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93)
마존현세강림기-1194화(1192/2125)
마존현세강림기 48권 (25화)
5장 베어내다 (5)
“고민을 좀 하기는 했지.”
“고민요?”
“그래, 고민.”
방진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 다.
“그냥 한 번에 확 싸버리는 게 나 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질끔찔끔 갈
겨서 티가 안 나게 만들어볼까.”
“••••••예?”
“오줌 말이야, 오줌. 이 새끼야.” 김원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무슨 소린가.
“쫄아서 오줌 쌀 뻰했다고.”
방진훈이 짜증 난다는 듯 김원혁 을 한 번 노려보았다.
“야, 나는 사람 아닌 것 같냐? 까 딱 한 번 실수하면 목 날아가는 상 황인데 안 쫄게?”
“그런데 어떻게 그리 싸우실 수 있습니까?”
“내가 뭘 어떻게 싸웠는데?”
“제 실력을 다 발휘하셨……
쿵!
방진훈이 김원혁의 머리를 후려쳤 다. 김원혁이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아야야……
“이 새끼, 웃긴 새끼네? 내가 그 렇게밖에 안 보여? 마, 내가 제 실 력 발휘했으면, 그 새끼쯤은 십 초 만에 찢었어.”
“••••••예?”
“실전에서 제 실력 발휘하는 놈■이 어딨냐? 다 제 실력 발휘 못하는 거지.”
김원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그럼 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 셨는데 그 일본 놈을 이기셨단 말입 니까?”
“그 새끼도 제 실력 발휘 못한 건 마찬가지야.”
“ 예‘?”
“하, 이 새끼……. 예, 예, 뭐가 그렇기 이상한데, 인마? 축구 선수 고 농구 선수고 연습 때 실력을 실 전에서 백 프로 발휘하는 애들이 있 냐? 너, NBA 애들 연습할 때 3점 넣는 거 봤어? 백 개 던져서 백 개
다 넣더라. 그런 애들이 실전에만 들어가면 40%를 못 넘겨요. 실전이 란 건 애초에 그런 거야.”
김원혁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니까 영화 작작 보라고, 새 끼야. 실전에 강한 타입? 그런 게 어디 있냐? 그건 그냥 영화라고. 모 든 사람은 실전에 들어가면 제 실력 을 발휘 못해. 그게 너무 당연한 거 야.”
“니가 겁쟁이인 게 아니다. 원래 그런 거니까.”
김원혁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사님 말씀은 제가 쫄은 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거네 요.”
“그래.”
“그 말은 곧……
김원혁은 방진훈의 말•속에 숨어 있는 참뜻을 이해했다.
“……실력이 문제네요.”
“잘 아네.”
방진훈이 혀를 차며 말했다.
“사람이란 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이유를 찾기 마 련이지. 야, 니가 오늘 완전히 쫄았
는데, 한 열 놈 때려잡았다고 쳐봐. 그럼 네가 지금 고민하고 있겠냐?”
“아니죠.”
“그래. 결과가 마음에 안 드니 이 유를 찾는데, 이유 중에 제일 만만 한 게 그런 거야. 긴장했다, 운이 없었다, 컨디션이 나빴다. 엿 까는 소리 하고 있네. 이 새끼야, 마이클 조던은 독감 걸리고도 결승에서 날 아다녔다. 실력이 있으면 컨디션이 나 운 같은 건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는 거야.”
“예.”
“멘탈? 멘탈 중요하지. 그런데 그
멘탈이란 것도 실력이 있어야 발휘 가 될 거 아냐. 걱정하지 마. 니가 오늘 하나도 안 쫄았어도 결과는 하 나도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 니까 그런 쓸데없는 고민 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수련이나 해. 방법은 하나뿐이다. 실력을 키워. 알았어?”
“예, 이사님!”
김원혁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 다.
사실 문제가 해결되었다기보다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 것에 가까웠 다. 그리고 그 새로운 문제는 그가 생각하고 있던 문제보다 조금 더 심
각했다.
하지만 김원혁은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실력이 모자라다면 키우면 그만이 다. 하지만 멘탈적인 부분은 노력한 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은가. 노력 할 여지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긍 정적이었다.
“병원 꼭 가보고.”
“예!”
김원혁이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 서자, 방진훈이 미소를 지으며 그런 김원혁의 등을 바라보았다.
‘쉽게 해결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래도 좋다.
어쩌면 바쁜 와중에 시간만 잡아 먹은 건지도 모른다. 이 다급한 상 황에 저런 고민을 들어주는 건 과도 한 여유다.
하지만 방진훈은 이 시간의 의미 가 있다고 생각했다.
