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30)
마존현세강림기-1231화(1229/2125)
마존현세강림기 50권 (13화)
3장 수립하다 (3)
‘왜 나지?’
시미즈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당황이 그를 덮친다.
다른 이들의 시선도 모두 시미즈 에게로 향해 있었다.
‘왜!’
알고 있다.
누군가는 선택해야 한다. 인간이 란 결국 휩쓸리는 존재. 모두가 동 시에 같은 말을 해서 책임을 나눠 지는 건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하나 는 총대를 메고 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왜 하필 그 총대를 시미 즈가 메야 한단 말인가.
평소라면 불만을 토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동조를 구하고 불합 리함을 주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그의 목에 악마의 낫이 걸려 있 다. 다른 대답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설프게 말을 돌리는 순간, 이 낫
은 그의 목을 파고들어 머리와 몸을 분리시켜 놓을 게 분명했다.
눈빛.
악마의 낫과도 같은 장민의 눈빛 이 시미즈의 목을 베어온다.
“고민한다라……
장민이 시미즈를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그 고민, 내가 덜어주지.”
통역의 눈이 다급해진다.
말을 전달하는 그의 목소리가 떨 리고 있었다. 시미즈가 자신도 모르 게 통역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공포의 질려 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지금 통역을 하고 있는 이들은 이전에 온 구미장들이 무슨 꼴을 당 했는지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그러 니 이제 시미즈가 어떤 꼴을 당할지 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급한 눈이 말하고 있다.
죽음.
처참한 죽음.
그 순간, 시미즈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좌중을 한 번에 제압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본보기를 보이는 것
이다. 아무리 불만이 많고 투덜거림 이 일상인 이라 해도 본보기가 눈앞 에 있는 순간만큼은 조용해지기 마 련이니까.
이미 하나의 목숨이 본보기로 사 라졌다.
다음 차례는 시미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시미즈는 절대로 자신의 목숨을 다른 이들의 선택을 돕는 수단으로 활용할 생각이 없었다.
시미즈가 덜덜 떨리는 머리를 억 지로 내리눌렀다.
그의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숙여
졌다.
이게 옳은 선택인지는 그도 모른 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 은 이 선택이 가져올 여파가 아니었 다. 지금 당장 목숨을 구원하는 것 이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입이 절로 열리고 혀가 제멋대로 움직인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자각하기도 전에 말은 이 미 끝나 버렸다.
그리고…….
그 한마디로 둑이 무너졌다.
미묘한 저항감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 이들의 눈에도 체념이 피어난 다. 눈을 감아버린 이들도 있고, 천 정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을 결국 한 곳으로 통일되었다.
바닥.
허리를 낮추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고는 한목소리로 외친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장민이 가만히 모두를 돌아보았 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잊지 마라.”
장민의 입가에 소름 끼치는 미소
가 피어난다.
“너희의 모든 것은 마존의 소유 다. 이제는 그 목숨조차 너희의 것 이 아니다. 그걸 잊는 자들은 내가 알려주겠다. 하나 남기지 않고, 마지 막 남은 것 하나까지 가져가 주겠 다.”
“아키노리.”
“예, 장로님!”
“정리해라.”
“예!”
장민이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 다.
방 안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 다.
타닥, 타다다닥, 타닥.
경쾌한 격타음이 사무실 안을 울 리고 있었다. 조금은 두꺼운 감이 있는 손가락이 여인의 섬섬옥수보다 더 부드럽고 경쾌하게 키보드 위를 뛰어논다.
그리 이상한 광경은 아니다.
타자가 전문가급으로 빠르고, 사 무를 보는 동작이 더없이 능숙하기
는 하지만, 웬만한 회사에서는 어렵 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닌가.
하지만 이 광경을 보는 이들 중 그리 생각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보안이 영 불안한데, 자체 서버 를 활용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도 통신선 자체에 보안을 거는 건 불가 능하니……. 흐음.”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옆의 키 보드로 넘어간다. 블루투스로 휴대 폰에 연결된 키보드가 맑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단은 최대한 빠르게 서버를 구
축하는 수밖에 없겠군.”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이를 보며 아키노리가 어 깨를 부르르 떨었다.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건 자랑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야 흔한 일이 아닌가. 손놀림이 전문가급이라는 것도 대단한 일은 아니다. 컴퓨터의 전문가가 너무 많은 세상이니까.
