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67)
마존현세강림기-1269화(1266/2125)
마존현세강림기 52권 (1화)
1장 협력하다 (1)
“깝치고 있어.”
“네?”
“아뇨, 아무것도.”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아마 지금쯤 고아름은 뱃속이 타 는 듯한 짜증을 느끼고 있을 것이 다. 고아름 같은 타입을 상대하는
방법은 링 안에서 내가 더 강하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다.
나는 애초에 그 링에 오를 급을 넘었다는 걸 인식시켜 줘버리면 된 다.
고아름이 아무리 업계에서 치고 올라와 최연하를 따라잡는다고 해도 최연하는 이미 더 높은 세계에 있어 어울릴 수 없다. 최연하를 목표로 삼은 고아름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허무한 일이 있을까.
‘애초에 그럴 일도 없겠지만.’
싹수라는 게 있다.
그래도 이 바닥에서 십 년을 굴
러먹은 최연하다. 딱 보면 이 사람 이 이 업계에서 성공할지 성공하지 못할지 알 수 있다.
한 해, 두 해 최연하 이상의 화제 성을 얻고, 최연하 이상의 인지도를 얻은 배우는 열 손가락으로도 다 셀 수 없다. 하지만 그들 중 아직까지 그때의 기세를 이어가며 최연하 위 에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렇기에 최연하는 인기에 연연하 지 않는다.
인기라는 건 변덕스러운 대중의 기분에 따라 순식간에 오르고 내린 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 한 것은 루머에 휩쓸리든, 스캔들이 시달리든 변치 않고 선택받을 수 있 는 확고한 무기다.
고아름에게는 그게 없었다.
‘그래도 촬영은 잘 마무리해야 할 텐데, 걱정이네.’
아무래도 최연하와 투 컷으로 나 가는 만큼 그림이 이쁘게 뽑혀주는 게 좋다. 아니, 뭐, 이상하게 나와도 상관없고. 아무려면 어떠랴, 이래도 저래도 최연하는 이득인데.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그래요?”
그 대답에 미묘한 어감을 감지한 강진호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제 는 경험상 나름 최연하 대처법을 확 립한 강진호다.
“여자 친구가 새파란 것들한테 늙 었다고 괄시받고 왔는데, 기분이 좋 아 보여요?”
“……늙지 않았어요.”
“네. 강진호 씨 기준으론 그렇겠 죠. 아주 새파란 영계겠지.”
빌어먹을, 대답을 잘못 선택했어.
괜히 대답 한 번 잘못했다가 뼈 아프게 얻어맞은 강진호가 재빠르게
다음 대답을 물색했다. 하지만 치고 나갈 말이 마땅치 않다.
“그냥 그런 거예요.”
“네?”
“예전에는 저런 애들 보면 미쳤나 싶었거든요.”
“주제도 모르고 깝친다 싶기도 하 고, 지가 깝친다고 나를 밟을 수 있 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나 했는 데…… 이제는 뭐랄까, 그냥 이해가 좀 되기는 해요. 여기도 어차피 파 이가 한정되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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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라는 게 참 이상한 직업인 게,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파이 를 나눠 먹을 수가 없어요. 왜냐면 일 년에 제작되는 드라마나 CF, 그 리고 영화의 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거든요. 사실 내가 인기가 있어서 그런 걸 많이 따낸다는 건, 다른 누 군가에게 돌아갈 기회를 빼앗는 거 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배우가 잘나간다고 해서 그 배우를 위한 편성이 새로 만들어지 지는 않는다. 그 배우가 출연하는 편성이 많아질 뿐이다.
결국은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니 쟤들도 필사적이겠죠. 그 인기를, 그 기회를 자기가 얻어내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머리로는 정확하게 이해 못해도 대 충은 알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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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조언을 해준 겁니까?”
“아뇨. 짓밟았는데요? 자라나는 새싹?”
강진호가 살짝 멍한 눈으로 최연 하를 돌아봤다. 최연하가 무슨 문제
라도 있느냐는 듯 방긋 웃는다.
“보통 자라나는 새싹은…… 밟으 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괜찮아요. 잡초니까.”
그렇지.
잡초도 새싹은 새싹이지.
“한 번 밟힌다고 뭉개질 애도 아 니고, 그래도 알아서 잘 살아남겠죠. 그게 안 되면 거기까지.”