강진호 없이 이 전투를 치르고, 위험을 감수하며 일반 무인들을 전 면에 내세운 것은 다 이런 것을 위 함이니까.
‘고민해라.’
무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무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짊어져야 할 것이 무엇인 지…….
모두가 그런 고민을 하고 나름의 답을 찾는다면 총회는 지금보다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이 전쟁을 이겼을 때의 문제지.’
방진훈이 조금 심각한 얼굴로 고 개를 돌렸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강진 호가 화를 입기라도 한다면 이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 자.’
강진호를 지원하는 일은 다른 이 들이 할 것이다. 일단 방진훈은 이 곳을 정리해야 한다.
‘경찰 쪽과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 군.’
여길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농땡이 부리지 말고 빨리빨리 퍼 부어, 새끼들아! 해 뜨기 전에 못 끝내면 니들이 끝장날 테니까!”
“예!”
부지런히 물탱크를 날라 오는 이 들을 보며 방진훈이 얼굴에 어린 근 심을 조금 풀었다.
*
“후욱! 후욱! 후욱!”
이현수는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보았다.
‘빌어먹을, 아직 밤이라고!’
해가 뜨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그 런데도 하늘이 노랗다. 그만큼 한계 에 달해 있었다.
평소의 그라면 엄살을 부려 댔겠 지만, 지금의 이현수는 불만 한마디 없이 이를 악물었다.
억지를 부려 따라붙은 것은 다름
아닌 그다. 그런데 이제 와 다른 소 리를 할 수는 없었다. 숨이 턱 끝까 지 차다 못해 심장이 터지더라도 쓰 러지기 전까지는 달려야 한다.
‘그렇다고는 한들……
가공할 속도다.
아마 이현수 혼자였다면 이 속도 로 달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보조를 맞춰 달 리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한계치까지 힘을 내는 게 가능했다.
그러니 이 속도에 발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어두운 산길.
평범한 이들이라면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도 버거워할 길을 고속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주변의 경관이 빠 른 속도로 뒤로 지나간다.
발이 땅을 박차는 소리와 뿜어지 는 거친 호흡이 이현수의 귀를 파고 들었다.
“후욱! 후욱!”
선두에 선 이는 장민이었다.
장민의 등이 그들을 재촉한다. 강 진호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 은 장민은 평소처럼 안달복달하지 않았다. 그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두를 이끌기 시작했을
뿐이다.
“어느 쪽!”
애매한 길이 나오자 장민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친다. 이현수가 재빨리 휴대폰 화면을 보며 대답했 다.
“좌측입니다!”
방향이 틀어진다. 순간, 휘청한 이현수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처박 혔다.
아니, 처박혔어야 했다.
덥석.
그 순간, 무언가가 이현수의 뒷목 을 움켜잡았다.
“아•••••••”
“쯧.”
거대한 손.
이현수를 들어 올린 손이 그를 쭉 끌어당기더니 옆구리에 낀다. 남 자의 옆구리에 매달리는 건 그리 유 쾌한 경험이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방향이나 똑바로 말해라.”
“예!”
이현수가 헐떡거리는 숨을 가누며 힘겹게 대답한다.
‘빌어먹을.’
속이 뒤집어진다.
스스로가 전투원이 아니라는 인식 이야 있지만, 이리 짐 덩이가 되어 서는 안 되는 법이다. 필요할 때 쓸 수 없는 도구는 아무리 유용해도 소 용이 없다.
조금 더 강해져야 한다. 이들과 발을 맞춰 나가려면 말이다.
“거리는?”
“거의 다 왔습니다.”
W o ”
위긴스가 살짝 억눌린 신음을 내 뱉었다.
그의 양손은 새하얗게 빛나는 중 이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위긴스는
마법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이들의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발이 마치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듯이 나아간다.
이게 가능하다면 더 많은 이들을 데리고 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위긴스의 얼굴을 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
“후!”
위긴스가 손을 들어 얼굴을 닦는 다.
창백해진 그의 얼굴 위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이현수는 단 한 번도 이리 힘겨워하는 위긴스
를 본 적이 없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하지만……
“바토르 님의 옆구리가 안락한 모 양이군, 입이 열리는 걸 보니.”
“괜찮고 말고를 따질 때가 아니 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예.”
이현수가 입을 꾹 닫았다.
‘필사적인 거다.’
이현수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말 이다.
위긴스는 군산에서 치러진 전투로 인해 마나를 대량으로 소모했다. 그 리고 지금도 계속 마나를 사용하는 중이다. 이대로 총회까지 달려간다 면, 위긴스는 전투에 참여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위긴스는 뒷일을 생 각하지 않고 있었다.
