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8)
마존현세강림기-128화(128/2125)
마존현세강림기 6권 (3화)
1장 무력하다 (3)
어디서부터 뒤틀렸는지를 알 수 없었다.
강진호는 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무력함이 자신의 몸을 깊은 늪으로 끌고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등에 닿은 침대가 물컹하고 그를
집어삼킨다.
무력감.
무척이나 익숙한 기분이고,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기분이기도 했다.
그의 삶은 언제나 주어진 것과의 싸움이었다.
가족을 그리 잃은 순간부터 운명은 한순간도 그를 향해 웃어준 적이 없었다.
항상 앗아갔고, 또 그를 괴롭혔다.
현세를 살 때에는 그 운명에 저항 하지 못했다. 그저 두드리는 대로
얻어맞고도망쳤을 뿐이다.
중원에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삶에 짓눌릴 수밖에 없던 그가 무공을 익히면서 운명에 저항했다.
누르면 반발했고, 후려쳐 오면 맞 서 싸웠다.
‘하지만 실패했지.’
중원에서의 마지막도 그리 즐거운 기억은 아니었다.
동료라고 믿은 이와 적이라고 생각한 이들이 모두 그를 적대시하는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그들에게 마음을 준 적은 없지만,
적어도 등을 맡길 수는 있다 믿었건 만, 그것 역시 강진호의 착각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이곳으로 돌아오 며 달라졌다.
항상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워오 던 강진호의 삶에 안식이 찾아든 것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적어도 평온했 고, 무언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까지는 말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강진호에게는 이 일이 지금까지의 평화가 끝나고 다시 운
명이라는 놈이 강진호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가기 시작할 것이라는 신호 탄처럼 느껴졌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그는 더 이상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군.’
강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 초에 잠을 많이 자지 않는 그였기에 오늘 같은 날은 잠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잠이라도 잘 수 있다면 머릿속을 헤집는 이 잡념들에게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지만,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마루로 나온 강진호를 본 아버지가 반색을 했다.
“아들, 휴가 나오고는 아부지도 안 찾아보고!”
“죄송합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되 레 강지환이 당황하고 말았다.
“에이, 뭘 또 그렇게 딱딱하게 나 와.”
강진호는가볍게 강지환에게 웃어 주었다.
“일이 좀 있어서 그렇습니다.”
“군대에서?”
“아니요.”
“안에서 뭔 일이 있는 건 아니 지?”
“예. 걱정 마세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저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강지환이 눈살을 찌푸렸다.
“약속 있니?”
“아니요. 좀 답답한 것 같아서 나 갔다 오려구요.”
“으음, 그래. 너무 늦지는 말거 라.”
“예.”
강진호가 다시 고개를 살짝 숙이
고는 현관 밖으로 나갔다.
“흐음.”
강지환도 무거운 목소리로 침음을 흘렸다.
백현정의 말을 듣고는 괜히 걱정을 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강진호의 표정을 보니 백현정이 왜 걱정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평소에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아들이다.
무표정으로 일관할 때가 많아서 그런지, 오늘은 표정이 좋지 않은게 더도드라져 보였다.
“별일이 없어야 할텐데.”
강지환은 강진호가 나간 현관문을 한동안 그렇게 응시했다.
쌔애애애행.
금동이를 타고 거리로 나온 강진호가 무턱대고 페달을 밟았다.
바람이 폐부로 밀려 들어오자 뭔가 좀 시원한 느낌이 들며 속이 뚫 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도로에 나온 사람들은 아 닌 밤중에 홍두깨일 수밖에 없었다.
“저, 저거 뭐야?”
“자전거 아냐?”
“에이, 바이크겠지. 뭔 자전거가
저리 달려?”
“따라가 봐.”
“미쳤어? 저거 따라가다 사고 나.”
“요즘도 폭주족이 있나?”
