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66)
마존현세강림기-1268화(1265/2125)
마존현세강림기 51권 (25화)
5장 응징하다 (5)
“안녕하세요, 선배님.”
최연하가 굳은 얼굴을 풀었다.
“응, 안녕.”
화사하게 웃으며 손님을 맞는 최 연하지만, 한은솔은 최연하의 밝은 표정 뒤에 숨어 있는 진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미묘하게 짜증이 났군.’
그럴 만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의 이름은 고아름.
오늘 최연하가 찍은 광고에 더블 캐스팅된 여배우다.
최연하는 질색하는 표현이지만, 대한민국의 많고 많은 포스트 최연 하들 중 그래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 는 배우 중 하나다.
최연하의 평가로는…….
“나도 얼굴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 라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걔는
좀 심하지 않아? 지가 적어도 배우 라고 생각하면 최소한 연기는 해야 할 거 아냐. 초등학생…… 아니, 이 표현은 안 해야겠다. 아역 배우들이 들으면 억울하겠네. 걔보다는 마네 킹이 연기를 더 잘할 것 같더라.”
연기라는 측면에서는 감독도, 시 청자도, 심지어 소속사나 본인도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배우지만, 워낙에 비주얼이 나쁘지 않아서 캐 스팅은 굉장히 활발히 되는 배우다.
그리고 아마 이 CF는 최연하에게 도 화제가 되겠지만, 고아름에게도
방점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게 분명했다. 최연하와 포스트 최연하 가 한 신에 나온다는 것은 상징성이 있는 일이니까.
“선배님, 인사드리러 왔어요.”
“아, 그래? 너, 촬영 시작하는 거 아냐?”
“준비를 좀 더 해야 한다고 하더 라구요.”
“흐응.”
최연하가 고개를 까딱였다.
한 CF에 동반 출연한다고는 하지 만, 둘이 같이 찍는 건 아니다. 콘 티 자체가 서로 살짝 대비대는 구도
를 취하고 있으니까.
“여유 있네? 촬영 전인데 남의 대기실에 찾아올 정신도 있고.”
“에이, 드라마나 영화 촬영이면 몰라도 CF 촬영인데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
한은솔이 살짝 뒤로 물러섰다.
‘나는 이런 거 질색이야.’
웃으면서 하는 대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면도날과 도끼를 전력으로 집어 던지고 있다.
CF는 긴장할 필요가 없다.
별것 아닌 말이지만, 그 안에 숨
어 있는 속내는 ‘내가 드라마나 영 화에서 너랑 맞붙었으면 연기력 때 문에 좀 밀릴지 모르겠지만, 이건 CF라 비주얼로 너한테 밀릴 일은 없다’라는 뜻이다.
너무 과한 해석 아니냐고?
그럴 리가.
‘표정 보소.’
말투는 공손하지만, 고아름의 표 정은 절대 공손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은솔은 이런 경우를 정말 너무 많 이 봤다.
여배우들은 사이가 나쁘다.
TV에 나오는 여배우들끼리는 나
름 친하게 지내더라고?
모르는 소리.
정확하게 말하면…… 여배우들끼 리는 사이가 좋을 수 있지만, ‘미녀 여배우’들은 절대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나름 패밀리를 구성하고 있는 여배우들 집단에서도 미녀는 반드시 단 한 명이다.
– 글쎄요. 저는 제가 예쁜지 잘 몰라서요. 더 예쁘신 선배님과 후배 님들이 많아서.
이건 그냥 개소리에 불과하다.
눈이 있고 뇌가 있는데 자기가 예쁜지 모르겠는가. 저리 너스레를 떨어 대는 여배우치고 성격 좋은 여 배우는 하나도 없다.
기본적으로 어릴 적부터 예쁘기 때문에 주변의 호의를 받고, 주변의 배려를 받아온 여배우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에서 자신보다 더 예쁘거나, 비슷하게 예쁜 배우는 그저 경쟁자이자 자신의 앞길을 가 로막는 돌부리에 불과하다.
미녀 여배우들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 같은 건 업계를 잘 모르는 이
들의 환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런 두 사람이 만나 면…….
‘언제나 이런 식이지.’
다만 한 가지.
한은솔이 눈을 찌푸렸다.
‘주제를 모르네.’
아무리 고아름이 요즘 좀 잘나간 다지만, 아직 최연하와 기 싸움을 벌일 정도는 아니다.
최연하와 비슷한 급에 올랐다면, 고아름은 포스트 최연하가 아니라 ‘고아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테 니까.
가끔씩 있다, 저런 타입들.
인기가 올라가고 찾는 이들이 많 아지면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미리 단정해 버리는 타입들. 그리고 생각 대로 잘 풀린 미래를 이미 이뤄진 것처럼 생각하며 자신의 급을 미래 의 자신과 동일시 해 버리는 스타일 들.