하지만 그 컴퓨터를 다루고 있는 이가 100살이 넘은 노인이라면 말 이 조금 달라진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아키노리가 장민이 띄워놓은 화면
을 보며 입을 슬쩍 벌렸다.
도무지 알아먹지도 못할 프로그램 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프 로그램의 베이스 언어는 한국어도, 중국어도 아닌 영어다.
‘아니, 이상한 게 아니긴 한 데……
영어로 컴퓨터를 다루는 한국 무 인계 소속 중국인이라니.
대체 뭐라고 정의를 내려야 한단 말인가.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야만적으 로 사람을 압박하던 분이……
이제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모
습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시스템을 잡는 중이다. 종잡을 수 없고, 이해 하기도 힘들다.
“……장로님?”
K 으 »
장민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아키 노리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일을 끊고 싶지 않다는 의 지의 표명으로 계속 자판을 두드린 것이겠지만, 아키노리에게도 할 말 이 있었다.
장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쪽으로 나왔다.
재떨이를 힐끔 본 장민이 입을
열었다.
“담배 피우나?”
“아, 예. 피우십니까?”
“아니.”
그럼 왜 물어봐?
“담배 피우게.”
아키노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 심스레 담배를 꺼냈다.
“한국에서는 윗사람 앞에서 담배 를 피우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들었 습니다. 아닙니까?”
“사실이네. 하지만 나는 중국인이 지.”
“아……. 그렇군요. 그럼.”
“마교에서는 보통 그런 비례를 저
지른 이는 손목을 자르지.”
아키노리가 슬며시 자신의 손을 뒤로 뺐다.
“하지만 괜찮네. 마존께서는 자비 로우셔서 아랫놈들이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네. 그 건방진 놈들의 후두를 후벼 파버 려야 하는데.”
“음? 아아, 신경 쓰지 말고 피우 게. 마존 앞에서만 조심하면 되는
거야. 나는 상관없어.”
“괜찮습니다.”
“ 피우라니까.”
“정말 괜찮습니다.”
“싫으면 말고.”
이겨 피웠으면 분명 모가지 날아 갔다.
아키노리는 그렇게 확신하면서 주 머니에 든 담배를 슬그머니 구겨 버 렸다. 아예 손도 안 가게 망가뜨려 놔야 한다. 그래야 실수를 하지 않 는다.
창가에 선 장민이 밖을 바라본다.
아키노리는 그 광경을 보며 자신
도 모르게 감탄했다.
같은 소속이어서가 아니라 장민의 모습은 확실히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끄는 뭔가가 있었다. 그야말로 영화 의 한 장면 같다.
“그래, 무슨 일인가?”
“구미에서 온 이들이 돌아갔습니 다. 일단은 납득한 모양입니다. 일달 말까지 상납금을 준비하기로 했습니 다.”
“그래?”
“예.”
“잘됐군.”
“하지만 분명 반발하는 자가 나올
겁니다. 이 정도로는…… 아, 물론 장로님께서 일을 미진하게 처리했다 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미진한 게 맞지.”
장민이 아키노리의 말을 끊었다.
“미진한 게 맞아. 그리고 미진해 야 하고.”
“……무슨 말씀이신지?”
“사람이 언제 희망을 잃는지 아는 가?”
“글쎄요.”
“강대한 힘을 마주했을 때? 끝없 는 무저갱에 떨어졌을 때? 눈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아니다.”
장민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절망할 때는 희망이라고 생각한 게 희망이 아니었을 때다. 결정적인 반항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반항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때, 이것만 해내면 해결된다고 믿었던 일이 달라지지 않을 때, 어떤 발버 둥을 쳐도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때…… 그때, 사람은 절망이란 단어를 알게 되지.”
