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0)
마존현세강림기-120화(120/2125)
마존현세강림기 5권 (20화)
5장 — 다짐하다 (1)
군생활은 별다를게 없었다.
특히나 강진호에게는 정말 별다를게 없었다.
“기상하십시오!”
기상나팔이 울리자마자 직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운 강진호가 30초 만에 침구를 정리하고는 환복을 시
작한다. 결코 빨라 보이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빠르기 짝이 없었다.
다른 선임들이 옷을 채 다 입기도 전에 전투화를 신은 강진호가 밤새 흐트러진 신발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야, 빨리 안 움직여?”
덕분에 건너편 침상의 분대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아, 저 미친놈. 진짜.’
‘모터 달았나.’
‘저 새끼 휴가 갔을 때는 참 편했는데.’
건너편에서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비교가 되기 마련이다. 병장들이야 아직 일어날 기미가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상 병들은 자기분대의 후임들이 강진호의 반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쥐 잡 듯이 후임들을 갈궈 댔다.
“빨리빨리하라고!”
“진호 하는 것 안 보여?”
보여도 문제고, 안 보여도 문제였다.
한바탕 소동 끝에 집합을 마치고 구보를 뛰고 나면 정식 일과가 시작 되었다. 청소 시간은 강진호가가장
빛나는 시간 중 하나였다.
“ 진호야.”
“이병, 강진호.”
“그……”
전혁수가 조금은 조심스러운 말투 로 입을 열었다.
“침상을 깨끗하게 하는 건 참 좋은 일이지만, 내 생각에는 오전부터 치약으로 침상을 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반짝반짝 광이 나는 침상을 보면 앉기가 미안할 정도다. 전혁수도 나 름 깔끔한 편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인간 스팀 청소기인 강진호에게 비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남아서 이왕 할 거면 깨 끗하게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참 좋은 생각이긴 한데……
전혁수가 한숨을 쉬었다.
신병을 받아서 고생한다는 이야기야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은 그들밖에 없을 것이다.
“제원장입은 했니?”
“ 예.”
“그래, 내가 괜한 걸 물었구나. 포상 청소는 다 했을 테니 안 물어
봐도 되지?”
“ 예.”
“……그래.”
재미가 없다.
심각하게 재미가 없었다.
예전에는 성태호를 놀리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강진호가 와서 성태호의 일까지 대부분 해버리고 나서부 터는 성태호를 갈구기도 쉽지 않아 졌다. 그렇다고 불만을 표할 수도 없는게, 원래는 그가 해야 할 일도 슬슬 강진호가 처리해 버리고 있었다.
“너, 말뚝 박을 생각은 없냐?”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를 놓치는 건 대한민국 국군의 크나큰 손실인 거 같아서 하는 말이다. 잘 생각해봐 라.”
“괜찮습니다.”
“……그래.”
일과가 시작되면 강진호는 말 그 대로 미쳐 날뛰었다.
“……진호야.”
“이병, 강진호!”
“음, 오늘 하는 일이 호를 파는 거라는 거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오전에는 여기에 호 하나를 파는게 우리 일과라는 것도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음, 그럼……
조원구는 미묘한 얼굴로 호를 바라보았다.
“일과 시작한 지 30분 만에 너 혼자 이 호를 다 파버리면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시정하겠습니다.”
“……이게 시정할일이니?” 조원구는 어이가 없었다.
‘이 새끼, 진짜 터미네이턴가?’
지금 그들은 훈련장에서 호를 파 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가 와서 무너진 호를 보수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침이 바뀌어서 새로 호를 파 고 있는 것인데, 이쪽에다가 호를 파야 한다고 해놓고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왔더니 강진호가 호를 반쯤 파놓고 있었다.
‘여기가 산이 아니라 모래밭인가?’
실제로 산에서 구덩이를 판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호를 파보지 않은 사람은 산에 홁만 있다 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실제 산에서
호를 파보면 우리가 밟고 있는 바닥 이 반쯤은 자갈과 돌, 그리고 나무 뿌리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통은 곡괭이로 흙을 부수고 정리해서 나무뿌리를 잘라내며 파 나가는 것인데…….
“뭔 삽이 전기톱도 아니고…… 전기톱이라고 해도 바위를 부수는 건 너무하잖아!
