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334)
마존현세강림기-1336화(1333/2125)
마존현세강림기 54권 (17화)
4장 수립하다 (2)
“ 반응은?”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딱히 이 견 없이 조율되었습니다.”
“그런가?”
김명찬이 손을 뻗어 담배를 움켜 잡았다. 살짝 구겨진 담뱃갑에서 담 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문 김명찬
이 조금은 나른해 보이는 동작으로 불을 붙였다.
“다행이군.”
담배 연기를 뿜어낸 김명찬이 의 자에 머리를 기대며 천장을 바라보 았다.
그런 김명찬의 모습을 보며 이종 욱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총회 쪽의 요구 사항을 즉각 수 용하기로 결정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명찬이다. 이종욱은 감히 그럴 권 한이 없다. 그가 아닌 국정원장이라 고 해도 이만한 일은 독단으로 결정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삼천억이라니.’
이 일을 해결함으로써 국가가 얻 을 수 있는 이익을 감안한다면, 삼 천억이 아니라 삼조 원을 퍼 주더라 도 성공만 할 수 있다면 이득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막대한 금 액은 이종욱에게마저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
“사안이 중대한 것은 알지만, 너 무 과한 금액은 아닐지……
“괜찮네.”
“하지만……
“이 과장.”
김명찬이 더 말할 것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죄송합니다.”
이종욱이 고개를 숙이자 김명찬이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아니, 아니야. 내가 너무 민감했 구먼. 이해하게. 신경이 날카로울 수 밖에 없지 않나.”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이종욱도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느낌이다. 그러니 김명찬이 느끼는 부담감은 오죽하겠는가.
하루하루 나빠지는 김명찬의 안색
을 지켜보고 있으면, 저러다 쓰러지 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이해 못할 일도 아니지.’
까딱해서 이 일이 실패한다면, 동 아시아는 말 그대로 지옥이 되어버 릴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암살이라는 건 가 장 극단적인 해결 방식이다. 그런 만큼 일이 실패했을 경우, 감당해야 할 부작용도 극심하다. 처음부터 시 도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일단 시도 한 이상 최악의 리바운딩 역시 염두 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김명찬도 피가 마르겠지.
결행일이 다가올수록 잠시 눈을 붙이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이보게, 이군.”
“예, 총리님.”
“과한 돈을 주는 것 같다고 했 나?”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는 합 당한 금액이라는 걸 이해합니다. 하 지만 심정적으로 피 같은 세금
“몇 가지 확실하게 해두지.”
“예.”
“그건 세금이 아니야.”
“ 예?”
김명찬이 피식 웃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을 우습게 보지 말게. 대통령이고 총리 고, 세금에서 수천억을 빼돌려 쓸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가‘?”
“자네도 군사정권의 잔재를 벗어 나지 못했군. 그건 꿈같은 이야기지. 지금은 십 원짜리 하나 쓰는 데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세상이네.”
“그럼 그 돈은……
“세금이 아니라는 것만 말해두 지.”
이종욱은 더는 묻지 않았다. 짐작가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리기광이 집권하면 피를 보는 건 국가만이 아니니까.’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이들은 오히려 기업 쪽이다. 리기광이 쿠데 타로 정권을 잡는 순간 주가는 폭락 할 것이고, 투자자들은 일제히 손을 떼고 떠나 버릴 테니까.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면 몇 천억 정도야 얼마든지 쓸 이들이 많 다.
“그리고 둘째.”
김명찬이 차가운 눈으로 이종욱을
바라보았다.
“돈은 더없이 중요하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돈이라는 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잇조각이 되 기도 하지. 특히나 국가라는 걸 운 영하고 있으면 말이야.”
김명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이 종욱이 눈을 찌푸렸다.
돈이 의미가 없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간단하게 설명해 주지. 현재의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 해 있네. 그중에는 막대한 돈을 퍼
부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문 제들도 있지. 하지만 돈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네. 예 를 들면 지역 갈등이나 세대 갈등, 혹은 북한 같은 문제들 말일세.”
김명찬이 천천히 담배를 빨았다. 그 모습에서 이종욱은 김명찬이 느 끼고 있는 중압감이 얼마나 거대한 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라면 돈 따위는 얼마든지 퍼부을 수 있네. 자네가 이해해야 하는 건…… 돈이라는 건 사회가 유지될 때나 가 치가 있다는 거야.”
김명찬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새 담배를 꺼내 다시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불을 붙인다.
“사회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돈 따 위는 휴지만도 못하지. 휴지로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이득 아닌가.”
불타는 지폐를 성냥삼아 담배에 불을 붙인 김명찬이 쓴웃음을 머금 으며 재떨이에 반쯤 타버린 지폐를 던져 넣었다.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겠지.
아직 이종욱은 그만한 위치에 오
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총리님께서 쉽게 결정한 게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겠습니 다. 저는 그저 총리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줄을 잘못 탔어.”
김명찬이 피식 웃는다.
“총리라는 자리는 총알받이일 뿐 이야. 나 같은 놈은 언제든 잘려 나 가는 법이지. 자네는 따라야 할 사 람을 다시 찾아보는 게 좋을 걸세.”
“하지만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 아 니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어쩌면 그게 현대
를 살아가는 공직자들의 딜레마 아 니겠나.”
김명찬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장도 갈려 나간다. 그런데 누구를 믿고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한 가지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수년에서 십수년도 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면 오랜 시 간과 인력, 자본을 투자한 일들이 순식간에 백지화되고, 관련자들은 모가지가 잘려 나간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위치에 있다 보면, 때 때로 이런 시스템들이 국가의 발전 을 저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회 의가 들 수밖에 없다.
