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6)
마존현세강림기-126화(126/2125)
마존현세강림기 6권 (1화)
1장 — 무력하다 (1)
차마 되물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버리면 그가 생각 하는 말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수 화기 너머로 들리는 낮은 숨소리가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상황은?”
그렇다고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많이 안 좋아.]“그렇구나.”
강진호는 더 묻지 않았다.
그 말 하나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 이러고 있을 시 간은 없다는 것.
“ 알았다.”
[네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 어.]“그래. 전화 잘했어. 조금만 기다려.”
강진호는 전화를 끊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행정병에게 물었다.
“이명찬 병장님.”
“ 왜?”
“제 휴가 좀 당길 수 있겠습니까?”
“ 휴가?”
“예.”
“잠깐만.”
이명찬 병장이 휴가계를 열어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가능은 한데, 이미 결재가 올라
가 있는 거라서 휴가 당기려면 사유가 필요하다. 이유 있어?”
“지인이 아픕니다.”
“그 정도로는 어려워. 직계존속도 아니잖아. 얼마나 급한데?”
“하루라도 뺄리 나가고 싶습니다.”
“사유가 있다고 해도 상부에 올려서 결재 맡고 다시 내리려면 일주일은 필요하다. 일주일 뒤로 해줄까?”
일주일?
그 시간이면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어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다.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래. 이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포대장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는 문제야.”
“……알겠습니다.”
강진호는 밖으로 나왔다.
행정반 앞에서 잠시 고민을 하던 강진호가 홉연 구역으로가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원칙이 중요한 때가 아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굳이 규칙을 어겨가며 일을 벌이고 싶어 하지 않는 강진호지만, 이번만큼은 원칙을 지키다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게 될 것이다.
깊게 한 모금을 빨아들인 강진호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공중전화기 로가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강진호입니다.”
[지역 번호 보고 짐작했습니다. 웬일이십니까?]“휴가를 나가야겠습니다.”
[휴가요?]“이미 따놓은 휴가가 있습니다. 일정을 조금 당겨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는 불가능합니다.
잠깐의 침묵으로 머릿속을 정리한
조규민이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강진호의 목소리가 굳어 있다는 것을 파악한 조규민이 바로 목소리를 낮췄다. 평소 틀을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강진호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급 박하다는 뜻이었다.
[제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회장님의 재가를 받겠 습니다.]“방법은 상관없습니다. 서둘러만 주세요.”
[예.]전화가 끊기자 강진호는 전화 부 스를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으드득.
절로 이가 갈린다.
그만큼이나 애를 썼음에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것이다.
몸을 파고드는 무기력함에 휘청이 던 강진호는 흡연 구역 벤치에 털 썩, 주저앉았다.
몸이 벤치로 파고든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것이 얼마 만 인가.
그저 나른하고 노곤하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상부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기겁을 한 포대장이 강진호를 포대장실로 불러서 상황을 물었다. 새로운 휴가를 달라고 하는게 아니라 일정만 당겨주면 된다는 말에 안심한 포대 장이 쓴소리를 늘어놓았다.
“이런 일은 앞으로 포대장이랑 상의를 해주면 좋겠다. 물론니 입장 에서는 먼 곳의 사단장님보다가까 운 포대장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지 만, 그래도 내가 사단장님 전화를 받으면서 수명이 줄어드는 것 좀 생각해 줄래?”
“죄송합니다. 그 부분까지는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그래. 어쨌든 최대한 빨리 보내 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해줄게. 언제 갈래?”
“지금가겠습니다.”
“알았다. 준비해.”
“예.”
옷을 갈아입고 신고를 빠르게 마 친 강진호가 위병소를 나섰다. 모든 일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했는데도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위병소의 앞에는 익숙한 조규민의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왔느냐 하는 빤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강진호는 차에 오르자마자 출발을 재촉 했다.
“어디로 모십니까?”
조규민의 말에 강진호는 굳은 얼 굴로 대답했다.
“일단 서울로가주세요. 정확한 곳은 제가 전화로 확인할게요.”
조규민의 폰으로 박유민에게 전화를 건 강진호가 곧 목적지를 알려주 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조심스레 묻는 조규민에 말에 강진호는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아직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원장 선생님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말만 들었을 뿐입니다.”
“……원장님이요?”
조규민이 선글라스를 들어 올렸다.
“완쾌되신 것 아니었습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조규민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강진호가 돌아간 이후로 원장 선 생님의 수술과 치료를도맡은 것은 조규민이었다. 담당 과장으로 붙어
앞으로는 통원을 하며 항암 치료에 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확답을 받았는데,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다면 조규민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서두르겠습니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 창밖을 바라 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차에서 뛰어내려 서울로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곳이라면 몰라도 서울에 접어들어서도 뛰어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정해.’
무릎을 꽉 움켜잡은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차가 정문에도착하자 바로 내리 려고 하는 강진호를 조규민이 만류 했다.
“같이가시죠.”
“같이요?”
“제가 가야 과장을 만나는 것도 수월할 것이고, 일처리가 더 빨라 집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 예.”
조규민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 이리 급했지?’
조급하다.
너무도 조급하다.
“그냥 덮인 것일 뿐이었어.”
“예‘?”
“……아닙니다.”
