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11)
마존현세강림기-1212화(1210/2125)
마존현세강림기 49권 (19화)
4장 변화하다 (4)
“올라온다.”
바토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뱃 머리로 집중되었다.
그 시선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다.
당혹, 기대, 그리고 불안.
저들이 이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이곳에 있는 이들의 운명이 결 정 된다.
강진호와 아키노리가 자리를 비운 동안 나름 마음을 정리한 이들은 제 각각의 생각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강진호와 아키노리, 그리고 이현수가 배 위로 올라왔다.
다들 그들의 표정에서 회담의 결 과를 찾아내려 했지만, 무언가를 읽 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려갈 때의 표정과 별반 다를 게 없었으니까.
세 사람이 중앙으로 걸어왔다.
먼저 아키노리가 주변을 둘러보았 다. 무심한 눈으로 모두를 둘러본 아키노리가 고개를 돌려 총회의 이 사들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강진 호와 시선을 마주친 뒤, 다시 그의 수하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 들어라.”
아키노리에게 갑판 위의 모든 이 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키노리가 그 시선을 받으며 말 했다.
“우리는 패했다.”
도발적인.
그리고 과격한 화법이었다.
받아들일 시간도 주지 않고 쏟아 지는 그의 말에 모두 당혹감을 감추 지 못했다.
“한국으로 상륙한 1진과 2진은 전멸했다. 그리고 한국의 총회는 본 토의 도쿄마저 점령했다. 신니치카 이의 수령은 목이 잘렸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늘어놓을 뿐 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 어떤 겁박 이나 선동보다도 두려웠다.
“남은 것은 우리뿐이다.”
그 말을 내뱉은 아키노리가 살짝 뜸을 들였다.
이들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 다. 정확하게는 그의 말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이미 다들 짐작하고 있는 내용이 겠지만, 그 짐작을 아키노리의 입으 로 확인시켜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 니까.
쏟아지는 불신과 체념의 시선을 받으며 아키노리가 얼굴을 굳혔다.
순간, 아키노리의 눈이 정광으로 빛났다.
“이미 승부는 끝났다. 발버둥 친 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둘 중 하나의 결과만을 남겨 놓았을 뿐이다. 이곳에서 전력을 소 모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박살 나버 린 본토로 돌아가 악전고투를 치르 거나…… 아니면 여기서 모두 죽거 나.”
과격한 말이었다.
하지만 아키노리가 진실만을 말하 고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그들 에게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이곳에서 운 좋게 살아 돌 아간다 해도 남은 것이 있을까?
이 자리에서 그들을 놓친다 하더 라도 총회는 유유히 원정대를 꾸려 일본에 상륙해 버리면 그만이다. 신 니치카이와 야마시로구미를 잃은 일 본은 더는 총회에 대항하지 못할 것 이다.
그때는 타협의 여지도 없는 숙청 이 벌어지겠지.
그러니 남은 것은 이곳에서 죽거 나, 본토로 돌아가 죽거나 둘 중 하 나뿐이다.
“어느 쪽도 우리가 원하는 결과는 아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총회 의 회주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
셨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기만 한다 면, 새로운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신다고 한다.”
듣고 있는 이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빙빙 돌려 하는 말이지만, 결국에 는 항복하고 복종하자는 말이었다. 그 대가로 목숨을 구걸하자는 소리 였다.
몇몇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겁 니까, 국장님!”
아키노리가 고개를 돌렸다.
고헤이가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더 들을 게 뭐가 있습니까? 정 신이 나가신 것 아닙니까? 조선 놈 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을 구 걸하자는 말 아닙니까!”
아키노리가 눈을 찌푸렸다.
고헤이는 대가 그리 세지 못하다. 평소에도 우물쭈물하기 일쑤고, 기 본적으로 무인에 그리 어울리는 성 향은 아니었다. 그런 고헤이가 참모 로 이 배에 승선할 수 있던 이유는, 그가 특이할 정도로 한국을 중오하
기 때문이었다.
증오하는 만큼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라면 어떤 식으로든 도 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참모 중 하나로 뽑았다. 그 판단 자체는 그 리 나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파탄을 드러 내고 있었다.
“국장, 무사도(武土道)를 잊은 겁 니까? 야마토 정신은 어디에 팔아먹 은 겁니까! 대일본제국의 무인으로 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조선 놈들 따위에게 항복하느니, 차라리 여기 서 모두가 할복하여 우리의 기개를
보여주는 쪽이 낫습니다! 당장 전쟁 은 패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정신력 은 패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합 니다!”
이현수가 질린 얼굴로 고헤이를 바라보았다.
일본 놈들이 때때로 미친 소리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이건 정 도를 넘었다. 더 무서운 건, 저 미 친 소리를 하는 고헤이의 얼굴이 더 없이 진지하다는 점이었다.
하기야…….
과거, 전쟁 당시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식량 따위는 길가의
풀을 뜯어 먹으면 된다고 외친 장군 도 있는데, 저게 뭐 그리 대단한 일 이겠는가.
평소에는 세계에서 가장 이성적인 척하는 민족이지만, 막상 궁지에 몰 렸을 때는 숨겨진 광기를 드러내는 이들이 일본인 중에 분명 존재했다.
고헤이가 딱 그런 경우였다.
“ 할복?”
아키노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래서 뭐가 달라진단 말이냐? 죽는 건 변하지 않는데.”
