 다수를 상대 하지만 강진호는 반대다.
강진호는 현실에서는 몇 명이 오 든 다 때려잡는 사람이지만, 게임에 서는 게임이 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강진호가 맞아 죽는 동안 팀원들 이 다른 곳에서 이득을 보니까. 네 사람의 시선을 완벽하게 잡아놓는 것만으로도 강진호는 할 것을 다 하 는 것이다.
“흐음, 왜 지지?”
하지만 강진호는 납득을 못하는 얼굴이었다.
“……진호야, 네 명을 상대로는 못 이겨. 상식적으로 그렇잖아.”
“나는 이길 수 있다.”
“……근데 저건 게임이잖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다.” 그래, 그게 좋은 거지. 그게 네
좋은 점이지.
마음대로 해라.
물론 박유민은 이해한다. 강진호 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 이다.
-아니, X발. 진짜 대가리에 뭐가 처 들었냐. 왜 자꾸 여러 명 있는데 들어가서 뒤져 주냐, 이 X미 없는 새 X 야.
강진호의 눈이 꿈틀한다.
“차, 차단해 진호야. 차단.”
하지만 강진호는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다. 적이 욕을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강진호의 손에 죽어가는 이들이 욕을 해댄다 고 시체에다 주먹질을 하지는 않으 니까.
하지만 아군이 욕을 하는 건 이 해할 수 없다.
-불만 있나?
-불만? 라이터도 있다 X끼야. 아 이 X끼 게임 X같이 하네. 어디서 그 따위로 게임하는 법 처 배웠냐?
게임의 욕설 자동필터링이 뭔가 사람을 더 열 받게 만든다.
-욕 하지 마라.
-하면 어쩔 건데? 꼬우면 한 판 붙던가.
-너 어디냐?
-아서라. 너 괜히 왔다가 피똥 싼 다. 형이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 니에요. 너 같은 애는 손가락 하나 로 패죽여서 삼대조 조상님을 영접 하게 해드릴 수도 있다.
-……어디냐고.
-서초동 위젠 피시방이다. 와보든
가.
강진호가 인터넷 창을 열고 피시 방의 위치를 검색했다.
“음?”
강진호의 눈이 희번덕댄다.
“여, 옆 건물이네?”
-지금 간다.
-와보든가, 병X아.
강진호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 다.
“지, 진호야. 사람 패면 안 돼.”
“안 팬다.”
그냥 얼굴이 보고 싶은 것뿐이다.
사람이란 예의가 있어야 한다. 얼 굴을 마주보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 욕을 하는 놈들은 버릇을 고쳐줘야 하지 않겠는가?
“가자.”
“좋지!”
주영기가 신나서 자리에서 일어났 다.
“크으, 와보길 잘했지. 내가 나이 먹고도 이런 일에 휘말리네. 아 좋 다, 좋아. 옛날 생각난다.”
희희낙락하는 주영기와는 다르게
박유민은 기겁을 했다.
“너는 여기 있어.”
“아니야. 나도 갈래.”
“ 있으라니까.”
“내가 안 가면 너 사고칠거잖아. 갈 거야.”
강진호가 한숨을 쉬고는 밖으로 나갔다. 옆 건물에 위젠 피시방이라 는 간판이 있다는 걸 확인한 강진호 가 단숨에 건물을 뛰어 올라갔다.
“같이 가!”
박유민이 서둘러 강진호를 뒤쫓았 다.
피시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강진호가 켜져 있는 모니터들을 훑 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강진호가 인상을 쓰고는 입을 열 었다.
“아이디 ‘니머가리순삭’이 누구 냐?”
“뭐?”
안쪽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목소 리가 들려온다.
“아니 병신 새끼가 진짜 왔네. 뒤 질라고. 안 그래도 짜증났는데 잘 됐다. 너 오늘 뒤져 보……
성큼성큼 앞쪽으로 걸어 나오던
사내가 눈을 크게 떴다.
“회, 회주님?”
강진호도 눈을 크게 떴다.
“이 명환?”
피시방 안에 싸늘한 공기가 오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