쉽게 말하자면, ‘내가 지금은 너 한테 좀 밀리지만, 어차피 조금 있 으면 내가 너보다 잘 나갈 텐데 미 리 좀 맞먹는다고 뭐가 문제 있어?’ 를 온몸으로 말하고 다니는 타입들 말이다.
“그래, 무슨 일이야?”
“인사드리러 왔다니까요, 선배님.”
“그래, 무슨 일이냐고?”
고아름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 다.
개소리하지 말고 본론이나 말하라 는 뜻이다. 그 의도를 알아듣는 걸 보니, 생각보다 머리가 나쁜 것 같 지는 않다.
“선배님, 이번에 소속사 차리셨다 면서요?”
“언제 적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 어?”
“저는 이번에 들었거든요. 요즘 워낙 바빠서.”
“아, 그래?”
최연하가 피식 옷었다.
“별로 바쁠 것도 없어 보이더만.”
“……네. 선배님에 비하면 그렇겠 죠. 그런데 점점 더 바빠지다 보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네요.”
“적응할 것 없어. 뭐, 얼마나 간 다고.”
고아름이 도끼눈을 떴다.
“어머? 얘 눈 좀 봐. 너, 지금 눈 부라리니?”
“아, 아뇨. 설마요. 화장이 진하게
돼서 그런가 봐요.”
최연하가 직접적으로 칼을 들이밀 자, 고아름이 슬쩍 엉덩이를 뺐다. 아무리 고아름이 건방지다지만 최연 하와 정면으로 날을 세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 소속사 차렸어. 그래서 왜‘?”
“그냥 좀 알아보려구요. 관심도 있고.”
“왜? 이쪽으로 넘어오게?”
“생각해 보고 있어요. 계약도 다 끝나가고, 선배님이 대표로 있는 회 사에 제가 들어간다는 것도 상징적
인 면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쩌지?”
최연하가 다리를 꼬며 방긋 웃는 다.
순간적으로 고아름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앞에서 눈으로 보는 최연하는 지금까지 그녀가 마주하던 여배우들과는 뭔가 달랐다.
미모도 미모지만, 감히 범접 못할 아우라 같은 게 느껴진다.
“우리 아무나 안 받는데.”
“••••••네?”
“말 그대로야. 아무나 안 받아. 특히나 배우는.”
최연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뭐, 모델 에이전시도 아 니고, 그래도 배우 팔아먹고 사는 회산데, 최소한 배우라는 명함 달고 쪽팔린 애들 영입할 수는 없잖아. 나도 내 이름값이 있고, 체면이 있 는데. 안 그래?”
고아름이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해보자는 거지?’
눈에 독기를 품은 고아름이 억지 로 미소를 지었다.
“하기야 그렇겠네요. 소속사가 좀 크면 괜찮은데, 그런 작은 소속사에
서는 대표가 직접 영업 뛰고 장사하 니…… 어렵긴 하겠어요. 듣자하니 선배님 내일 추가 촬영 하신다면서 요?”
“그런데?”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 는 일인데, 감독님 너무하시네요. 그 렇게 사람 무시하는 거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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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솔은 들었다.
최연하의 입가에서 이 가는 소리 가 들려오는 것을.
‘와! 저년, 보통 아니네?’
최연하와 맞먹어보겠다고 달려든
애들은 꽤나 있지만, 최연하가 이를 갈게 만든 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 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고아름 이 해내고 있었다.
뭔가 발작할 기세를 보이던 최연 하가 슬쩍 휴대폰을 봤다. 액정에 뭔가 떠 있는 것을 확인한 최연하가 표정을 풀며 미소를 지었다.
“너, 바쁘니? 이야기할 시간 좀 있어?”
“시간 오래는 못 내드려요.”
“아, 그래? 그럼 나랑 같이 앞에 좀 나갈래? 나 차 타러 가야 하는 데, 더 이야기할 시간이 없거든? 나
랑 같이 걷는 게 부담되면 관두고.”
“괜찮아요, 선배님. 전혀 안 부담 스러워요.”
“그래?”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같이 나가자.”
“네, 선배님. 그런데 차도 따로 타고 다니시나 봐요? 소속사가 좀 어려운 모양이네요.”
“그런 건 아닌데, 사정이 조금 있 네.”
최연하가 핸드백을 움켜잡고 밖으 로 걸어 나갔다.
“은솔이는 회사에 내일 스케줄 이
야기하고 퇴근해.”
“네, 누나.”
“넌 따라 나와.”
“네, 선배님.”
고아름이 빙글빙글 웃으며 최연하 를 따라나섰다.
복도를 걸으며 고아름이 계속 말 을 걸었다.
“대표로 일하시니 힘드시죠?”
“그렇지, 뭐.”