“어리석은 소리! 무사는 어떻게 죽는가가 중요합니다! 같은 죽음이
아닙니다! 명예와 무사도, 그리고 천황 폐하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 는 죽음이 어찌 하찮은 죽음과 같단 말입니까!”
“너……
“항복은 없습니다! 대일본제국은 항복하지 않습니다!”
바토르가 그 광경을 보며 어이없 다는 듯 웃고 말았다.
그러고는 이현수에게 작게 속삭였 다.
“쟤들, 전쟁에서 항복해서 군대도 없는 것 아니었나?”
“미친놈에게는 이치를 들이미는
게 아닙니다.”
“아니, 너무 꼴같잖은 소리를 당 당하게 하잖아.”
“쟤들 원래 그럽니다.”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고헤이가 개소리를 지껄이는 건 별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에 게 동조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는 것이었다.
천황과 무사도, 그리고 야마토 정 신 등등.
그 말에는 일본인들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전쟁의 승 패가 이미 결정 났다고 체념한 이들
의 눈에도 결사적인 무언가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항복은 없다고?”
아키노리의 얼굴에도 노기가 치솟 았다.
“항복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항복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지도에서 지워졌겠지!”
“아니오. 항복했기에 겨우 이 정 도인 겁니다. 항복하지 않았으면 우 리는 더욱 위대한 국가를 만들었을 겁니다! 후대에 항복의 전례를 다시 남겨서는 안 됩니다! 일본인이라면! 야마토의 기상을 이은 남아라면, 절
대로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 는 것을 이 자리에서 증명해야 합니 다.”
“이 어리석은……
아키노리조차도 할 말을 잃었는지 고헤이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 말이 맞습니다!”
“항복이라니!”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기 위해 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다!”
“국장, 대체 뭘 약속받은 거요! 그러고도 대일본제국의 무사라고 할 수 있소?”
순간적으로 고헤이 쪽으로 여론이
쏠렸다.
그러면 끝이다.
아키노리는 알고 있다. 일본인은 반대하지 않는다. 전체의 여론이 한 쪽으로 쏠렸다는 걸 느낀 순간, 속 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겉으로 다 른 의견을 표하지 않는다.
과거, 일본이 몇 번이고 뒤가 없 는 전쟁을 밀어붙인 것은 승산을 계 산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 누구 도 모두의 앞에서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식을 몰라서가 아니다. 상식보 다 결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
문이다.
“이……
아키노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 다.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세가 약함에도 대항한다는 것은 죽겠다는 뜻이다. 그 죽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모를까, 죽음 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없는데 왜 죽음을 자초한다는 말인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형세다.
자신의 목숨을 결정하는 일조차 스스로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것 이 아키노리를 분노하게 했다. 그리
고 이건 강진호의 명을 어기는 일이 아닌가.
“이 어리석은……
“할복하십시오.”
아키노리가 멍한 눈으로 고헤이를 바라보았다.
“그 더러운 입으로 야마토 정신을 더럽히고, 천황 폐하에 대한 충심을 저버린 바, 할복하여 그 죄를 씻으 십시오! 이게 한때 당신의 부하였던 자로서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충절입 니다. 목은 깨끗이 쳐드리겠습니다.” 아키노리의 눈에서 불이 피어올랐 다.
강진호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의 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이미 강진 호를 주인으로 모시기로 맹세했으니 까.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별개의 문 제였다.
어찌 이리 어리석을 수 있는가.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살 수는 없는 법 아닌가.
특히나 저 무사도 운운하는 방식 이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닐진대.
광기로 물든 이들의 눈을 보며 아키노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목을 베어서라도 이들을…….
“비켜.”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키 노리가 고개를 돌렸다. 강진호가 그 에게 턱짓으로 나오라는 신호를 주 고 있다. 아키노리는 말없이 강진호 에게 길을 터주었다.
저벅.
앞으로 나선 강진호가 가만히 모 두를 바라보았다.
침묵.
들끓던 분위기가 천천히 가라앉는 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고헤이는
독기 가득한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 보고 있었다.
“할복으로
신념을 증명한다라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좋겠지.”
이현수가 그의 말을 통역했다.
“ 해봐.”
고헤이가 굳은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냐?”
“하라고, 그 할복인가 뭔가.”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스스로 죽는 방식을 택해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럼 갈라.”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말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 나는••••••
“말이 필요한가?”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옷었다.
“행동으로 증명한다고 하지 않았 나? 말이 왜 필요하지? 자, 시작해. 다들 기다리고 있잖아.”
“모르지. 네가 그 신념을 증명하 면 내 생각이 바뀔지도. 감동해서 모두 그냥 보내줄 수도 있잖아?”
고헤이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미약한 흔들림.
하지만 강진호는 그 흔들림을 비 난하지 않았다. 죽음을 선택한다는 건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혼들리면서도 끝까지 자 신의 의견을 관철하느냐일 뿐, 흔들 리는가가 아니다.
▲ 5 2릇
——O ’
고헤이가 결의에 찬 얼굴로 천천 히 자신의 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
고는 도를 역수로 쥐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격식을 갖추자면 여러 가지가 더 필요하겠지만, 이곳에서 그런 격식 을 따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고헤이가 이를 악물고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강진호는 무심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역수로 잡은 도의 끝이 그의 배 에 닿는다. 날카롭게 벼려 관리한 도의 날은 닿는 것만으로 옷을 가르 고 그의 피부를 찔러왔다.
“후욱! 후욱!”
숨이 거칠어진다.
신념과 생존욕이 거칠게 엉겨 붙 는다.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며 무심하 게 말했다.
“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