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310)
마존현세강림기-1312화(1309/2125)
마존현세강림기 53권 (18화)
4장 공조하다 (3)
“고생이 많지?”
“내가 그 마음 안다. 힘들 텐데.”
“……아니요. 뭐.”
“조금만 더 힘내. 좋은 날 올 테 니까.”
식은땀이 삐질 배어난다.
‘자리 배치가 뭐가 이렇지?’
그냥 배정해 준 자리에 앉은 게 큰 잘못이었나 싶다. 모르는 사람과 옆 자리에 앉아 가는 건 조금은 불편한 일이지만, 다른 선택권은 없으니까.
하지만 한은솔은 오늘 새로운 사 실을 깨달았다.
모르는 사람과 옆자리에 앉는 것 보다 미묘하게 아는 사람과 같이 앉 아 가는 게 세 배는 더 불편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그 미묘하게 아는 사람 이…….
“윗사람 모신다는 게 다 그렇지.”
왜 이현수냐고.
한은솔은 불편했다. 매우 불편했 다.
‘당신도 저한테는 상사거든요?’
아무리 한은솔이 MK의 실장이 고, 이현수는 MK에 제대로 된 직 책이 없는 야인이나 마찬가지인 처 지라고 해도 현실의 권력 관계는 반 드시 직책이나 권한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이현수가 강진호의 제1비서인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강 진호가 MK의 회장인 이상, 실질적 으로 이현수는 MK의 비서실장이라
고 봐야 한다.
과거, 독재정권 당시 비서실장들 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 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독재자와 가 장 많이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피력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현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한은솔의 입장에서는 이현 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리 한은솔이 본사와는 거리를 조금 두고 있다지만, 지내는 곳이 MK고, 마주치는 사람이 MK의 사 람들이다 보니 강진호나 이현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강진호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알 고 있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은솔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어려워하고, 조금 무서워하는 기색 도 있지만, 확실히 강진호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있었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도 강진호에 대해 함부로 말 하는 것을 조심한다는 기색이 확연 히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현수는….
–
마귀야, 마귀!
–
지나가다 만나면 눈도 마주치
지 말고 꼭 소금 뿌려, 꼭!
–
회장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 인지 아냐? 악마를 비서로 부리신 다.
–
분명히 세상에 엑소시스트들이 있을 텐데, 왜 저 인간은 안 잡아가 나 모르겠다. 아니면 경찰이라도 오 든가.
‘굉장한 평가지.’
살면서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은 최연하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다.
‘이쯤 되면 오히려 강진호 씨를 의심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무슨 포X몬 마스터도 아니고, 암 흑 속성을 모으는 취미라도 있는가?
어떻게 직장에서 가장 많이 붙어 다니는 사람과 여자 친구의 평가가 나란히 최악일 수 있단 말인가.
‘친해지지 말아야겠다.’
강진호든 이현수든 말이다.
하지만 그런 한은솔의 마음을 헤 아려 줄 생각이 전혀 없는지, 이현 수는 자꾸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무시하고 싶다.
엮이고 싶지 않다.
문제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다는
점이었다.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자 꾸 솔깃하게 된다.
“낮도 없지, 밤도 없지, 열심히 일을 해도 알아주지도 않지.”
“……그렇죠.”
“그럼 없어도 잘 지내든가. 조금 만 자리 비우면 뭔 일이라도 난 것 처럼 찾아대지.”
“마, 맞습니다.”
“그거 맞추는 게 사람 할 일이 냐? 어휴, 진짜.”
“제명에 못 죽죠.”
이상하다.
친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자꾸만 맞장구를 치게 된다.
이건 기묘한 동질감이었다.
한은솔이 다른 매니저들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들과는 동질감 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최연하는 일반적인 연예 인들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과는 아무리 대화해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들이 힘들다고 징징대면 한은솔의 입장에 서는 엄살로밖에 느껴지지 않고, 한 은솔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들 무 슨 차원 게이트를 타고 가 드래곤을 잡아온 용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
럼 반웅한다.
그러니 말을 할 수 없을 수밖에.
하지만 이현수는 다르다.
이현수는 어쩌면 한은솔보다 더한 사람을 상대하는 이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 강진호 씨가 더 심 하지.’
그 최연하를 바꾸고 있는 사람이 니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매 니저와 소속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도 답을 내놓지 못한 21세 기 대한민국 연예계의 최대 난제를 별 어려움 없이 해결해 버린 사람이 아닌가.
물론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 만.
한은솔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이현 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현수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저……
“ 응?”
한은솔이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 었다.
“강진호 씨…… 아니, 회장님도 심하십니까?”
“회장님이 심하시냐고?”
“아니, 뭐, 그런 의미는 아닌
데
“한 실장님.”
“ 예?”
“회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시다.”
한은솔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 다.
아니, 이 새끼가 자기만 빠져나가 려고?
“문제는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닐 경우가 있다는 거다.”
“ 예?”
이게 무슨 말인가.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 을 이었다.
“그런 거지. 너, 군대 다녀왔지?”
“예. 병장 만기 전역했습니다.”
“군대에서 제일 지랄 같은 놈이 누군지 알아?”
“……또라이 같은 선임 아닙니 까?”
“아니. 훌륭한 선임이다.”
“ 예?”
이해를 못해 갸웃거리는 한은솔을 보며 이현수가 손을 내저었다.
“군대에 ‘가라’라는 게 왜 생기겠 냐? FM대로 모든 걸 처리하는 건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하기 때문 아니냐. 심지어는 그 미군조차도 가 라를 친다니까? 사람이 FM대로 살
면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1초 도 안 쉬고 뛰어다녀야 하거든. 아 냐‘?”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떨 것 같냐?”
