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77)
마존현세강림기-1178화(1176/2125)
마존현세강림기 48권 (9화)
2장 격멸하다 (4)
“후욱! 후욱! 후욱!”
김원혁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심장은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을 치고, 피가 몰려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달아올랐다.
생각이 사라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머릿속이 새하 얗게 비어가고 있었다.
어이없는 일이다.
지금 이곳은 전장이다. 조금만 실 수를 하거나, 잠시만 딴생각을 해도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치열한 전장의 한중간이다. 그런 곳에서 머릿속이 비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 가.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앞에서는 폭음이 연이어 터진다. 저 뒤쪽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사람 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매캐한 냄새와 코를 찔러 들어오는 피 냄 새, 그리고 좌우에서 느껴지는 진한 땀 냄새가 한데 뒤엉켜 뭐라 말할 수 없는 짙은 향을 내뿜는 중이다.
설명하기 힘든 감각이었다.
지독한 독감에 걸렸을 때 같은 느낌이랄까?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귀는 윙윙 거리고……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똑같은 눈으로
보고 있지만, 지금 눈에 들어오는 세상은 평소 그가 알던 세상과는 조 금 다른 것 같다.
그때, 뭔가가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길쭉하고 새하얀 뭔가가…….
“정신 차려!”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 고들었다.
동시에 뒤통수에서 강렬한 고통이 느껴졌다.
카가가각!
“아!”
순간, 세상이 빨리 감은 것처럼
쾌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원혁은 알고 있다.
이건 세상이 빨리 움직이는 게 아니다. 조금 전까지 느릿하게 현실 감 없이 돌아가던 세상이 제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소음들이 그의 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새끼야, 정신 안 차려!”
김원혁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얼굴로 날아들던 일본도가 옆에서 튀어나온 봉에 막혀 있다. 저 봉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그는 이
미 죽었을 것이다. 저 도를 막지 못 했을 테니까!
“이 쪽발이 새끼들이!”
일본도를 밀쳐 낸 봉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앞으로 찔러 들어간다. 그 강렬한 기세에 치고 들어오던 일본 인들이 주춤한다.
“배에 힘주고 이 악물어, 새끼들 아! 하나 죽으면 옆도 같이 죽는다! 내 목숨만 지키는 게 아냐!”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병신같이!’
여기는 전장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목이 잘려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곳이다. 그리고 그는 방금 한 번 죽을 뻔했다. 위기감이 확 밀려 오면서 전신에 소름이 확 돋아난다.
“하아아아아아!”
전장에서 필사적인 것은 그만이 아니다.
달려드는 일본인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돌진한다. 눈에 선 핏발과 손등에 돋아난 핏 줄, 그리고 입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입김이 그가 지금 얼마나 흥분 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흐아아아앗!”
김원혁도 지지 않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는 강렬하게 주먹을 휘둘러 달려드는 일본인을 후려쳤 다.
퍼억!
그의 주먹이 일본인의 얼굴에 틀 어박혔다. 그와 동시에 일본인이 휘 두른 도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 갔다.
어깨에서 화끈한 감각이 작렬했지 만, 김원혁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쓰러지는 일본인을 그대로 걷어찼 다.
쾅
의식을 잃은 이가 바닥을 나뒹군
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바닥으 로 구른 이를 짓밟으며, 일본인들이 미친 듯이 돌진해 왔다.
“후욱! 후욱! 후욱!”
정신은 차렸지만, 상황은 변한 게 없다.
이놈들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물론 이들을 날뛰게 만드는 것은 저 타오르는 불꽃과 김원혁이 보아 도 오싹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바 토르의 존재일 것이다.
“크하하하하핫! 어딜 가느냐! 이 쪽발이 새끼들아!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한다!”
바토르는 말 그대로 지옥의 악귀 처럼 날뛰고 있었다.
전신을 붉게 물들인 그가 온몸에 서 붉은 혈기를 내뿜으며 날뛰는 모 습은 꿈에 나올까 무서울 정도로 공 포스러웠다. 김원혁이 보기에도 이 리 공포스러운데, 일본인들이 보기 에는 어떻겠는가.