브레이크를 밟으며 자전거를 꺾자 바퀴가 아스팔트에 밀리며 스키드 마크를 만들어낸다.
타이어가 심하게 닳았지만, 지금의 강진호에게는 그런 것이 눈에 들 어오지 않았다.
“후우.”
한참을 생각 없이 자전거를 밟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곳에도착해
있었다.
“아……”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굴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니 익숙한 길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강진호는 눈 앞에 보이는 보육원 건물을 보며 핸 들을 강하게 쥐었다.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이 시리다.
‘그렇구나.’
지금 힘든 것은 강진호가 아니었다.
갑자기 부모나 다름없는 사람을 잃게 된 보육원 아이들과 박유민이
그보다 몇 배는 더 힘들 것이다.
강진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강하지 않습니다, 원장 수녀님.’
뭘 보고 자신을 강하다고 한 것일까?
조금의 파도조차 감당하지 못해서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고 있는데.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암담해하는 것이 아니라 휘청거리는 이들을 지탱하는 것이었다.
강진호는 금동이를 구석에 세우고
는 현관을 향해 갔다.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았지만, 차 마 문을 열지 못하고 잠시 현관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강진호가 천천 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하군.’
평소 같지 않게 보육원이 조용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기분이 이상하다.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의 소리가 들 리지 않으니, 이곳이 그가 알던 보 육원이 아니라 다른 곳 같다.
한숨을 쉬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간 강진호가 발소리가 나지 않
게 조심히 걸어서 거실로 향했다.
“어? 왔냐?”
“응.”
바닥을 닦고 있던 박유민이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발견했다.
“벨은 괜히 달아둔 줄 아냐? 좀 누르고 와라.”
“알았어.”
핀잔을 먹은 강진호가 슬쩍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 다들?”
“……시간이 몇 시라고 생각하는 거야? 작은 애들은 자고, 큰 애들은 아직 안 왔지. 이제 곧 다들 올 거
야. 잠시만.”
박유민이 벌떡 일어나더니 한쪽 방 안으로 목소리를 키웠다.
“진호 왔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이들이 우 르르 밖으로 나왔다.
“형, 오셨어요?”
“오빠, 왔어?”
말이 어눌한 아이들도 강진호에게 로 다가와서 팔을 잡고 늘어졌다.
“……으응.”
평소와 다름없는 환대에 강진호가 당황했지만,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휴가 나오셨어요?”
“응.”
흐.
“언제 또 나오셨대? 만날 그렇게 휴가 나와도 돼요? 나일론 군인이 네! 나라는 언제 지키고!”
“괜찮아. 오빠는 잘생겼으니까. 못 생긴 애들이 대신 지키면 돼.”
“못생긴 애들 억울하게 그게 뭔 소리야?”
“미안. 내가니 생각을 못했네.”
“야!”
강진호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보육원이 초상집이나 다름 없는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었다.
되레 우울해하고 있던 강진호가 이상해 보일 지경이었다.
“밥 먹었어?”
“어, 응.”
“안 먹었지?”
“……내가 여기 올 때마다 밥을 얻어먹는 기분이다. 그냥 안 먹으면 안 되나?”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왜 밥을 안 먹고 다녀요, 형?”
“우리 오빠, 살 빠진 것 봐.”
“ 어우으.”
농아라서 독순술을 해야 하는 성은이가 화가 난 듯 팔을 퍼덕거렸다.
진심으로 화를 내는 듯한 그 리액 션에 강진호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먹으면 되잖아.”
그리고 그게 실수란 건 얼마 지나 지 않아 밝혀졌다.
“……유민아.”
“ 응?”
“내가 음식을 딱히가리는 타입은 아니지만……”
“응.”
“……왜 또?”
“그야…… 애들 밥 준비해 주시는 분들은 다 퇴근했잖아. 내일 아침에 출근하시니까.”
“아니, 그건 아는데……
강진호는 눈앞에 놓인 음식을 보 며 한숨을 내쉬었다.