한은솔의 얼굴이 살짝 질렸다.
이현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부대는 지옥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런 인간이 있으면 그놈은 악당 이어야 된다. 성격도 나쁘고, 애들을
막 구박하고 괴롭히는 인간이어야 해.”
“성격이 좋은 게 낫지 않습니까?”
“모르는 소리. 쯔.”
이현수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런 인간이 성격이 좋으면 무슨 사태가 벌어지는 줄 아냐? 성격 나 쁜 놈은 ‘야, 이 병신 같은 놈들아! 너희는 내가 하는 걸 왜 못해? 그 러니 니들이 안 되는 거야. 닥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흐T라고 하겠지.”
“예.”
“하지만 성격이 좋은 사람은!”
이현수가 느끼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니야. 나도 했잖아. 그러니까 너희도 할 수 있어. 내가 특별한 게 아니야. 너희도 노력하면 다 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같이 힘내보자.”
소름이 돋는다.
몸을 부르르 떤 한은솔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상상하기도 싫다.
“……회장님이 그런 분이시라구 요‘?”
“아니. 비슷하기는 한데, 디테일은 좀 달라. 회주님은 쉽게 말하면 선 의로 돌진하는 폭주 기관차 같은 양 반이야. ‘이렇게만 노력하면 이만한
결과를 낼 수 있는데, 왜 지금 노력 하지 않지? 노력만 하면 다 되는데’ 라는 말을 태연하게 하시는 분이 지.”
“……노력충이네요.”
“궁극의 노력충이지. 문제는 그 말에 토를 달고 싶어도 자기가 직접 눈앞에서 해버리니까 할 말이 없다 는 거지.”
알 것 같다.
유능한 상사는 배울 점이 있지만, 너무 유능한 상사는 오히려 해가 되 는 법이다. 따라 할 수가 없으니까. 아무리 노력해 봐야 남는 건 자괴감
뿐이다.
“그런 상사랑 같이 지내는 건 상 상 이상으로 끔찍하다. 인간적으로 괴롭히는 건 없지만, 일로 사람을 괴롭히거든.”
최연하와는 확실히 다른 타입이 다.
최연하는 일적으로 사람을 괴롭히 지 않는다. 오히려 그쪽으로는 좀 무던한 편이다. 일적으로 온갖 트러 블을 만들어내는 다른 톱스타들에 비하면 기이할 정도로 일에는 불만 이 없다.
오죽하면 촬영장에 가 있는 시간
이 한은솔이 가장 마음 편해하는 시 간이겠는가.
‘우열을 가릴 수가 없네.’
세상에 최연하 이상으로 그를 괴 롭힐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현수의 말을 듣고 보 니 강진호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둘 중 하나를 고르기가 힘이 든 다.
성향상 한은솔은 최연하에게 최적 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으으음.”
난형난제다.
“참 신기한 일이네요.”
“ 뭐가?”
“어떻게 그런 사람들끼리 저리 만 난 걸까요?”
“아니지.”
“ 예?”
“그런 사람들이니까 만난 거지.”
묘하게 설득이 되는 말이다. 천생 연분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여하튼 너도 참 고생이 많다. 그 성격 버티려면 보통 일이 아닐 텐 데.”
“괜찮습니다. 이제 익숙합니다. 그
보다 실장님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저는 강진호 회장님이 그런 분인 줄 은 몰랐습니다.”
“아니야. 나보다야 네가 더 고생 이 많지. 내가 겉으로 보는 성격이 그런데, 실제로는 오죽하겠냐? 안 보이는 데서 무슨 일을 겪을지를 생 각하면…… 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 들끼리 서로 이해하며 돕고 살아야 지.”
묘한 동질감을 느낀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순간, 누군
가 이현수의 팔을 꾹 찔렀다.
“ 뭐?”
이현수가 자신의 팔을 찌른 이를 돌아보았다.
“왜?”
“••••••라고.”
“ 응?”
“누가 찾아오신 것 같은데……
“ 응?”
이현수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메두사를 본 사람처럼 뻣 뻣하게 굳어버렸다.
왜…….
여기에 최연하가 있는가.
이현수가 떨리는 눈으로 의자 옆 통로에 서 있는 최연하를 바라보았 다.
살짝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꼬리 와 입가가 미묘하게 경련하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그들의 대화를 중간 부터 들은 모양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더라?’
굉장한 기억력을 자랑하는 이현수 지만, 머리가 새하얗게 탈색된 듯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여, 여긴……
그 순간, 최연하가 한은솔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핸드크림.”
“아, 네!”
한은솔이 번개 같은 손길로 바닥 에 내려놓은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최연하에게 내밀었다.
“건조하네, 꽤. 챙겨 오길 잘했다. 그렇지?”
“네. 그, 그럼요.”
“내 마음도 건조하고.”
한은솔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배어 났다. 최연하를 아는 사람이라면 저
웃음이 절대 웃음이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추, 춥다.’
갑자기 비행기 안의 공기가 차가 워진 기분이다. 그 감각을 느낀 게 그들만은 아닌지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최연하가 빙그레 웃으며 이현수를 본다.
“그쪽 성함이?”
“••••••네?”
“ 이름.”
“……이영희입니다.”
“아, 그러네요. 이영희 씨,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랄게요.”
끝까지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최연하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몸 을 돌렸다. 그러고는 태연한 걸음걸 이로 앞쪽으로 멀어져 갔다.
한참 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현수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나 엿 된 거냐?”
“아니요.”
한은솔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엿 된 거죠.”
이현수와 한은솔이 나란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