전투 같은 건 다른 이들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오직 그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 남은 마나 한 방울까지 짜내서 도착하는 시간 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위긴스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총회로 달려가는 이들 중 강진호가 쉽게 당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진호는 그런 사람이다. 위긴스들이 강진호를 상 대하더라도 대체 어떻게 죽여야 할 지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절대적인 강함.
압도적인 무위.
하지만 전쟁은 그게 전부가 아니 다.
전쟁에서는 언제나 예상외의 변수 가 발생한다. 절대 지지 않을 것 같 던 병력이 순식간에 몰살당하기도
하고, 절대 이길 수 없는 전투가 천 운이 닿아 대승으로 끝나기도 한다.
애초에 전쟁이라는 것이 이치와 병법만으로 완벽하게 계산될 수 있 는 것이라면 벌어지지도 않는다. 시 작도 하기 전에 승부가 나 있을 테 니까.
다시 말하자면…….
제아무리 강진호라고 하더라도 일 본 놈들에게 당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특히나 저놈들이 무얼 숨 겼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말이 다.
그 변수를 줄이는 게 그들의 일
이다.
만약 강진호가 당하기라도 한다 면, 그 여파는 상상하기도 싫다.
그리고 단순히 결과의 문제도 아 니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강진호의 죽 음을 바라지 않는다. 강진호는 이제 그들에게 단순한 상관 이상의 의미 를 가지고 있으니까.
“허억! 허억! 허억!”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는 다.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 큼 망가진 모습으로 위긴스는 무거
워지는 다리를 재촉했다.
위긴스를 제외한 이사들은 그나마 어느 정도의 체력을 보존하고 있지 만, 그들을 따르는 이들은 이제 지 쳐 가고 있었다.
그 순간, 장민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속도를 높여라!”
‘여기서 더?’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장민의 더없이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 다.
“감히 마존을 노리는 이들을 지옥 밑바닥에 처박아 찢어 죽일 것이다!
달릴 수 없는 놈들은 기어서라도 쫓 아와라!”
“예!”
위긴스가 히죽 웃고는 마력을 돋 웠다.
‘가다 죽자.’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마력을 뿜 어낸다. 이리되면 그는 절대 총회에 걸어 도착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무 래도 좋다.
저 믿음직한 노인의 등을 보고 있으면 말이다.
“20분 내로 도착합니다! 마지막 힘을!”
이현수의 고함 소리에 모두가 다 리에 힘을 실었다.
목표는 총회.
강진호가 있는 곳이다.
“……단단하군.”
츠키카게의 눈이 살짝 가라앉았다.
공격을 가한 이는 핏물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강진호의 경우, 약간의 타박상을 입었을 뿐이다.
못해도 팔 하나 정도는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한 공격이 겨우 타박상이라…….
‘정말 보면 볼수록 괴물이 따로 없군.’
강진호는 그가 알고 있는 무학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나쁜 소식은 아니다.
‘어쨌든 상처를 입는단 말이지?’
츠키카게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상대가 상처를 입는다는 걸 확인했다는 게 고무적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그 들에게는 그 당연한 사실이 무엇보
다 중요했다. 상처를 입는다는건 공격이 먹힌다는 뜻이고, 공격이 먹힌다는 건 지속적인 공격으로 쓰러뜨릴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여야 한다.’
츠키카게가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의 신호를 받은 그림자들과 츠키하의 눈에 필사적인 결의가 어렸다.
욱신.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신경을 긁어 댄다.
강진호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분노가 그를 자극해 대고 있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핏물을 보자 분노가 더 치밀어 올랐다.
‘자폭이라……
수단을 욕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어찌해도 이길수 없는 자를 맞상대하는 입장에서 수단이나 방법을 고려할 수는 없으니까. 정정 당당하게 맞붙어서는 그저 죽을 뿐이다. 정정당당하게 죽으라는 말을 할 수는 없잖은가.
강진호가 화가 난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카미카제라……
한국인으로 살다 보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는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말을 끔찍할 정도로 싫어했다.
목숨을 버려서 이득을 얻는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 이득은 남아 있는 이들의 이 득일 뿐이다.
죽은 이의 목숨을 무슨 수로 보 상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각오는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로만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저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의 의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생리적 혐오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저런 방법으로 신니치카이가 세상을 제패한다고 해도 죽어간 이들에 게 대체 무엇을 보상할 수 있단 말 인가.
이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퉤!”
강진호가 찢어진 입안에서 흘러나온 피를 뱉어냈다.
