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9)
마존현세강림기-129화(129/2125)
마존현세강림기 6권 (4화)
1장 무력하다 (4)
“담담한 척하는 것 같지?”
“……조금.”
“둘 다야.”
강진호는 박유민의 말을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둘 다라니.
하나는 그렇다 치고, 다른 하나는
뭐란 말인가.
의문 어린 시선에 대답이 금방 나 왔다.
“담담한 척하는 것도 있고, 실제 로 담담한 것도 있어.”
“담담해?”
“그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강진호가 되물으려는 찰나에 종업 원이 술을 날라 왔다.
술병이 앞에 놓이자 박유민이 뚜 껑을 열고 강진호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잃는 것에 익숙하거든.”
“ 익숙하다?”
“너는 한번씩 잊어버리는 것 같은데……
박유민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쟤들이나 나나 장애인이야. 장애 인은 보통 사람에 비해 무언가를 포 기해야 하는 일이 많지. 나는 다른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 다가도 어느 순간 그 별것 아닌 것 같은 벽에 부딪히게 되지.”
이해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자신도 겪었으니까.
다른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쉽
지 않다. 그 당연한 일이 너무도 아 프게 다가올 때가 있는 것이다.
“누군가 슬퍼하기 시작하면 다 같 이 슬퍼진다는 것도 아는 거야. 그 러니까 입을 꾹 다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거지. 그리고…… 실제 로도 꽤 담담한 것도 사실이야. 잃 어버리는 것,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익숙하니까.”
“그래도……
이건 경우가 좀 다르지 않느냐는 말을 하려던 강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그가 뭘 안
다고 타인의 감정에까지 간섭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슬프지. 슬프고,가슴 아프고, 그 리고……
박유민이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속이 타지.”
소주잔을 들어 입안에 털어 넣은 박유민이 씁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면 버티는 수밖에 없어.”
“그렇지.”
정론이 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슬픔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을 원장님이 바라지 않으실 거야. 그러니까 꿋꿋해야지.”
“그래.”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와 닿지가 않았다.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말처럼 공허한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강진호는 쓰린 속을 달래려 소주를 마 셨다.
‘취하고 싶네.’
오늘처럼 취하고 싶은 적은 오랜 만이다. 하지만 강진호의 육체는 그가 취하도록 허락해 주지 않았다.
“ 진호야.”
“그래.”
“고맙다.”
뭐가 고맙다는 걸까?
“원장님이 많이 고마워하시더라. 그런데 걱정도 하셨어.”
“걱정?”
“네가 괜히 신경 쓰느라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 시더라.”
조금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일이 무엇이 더라?
“……그리고 이 말을 꼭 해달라고 하셨어.”
강진호는 묵묵히 박유민의 말을 기다렸다.
“네 탓이 아니라 하셨어. 다 짊어 지려 하지 말라고.”
강진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사실 내가 너에게의지를 많이 했던 건 사실이 지만, 이건 원래 네가 나설 일이 아니었어.”
“아니다.”
“일단 내가 먼저 말할게.”
박유민이 단호하게 강진호의 말을 끊었다.
“이건 내가 해야 할일이고, 또 우리가 해야 할일이야. 진호 너를 외부인이라고 말하고 있는게 아냐. 적어도 군대에 있는 네가 나와서 이 렇게 애를 쓸 일은 아니었어. 그런데 내가 네게 전화를 했을 때는 반 쯤은 네가 나와줬으면 했다. 그래서 미안하다.”
박유민이 술잔을 꽉 잡았다.
“이런게 너한테 부담이 되고 있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말 미안해.”
“……그런 말 듣고 싶은게 아 냐.”
“그리고!”
박유민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과는 했으니 할 말도 해야지. 강진호.”
“응?”
“세상 끝났어?”
갑자기 들어온 박유민의 말에 강진호가 움찔했다.
“원장님이 돌아가신다고 세상 끝 나는 거 아냐. 할일이 있잖아. 나
는 애들을 돌봐야 하고, 앞으로 애 들을 어떻게 해야 할 건지도 생각해야 돼.”
강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습도 복귀해야 하고, 이제는 내가 돈을 벌어서 애들을 먹여 살려야 돼. 냉정한 말이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야.”
“……네 말이 맞다.”
“그런데 넌 왜 세상 끝난 얼굴을 하고 있냐? 내가 아는 강진호는 그런 얼굴 하는 사람이 아냐.”
박유민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뭔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너답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냐. 네가 항상 같은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도 아냐.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그 렇게 처져 있는 건 나에게도, 원장 님에게도, 그리고 애들에게도 아무 런도움이 안 돼.”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왜 조금 전까지는 이걸 몰 랐을까?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 사과할게. 그러니까, 너도 이제는 걱정 그만하 고 정신 좀 차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눈앞을 바라보니 상기된 얼굴의 박유민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친구구나.’
그저 친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 충 고를 해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호는 말없이 잔을 들어 내밀 었다.
“한 잔 하자.”
“ 오냐.”
잔이 서로 부딪치고 강진호는 입 안으로 술을 털어 넣었다.
“ 아우으.”
“……믿을 수 있는 관계는 얼어죽을.”
강진호는 자꾸 바닥으로 축축 늘 어지는 박유민의 뒷덜미를 잡아들 었다. 술에 취해 완전히 이성을 놓 아버린 박유민이었다.