“공포는 사람을 따르게 할 수는 있지만, 일시적일 뿐이야. 제대로 인 간을 지옥으로 몰고 가는 건 무기력
함이지. 나는 저들에게 무기력을 알 려줄 생각이다. 온갖 방법을 다 동 원해 발버둥 치라고 해. 마지막에 느끼는 건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뿐일 테니까.”
아키노리는 장민의 말에 감탄했지 만, 장민은 조금 씁쓸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교가 그랬지.’
무슨 수를 써도 저항할 수 없었 다. 무슨 수를 써도 바꿀 수 없었 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달라지는 게 없다. 그 냉혹한 현실이 마교를 좀먹고 모두에게 무기력함을 학습시
켰다.
이대로 30년만 더 지났으면 마교 는 정말 그 대조차 남기지 못하고 멸문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강진호에게 가지는 충성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의 절대자가 돌아왔다는 것만 으로 어찌 자신보다 어린 이에게 머 리를 조아리고 절대적인 충성을 바 칠 수 있는지 의심하고 의아해한다.
멍청한 소리.
마존, 강진호는 그저 과거의 사람 이 아니다.
그는 멸망해 가던 마교에 빛을
보여주고, 사라질 뻔한 명맥을 다시 이은 분이다.
영혼을 바쳐 경배해도 모자라다. 강진호가 아니었다면 마교의 일만 교도는 스스로가 무인이라는 자부심 조차 느껴보지 못하고 무인계의 쓰 레기로 그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가 그런 업적을 이루어냈어도 발을 핥 고 경배할 텐데, 강진호는 무려 적 천마존 본인이 아닌가.
장민은 되레 다른 이들을 더 이 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마존께 과분한 은혜를 입
으면서도 그 은혜를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이곳은 그리되지 않을 것이다.’ 장민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한 달이다, 한 달이면 충분하다. 한 달 뒤면 이곳에서 인간은 사라진 다. 마존이라는 말만 들어도 배를 까뒤집고 꼬리를 치는 개만이 남을 것이다.”
“아키 노리.”
“예, 장로님!”
“너는 인간인가, 개인가?”
아키노리가 선뜻 대답하지 못했 다.
그 순간, 장민이 피식 웃으며 대 답을 대신해 주었다.
“너는 인간이다. 어째서인 줄 아 는가?”
“모르겠습니다.”
“너는 네 의지로 마존을 따를 것 을 맹세했다. 그러니 인간일 자격이 있지. 그렇지 않은 이들은 감히 인 간을 칭할 자격이 없다.”
“저들의 행동을 감시하라. 그리고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보고하겠습니다.”
“아니. 부추겨라.”
“••••••예?”
장민의 미소가 짙어졌다.
“저항하게 만들고, 발악하게 만들 어라. 솎아내고 또 솎아낼 것이다.”
아키노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 다.
“ 가보도록.”
“예.”
“아, 그리고……
“예!”
장민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곧 신니치카이의 사업체를 인수 할 테스크포스가 넘어올 예정이니, 그들이 일을 진행할 사무실과 숙소 를 마련하도록.”
“진행하겠습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 나오는 아키노리의 발걸음은 그리 경쾌하지 못했다.
‘후세는 나를 어찌 평가할 것인 가.’
알고 있다.
그가 어찌 평가될지.
어차피 그는 이제 돌이킬 수 없 는 곳까지 왔다.
그렇다면?
‘평가 자체를 없애면 된다.’
일본의 무인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 더 이상 그 역사가 전해지지 않는다면, 그의 이름도 더는 전해지 지 않을 것이다.
아키노리의 눈에 선명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철저함이 뭔지 보여주지.’
미묘한 살기를 내뿜으며 멀어져 가는 아키노리의 등. 그 등을 바라 보며 장민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인간을 가장 악독하게 만드는 건 배덕감이지.”
그리고 배덕감에 먹힌 인간은 괴 물이 된다. 저 괴물을 어떻게 사용 하느냐에 따라 이 일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장민이 휘파람을 불며 창밖을 바 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먼 서쪽을 바라본다.
“모든 영광은 마존을 위하여.” 더없는 신심이 묻어나는 목소리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