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16)
마존현세강림기-1217화(1215/2125)
마존현세강림기 49권 (24화)
5장 정리하다 (4)
“아으, 긴장돼 죽을 것 같다.”
최정우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 다.
“야, 적당히 마셔. 경기 중에 오 줌 마려울라.”
“아, 몰라. 지금 당장 목이 타는 데 어떻게 하라고, 그리고 땀을 너
무 흘려서 오줌은 나오지도 않을 거 다.”
“……그럼 나도 한 병 줘봐.”
대기실은 언제나 긴장감이 가득하 다.
여기저기 스텝들이 오가는 터라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선수들 은 언제나 이 순간을 가장 힘들어한 다.
차라리 경기장에 올라가면 좀 덜 하다. 떨리기는 하지만, 뭔가 할 게 있으니까. 손이 움직이고 눈에 보이 는 게 있으면 긴장은 좀 풀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기실에서는 할 게 없다. 그저 조금 뒤에 있을 경기를 이 미지 메이킹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 려야 한다.
“시작 시간 아직 멀었어?”
“한 시간쯤 남은 것 같은데.”
“난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왜 다섯 시 시작하는 경기에 열두 시부 터 사람 불러서 대기시키는 거야? 우리는 할 것도 없잖아.”
“그래서 불만이야?”
“불만이라기보다는……
“어차피 숙소에 있어도 정신없기 는 마찬가지잖아.”
“그건 또 그렇지.”
최정우가 다시 물을 벌컥벌컥 마 셨다.
다리가 달달 떨리고, 진정이 안 된다.
“……보는 내가 다 정신없다. 제 발 좀.”
“아니, 무슨 수로 진정하라고. 아, 나 토할 것 같아.”
“유민이 형 좀 보고 배워라. 얼마 나 담담하시냐.”
“저 형은 결숭이 이번이 열 번째 잖아. 혼자서 결승 가시는 분인데, 여러 명이 같이 가는 결숭이 결승
같기나 하겠냐?”
박유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냐. 나도 긴장돼.”
“거짓말하지 마세요, 형! 그 얼굴 이 무슨 긴장한 얼굴이에요?”
“진짜라니까.”
“에이.”
최정우가 살짝 짜증을 냈다.
하지만 내심 그는 박유민이 여기 에 있는 걸 무척이나 다행이라 여기 고 있었다.
‘유민이 형이라도 없으면 어쩔 뻔 했어.’
박유민이 옆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최정후 는 과호흡으로 실려 갔을 것이다.
살다 살다 사람이 이렇게 긴장할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으니 까.
“어차피 결승이라 봐야 게임하는 건데. 만날 하던 걸 하는데 왜 이렇 게 쫄리냐.”
“그게 좀 다르지.”
박유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형, 긴장 안 하는 법 없어요?”
“긴장 안 하는 법?”
“예!”
“음…… 그런 건 없는 것 같은
데?”
“ 예?”
최정우가 멍한 눈으로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결승에 열 번 간 사람 이 저리 말하면 뭘 어쩌란 말인가.
“난 매번 긴장했거든.”
“아닌 것 같은데요.”
박유민이 피식 웃는다.
“겉으로 표가 안 나서 그런지 모
르겠는데, 나 긴장 엄청 해. 어제는
잠도
제대로 못 잤어.”
•••그래요?”
“ o w 흐.
“그래도 되는 거예요?”
박유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 이상한가?”
“아니, 이상하다기보다는……
“정우야.”
“예, 형.”
박유민이 조금 진지한 얼굴로 입 을 열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데, 일단 내 생각을 말해줄게. 나는 결숭까지 온 사람이 긴장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 긴장하는 게 당연한 거지. 1년 동안 한 노력의 결과가 나오는 거잖아.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할수록 더 긴장할 수밖에 없
지.”
“……그렇죠.”
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다. 올 한 해처럼 최정우가 열심히 살아온 적 은 없다고 자부한다. 잠을 줄이고,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 노력의 대가가 오늘 하루의 경기로 결판이 나는데, 어떻게 긴장 하지 않을 수가 있나.