“술이 이렇게 약했나?”
그러고 보면 술을 마시는 모습도 거의 보지 못했다. 딱히 술을 즐기 지 않는 강진호다 보니 박유민과 술을 먹으러 간 일도 거의 없었다.
“눕지 마!”
바닥에 드러누우려는 박유민을 억
지로 끌어 올려 어깨에 들쳐 메다시 피한 강진호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술도 못 먹는 놈이 무슨 배짱으로 그리 술을 들이부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평소였다면 제 주량 모르고 마시 다가의식까지 놓았다고 화를 냈겠 지만, 오늘만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 진호야……
“ 왜.”
“힘들다.”
“……자식.”
강진호는 박유민을 들쳐 업은 손 에 힘을 주었다.
‘다들 마찬가지야.’
속으로야 다들 힘들고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다들 이를 악물고 걷고 있었다.
‘그럼 나는?’
강진호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는 무얼 하고 있었지?’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 말이 무슨의미인지 알았던 걸까?
모나지 않게, 티 나지 않게.
그저 시간을 버텨내겠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라면 다른 뜻이 될 수 있겠 지만, 강진호에게는 그런의미였다.
‘두려웠으니까.’
튀어나온 못이 어떻게 얻어맞는지 알았으니까.
현세에서 남들보다 못했을 때는 경멸의 시선을 버텨내지 못했다. 그 리고 중원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다른 이들의 시샘을 막아낼 수 없었다.
“도망치고 있었구나.”
강진호가 이를 악물었다.
두 번의 삶을 겪으면서 그는 고슴도치가 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이들을 건드리지 않으 면 나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로가 시를 잔뜩 세우고는 타인들의 접근을 막고, 스스로의 삶을 제어하고 있던 것이다.
강진호의 세상은 특정한 지인들로 만 이루어진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
“ 원장님……
잠에 빠진 박유민이 잠꼬대를 했다.
강진호는 걸음을 재촉하여 보육원
에도착했다. 아직 깨어 있던 아이 들이 놀란 얼굴로 박유민을 받아들 었다.
“그럼.”
박유민을 놓고 돌아 나온 강진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적응하고 있는게 아니었어.’
벽을 쳤을 뿐이다.
다가오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이대로 조용히 살아가면 행복이라는 것의 끄트머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전 생에도, 그 이전의 생에도 행복은 그와 함께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행복은 평범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은 평범함을 쟁취해 낸 것이다. 그 저가만히 웅크려 있는 것으로 평범 해지려 한 강진호는 결코 그 안에서 행복을 얻어낼 수 없었다.
원장님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무력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의가족에게도 같은 일이 닥칠지 모른다.
그때도 그저 무력함에 절망할 것 인가.
강진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
라보았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웠지.’
이 하늘이.
그런데 이 하늘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오면 그는 뭐가 하고 싶었더라?
“……없어도 돼.”
굳이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찾을 테니까.
강진호는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금동이에 올랐다.
* * *
“네?”
아침부터 경비실에서 걸려오는 전 화에 조규민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누구라구요?”
[강진호라는 학생이 비서실로 연 결을 해달랍니다. 예약은 안 했다는데, 만나야 한다는데요.]“가, 강진호씨요? 들여보내 주세 요! 거기서 잡으면 안 됩니다.”
[예, 올려보내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조규민이 멍하니 뇌 까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가 아는 강진호는 결코 행동력
이 강한 타입이 아니었다. 무슨 일 이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한마디를 던진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가만히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침부터 조규민의 사무실로 찾아온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처음인가?’
고등학교 시절에야 조규민에게 공 부를 배웠으니 찾아올 거리가 있었 다지만, 지금은 아닐텐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조규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탕비실
로가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강진호가 직접 찾아온 마당에 자리에 앉아 서 빤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도착할 때 커피라도 내야 그래도 구색을 갖추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직원들이 먹는 커피가 아니라 회장님이 드시는 최고급 커피를 꺼내 원두를 갈았다.
‘요즘 커피 입맛도 까다로워지셔 서.’
원래는 그런 걸가리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강유환이 카페를 한 이후
로는 커피 맛을 미묘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맛이 없다고 타박을 하지는 않지만, 미간을 미묘하게 좁히는 것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그런 걸 제때 체크하는 것도 비서 실에서 사는 사람이 해야 할일이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조규민이 빠르게 다가가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문밖에는 당연히 강진호가 서 있 었다.
“아침 일찍부터 죄송합니다.”
“죄송이라뇨, 천만에요. 어서 들어 오십시오.”
조규민이 한쪽 소파를가리키자 강진호가 그리로가 앉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예.”
조규민은 탕비실로 돌아가 커피를 마저 내리고 양손에 커피 잔을 든 채로 강진호의 건너편에 앉았다.
“여기 커피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까지 이런 적이 없으셨는데.”
“그렇죠.”
강진호의 표정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조규민이 슬쩍 농담을 건넸다.
“재경에 오시는 건 처음이시죠?”
“……낮에 오는 건 확실히 처음이 네요.”
“네? 밤에 오신 적이 있나요?” 강진호는 웃음으로 조규민의 말을 얼버무렸다.
황정후를 감시하느라 왔다고 하면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궁금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강진호가 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