그러고는 말 없이 적루와 청루를 들어 올렸다.
“배려인지도 모르겠군.”
강진호의 눈이 붉게 빛났다.
정말 제대로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미묘하게 달아오르지 않던 기분이 사라졌다. 눈앞에 보이는 걸 모두 으깨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츠키카게의 신호와 함께 츠키하들이 괴성을 지르며 강진호에게 달려 들었다.
어둠이 검은 제복을 입은 그들과 어우러졌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새파랗게 빛나는 일본도뿐이다.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며 이를 드러냈다.
적루와 청루가 검은 불꽃에 휩싸 인다. 보기만 해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디검은 불꽃이 적루와 청루 를 완전히 감싼 채 달려오는 츠키하 들에게 떨어진다.
악이 세상에 현신하는 광경이다.
달려들던 츠키하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뭔가 다르다.
분명 지금까지의 강진호의 모습과 달라진 게 없다. 모습이야 동일하다. 하지만 전해져 오는 감각은 조금전 과 명백하게 달라졌다.
심장이 오그라든다.
피부가 조여오고, 숨이 턱 막힌 다.
거칠게 밀려오는 살기가 그들의 뇌를 하얗게 탈색시키고 있었다.
“끅!”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의지 같은 게 아니다. 전장 에 나섰을 때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수천수만 번 들어온, 세뇌와
도 같은 가르침이 그들의 발목을 움 켜잡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컸다.
콰드드득!
검기를 뿜어내는 검.
검수에게 있어서 검이란 절대적인 믿음의 상징이다.
인간이 검을 들고 싸울 수 있는 이유는 그 검이 절대 부러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 리 날카롭다고 한들 면도칼을 들고 싸우는 이가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상대의 공격에 부러지지 않을 것. 자신의 내력에 부러지지 않을 것.
그렇기에 검수에게 검이란 목숨을 걸 수 있는 절대적인 불멸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그 믿음이 무너진다.
까가가강!
일본도가 마치 수수깡처럼 부러진 다.
장인으로 인정받는 이가 혼신의 힘과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 최상급 의 일본도가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허무하게 꺾이고 부러졌다.
부릅뜬 눈.
믿음이 깨어진 인간의 반응은 비 슷하기 마련이다.
경악은 의심으로 바뀌고, 의심은 절망으로 바뀐다. 하지만 다행스러 운 것은 이들은 그 참담한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경악이 의심으로 바뀌기도 전에 강진호의 적루가 그들의 심장을 갈 라 버렸으니까.
스슷.
검이 육체를 가르고 지나간다. 소음조차 없다.
마기가 터질 듯이 실린 강진호의 적루를 감당하기에 인간의 육체는 너무도 나약했다.
힘이란 그런 것이다.
츠키하들은 지옥과도 같은 수련을 버텨낸 이들.
스스로가 가진 힘과 경지에 자부 심을 가져도 될 만한 이들이다.
하지만 힘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
그들이 아무리 거대한 힘을 쌓았 다고 해도 더 강한 힘 앞에서는 약 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강진호를 상대하는 것이 이들의 불행이었다.
강진호는 전장에서만큼은 언제나 포식자이고, 약자를 유린하는 악마 니까.
촤아아아아악J
피 분수가 사방으로 뿌려진다. 반 으로 갈린 육체가 무너지며 검은 화 염으로 뒤덮였다.
“흐아아아아앗!”
하지만 반응이 조금 다르다.
저들 역시 강진호의 강함을 인지 한 상황. 앞서 달려든 이들이 강진 호를 막아낼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 각하지 않았다. 바로 앞에서 동료의 몸이 검은 화염에 뒤덮여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독기에 가득 찬 눈으 로 달려들었다.
“신니치카이 만세!”
뜬금 없이 터져 나온 고함이 강 진호의 신경을 거슬렀다.
날카로운 일본도가 강진호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생명 을 건 혼신의 일격이 빗나간 대가는 목숨으로 갚을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앙!
강진호의 주먹이 달려든 이의 턱 을 가격했다.
턱부터 머리끝까지 커다란 구멍이 뚫린 몸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압도적인 힘.
그저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대항의 의지를 앗아갈 만큼 어마어마한 위
력이 다.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달려들 듯하던 강진호가 몸을 빙글 돌렸다.
그의 눈에 바닥을 뚫고 솟아오르 는 그림자가 보인다.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서걱!
눈으로 확인하고 머리가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청루가 솟아오르 는 이의 목을 쳐 날렸다.
그림자는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보았다.
목이 날아간 그림자의 손이 움직
이는 것을, 그리고 그 손안에 무언 가 쥐어져 있다는 것도 말이다.