둥 뒤에서 굶주린 호랑이 열 마 리가 쫓아오는 기분일 것이다.
그러니 이성을 잃는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수도 없이 들어온 격언이다. 무인
이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절대적 인 진리와도 같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잘 지켜지지 않기 때 문에 그토록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게 아니겠는가.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피가 비처럼 쏟아지는 전장에서 차 가운 머리를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 에 가깝다.
그러니 이런 일이 벌어지겠지.
“아아아아아악!”
그에게 달려들던 일본의 무사가 옆에서 날아온 검에 옆구리를 꿰뚫
렸다.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지금 옆 구리를 찔린 이는 김원혁과는 비교 도 할 수 없는 강자일 것이다. 평소 라면 아무리 진열을 갖추고 있다고 한들, 저리 쉽게 공격을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무학이란 마음가짐이 반.
등 뒤에서 바토르가 날뛰고, 동시 에 불이 번져 오는 상황에서 제 실 력을 발휘할 수 없다. 침착하게 시 간을 들여 공략한다면 얼마든지 뚫 을 수 있는 벽도 단숨에 돌파해야 한다면 통곡의 벽으로 변해 버리는
법이다.
그리고 김원혁은 그 벽의 구성원 이었다.
“후욱!”
방진훈이 한 말이 뭔지 알 것 같 다.
전장은 그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 르다.
이곳은 지옥이다.
노력했다? 최선을 다해왔다?
그럼 저들은?
지금 옆구리를 꿰뚫리고 순식간에 난자당해 튕겨 나가는 이는 노력을 게을리했던가.
자신보다 나이도 별로 많아 보이 지 않는다. 비슷한 나이에 그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에 올랐다면, 분명 김원혁 이상의 노력을 해왔을 것이 다.
하지만 그는 그 노력을 보상받을 일도 없이 허무하게 죽어갔다.
그리고 이 전장에서는 한 사람의 죽음 같은 건 아무런 가치도 없었 다.
“그만둬라. 솔직히 나도 너 하는 꼴 보니, 방 이사님이 무슨 말을 하 는 건지 알겠다. 너는 친구로서는
좋지만, 너한테 등 맡기고 전쟁터로 가고 싶지는 않다.”
그가 성주찬에게 한 말이다.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뭘 안다고 지껄여 댔던 거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났다고 지껄 여 대던 주둥아리를 뜯어버리고 싶 다. 지금 그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 다면, 감히 성주찬에게 그딴 말을 지껄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광경을 보고도 나는 전장에서 내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자 신할 수 있는가.
천만에.
그건 자신이 아니다. 그냥 만용일 뿐이다.
김원혁은 처음으로 무인으로 살아 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해했다.
이곳에서는 지금 삶과 죽음이 교 차하고 있었다.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누가 어떻게 살아남을지 아무도 모른다. 가장 안전한 곳을 지키는 이도 죽음 이라는 섬뜩한 영역에 한 발을 걸치 고 있다.
어느 누가 어떻게 죽어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무인으로 살 아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살아남아 야 한다.
김원혁은 그동안의 자신이 총회의 보호 속에 무위도식하면서 무인이랍 시고 거들먹거리며 살았다는 걸 뼈 저리고 실감했다.
최전방에서 강진호와 이사들이 목 숨을 걸고 싸울 동안 김원혁은 그 활약에 도취되었다.
따져 보면 그들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지금 총회가 쌓아 올린 영광과 발전은 그들이 피를 홀린 대가이다.
김원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뒤에서 지켜본 주제에 총회의 발전 에 자신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말 도 안 되는 고양감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받는 중 이었다.
“ 끄으으으으으.
찔러 넣은 검이 뼈를 가르는 섬 뜩한 느낌이 손으로 전해져 온다. 검이 복부에 틀어박힌 이가 섬뜩하 기 짝이 없는 얼굴로 김원혁을 노려 보았다.
도를 쥐지 않은 손이 천천히 김 원혁의 얼굴을 향해 뻗어온다.
죽어가는 이의 기백.
밀쳐 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김원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피가 잔뜩 묻은 손이 김원혁의 얼굴 을 긁어 댄다.