“그럼 잡초가 아닌 애들은 물을 주고, 잡초는 밟는 거군요.”
“아뇨. 잡초가 아닌 애들은 더 열 심히 밟는데요?”
강진호가 부드럽게 웃었다.
아, 그렇지.
이런 여자였지.
잠시 잊었네.
“나도 먹고살아야죠. 내가 뭐 대 단한 사람이라고 치고 올라오는 애 들 키워주겠어요. 결국 걔들이 내 밥그릇 뺏을 것들인데.”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회사의 후배들은……
“걔들은 번 돈 나랑 나눠 먹으니 까 예외죠.”
간명하고 깔끔한 대답이었다.
‘확실히……
배울 점이 있다.
조금 냉정한 것 같은 느낌은 있 지만, 최연하는 무척 현실적이다. 자 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 야 할 것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 다.
어물쩍 그 두 영역을 뭉개고 있 는 강진호보다는 최연하가 훨씬 어 른스러웠다.
“여하튼 잘했어요. 이쁘게 하고 왔네. 오늘 내렸는데 트레이닝복 입 고 있었으면 대충 한 달은 지옥 봤 을 거야.”
강진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오랜만에 데이트하자는 말에 나름 차려입고 나온 게 신의 한 수였던 모양이다.
“뭐, 트레이닝복 입어도 잘생겼지 만.”
최연하가 빙그레 웃으면서 강진호 를 바라본다. 강진호가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헛기침을 했다. 때때로 최연하가 이리 빤히 바라볼 때면 굉 장히 어색해진다.
“할아버지 치고는.”
“크흐흐흐흠!”
이제 안 어색하다.
이제.
“그런데 왜 갑자기?”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랑 데이트 하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하는구나. 그 나이 대는 그런 모양이죠?”
강진호가 조금은 서글퍼진 눈으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괜히 이야기했다. 그냥 끝까지 비 밀로 할걸.
“농담이에요. 삐치지 말고.”
“안 삐쳤습니다.”
“그냥. 요즘 스트레스가 너무 심 해서 얼굴 보고 싶었어요.”
“얼굴 본다고 스트레스가 풀리나 요?”
“음, 그런 말 들어봤어요?”
“네?”
최연하가 살짝 발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은 자신의 주변에서 자기를 가장 기쁘게 해주는 사람에게 가장 호감을 느낀대요. 예를 들면 좋은 말을 해주거나, 선물을 사 주거 나…… 뭐, 그런 거‘?”
“그런가요?”
“그런데 미남이나 미녀는 그냥 같 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생각 이 들기 때문에 주변에 그냥 존재하 는 것만으로 호감도 스텟이 쌓인다 네요.”
이 세상의 평범한 이들이 들었으 면 울부짖을 만한 소리를 태연히 내 뱉는 최연하였다.
“말주변도 없고, 딱히 사람을 기 쁘게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지 만…… 뭐, 그냥 옆에 존재해요. 그 럼 내가 알아서 호감도 채울 테니 까.”
“……감사합니다.”
칭찬인지 욕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뭘 해야 하는지는 알 것 같다.
최연하가 시트에 살짝 기대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요새는 그런 생각도 좀 해요.”
“어떤?”
“예전 소속사 사장님 찾아가서 홍 삼이라도 좀 챙겨 주고 와야 하나.”
“사장님이 나랑 같이 지내는 동안 머리가 많이 빠지셨거든요. 나는 그 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 줄 알았 는데,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까
그 빠진 머리의 반은 내가 잡아 뽑 았구나 싶더라구요.”
이래서 사람은 역지사지를 해야 하는 거구나.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레 깨닫는 강진호였다. 소속사를 직접 돌리기 전의 최연하였다면 결코 이런 말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예전 같았으면 말도 못 걸었을 것들이.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왜 이건 안 되냐……. 전 사장님 머 리가 아니라 그년들 머리채를 뽑아 버려야 하는 건데.”
“하, 하하……
웃음이 안 나온다. 정말 그럴까 봐.
“그래서 성과는 좀 있어요?”
“벌써 성과 내라고 재촉하는 거예 요?”
“절대 아닙니다.”
강진호가 도리질을 하자 최연하가 피식 옷었다.
