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60)
마존현세강림기-1161화(1159/2125)
마존현세강림기 47권 (17화)
4장 요격하다 (2)
산속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총회는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 다.
그리고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는 방진훈의 눈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 다.
무인의 특성상 조명이 크게 필요
치 않다 보니, 총회는 조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워진 산에서 불빛이 새어 나가는 것을 경 계할 필요도 있으니까.
평소에는 딱히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어둡기만 한 창밖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 흐음.’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벌써 꽤나 많은 이들이 그의 사 무실을 다녀왔다.
방진훈의 기분을 다운시키는 것은 총회와 운명을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들어서가 아니다. 그 수가 많
아서도 아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방진 훈이 고개를 돌렸다.
‘시간은?’
9시 1분.
아마 지금 들어오는 이가 마지막 일 것이다.
“들어와.”
들어오란 말을 했음에도 문이 좀 처럼 열리지 않는다. 성격이 급한 편인 방진훈이지만, 이번만큼은 방 진훈도 말없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 려 주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이내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이는 방진훈과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 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방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답답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 모습이다. 오늘 이 방에 들어오 는 이들은 다들 한결같이 저런 모습 을 하고 있었다.
살인죄를 저지른 범죄자도 카메라 나 법정을 향해 쌍욕을 퍼붓는 세상 인데,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저리
죄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단 말인가.
“마지막인가? 뒤에 사람 더 있 어‘?”
“……뒤에 없습니다.”
“그래. 여기 와서 앉아.”
“예.”
사내가 방진훈의 책상 건너편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방 진훈이 안경을 슬쩍 밀어 올렸다.
무인이다 보니 딱히 시력이 나빠 질 일이 없고,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방진훈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서류 작업을 해야 할 때는 안경을 쓰는 게 마음에 안정이 된다.
“이름이?”
“성주찬입니다.”
“어, 그래. 성주찬이.”
방진훈이 자판을 두드려 검색을 했다.
“하, 요새는 참 편하단 말이야. 옛날에는 이런 거 한 번 하려면 눈 빠지게 명부 뒤져야 했는데.”
“그래, 성주찬이. 결심은 섰고?”
성주찬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방진훈이 눈살을 찌 푸렸다. 숙인 고개와 처진 어깨를
보고 있으려니 열불이 치밀었다. 하 지만 방진훈은 그저 입을 꾹 닫았 다.
“저……
한참을 말이 없던 성주찬이 고개 를 들었다.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간 사 람도 있습니까?”
“ 있지.”
방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눈물 뻬고 콧물 빼며 난리를 치 면서 죄송하다고 하는 놈들도 있고, 와서 몇 마디 하다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고 돌아가 버리는 놈들도 있
고. 사람이야 뭐, 원래 천태만상 아 니겠냐?”
“……그렇죠.”
“왜? 돌아가게?”
방진훈이 가만히 성주찬을 바라보 다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서랍을 열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 피우냐?”
“ 예?”
“담배 피우냐고.”
“아, 조금……
“자, 한 대 피워라.”
“아, 아닙니다.”
“그럼 나만 피운다?”
우물쭈물하는 성주찬을 보며 방진 훈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줄 때 피워. 자.”
성주찬이 머뭇대다가 방진훈이 주 는 담배를 받아 들었다. 방진훈이 담배에 불을 붙여주자 고개를 돌려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낸다.
찰칵.
자기 입에 물린 담배에도 불을 붙인 방진훈이 깊게 연기를 뿜어냈 다.
“이사님, 담배 피우셨습니까?”
“잘 안 피우지.”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요새야 담배 하나도 눈치 보고 피워야 하는 세상 아냐. 담배 피우 고 집에 들어가면 잔소리가……. 아 우 ”
방진훈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잘 안 피우려고 하는데, 살다 보면 그래도 한 대씩 피워야 하는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 말이다. 안 그래?”
“예, 그렇습니다.”