당장 그가 추진하고 있는 일들도 민심이 나빠지거나 지지율이 떨어지 기 시작해 총리가 교체되면 당장 백 지화되고 말 테니까.
그러니 그전에…….
이 파리 같은 목숨이 사라지기 전에 결과를 내야 한다. 그게 무리 수를 동반하는 일이라도 말이다.
“상황은?”
“이쪽에서 조사한 자료는 모두 넘
겼습니다. 이제 남은 건 그들이 얼 마나 해주느냐입니다.”
“손을 떠났다는 건가?”
“그렇게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 다.”
“그런가.”
김명찬이 재떨이에 재를 떨었다.
지폐의 잔해와 재로 엉망이 되어 버린 재떨이를 보고 있으니 헛웃음 이 나온다.
‘지금의 내 꼴 같군.’
처음 이 자리를 맡을 때의 열정 은 현실이라는 불꽃에 다 타버리고, 검게 변해 버린 재만 남았다. 지금
의 김명찬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열 정이 아니라 식어버린 재에 남아 있 는 미약한 온기에 불과하다.
“정보가 어디서 새어 나갔는지 확 인하게.”
“이미 확인 중에 있습니다.”
정보가 샌다는 건 굉장히 큰 문 제였다. 하지만 김명찬은 굳이 이종 욱이나 국정원을 탓하고 싶은 생각 이 없었다.
이건 창과 방패의 대결이다.
창이 강하면 방패는 뚫릴 수밖에 없다. 막아내기 위해서는 방패를 강 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패를 강
화하기 위해 필요한 건?
‘돈이지.’
조금 전에 금전무용론을 설파해 놓고 다시 이런 결론으로 돌아온다 는 게 조금 서글펐지만, 현실은 현 실이다.
중국이나 미국은 타국을 감시하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투자한다. 어쩌 면 중국에서 한국을 감시하기 위해 서 투자하는 돈이 국정원 1년 예산 의 몇 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적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라고 닦달하는 건, 능력 없는 이의 발악에 불과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 다.
“이종욱 과장.”
“예, 총리님.”
“상황을 다시 파악하고, 혹시 모 를 실수가 없었는지 점검하게. 이번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시켜 야 하네.”
“예.”
“그리고 플랜 B는……
김명찬이 미간을 좁혔다.
플랜 B.
만에 하나 강진호가 거사에 실패 했을 경우를 대비한 두 번째 계획.
“폐기한다.”
“……총리님.”
“무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부 담이 너무 커. 이건 전쟁을 하자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설사 전쟁까지 는 가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그 대가로 모든 것을 내주어야 할 걸 세. 명분, 실리, 그리고 명예마저도 말이야.”
이종욱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명찬의 말이 맞다.
‘그렇다면 강진호 회주의 손에 모 든 것이 걸려 있다는 뜻이 되는군.’
이전까지도 별다를 게 없었지만,
이제는 확고해졌다.
“ 흐} 면••••••
“실행의 그 시간까지 검토하고 또 검토해. 다른 부서의 일들을 모두 멈춰도 상관없네. 필요한 인원이 있 으면 모두 끌어 쓰고, 필요한 자금 이 있다면 승인은 나중에 받아도 상 관없네.”
굉장한 권한이었다.
일개 과장에게 주어지기에는 너무 도 큰 권한.
“……총리님.”
“여기에 사활을 걸게. 이 일이 실 패한다면 어차피 자네나 나나 옷 벗
고 물러나는 길밖에 남지 않을 테니 까. 그걸로 끝난다면 차라리 다행이 지.”
“명심하겠습니다.”
“나가보게.”
이종욱이 잠시 머뭇거리자 김명찬 이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할 말이 더 있는가?”
“……아닙니다, 총리님.”
“그럼 나가보게.”
“예, 총리님.”
이종욱이 깊이 고개를 숙여 보이 고는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서도 이종욱
은 미묘한 시선으로 김명찬을 한 번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방에 홀로 남은 김명찬이 멍한 시선으로 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빌어먹을.’
적당히 권력이나 탐하고, 적당히 돈이나 벌어먹고.
무난무난한 총리였다는 평가를 받 고 퇴장하는 쪽이 좋았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주지 않았다.
난세의 간웅은 치세의 능신이 되 기도 하지만, 치세에는 간신이 되어
야 할 이도 난세가 다가오면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력을 탐하는 것도 탐할 만한 권력이라는 게 남아 있어야 가능한 법이니까.
대한민국 자체가 위기에 처하면,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간신과 영웅의 차이는 한 끗일 뿐이다. 영활하게 돌아가는 머 리를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는 가, 아니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가의 차이다.
지금처럼.
“삼천억이라……
김명찬이 피식 웃었다.
주지.
얼마든지 주지.
“그걸 받아갈 수 있다면 말이야.”
김명찬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지만, 아 직은 쉴 수 없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으니까.
일단은 이 모든 일을 보고하는 것부터.
‘모든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이제는 저의 손을 떠났습니다. 그가 잘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살면서 이런 병신 같은 보고를 해본 적이 또 있던가.
그분은 아마 그를 위로할 것이다. 하지만 그 위로가 김명찬의 무력감 을 덜어줄 수는 없다.
‘힘이 필요하다.’
대국들 사이에서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이.
국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에 흔들리지 않을 힘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다른 존재 들에게 위협당하지 않을 힘이.
김명찬의 노안에 새파란 안광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