피부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할 만 큼 힘없는 손짓. 이마에 닿은 손이 얼굴을 쭉 한 번 긁고는 힘없이 떨 어진다. 축 처진 몸이 둔중한 무게 감을 전해주고 있었다.
발로 밀어내든 손으로 밀어내든 검을 뽑고 재정비를 해야 한다는 것 을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손이 나
가지 않았다.
“후욱, 후욱… 후욱!”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진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흐릿하다. 눈 속으로 흘러내린 피가 들어가서 인지 제대로 눈을 뜨기가 어렵다.
“아아아아악!”
“죽어! 죽어, 이 새끼야!”
“아악! 내 팔! 내 팔! 아아아아 악!”
현실감이 다시 멀어진다.
귓가로 들려오는 비명들이 거짓말 같다.
김원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 다.
악에 받친 얼굴을 한 이들이 고 함을 지르며 검을 찔러 댄다. 주먹 으로 내려치고, 발로 걷어찬다. 무학 을 익힌 이들이라기보다는 말 그대 로 전쟁을 치르는 군인 같은 모습이 다.
달려드는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다.
나름의 미학을 철통같이 지켜 대 는 게 일본인의 특성이라건만, 지금 달려드는 일본인들에게서는 그런 모 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죽음에 대 한 공포와 가눌 수 없는 증오심으로
달아오른 얼굴로 그저 달려들고 또 달려들 뿐이었다.
서로 비슷한 표정을 한 이들이 서로에게 칼을 휘둘러 댄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팔다리가 사방 으로 잘려 날아간다.
“뭐 해, 이 새끼야!”
“나……
“뒤로 빠져!”
“예?”
“뒤로 빠지라고, 이 새끼야! 당 장! 뒈지고 싶지 않으면!”
“어……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확 끌어당
겼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 어?’
뭔가가 김원혁의 시선에 들어왔 다. 누군가가 달려드는 이들을 뛰어 넘으며 김원혁이 있는 쪽으로 돌진 해 온다.
지금까지 달려들던 이들과는 비교 도 되지 않는 속도. 뭔가 희끗한다 싶더니, 금세 그의 바로 앞까지 다 가와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고수.
그가 절대 상대할 수 없는 고수
였다.
“쓰레기 같은 조선 놈들!”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는 일 본도가 섬전 같은 속도로 내질러졌 다.
이상하지.
분명 눈으로 볼 수 없는 속도일 텐데, 그 도가 날아드는 모습이 선 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볼 수 있다는 것이 피할 수 있다는 듯은 아니다. 김원혁은 날아든 도가 자신의 배를 파고드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푸욱!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화끈한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다리에서 힘이 풀리고, 몸이 연체동물이라도 된 것처럼 무너져 내린다.
“아••••••
깨닫는다.
죽음.
한 발쯤 걸치고 있던 죽음의 영 역이 그에게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저 어둠에 완전히 휩싸이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살아 있지 못할 것이 다.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그때.
턱.
누군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 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콰앙!
그와 동시에 폭음과 함께 그에게 도를 찔러 넣던 이가 두어 걸음 뒤 쪽으로 밀려났다. 배를 찔러 들러오 던 도가 뽑혀 나가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어깨를 잡은 손이 그를 뒤로 확 끌어당긴다.
“부상자 뒤로 빼, 이 개새끼들아! 무인이라는 새끼들이 지들만 살겠다 고 동료를 처 내버려 둬? 내가 그
렇게 가르쳤냐?”
익숙한 목소리.
그를 뒤로 잡아당긴 이가 슬쩍 고개를 돌려 김원혁을 바라보았다.
‘방 이사님……
방진훈이 살짝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보고는 재빠르게 말했다.
“쫄지 마, 새끼야. 고만큼 찔린 정도로 안 죽어. 뒤로 빠져서 상처 부터 돌봐!”
누군가 그를 받아 드는 느낌이 났다.
누군가의 손으로 옮겨지는 김원혁 의 눈에 방진훈의 널찍한 등이 선명
하게 틀어박혔다.
“애들이랑 놀지 말고, 나랑 놀자, 이 개새끼야!”
여느 때의 방진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