“냉장고에 반찬이 좀 있기는 한데, 애들 먹을 밥 해주시는 분들인데 우리가 반찬 동내면 좀 그렇잖 아.”
그것까지도 충분히 이해했다.
좋은 밥을 먹고 싶은 것이 아니다.
“라면 없냐?”
“밥 줬는데 왜 라면을 찾아?”
강진호는 눈앞에 보이는 카레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은 전생에 인도인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강황 강박 증에 걸려 있든가.
“오후에 만들어둔 회심의 작품이다. 저번이랑은 다를 거야. 맛있더 라.”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들자 눈이 마주친 아이들이 냉담한 얼굴로 고
개를 저었다.
‘ 맛없구나.’
카레를 맛이 없게 만드는 것도 굉 장한 능력이었다. 라면보다 실패하 기 더 어려운 음식이 카레가 아니던가. 그런데 대체 박유민은 혀가 어 떻게 되어 있기에 카레를 실패한단 말인가.
‘아니, 실패도 아니지.’
본인은 맛을 자신하는 것으로 보 아 조리 능력이 아니라 혀가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카레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은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군대 짬밥도 별 불만 없이 먹던 강진호조차 이 카레는 힘겨웠다.
“맛있지?”
“박유민.”
“응‘?”
“너, 예전에 애들한테 이거 먹였 잖아.”
“그렇지.”
“그거 아동 학대다.”
“ 으응?”
“고소할 거야.”
“……으응?”
억지로 카레 한 그릇을 비우고 학
교에서 돌아온 고등학생 아이들까지 맞아준 뒤, 강진호는 박유민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보육원에는야간 교 사가 남아 있어서 굳이 박유민이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었다.
“두고가자.”
“왜?”
“한잔할 건데, 자전거는 좀 그렇 지.”
“왜?”
박유민이 강진호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너 모르냐? 술 먹고 자전거 타
도 음주운전이야.”
“ 진짜?”
“이거, 큰일 날 애네.”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장난 인가 했지만, 박유민의 표정을 보니 장난이 아닌 모양이었다.
“ 법적으로?”
“그래. 법적으로도 음주운전이야.”
“……몰랐다.”
면허가 있지만 전혀 알지 못한 일 이었다. 강진호는 아쉽지만 금동이를 내버려 두고 두 다리로 걸어서 번화가로 향했다.
“차 탈까?”
“됐어. 왜 그래?”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박유민 이 강진호가 왜 자전거를 타려 했는 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별걸 다 신경 쓴다.”
박유민은 한쪽 다리가 불편하기에 걸어서 다니면 다른 사람의 눈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진호는 그게 신경 쓰였다.
무슨 기분인지를 아니까.
불구가 되어 다른 이의 시선을 받 아본 경험이 있는 강진호는 나와 다른 이를 보는 그 시선이 얼마나 차 갑고 무서운 것인지를 이해하고 있
었다.
“저기가면 되겠다.”
조용해 보이는 술집으로 들어가 소주를 시키고 나자 할 말이 없어졌다.
정확히는 할 말이 없는게 아니라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를 모른다는게 맞을 것이다.
“나오느라 고생했다. 나오라고 한 전화는 아니었는데.”
이미 전화를 하며 울먹이던 박유 민은 없었다. 그 짧은 시간 만에 박 유민은 평소의 그로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강진호는도무지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 같은 사람이가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온 길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리 담담할 수 있는 걸까.
박유민뿐만이 아니다.
보육원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세상은 아무 변화가 없는데, 강진호만 혼자 날뛰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애들이의외로 덤덤하네.”
그 애들이라는 말 안에는 박유민도 들어 있었다.
어떻게 그리 담담할 수 있는가를
직접 물어볼 수 없기에 돌려 한 말.
박유민이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 았다.
그 시선에 담긴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강진호가의아해할 때, 박유민 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