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59)
마존현세강림기-1160화(1158/2125)
마존현세강림기 47권 (16화)
4장 요격하다 ⑴
“ 예?”
성주찬이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 다. 그러고는 이내 입을 꾹 닫고 고 개를 숙였다. 그에게 시선이 일제히 몰린 탓이었다.
‘아오, 씨발.’
사람이 이만큼 모여 있는데 그만
반문했으니 시선이 쏠리는 게 당연 한 일이다. 문제는 성주찬은 전형적 인 한국인이고, 타인의 시선이 자신 에게 이렇게 몰리는 게 익숙하지 않 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 다.”
야, 니가 그래 버리면 내가 뭐가 되냐?
성주찬이 고개를 들어 그 대신 대답한 김원혁을 바라보았다. 시선 이 이만큼 쏠렸음에도 김원혁은 전 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방진훈이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
다.
“말 그대로다. 총회를 나가고 싶 은 놈들은 지금 나가라고.”
“……그냥 말입니까?”
“그럼? 탈퇴서라도 따로 쓰게 해 주랴?”
모여든 시선이 방진훈에게로 돌아 간다.
“그래도 됩니까?”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애초에 총회는 탈퇴가 자유로운 곳 아니냐.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라도 그만둬도 된다.”
총회는 회원들의 탈퇴를 막지 않
는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 뿐이다.
총회를 그만둔 이는 무학을 써서 는 안 된다. 무학을 사용하다 걸리 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
굉장히 무서운 소리로 들리지만, 그냥 무학을 쓰지 않고 다른 이들처 럼 평범하게 살아간다면 다시는 총 회나 무인계와 얽힐 일이 없다.
그동안 총회를 나간 이들 중 무 학을 사용하다 걸려서 처벌을 받은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학을 사 용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잘 살아가 고 있다.
“이제 곧 전쟁이 벌어지는데 말입 니까?”
“‘이제 곧 전쟁이 벌어지니까’지.” 방진훈이 가볍게 웃었다.
“너희 중에 나는 죽어도 무인의 길을 걸어보겠다고 여기에 있는 놈 들? 아, 있겠지. 분명히 있겠지. 죽 더라도 무인으로 죽겠다고 하는 놈 이야 분명히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도 반드시 있다.
“하지만 부모가 무인이여서, 우연 히 사부를 만나서,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이 길을 걷는 놈들도 있을 거
다. 지금도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놈도 있을 거란 말이지.”
성주찬이 입을 꾹 다물었다.
방진훈이 마치 자신을 두고 말하 는 것 같아 고개를 들기가 껄끄러웠 다.
“나는 무학의 길을 택한 적도 없 고, 무인으로 살아갈 확신도 없고, 그냥 어쩌다 보니 무인이 됐는데, 전쟁이 벌어지니 목숨을 걸고 싸우 라고는 할 수 없잖아. 안 그래?”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진훈도 딱히 대답을 듣
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만두려면 지금 그만 두라고. 치사하게 지금까지 받아먹 은 게 있으니까 무조건 목숨 걸고 싸우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까.”
성주찬이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고 말았다.
“왜 그 말씀을 지금 하시는 겁니 까?”
“ 응?”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으시면 저희는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최소한 전력에 보탬은 될 텐데 요?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갑 니다.”
“어……
방진훈이 머리를 긁었다.
이유야 확실하다. 하지만 그 이유 를 말로 만들어내는 것은 방진훈에 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 긴스나 이현수라면 농담을 섞어가며 유창하게 말하겠지만, 그에게는 그 런 재주가 없었다.
그럼 그냥 생각나는 말을 진심으 로 던질 수밖에 없다.
“난 그거 싫거든.”
“••••••예?”
