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26)
마존현세강림기-1227화(1225/2125)
마존현세강림기 50권 (9화)
2장 장악하다 (4)
칼날 같은 긴장이 흘렀다.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냉랭함이 가슴까지 파고든다.
날카롭다.
그리고 선명하다.
이런 긴장감을 느껴본 게 얼마 만이던가.
전장에 흐르는 긴장과는 다르다. 심장을 뛰게 만들고, 피를 빨리 돌 게 만드는, 그 뜨거운 긴장감과는 명백히 이질적이었다.
피가 식는다.
들끓던 전의는 무너지고, 겹겹이 쌓아 올린 자신감은 갈 곳을 모르고 흘러내린다.
살짝 밀려오는 공기의 파동이 손 끝에 생생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강진호는 어느 때보다 더 날 카로운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 였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청마가 정파인들을 이끌고 그의 숨통을 끊으러 왔을 때도 이런 긴장 감은 느껴본 적이 없다.
삶에 집착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흥왕과 맞붙었을 때는 오히려 흥 분에 몸을 떨었다.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 으니까.
하지만 이건 다르다.
생과 사가 오가는 백척간두에서 느끼는 고양감이 아니다. 끝없는 무 저갱으로 떨어지며 느끼는 절망감에 가깝다.
그래.
말하자면 공포.
지금 강진호가 느끼고 있는 감정 은…… 굳이 말하자면 공포에 가까 웠다.
‘내가 공포를 느낀다고?’
어이없는 일이다.
강진호를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강진호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었다.
그가 누구인가.
마의 극에 올랐다는 적천마존이자 총회의 회주이고, 천하에 다시없을
마인이다.
죽음을 지배하고 삶을 짓이기는 자가 아닌가.
그런 강진호에게 공포?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하지만 그 말이 되지 않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살 짝 배어난 식은땀을 닦아냈다.
“더워요?”
“아, 아뇨.”
“근데 왜 땀을 홀려요? 몸이 안 좋아요?”
“괜찮습니다.”
일만의 마교도가 경배하고, 한국 의 무인들이 경애하고, 타국의 무인 들마저 경외하게 만드는 한국 무인 계의 지배자가 슬쩍 고개를 들어 공 포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악마는 세상 다시없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 다. 경탄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걸 보면.
하지만 그 표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이야기해 봐요.”
“ 네?”
“어서.”
“ 네.”
강진호가 다시 한 번 식은땀을 닦았다. 이놈의 땀은 왜 자꾸 이렇 게 배어 나오는지 모르겠다.
“강진호 씨.”
“ 네.”
최연하가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 렸다.
“말하기 힘들면 내가 물어볼게요. 대답해요. 알았어요?”
“••••••네.”
“나한테 숨기는 거 있죠?”
강진호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느 정도는 눈치챘다는 것 도 알고 있었죠?”
강진호의 고개가 다시 한 번 끄 덕여 졌다.
“적당히 기다리고 있으면 알아서 말해줄 줄 알았지. 그런데 계속 숨 기고 말 안 하고 있으면 사람이 어 떨 것 같아요?”
“ 화나겠죠.”
“아뇨. 빡쳐요.”
최연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칼날처럼…… 아니, 차라리 진짜 칼날이 상대하기 더 쉽다. 그건 막 을 수라도 있으니까.
“진짜 빡치는 건 내가 이야기를 못 듣는 게 아니라, 아직 강진호 씨 가 나를 뭔가를 숨겨야 할 사람이라 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무슨 말인 지 알아요?”
“ 네.”
물론 이해한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강진호라도 마 냥 편치는 않았을 테니까.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 하는 것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내가 왜 지금 이야기하는 줄 알 아요?”
“……글쎄요.”
“ 다쳤죠?”
강진호가 눈을 크게 떴다.
“ 그죠?”
“아••••••
부모님도, 강은영도 눈치 채지 못 했다. 그런데 최연하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단 말인가.
“평소랑 다른 티가 나요. 그리고 목에 흉터 생겼어요. 알아요?”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목을 더 듬었다. 그러고는 아차하고 손을 멈 췄다. 이래 버리면 최연하의 말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잖은가.
“어디서 몸뚱아리를 함부로 굴리 고 다녀요? 혼날라고.”
최연하가 뚱한 표정으로 강진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숨겨야 할 일이면 말 안 해 도 괜찮아요.”
“ 아니••••••
“등 떠밀려 말하지 말아요. 나도 엎드려 절 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는 말 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게 있는 법 이잖아요. 관계라는 게 꼭 서로 선 명해져야 좋은 게 아니라는 거 알아
요. 내가 나이가 몇인데.”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대신 여기서 결정해요. 끝까지 말 안 할 건지, 아니면 여기서 말할 건지.”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 다. 가족들에게도 숨길 수 있으면 숨기고 싶지만, 최연하에게는 숨기 기가 쉽지 않다. 이미 최연하는 총 회와 반쯤 엮여 버렸으니까.
이미 이현수에게도 한 번 지적을 받지 않았던가.
“계속 숨길 생각은 아니었습니
다.”
“그래도 양심은 있네요.”
“그런데 이게 좀……
강진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좀 황당한 이야 기라……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가끔 한 번씩 보면 강진호 씨는 좀 상식이 이상한 것 같아요.”
“ 네?”