“긴장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긴장 덜 하는 쪽이 이긴다는 건 거짓말이야. 저쪽도 우리랑 똑같이
긴장해. 진 쪽은 긴장해서 졌다고 변명하지. 그런데 너, 나중에 지난 리그 분석할 때, 패배 요인으로 과 도한 긴장 같은 걸 논하는 거 본 적 있어?”
“••••••없죠.”
“긴장해서 졌다고 생각하지. 그때 는 정신이 없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찬찬히 보면 진 쪽은 진 이유가 있 어. 결국은 실력이야. 그러니까 지금 니가 긴장하는 것 때문에 질 거라 생각하지 마.”
최정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위로가 되는 말 같으면서도 따져
보면 굉장히 냉정한 말이다. 긴장하 든 긴장하지 않든 어차피 실력 있는 쪽이 이기니까 긴장해도 된다는 말 아닌가.
“뭔가 위로가 될 듯 말 듯하네 요.”
박유민이 빙긋 웃었다.
“긴장해. 차라리 긴장하는 게 나 아. 결승 무대를 편안하게 여기는 프로는 결국 추락하더라. 차라리 덜 덜 떠는 게 나아. 그 무게감을 인식 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예, 형. 그럴게요.”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연륜이 다르네.’
아직 어린 박유민에게 연륜이라는 말을 하는 게 이상하지만, 박유민의 나이면 이 업계에서는 노장 축에 든 다. 그것도 경험이 풍부하다 못해 썩어나는 고인물 노장이다.
이 말이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 르겠지만, 박유민이 이 대기실에 같 이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우리끼리 있었으면 지금쯤 난리 도 아니었겠지.’
몇 년을 고생해서 처음으로 올라 온 결승이다.
스탭과 함께 이동하는 감독님의 팔다리가 동시에 나가는 걸 본 최정 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민이 형은 만전인 모양이네요. 아쉽다. 긴장하면 내가 나가려고 했 는데.”
곽현태의 말에 박유민이 정색했 다.
“현태야.”
“예‘?”
“너, 오늘 나갈 수도 있어.”
박유민의 눈은 더없이 진지했다. “결숭이라는 건 언제나 변수가 많
아. 언제 네가 투입될지 모르니까 긴장 풀지 마.”
“……제가 나가면 형이 못 나가잖 아요.”
“내가 나가서 지는 것보다는 내가 못 나가서 이기는 게 백배 낫다. 경 기 잘 보면서 내가 뭘 실수하는지, 네가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분석해.”
“알겠어요, 형.”
농담을 농담으로 넘기지 않는 사 람이다.
그래서 더 든든했다.
박유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 감독님이 자리 지키라고 했 는데.”
“금방 올게.”
“예, 형.”
대기실을 빠져나가는 박유민을 보 며 최정우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
“진짜 유민이 형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냐?”
“그러게 말이야.”
여기까지 온 이상 우승이다.
최정우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 죽겠네.’
그를 믿음직하게 바라보는 아이들 의 기대와는 다르게 박유민은 지금 역대급으로 긴장하는 중이었다.
화장실에 가봐야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 만 자꾸 소변이 마려운 느낌이 든 다. 이게 정말 소변이 마려운 게 아 니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빤히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소변기 앞의 벽에 머리를 대고 차가운 느낌을 이마로 전하던 박유 민이 몸을 세웠다.
“휴우.”
손끝이 살짝살짝 떨린다.
‘너무 긴장했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이건 그가 그동안 치러온 결승들 과는 다르다. 프로 게이머를 한 번 그만두고 다시 시작해 올라온 결승 이다. 이제까지의 결승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부담이 몰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의 실수 하나가 그뿐 아니라 다른 팀원들의 우승까지 물 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
‘죽겠네.’
그동안 결승에 올라올 때마다 긴 장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처 럼 긴장한 날은 없었다.
‘아니, 한 번 있었지.’
첫 결승.