“이건 어쩌면 내가 좀 꼬인 인간 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는데, 나 는 적어도 여기서 같이 피를 홀리고 등을 맡기고 싸울 사람이라면 최소 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각? 뭐라고 하지? 여하튼 그런 게 있어 야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억지로 끌려와서 도망갈 궁리만 하는 새끼 랑 등 맞대고 싸우고 싶지는 않단 뜻이지.”
투박한 말이었다.
하지만 투박한 만큼 그 안에 담 긴 뜻이 좀 더 명확하게 전달된다.
“니들도 그렇잖아. 지금도 그런
생각 하는 놈 있을걸? 무학이고 나 발이고 죽으면 다 끝인데, 내가 미 쳤다고 전쟁터에 끌려가서 싸워야 하나?”
성주찬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까부터 자꾸 그의 이야기를 하 는 것 같다.
사실은 사실 아닌가.
그가 총회에서 많은 것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그가 원치 않았음에도 무인이 되었기 때 문에 벌어진 일이다. 철이 들었을 때, 이미 그는 무인이었다. 무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방법이 없 다.
“나같이 닳고 닳은 것들이야 다른 방법이 없겠지만, 니들은 그런 게 아니잖아. 아직은 무인이 아니더라 도 다른 걸 할 수 있는 나이지. 그 러니 괜히 주변에 휩쓸려서 전장으 로 나갈 생각 하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라는 뜻이다.”
방진훈이 모두를 한 번 쭉 둘러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많이 못 준다. 오늘 저녁 아홉 시까지 그만두고 싶은 놈은 내 사무실로 찾아와. 그리고 그만둘 생
각 없는 새끼들은 당장 내일 현장에 투입될지도 모르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운공 다 해놓고 컨디션 최상 으로 맞춰놔.”
김원혁이 손을 들었다.
“뭐?”
“그만두면 정말 아무 불이익이 없 는 겁니까?”
“그럼 씨발, 그만둔다 그랬다고 내가 패기라도 하겠냐? 새끼야, 나 도 전쟁 앞두고 있어. 체력 빼지 말 아야 하는 건 나도 똑같아.”
“리스크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만두는 놈들은 지금까
지 총회에 받아먹은 돈이나 지원을 다 꿀꺽하고 도망가는 거 아닙니 까?”
“괜찮아.”
방진훈이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까워서 각오도 안 된 놈 들이랑 계속 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 물론 이게 그만두겠다는 놈들을 비하하는 건 아냐. 다만, 좀 다르다 는 거지.”
방진훈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야 상관없어, 지금까지 는.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라. 이제는 너희도 총회에 받기만 하는 게 아니
라, 총회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할 시기다. 그러니까 지금 한 번 선택 하라는 거야. 정말 내가 진정으로 무인으로서 살아갈 건지, 그래서 목 숨을 걸고라도 총회에 소속되어 있 을지,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할지. 어차피 니들, 내가 판 안 깔아주면 이런 거 못 고르잖아.”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선택 해. 그리고 남아 있겠다고 다짐한 새끼들은 절대로 그만두는 애들 괴 롭히거나 욕하지 마라. 욕하는 새끼 는 내가 직접 패 죽여 버릴 거다.
알았어?”
“예!”
우렁찬 대답을 들은 방진훈이 씁 쓸하게 뇌까렸다.
“마찬가지야. 어차피 이러지도 저 러지도 못하고 남아봤자, 그런 마음 가짐으로는 더 강해질 수가 없다. 나아갈 수도 없고,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것도 용기다. 말했다. 오늘 저녁 아홉 시까지다. 그리고 이번에 못 그만두는 새끼는 죽어도 억울할 거 없는 거야. 알았어?”
“예!”
“그래.”
방진훈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천태훈이.”
“예.”
“안 그만둔다는 새끼들 따로 골라 내서 편제 짜. 아까 지시해 둔 대 로.”
“미리 말입니까?”
“선편성을 해둬야 시간을 줄일 거 아냐. 고민 안 하는 새끼들도 있을 거고.”