“강진호 씨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 지 모르죠? 남이 보기에 강진호 씨 는 애초에 황당하지 않은 구석이 하 나도 없는 사람이에요.”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
“외계인이라고 해도 안 놀랄 테니 까, 그냥 이야기해요.”
U 으 M
“무슨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내가 당황할 일은 없으니까. 내가 또 배 우잖아요. 온갖 극본이랑 대본 다 받는 사람이에요. 그중 제일 황당한 이야기보다 더 황당한 걸 들어도 그 러려니 할 테니까.”
“ 으음.”
그래도 강진호가 살짝 망설인다 싶자 최연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강진호 씨.”
“네.”
“저 못 믿어요?”
“실망이네. 그래도 이제 우리 사 이에 그 정도 신뢰는 쌓였다고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라……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강진호는 천상 무인인 모양이다. 차라리 적과 싸우는 쪽이 훨씬 더 편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래요.”
“뭐가 그렇게 어려운데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설 명하기가 힘들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일단 무인계의 개념부터 설명해야 하나?
아니면 무학부터 설명해야 하나?
그게 아니면 강진호의 첫 번째 삶?
아니면 강진호의 두 번째 삶?
이번 삶이 시작한 부분부터?
어렵다.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 고 말았다.
정리하려고 하니 그가 살아온 삶 이 얼마나 평범하지 않았는지 새삼 알 것 같다.
‘정리가 안 되네.’
그럼 그냥 정리하지 않고 다 풀 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 데……
“화장실 미리 다녀왔어요.”
최연하의 얼굴에는 오늘 반드시 듣고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도망갈 곳도 없다.
여기는 최연하의 집이니까.
강진호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
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이야기할 테니까, 중간에 이해가 안 가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그냥 물어보세요. 나중에 정리할 만 큼 짧은 이야기가 아니니까.”
“네. 변죽 그만 울리고 이야기나 하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이 블에 올려진 냉수를 들이켰다.
“시작은 그러니까……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저 시간순으로 나열되는 이야기 에 불과하지만, 살아온 날이 긴 만 큼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
다.
첫 번째 삶.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장애인이 되어 살아가다가 결국은 스스로 목 숨을 끊은 이야기.
그리고 두 번째 삶.
머나먼 과거의 시간대로 말려들어 강진호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아 간 이야기.
그리고 세 번째 삶까지.
그가 본 것. 그가 이해한 것. 그 가 느낀 것.
그리고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까지…….
버벅거리며 시작된 이야기는 담담 하게 흘렀고, 격랑처럼 몰아쳤다.
최연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거 나 때로는 맞장구를 치고, 가끔씩은 눈가를 훔치며 강진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시작된 이야기는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와 검 은 하늘이 세상을 뒤덮을 때까지 이 어지고 또 이어졌다.
최연하는 강진호의 삶을 그저 받 아들였고…….
강진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 시 한 번 정리했다.
‘이상하네.’
강진호가 조금은 겸연쩍다는 표정 을 지었다.
조금은 격해졌던 감정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삶을 돌아보는 건 강진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겪어온 일이 너 무 많고, 받아들여야 했던 불행이 너무 많다.
그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나니, 지금 강진호가 얼마나 많은 행복과 인연을 움켜쥐었는지 실감하게 된 다.
이야기를 끝낸 강진호는 손을 뻗
어 잔을 잡았다. 물잔이 비어 있다 는 걸 확인한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 어나 정수기로 가더니 물을 받아왔 다.
그 모든 행동이 끝날 때까지 최 연하는 말없이 앉아 테이블을 바라 보고 있었다.
뭔가를 정리하는 듯.
강진호는 그런 최연하를 이해했 다.
긴 이야기였으니까.
살짝 긴장된 호홉이 입을 열고 흘러나왔다.
최연하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강
진호는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 다. 강진호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세 번의 삶을 살아온 살인귀.
자신의 삶을 정리한 강진호가 스 스로를 평가하는 문장이다. 이 말이 아니고서야 무슨 말로 강진호를 표 현할 수 있겠는가.
평범한 이들이 강진호의 삶을 받 아들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게 설사 최연하라고 할지라도.
최연하가 강진호를 받아들이지 못 하고 떠날 것을 선언한다 해도 강진 호는 막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행
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고, 강진호의 곁에 최연하의 행복이 없다면, 그녀 가 행복할 곳으로 보내줘야 한다.
“그……
최연하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 다. 강진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렇겠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최연하를 이해했다.
“그러니까……
뭔가 입을 뻥긋하던 최연하가 자 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강 진호를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 다.
“ 뭐야?”
“그러니까!”
최연하의 눈이 날카롭다.
강진호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평소에는 일부러 드러내려 해도 쉽지 않건만, 지금은 실룩이는 얼굴을 진정시키기 가 버겁다.
그렇겠지.
이건 강진호가 타인에게 처음 털 어놓는 자신의 이야기였으니까. 총 회의 사람들에게 전생에 대한 이야 기를 한 적은 있지만, 강진호의 삶 과 감정을 이야기한 적은 없으니까.
“이해하기 힘들면……
“아니!”
최연하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강진호에게 삿대질을 했다.
파들파들 떨리던 최연하의 입술이 열리며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 다.
“뭐야, 이 인간! 완전 늙었잖아!”
그쪽이었나?
어, 음…
“파릇파릇한 연하인 줄 알았더니! 이게 뭐야! 사기꾼!”
뭔가 알 수 없는 죄책감과 기묘 한 서글픔을 함께 느끼는 강진호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