“생각보다 잘되는 부분도 있고, 생각보다 잘 안 되는 부분도 있고,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처음에 계획한 것보다는 빠르게 뭔가 되고 있다는 정도?”
“좋은 거네요?”
“회사 입장에서는 나이스.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그리 좋지는 않아요. 바쁘고, 머리 아프고, 귀찮은 일도 많고.”
최연하가 슬쩍 강진호를 돌아보았 다.
“그래서 반성도 좀 하고.”
“네?”
강진호가 되묻자 최연하가 빤히 바라보았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쁘고, 머리 아프고, 귀찮은 일 많은 사람 붙들 고 매번 내 불만만 늘어놨구나 싶어 서 반성하게 되더라구요. 내가 지금
이 상황인데 강진호 씨가 징징대면 나도 엄청 귀찮았겠지. 그게 꼭 애 정이랑은 상관없이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알아요. 그냥 내가 자체적으로 반성하는 거예요. 강진호 씨가 조금 만 더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나 때문 에 과부하 걸렸을 수도 있겠다 싶어 서.”
강진호는 대답 없이 살짝 웃었다.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강진호는 평범하지 않고, 최연하도 평범하지 않다. 어쩌면 그 래서 이 관계가 이어질 수 있었을지
도 모른다.
“뭐 해요?”
“네?”
“힘내라고 해줘야지. 그냥 씩 웃 고 있지 말고.”
웃음이 나온다.
한 번씩 최연하의 이런 엉뚱함 때문에 웃게 되는 강진호였다. 총회 의 일로 복잡하던 머리가 풀리는 느 낌이다.
“힘내요.”
“네, 회장님. 제가 열심히 해서 회사에 돈을 벌어다 바치겠습니다.”
“……그런 힘 말고.”
“그럼 어떤 힘?”
최연하가 은근히 물어오자, 강진 호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또 사 람을 골탕 먹일 때의 눈빛이었다.
“힘은 내가 아니라 강진호 씨가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네?”
“아니에요.”
최연하가 손사래를 쳤다.
“여하튼 내가 이번에 여기저기 쫓 아다니면서 하나 느꼈는데요.”
“네.”
“강진호 씨, 골치 아픈 일 있으면 나 불러요.”
강진호가 영문을 몰라 하며 최연 하를 바라보았다.
“내가 해결책은 못 내주겠지만, 마음은 좀 편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번에 내가 겪어보니까 사람이 일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머리를 비우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 더라구요.”
맞는 말이다.
지금도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내가 그럴 때는 놀아줄
게요.”
“바쁘잖아요.”
“회장님이 부르시는데 스케줄 취 소하고 달려가야죠. 파리 목숨 직장 인인데.”
“그럼 그래볼게요.”
“ 어쭈?”
최연하와 강진호가 마주 보고 웃 었다.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이해의 영역도 다르지만, 대화할 수 있고 서로를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거면 됐다.
“아, 그런데 다음 달 중순에는 안
돼요.”
“네?”
“중국 가야 하거든.”
강진호가 미묘한 시선으로 최연하 를 바라보았다.
“중국이요?”
“네. CF 들어왔어요. 그리고 다음 드라마 캐스팅 논의도 해야 하구 요.”
미간이 살짝 좁아진다.
“왜요?”
“아니, 아무것도.”
강진호가 미소를 짓고는 가볍게 액셀을 밟았다.
‘중국이라……
머릿속에 차이커창과 홍왕의 얼굴 이 떠오른다.
‘홍왕.’
지금은 홍왕에 대한 생각을 접어 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 기에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던 상 대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홍왕에 대한 생각은 강진호의 머릿속을 완 전히 장악했다.
‘더 강해졌겠지.’
강진호가 그런 만큼 말이다.
그러니…….
“왁!”
“틱!”
깜짝 놀란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 게 브레이크를 꾹 밟았다. 휘청거린 차가 겨우겨우 균형을 잡고 나아간 다.
“뭐, 무슨!”
“어디 여자 친구 옆에 두고 다른 생각 하고 있어! 버르장머리 없이!”
버르장머리?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안 되겠어요. 가까운 데 차 세워 요. 내가 오늘 나 말고는 아무 생각 도 못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홍왕보다 무서운 여자가 옆에 있 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