프로 게이머를 시작하고 처음 올 라간 결승에서 박유민은 장비를 놓 고 차에 탈 만큼 긴장했다. 부스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겼지?’
내리 지다가…….
“아!”
강진호의 얼굴이 떠오른다.
박유민이 피식 웃었다.
‘그랬지.’
덜덜 떨던 부스 안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강진호의 얼굴을 발견한 건 천운이었다. 모든 것이 낯선 그 곳에서 익숙한 친구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까.
‘참 빚을 많이 졌네.’
조금은 갚아야 할 텐데 말이다.
손을 씻고 밖으로 나오며 박유민 이 깊게 심호흡을 했다. 긴장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긴장하든 긴장하 지 않든 이겨야 한다.
살짝 떨리는 다리…….
“아, 관계자라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박유민이 고개 를 홱 돌렸다.
‘ 뭐야‘?’
뒤쪽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 다.
“선수 관계자라니까요!”
“ID 카드가 있어야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지금 선수랑 연락이 안 된다니까 요! 아니면 안에 가서 박유민 선수 불러주세요!”
“안 됩니다.”
“저기요.”
“수상한 사람은 들여보낼 수 없습 니다. 아니면 모자와 선글라스부터 벗어주세요.”
“내가 벗으면 감당은 되고? 어?” 박유민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발이 먼저 움직인다.
“자, 잠깐만요!”
이곳에 와서 그를 찾을 여자가 있을 리 없다. 보육원 애들은 대기 실로는 오지 말라고 했으니 아니다. 그렇다면?
복도를 지나 관중석으로 향하는 입구로 뛰어간 박유민의 눈에 익숙 한 실루엣이 보였다.
익숙한 한 남자와 익숙한 늘씬함 이랄까.
“진호야? 최, 최연하 씨?” 선글라스를 낀 최연하가 고개를 돌려 박유민을 보더니 반색했다.
“유민 씨!”
“아••••••
“빨리 와요, 빨리! 이 사람 말이 안 통해!”
박유민이 스텝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 지인입니다.”
“아, 박유민 선수. 네, 들어가시 죠.”
최연하가 선글라스 속에서 스텝을 한 번 째려보았다.
“각박하네. 사람 말을 안 믿어.”
“전화하시지그러셨어요.”
“전화 죽어라고 했는데 한 통도 안 받은 게 누군데요!”
“……아!”
휴대폰이 가방 안에 있지.
박유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올 거라고 생각도 못해서 미리 준비를 못해 드렸네요. 웬일이야, 진호야?”
강진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경기 보러.”
“부산까지?”
“마침 일이 있었어.”
“그래?”
박유민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 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좋다. 이렇게 강진호의 얼 굴을 보니 기분이 확 풀리는 느낌이 다.
“들어가자. 아직 시간 있어.”
“아니, 됐어. 얼굴 봤으니까. 그보 다……
“응?”
강진호가 박유민에게 저벅저벅 걸 어오더니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순간, 얼음장 같은 한기가 느껴졌
다. 박유민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괜찮겠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해라.”
“옹. 물론이지.”
“그래.”
강진호가 돌아가려 하자 박유민이 소리쳤다.
“아, 진호야! 내가 스텝 보낼 테 니까, 앞자리에 앉아. 팀 좌석 있 어.”
“ 괜찮아.”
“내가 그게 편해서 그래.”
“……알았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 나가자, 최연하가 허리를 푹 숙여 인사를 한다.
“유민 씨 파이팅! 꼭 이겨요!”
“네. 걱정 마세요.”
“같이 가요, 진호 씨! 아니, 친구 가 결승전 치르는데 그게 뭐야! 좀 더 응원을 해줘야지! 듣고 있어요? 어?”
소란스레 멀어지는 둘을 보며 박 유민이 웃고 말았다.
‘진짜 못 말리겠네.’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 그를 괴롭히던 긴장 이 깔끔하게 사라진 기분이다. 갑자 기 몸 상태가 최상으로 느껴진다.
“이겨야지.”
진호가 왔으니까.
친구 앞에서 지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박유민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몸 을 돌려 대기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