강진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적천마존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무 던해졌다고 느꼈다. 최후의 순간, 그는 자신의 죽음에도 초연한 삶을 살 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적천마존으로 살았을 때는 이것이
반쯤은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가족도 아닌 사람 때문에 이리 초조해질 리가 없었다.
강진호는 바로 박유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지금 나 병원에 있어.]“정문으로 내려와.”
조금 기다리자 초췌한 얼굴의 박 유민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언제부터야?”
“요 며칠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
시는 것 같았어.”
‘바로 병원으로 모셨어야지’라는 말을 하려던 강진호가 주먹을 꽉 쥐 었다.
박유민의 탓이 아니다.
의사가 괜찮아졌다고 항암 치료만 계속 받으면 된다고 말한 상황에서 박유민이 그 모든 것을 미리 짐작하 고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진호가 박유민을 연습실 로 복귀하라고 떠밀지 않았던가.
차라리 강진호가 보육원에서 좀 더 원장님을 섬세히 살필 수 있었다 면 벌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일일지도
몰랐다.
결국 따져 보자면 그 모든 원인
‘내 탓이다.’
결론은 너무도 빤했다.
자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강진호를 탓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강진호의 오만으로부 터 비롯된 일이었다.
조규민이 강진호의 어깨를 잡았다.
“일단 담당 과장부터 만나보시 죠.”
“……예.”
진료실로 향하는 길이 너무도 길 었다.
반드시 들어야 하는 말이지만, 결 코 듣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했다. 사형선고를 받기 위해 굳이 재판장으로 향해야 하는 죄인의 심정으로 강진호는 발을 옮겼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자 난감한 얼굴의 강춘식 과장이 그들을 기다 리고 있었다.
강진호는 건너편에 앉아서 강춘식의 말을 기다렸다.
“……어떤 위로의 말씀부터 드려
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상황만 듣겠습니다.”
강진호의 딱딱한 목소리를 들은 강춘식이 식은땀을 흘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위 절제술을 통해 대부분의 암세 포를 제거한 상황이었고, 주변에 소 량의 암세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의학적 소견상으로는 추가적인 외과 시술 없이 항암 치료만으로 극복이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가만히 강춘 식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급격한 전이
가 일어났습니다. 현재 암세포가 전 신으로 퍼진 상태입니다.”
“..그래서요?”
강진호는 묵묵히 마지막 말을 기 다렸다.
강춘식은 난감한 얼굴로 한숨을 쉬고는 결국 해야 할 말을 내뱉었다.
“안타깝지만,가망이 없습니다.” 강진호는 눈을 감았다.
“의사로서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 어 정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죄가 없다
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괜히 분노가 치민다. 이곳에 더 있었다가는 험한 소리를 하게 될 것 같아 밖으로 나 갈 수밖에 없었다.
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자 조규민과 박유민도 그의 뒤를 따랐다.
병원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박유민이 그 모습을 보더니 얼굴을 감쌌다.
“나 때문이야.”
“아니야.”
“내가 신경을 조금만 더 썼더라 면……
“자학할 때가 아냐. 네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탓을 해야 한다면 나를 탓해야 할일이지.’
그리 손을 놓아버릴 일이 아니었다.
한번 시작했다면 원칙과 규범을 어겨서라도 강하게 밀어붙여서 끝까 지가야 할일이었다.
만약 그가 남아서 마지막까지 원장님의 치료를도왔다면 상황은 달 라지지 않았을까?
타탁.
길게 빨아들인 담배가 새빨간 불 꽃을 피우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망연한 얼굴로 입을 열 었다.
“올라가자. 뵈어야지.”
발걸음이 너무도 무겁다.
“……진호, 왔구나.”
강진호는 아무 말도 못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죽어가는 지인을 보는 것은 처음 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겪어야 했 던 죽음은 급작스러운 사고거나, 아
니면 전투에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 하고 죽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서서히 말라가는 것을 지켜본 경험은 없었다.
초췌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원장님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체 이 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원장님, 진호가 휴가 나왔어요.”
“그래. 얼굴 보니 이리 좋은 것을.”
원장님이 손을 뻗었다.
“이리 오너라. 손 좀 잡아보자꾸 나.”
강진호는 말없이 원장님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
앙상하게 말라 체온이 거의 느껴 지지 않는 차가운 손을 느끼니 눈앞 에 있는 이 사람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급하게 나왔구나?”
“아닙니다.”
“군생활이 힘들텐데, 이 늙은이 때문에 괜히 진호한테 걱정만 끼치는구나.”
“……아닙니다.”
“보러 와줘서 고맙다.”
강진호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느껴진다.
손을 통해 홀려보낸 기운이 그녀의 몸 안에가득 차 있는 독기들에 눌려 밀려 나오고 있었다.
손을 써볼도리가 없다.
그는 신이 아니다.
죽음에 직면해 있는 사람을 세상으로 잡아 끌어낼 능력 같은 건가 지지 못했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강진호를 본 원장 선생님이 박유민을 향 해 말했다.
“잠시만 자리를 비켜주겠니? 진호 와 할 말이 있단다.”
“예. 밖에 있을게요.”
박유민이 비척이며 밖으로 나가자 병실 안에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 진호야.”
원장님이 나직하게 강진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