성주찬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방진훈의 말이 성주찬처럼 그만두
고 나가려는 이들 때문에 스트레스 를 받는다는 소리로 들려왔다. 그리 고 아마 그게 사실이겠지.
“고개 들어, 인마. 사내새끼가 왜 자꾸 고개를 숙여?”
“……죄송합니다.”
“죄송은 얼어 죽을.”
방진훈이 깊게 담배를 탈았다.
“총회가 뭔 너희 부모라도 되냐? 너희한테 총회는 회사야. 회사 그만 두는 게 죄송할 이유가 어디에 있 냐. 안 맞으면 나가는 거지. 지금이 무슨 쌍팔년대도 아니고, 그게 뭐가 문제야?”
“뭔 죄 지은 것처럼 굴지 마, 인 마.”
“예.”
방진훈이 허공으로 천천히 퍼져 나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았다.
“ 답답하냐?”
“……예.”
“하기야 그렇겠지.”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몰아치기는 했지만, 성주찬의 기 분이 이해가 안 가는 건 또 아니었 다. 방진훈이 총회에 가지는 감정만 큼은 아니지만, 성주찬 역시 총회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삶 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 삶의 방향을 하루아침에 뒤튼 다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성주찬.”
“예.”
“그만둔다고 생각하지 마라. 새로
운 기회를 찾았다고 생각해.”
“너, 제일 비참한 무인이 어떤 애 들인지 아냐?”
“잘 모르겠습니다.”
“너처럼 그만두는 놈들? 탈락하는 놈들?”
“아니야.”
방진훈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담배를 비비는 그의 손길에 살짝 짜증이 묻어났다.
“진짜 비참한 놈들은 그만둘 시기 를 놓쳐 버린 놈들이야.”
“시기요?”
“그래.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 두지 못한 사람들. 너는 지금 그만 두면 네가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사 람이 되는 것처럼 여기고 있겠지만, 천만에. 네 나이에 그만둘 수 있는
건 축복이야. 마흔이 넘고 쉰쯤 된 이들이 더 이상 다른 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실감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사람이 산 채로 썩어.”
“나도 무인이지만, 무인 이거? 좆 같은 거야. 야, 평범한 사람들은 서 른쯤 되면 자기가 뭐가 될 줄 알게 돼. 그쯤 되면 싸움이 끝나거든. 계 속 싸워 나갈 사람들이랑, 세상에 순응할 사람들이 나뉘게 되지. 이 바닥에서 계속 싸울 수 없다 싶으면 다른 길을 찾을 수라도 있잖아.”
“예.”
성주찬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런데 무인은 안 그렇다니까. 무학은 아주 엿 같은 거라서 사람이 마흔이 되고 쉰이 되도록 계속 강해 져. 그러니까 희망을 못 내려놓는단 말이야.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수 준인지 깨닫게 되면 이미 돌이킬 수 가 없어.”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오 십 평생 무학만 익힌 사람이 어디 가서 뭐 하겠냐? 다른 오십들은 사 회 경험이라도 쌓고, 뭐라도 배우지.
못해도 기술이라도 생기는데, 무인 은 아냐. 나이 오십이 돼서 트랙에 서 이탈한 사람들은 할 줄 아는 게 사람 패고 죽이는 것밖에 없어.”
방진훈이 씁쓸한 얼굴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불을 붙였다. 두 대째 담배를 쭉 빨아들인 방진훈이 고개를 내저으며 연기를 뿜었다.
“그러니까 여길 벗어나는 게 실패 라고 생각하지 마. 아마 삼십 년쯤 뒤에서 너를 따라 이 짓거리를 그만 두지 못한 걸 후회하는 놈이 무지하 게 나올 거다.”
성주찬이 방진훈을 가만히 바라보 며 입술을 달싹였다.
“……이사님.”
“왜‘?”
“그럼 그 이야기를 왜 미리 해주 지 않으셨습니까?”