꾹.
엄지손가락이 무언가를 누르는 순 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그림자의 몸이 폭발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거대 한 충격이 강진호의 몸을 덮쳤다.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강진호가 피 를 뿌리며 바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목을 날렸는데?’
순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운이라는 것은 의지. 목이 날아 간 이는 더 이상 의지를 이어갈 수 없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고, 아무 리 의지력이 강하다고 해도 마찬가 지다.
죽은 이의 의지 같은 건 현실에 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까.
그런데 이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무학의 상식을 뒤엎는 일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이건 무학이 아니다.
그 순간, 강진호의 발아래서 누군
가가 불쑥 솟아 올랐다. 채 반응하 기도 전에 튀어나온 손이 강진호의 발목을 움켜잡는다.
살기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강진 호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하 지만 솟아오른 이에게서는 조금의 살기도, 조금의 적의도 느껴지지 않 았다.
강진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의 발목을 잡은 이가 강진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굴 대부분을 가린 복면 사이로 보이는 것은 두 눈뿐이었다. 그리고 그 두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확인한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다.
“어머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
폭발이 강진호를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살짝 검게 물든 시야가 되돌아온 다. 밝아진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 를 내려다보고 있는 커다란 달이었 다.
강진호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한 다.
탓!
몸을 돌려 바닥에 착지한 강진호
에게 츠키하들이 사방에서 덮쳐든 다.
“으!”
순간, 강진호의 발끝에서부터 마 기가 불타올랐다. 지옥의 겁화처럼 타오른 마기가 악마의 혓바닥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 달려드는 츠키 하들을 뒤덮었다.
“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전신이 녹아내리는 고통은 정신력 만으로 감내하기에는 너무도 컸다. 마기에 뒤덮인 이들이 꿈에 들을까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
었다.
“쿨럭!”
강진호가 마기를 거둬들이며 입을 가렸다.
그의 손에 진득한 핏물이 묻어난 다.
“ 후우••••••
깊게 숨을 토해낸 강진호가 몸을 일으켰다.
상처가 깊다.
폭발을 고스란히 받아낸 육체는 화상을 입었고, 가장 가까운 데서 폭발을 받아낸 허벅지는 찢겨져 피 를 뿜어내고 있다.
상처가 조금만 깊었으면 대퇴동맥 이 찢겨 나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 을지도 모른다.
이건 지금까지 강진호가 겪어본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위기였다.
아이러니가 있다.
무학을 쓰는 이들의 속도는 인간 의 반사 신경을 깔끔하게 초월한다.
하지만 무학을 쓰는 이들은 그 어마어마한 속도로 뿌려지는 공격들 을 피하고 방어해 낸다. 복싱 선수 가 눈으로 보고 막는 게 불가능한 잽을 고작 위빙으로 피해내듯이 말 이다.
같은 원리였다.
무인들 역시 상대의 공격을 정확 하게 인식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공격은 사전 작업이 존재한다. 기운이 돌고, 그 기운이 뻗어 나갈 방향을 정한다. 그것만 미리 감지할 수 있어도 피해내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이 폭발은 그렇지 않았다.
전조도, 준비도 없다. 어느 순간 터져 나온다.
그리고 강진호도 이제는 이 충격 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열기와 매캐함이 말해주고 있다.
“……폭탄인가?”
소매로 얼굴을 쓸어낸 강진호가 뇌까리자, 츠키카제가 무표정한 얼 굴로 대답했다.
“그렇다.”
츠키카게가 슬쩍 눈짓을 했다. 사 시나무처럼 떨고 있던 무인이 더듬 거리는 말투로 통역을 시작했다.
“비겁하다고 할 셈인가?”
“비 겁?”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비겁이라…….
그렇게 따지면 무학도 비겁한 거 겠지.
무학이든 무기든 그 근본은 같다. 상대를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도 구가 아닌가. 무인이라고 해서 화기 나 무기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건 무학에 휘둘려 수단과 목적 을 혼동한 이들이 내뱉는 말일 뿐이 다.
하지만…….
“이건 비겁이 아니지.”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비열이라고 하는 거다.”
강진호의 적루가 츠키카게를 가리 켰다.
“이런 방법을 쓰고 싶다면, 네가
직접 달려들었어야지. 가만히 서서 수하를 보내는 게 아니라.”
츠키카게가 어깨를 으쓱했다.
“방법의 차이라고 해두지.”
방법의 차이라…….
“흐……
강진호가 비릿한 웃음을 홀렸다.
“알려주지.”
그 방법의 차이가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