“알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방진훈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진훈의 모습이 사
라지는 순간, 조금 전과는 전혀 다 른 광경이 펼쳐졌다. 다들 주변의 누군가를 붙들고 격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광장이 순식간에 시장 통이 되어 버렸다.
“잠시만, 할 말만 마저 하고!” 천태훈이 목청을 높였다.
완전히 조용해진 것은 아니지만, 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천태훈이 바 로 말을 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남는다고 생각 하시는 분들은 제2수련장으로 집합
해 주십시오. 편제 짤 겁니다.”
“지금 바로 가면 되냐?”
“좀 있어봐. 아직 거기 준비 안 됐어. 30분 뒤부터 받을 거야.”
“오케이.”
천태훈은 할 말이 끝났다는 듯 단상에서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성주찬은 복잡한 내심을 감추지 못 했다.
“야, 원혁아.”
“응?”
“넌 어쩔 거냐?”
“어쩌긴 뭘 어째. 나는 수련장으 로 간다.”
“……고민도 안 해보고?”
“고민은 지랄.”
김원혁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무인이야. 지금까지 무인이 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살아놓고 지금 와서 무섭다고 도망간다고? 나는 그 렇게 쪽팔리게 못 살아.”
“방 이사님이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용기라잖아.”
“그렇겠지. 그런데 그건 다른 사 람 이야기고, 나한테는 그게 용기가 아냐. 내일 당장 뒈지더라도 나는 무인으로 산다. 그리고 살아남아서 높은 데까지 올라갈 거다.”
“넌 그만둘 거냐?”
“아직 안 정했다.”
김원혁이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인데, 너는 그냥 그만두 는 게 나을 것 같다.”
“••••••왜?”
“보이냐‘?”
성주찬이 김원혁이 턱짓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광장에 모인 이들 중 절반이 넘는 인원들이 제2수련장으 로 이동하고 있었다. 30분 뒤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 도 그 30분의 고민조차 시간 낭비
라고 느끼는 모양이다.
“남는 건 저런 새끼들이다.”
“그만둬라. 솔직히 나도 너 하는 꼴 보니 방 이사님이 무슨 말을 하 는 건지 알겠다. 너는 친구로서는 좋지만, 너한테 등 맡기고 전쟁터로 가고 싶지는 않다.”
신랄한 말이었다.
하지만 성주찬은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전쟁이 벌어지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
면 총회에 소속된 모두가 죽을 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 어떻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장으로 나갈 수 있 을까?
성주찬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 는 일이었다.
“아니, 나는……
“됐어.”
김원혁이 손을 내저었다.
“나한테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겠 냐? 이거, 너 무시하는 거 아냐. 사 람에게는 적성이라는 게 있잖아. 니 가 여길 나간다고 해도 나는 네 친 구야. 총회에서 만나지 말라고 한다
면 또 모르겠지만, 내가 너를 무시 하고 경멸할 일은 없어. 그냥 선택 인 거지. 그러니까 잘 생각해 봐.”
김원혁은 두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제2수련장을 향해 거침없 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성주찬이 입술 을 질끈 깨물었다.
전쟁이 나면?
사람이 죽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되지 말 란 법은 없다.
저들이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 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전쟁에 너
무 과민반응하는 건지……. 그게 아 니면 성주찬도 몰랐지만, 알고 보니 자신이 겁쟁이였던 건지.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광장에 남은 인원 중 삼분의 이 정도가 제2수련장으로 바로 이동했 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 중 절반 정 도는 광장을 이탈해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리고…….
그 어디로도 가지 못한 이들이 광장에 남아 미묘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닥.
그래, 볼 곳은 바닥밖에 없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민망하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까. 이곳에 남아 있 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약함을 들킨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성주찬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광장에서 벗어났다. 어떤 선택을 할 지 아직 결정이 된 건 아니지만, 이 곳에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하늘을 덮기 시작하는 노을을 바 라보며 성주찬이 질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