“하면?”
“••••••예?”
“하면 뭐가 달라져?”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너도 지금 같은 상황이니까 내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하는 거지, 당 장 일주일 전에 내가 이 말 했으면
들었겠냐? 아, 말은 그럴듯하게 들 었겠지. 다만, 너하고는 상관없는 이 야기라고 생각했겠지. 아냐?”
성주찬이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방진훈의 말이 맞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성주찬은 자신이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 도 하지 못했다.
“성주찬이.”
“예, 이사님.”
“고개 숙이지 말라니까.”
성주찬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 었다. 그의 눈에 어린 독기를 본 방
진훈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너, 지금 니가 겁쟁이라서 다른 놈들은 다 하는 걸 못한다고 생각하 지?”
“……예.”
“그거 반은 맞다.”
“근데 반은 틀린 말이야.”
방진훈의 고개가 천천히 내저어진 다.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는 것도 용 기가 필요한 법이지. 하지만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용기가
없으면 못하는 짓이야. 용기가 생기 는 법? 간단해. 그냥 어떻게든 머리 싸매고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돼. 눈앞에서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들이 있는데 안 싸울 것 같냐? 야, 개미 한 마리 못 죽이는 사람도 사람 모가지에 칼 쑤셔 박는 데가 전쟁터야.”
방진훈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알고 있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이들을 억지 로 끌어다가 전장에 가져다 놓으면 다들 어느 정도 제 몫은 할 것이다. 있어서 방해가 될 만큼 멘탈이 나쁘
다면 지금까지 총회에서 버티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렇게 그들을 단련시키는 것 역 시 한 방법이다.
하지만 방진훈은 그러고 싶지 않 았다.
“이건 내가 너희를 거르는 게 아 냐. 채로 걸러서 쓸 만한 놈만 남기 겠다고 이 지랄하는 거 아니라고.”
방진훈이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 라보았다.
“우리가 평범한 회사라고 치자. 그럼 지금까지 그만두는 놈■이 하나 도 없었을 것 같냐?”
성주찬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 었다.
이 질문에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있었겠죠.”
“그렇지?”
방진훈이 피식 옷는다.
“야, 나도 여기가 그냥 평범한 회 사였으면 지금까지 안 다녔을 수도 있어. 이중걸, 그 새끼가 지랄할 때 벌써 때려치우고 나갔겠지. 그런데 안 그렇잖아. 다들 발이라도 묶인 듯이 여기 있단 말이야.”
방진훈이 콧김을 내뿜었다.
“그러니까 한 번 정리하자는 거 야. 기회가 왔을 때,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도 못 할 테니까. 그러니까 아직 니들이 다른 길 갈 수 있을 때, 아직은 뭔 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하는 게 맞아. 무슨 말인 줄 알 겠냐?”
성주찬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 였다.
이상하다.
서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 는데, 이상하게 자꾸 목이 멘다. 말
을 쉽게 꺼낼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성주찬.”
“예, 이사님.”
“고생했어.”
“총회를 그만두고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이 따로 있을 거 야. 그러니까 애매하게 미련 가지지 말고 가.”
“이사님, 저는……
“ 야.”
“••••••예?”
“니 인생 니가 결정하는 거야. 남 눈치 보지 마, 새끼야. 너, 지금 주
변에서 너 보는 눈이나 내가 앞에 있는 상황 아니었으면 고민이나 했 겠어?”
방진훈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채근 했다.
“……안 했을 것 같습니다.”
“거 봐, 인마.”
방진훈이 피식 옷었다.
“미련 가지지 마. 말했듯이 그만 둘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것도 용기 야.”
“……예.”
“가봐. 정리해 둘 테니까. 총회 벗어나는 대로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에 가. 연락은 따로 갈 거야. 그 리고 오늘부터 무공 쓰면 안 된다.”
“……예.”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주찬을 보며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주찬 이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결국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방진 훈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