반쯤 파고 난 뒤에 커다란 바위가 툭 튀어나오기에 아무래도 다른 곳 에 다시 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진호가 갑자기 삽을 들어 바위를 내려쳐 버렸다.
보통은 삽이 부서지거나 손이 찢 어져야 할텐데, 그놈의 바위는 그 커다란 덩치에 걸맞은 자존심도 없는지 툭, 하고 부러져 버리지 않는가!
무표정한 얼굴로 바위를 부숴 버 린 강진호가 부서져 나온 커다란 바 윗덩어리를 호 밖으로 던져 버리더니, 남은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불과 30분 만에 벌 어진 일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내가 뭘 봤는지 모르겠네.”
세계 호 파기 대회가 있다면 우승 자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삽질의 신급이지 말입니다.”
“미묘한 어감인데……
“이 새끼, 삽을 무슨 숟가락 다루 듯이 다루지 말입니다.”
“그러게.”
오전 할당량을 불과 30분 만에 끝내 버렸지만, 하산을 하기도 뭐하 고 일을 더 달라고 하기도 뭐하다 보니 대충 자리를 깔고 노가리를 까는 걸로 오전을 보낸 3분대는 점심을 먹고 더 큰일을 맡아야 했다.
“……뭔 나무꾼도 아니고.”
톱을 들고 산을 오르는 조원구의 얼굴을 영 좋지 못했다. 보통 오전 에 빡센 일을 시키면 오후에는 좀 편한 일을 시켜주는게 기본적인 일 과 배분이건만, 그들은 기준 포란 이유로 빡센 일을도맡기 일쑤였다.
“이래서 군대가 지랄이라니까.”
잘하는 놈이 고생해서 일을 해놓 으면 배려를 해줘야 하는데, 잘하는 놈이 있으면 힘든 일은 그놈에게만 돌아가는 곳이 군대였다.
다른 분대는 기피하는, 산 타고 호 파는 일을 해줬더니, 이제는 산
에가서 통나무를 다섯 그루나 베어 오란다.
“다치면 지들이 책임질 거냐고.”
나무를 베는 거야 어렵지 않다. 녹이 쓴 톱 하나 던져 준게 전부 지만, 그들에게는 악과 깡이 있으니 까 나무 몇 그루 베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커다란 통나무 들을 산 아래까지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까딱했다가는 목숨이 위험하다.
“어휴, 씨.”
짜증이 나고 입에서는 욕이 절로 나왔지만, 까라면 까는 곳이 군대
아닌가.
“이 정도면 됐지 말입니다?”
“그래, 그거 자르자.”
조원구는 톱을 들고 나무 옆에 섰다. 힘쓰는 일이야 애들에게 맡긴다 지만, 위험한 일은 그가 맡아야 했다. 그가 분대장이니까.
“잘 밀어. 톱 안 끼게.”
“예.”
분대원들이 나무 윗동을 밀자 조 원구가 힘을 꽉 주고 나무 밑동을 자르기 시작했다. 반쯤 자르고 나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 교대하자.”
“제가 하겠습니다.”
전혁수가 톱을 넘겨받았다. 뒤로 물러서서 위를 바라본 조원구가 조 금 애매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 웃했다.
‘걸릴 수도 있겠는데?’
나무를 할 때가장 위험한 것은 나무가 넘어가는 순간이다. 보통은 넘어가는 방향을 미리 정하고 그쪽으로 나무를 밀면서 톱질을 하기 마 련이지만,가끔 나무끼리 서로가지가 얽히면서 생각하지도 않은 방향으로 나무가 쓰러질 때가 있었다.
보통 그렇게 사고가 나는 것이다.
“야, 조심해서 해라. 잘못하면 걸 리겠다.”
“ 예.”
나무를 미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톱이 거의 나무의 2/3을 자른 순간부터 조원구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밀어봐.”
“아직 어림도 없지 말입니다.”
“최대한 밀면서 작업해봐.”
“예.”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 만, 나무를 거의 다 잘라갈 때까지 넘어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저거, 걸린 거 같기도 하고……
조원구는 작업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를 잘라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 했다.
지금까지 일한게 아깝기는 하지 만 애들이 다치는 것보다야 고생을 더 하는게 백배는 낫다.
“야, 아무래……
“넘어갑니다!”
조원구가 막 작업을 중지시키려는 순간, 나무가 그들이 정한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오, 다행……
그 순간,가지끼리 서로 얽힌 나
무가 빙글 돌더니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피, 피해, 새끼들아!”