“개인 소속사 차려 나간 언니들 중에 후회하는 사람 많더라구요. 사 실 그게 쉬우면 다 회사 차려서 시 작하지 뭐 하러 소속사 찾겠어요?
그나마 우리 소속사는 힘이 좀 있어 서 편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아까는 이쪽으로 옮겨볼 생각이 라더니?”
“그냥 생각만 하는 거죠, 그냥. 아무래도 언니 소속사니까요.”
“흐응.”
최연하가 코옷음을 쳤다. 선배님도 아니고 언니?
“내가 조언 하나 해줄까?”
“네?”
“너, 발이 땅에서 떠 있다.”
고아름이 슬쩍 고개를 내려 자신
의 발을 봤다.
“이건 내가 진심으로 하는 충곤 데, 이 바닥에 잠깐 떴다가 영영 사 라지는 애들이 일 년에도 열댓 명씩 나와. 내가 지금 좀 잘나간다고 그 게 진짜 내 인기라고 생각하면 피 보는 거야.”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래?”
“아직은요. 그런데 한 몇 년 죽어 라고 노력하면 진짜 제 게 되지 않 겠어요? 그때 언니는 진짜 연기자로 전업하실 테니까, 제가 그거 받아먹 으려구요.”
“당차네.”
아주 당차.
최연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런 애들은 힘으로 누르고 윽박 지른다고 해서 기죽지 않는다.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어차피 마지막에 이기는 건 자신이라 생각하기 때문 이다.
그냥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알아 서 현실을 자각하겠지만, 거기까지 기다리기에는 최연하의 마음이 그리 넓지 못했다.
“그래, 잘해봐. 내가 밀려날 쯤에 네가 그거 받아먹을 수 있었으면 좋
겠다.”
“에이, 말이 그렇죠. 설마 언니가 밀려나시겠어요?”
“그럴 수도 있지. 왜냐면…… 주차장으로 들어선 최연하가 걸음 을 멈췄다.
“나는 앞으로 더 바쁠 거니까.” 부우우우우웅.
커다란 엔진음과 함께 한눈에도 미끈하게 생긴 스포츠카가 다가와 최연하의 앞에 멈춰 섰다.
고아름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스포츠카와 최연하를 번갈아 봤다.
“차 사셨어요?”
“아니. 내 차 아냐.”
“언니, 유치하시다. 언니 돈 많은 거 알아요. 굳이 이런 거……
“내 차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 순간, 운전석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내렸다.
고아름의 눈이 더 커졌다.
“어……
진회색의 슈트를 입고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남자.
그 남자를 본 고아름의 눈이 파 르르 떨렸다.
‘뭐야, 저거? 왜 저렇게 잘생겼
어?’
그래도 고아름은 여배우다. 대한 민국에 잘나간다는 남자 배우들과는 한 번씩 안면이 있다. 하지만 그녀 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 봐도 저 옆 에 세울 만한 남자가 생각 안 난다.
“잠깐만요. 후배랑 이야기 중이 라.”
“예.”
최연하가 살짝 턱을 들고 고아름 을 바라보았다.
“언…… 선배님.”
고아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 다. 목소리가 조금 표독해져 있다.
“대담하시네요. 이렇게 대놓고 데 이트해도 괜찮아요? 스캔들 뜨면 난 리 날 텐데?”
“네가 뭔가 제대로 착각하는 모양 인데, 나는 스캔들 떠도 괜찮아.”
“••••••네?”
“광고 되거든. 이분이 우리 회사 대표님이니까.”
“……대, 대표님요?”
“정확하게 말하면, 회장님. 근데 그건 좀 올드해 보이니까 대표님으 로 하자.”
“언니 회사 아니에요?”
최연하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농담이 심하네.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회사를 차려? 회사는 돈 많 은 사람이 차리는 거지, 나같이 가 난한 사람이 회사 차리면 말아먹기 딱 좋지.”
가난?
최 연하가?
고아름의 눈이 떨렸다.
최연하가 벌어들인 돈은 웬만한 중소기업을 넘어선다. 재산으로 따 지자면 배우들 중 최연하를 능가한 다고 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연 예인 전체로 따져도 특정 가수나 아 이돌을 제외한다면 비빌 사람이 없
을 것이다.
그런데 가난?
그럼 저 남자는 대체 돈이 얼마 나 많다는 건가.
“아름아.”
“……예, 선배님.”
“나 없는 자리, 잘 먹어봐.”
최연하가 오만한 얼굴로 고아름을 내려다봤다.
그 시선에서 진득한 패배감을 느 낀 고아름이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하 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최연하가 차에 오르자, 강진호도
말없이 차에 올랐다.
부우우우우웅!
람보르기니가 남기고 간 배기 가 스가 멍하니 서 있는 고아름을 훑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