조원구가 기겁을 하여 소리를 질 렀지만, 자신의 머리 위로 나무가 넘어온 것을 본 분대원들은 순간 반 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 라만 보았다.
“이런 씨!”
조원구가 몸을 날리려는 순간, 커 다란 굉음이 터졌다.
쿵!
그러자 쓰러지던 나무가 허공으로 붕 뜨는 듯싶더니, 바닥으로 내려앉
았다.
“……뭐야?”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조원구가 눈을 비볐다.
내가 방금 저 나무가 허공으로 붕 뜬 건가?
저 나무가?
아무리가지고 내려갈 만한 걸로 골라서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무게는 아니라고 해도 저거 하나가 적어도 200kg은 넘을텐데, 그런 나무가 허공을 난다고?
조원구가 얼떨떨한 눈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강진호가 쭉 뻗은 다리를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니가 찼어?”
“ 예.”
“찼다고?”
“ 예.”
아, 그렇구나.
좋은 방법이네.
나도 앞으로 나무가 쓰러지면 걷 어차야지. 그럼 나무가 붕 날아서 바닥에 떨어지는구나.
“이 씨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지!”
이걸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와, 큰일 날 뻔했네.”
“저 위에가지에서 안 걸렸으면 지금 다들의무대행이지 말입니다.” 조원구가 멍하니 물었다.
“가지에 걸렸다고?”
“예. 저 위에가지에 걸리더니, 붕 뜨던데 말입니다.”
조원구는 웃고 말았다.
이 새끼들은 물리도 안 배웠나.가지끼리 얽힌다고 떨어지던 나무가 허공으로 다시 치솟을 리가 있나!
“잘못 봤겠지.”
나무가 떴다고 느낀 건 그의 착각 인 것이고, 실제로는 나무가가지에
걸려서 옆으로 돌아 떨어진 것이다.
그 와중에 겁도 없는 놈이 나무를 걷어찼는데, 우연히 나무가도는 타 이밍이 맞은 거다.
“……말이 존나 안 되는 건 나도 알겠다.”
“예?”
“ 아냐.”
조원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가 허한가?’
헛것을 본 건지, 헛것을 본 것이 라 믿고 싶은 것인지…….
“여튼 마저 자르지 말입니다. 다
섯 그루 아닙니까.”
“그래.”
니들 맘대로 해라.
조원구는의욕을 잃고 나무 밑동 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저거, 사람 아닌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지?”
“사람이면 양심이 있어야 하지 말 입니다.”
“그렇지?”
조원구와 전혁수는 그들의 앞에서 질질 끌려가고 있는 통나무들을 바 라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보통 산에서 통나무를가지고 내 려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앞쪽을 끌 고가야 한다. 굴리면 되지 않느냐 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바닥이 울퉁 불퉁한 산에서 나무를 굴린다는 것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보통은 앞쪽을 한 명이 들 고, 뒤쪽은 바닥에 내린 채 끌고가 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작업도 결코 쉽지 않고 사고가 나기 쉬워서 옆에서 봐주는 사람과 교대해가며 하는 작업이라는 건데…….
“……저 새끼, 좀 이상하지 말입니다.”
“그렇지?”
한 사람이 한쪽 옆구리에 통나무 세 개, 다른 쪽 옆구리에 통나무 두 개를 끼고 느긋하게 산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 보통은 다 그렇게 생각 하기 마련일 것이다.
“다 합치면 1톤은 될텐데.”
물론 한쪽 바닥이 바닥에 닿아 있 으니 그 정도 무게가 실리지야 않겠 지만, 그래도 저게 사람이 들 수 있는 무게는 아니어야 한다.
그게 지금까지 조원구의 상식이었
다.
선임들이 중간중간 나무를 끌고가며 턱에 걸리고 넘어질 뻔하는 둥 고생을 하자 강진호가 갑자기 통나 무를 받아들더니 자기 옆구리에 다 끼고는 다섯 개의 통나무를 모두 질 질 끌고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태평하게.
“혁수야.”
“상병, 전혁수.”
“저녁에 냉동 돌려서 쟤 좀 먹이 고……
“의무대에 말해서 나 입실 좀 시 키라고 해라. 헛게 보인다.”
“……같이가시지 말입니다.” 조원구가 하루빨리 전역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