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351)
마존현세강림기-1353화(1350/2125)
마존현세강림기 55권 (9화)
2장 격노하다 (4)
쪼르르륵.
휴대용 가스버너로 끓인 물이 종 이컵에 따라진다.
장필재가 커피믹스 봉투로 휘휘 저은 커피를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드시죠.”
강진호가 말없이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그러자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모르는 모양인데, 회주님은 고급 커피……
후루룩.
강진호가 커피를 두어 모금 머금 더니, 온천에 들어간 얼굴로 늘어졌 다.
“아…… 이거지.”
여기가 공사판이었던가?
장필재가 씨익 웃는다.
“요즘은 이게 고향의 맛이죠.”
강진호가 동감한다는 듯 연신 고 개를 끄덕였다. 유일하게 이 공감대 에 참여하지 못한 이현수만이 뚱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커피가 다 똑같지.”
“ 달라.”
“다릅니다.”
니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이현수가 노란 커피믹스 봉투를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고향의 맛이라니.’
아니, 뭔가 공감이 가는 것도 같
고……. 내가 지금 동조하고 있는 건가, 이거?
고개를 뒤흔든 이현수가 날카로운 얼굴로 장필재를 바라봤다. 그러자 장필재가 커피 한 잔을 타 이현수에 게 내밀었다.
“안 먹습니다.”
“예? 왜요?”
“독이라도 들었을까 봐요.”
“저분은 드시는데.”
저 양반은 청산가리를 통으로 삼 켜도 멀쩡한 사람이야! 연약(?)한 나 같은 사람과는 인종이 다르다고, 인종이!
강진호가 턱짓을 했다.
“먹어도 돼.”
“아, 독 같은 건 없습니까?”
“아니. 독이 있으면 내가 복수해 주면 되잖아.”
이미 날아간 내 목숨은 어떻게 하구요?
이 양반, 큰일 날 사람이네.
장필재가 코 주변을 쓰윽 훑었다.
“굳이 여기까지 모셔와서 독을 탈 이유가 없죠.”
장필재가 주변으로 시선을 훑었 다.
“여기는 제게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니까요.”
“최후의 보루라기에는 좀……
이현수가 쓴옷음을 지었다.
지금 그들이 앉은 곳은 베이징에 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 다. 좋게 말하면 시외에 있는 작은 마을, 나쁘게 말하면…….
‘빈민가지.’
이현수가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은 천장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베이징에서 불과 30분도 안 떨 어진 것 같은데.”
“원래는 그 사이에도 이런 곳이
많았습니다. 저번에 올림픽인가 뭔 가 한다고 싹 밀어버려서 그렇지. 원래 부자들이 사는 동네일수록 빈 민가는 비참한 법이지요.”
공감이 가는 말이다.
처음 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는 시간대가 한 50년 당겨진 느낌이었 다. 영화에서나 보던 낡은 목조 건 물이 다 썩어 쓰러질 듯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문제는 그 당장 철거해야 할 건 물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 다는 것이다. 난간에 널려 있는 빨 래들과 바쁘게 오가는 이들이 이현
수의 시선을 잡아끈다.
“스파이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 에 살아도 됩니까?”
“모르는 말씀. 원래 사람은 사람 사이에 숨어야 티가 안 나는 법입니 다. 비밀 공간 만들어놓고 은신하는 건 영화에나 나오는 거죠. 막말로 여기가 외국인데 무슨 수로 비밀 공 간을 만듭니까? 중국 놈들 눈이 다 옹이구멍도 아니고.”
하기야 그 말도 맞지.
장필재가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낡아 헤어진 옷을 입고, 땟국물이 가득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는 장필
재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현지 정보원이라는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잘 속였다 수준이 아니라 내추럴 본 중국인이다. 당장 주위에 사는 이들도 절대 장필재를 외지인 이라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 봐도 동포 아닌가.
“그런데 원래 여기 사는 겁니까?”
“정처 없죠. 오늘은 여기 갔다가 내일은 저기 갔다가. 여기저기 출장 다니며 일하는 사람이라 주변에 말 해놓으면 한 달에 한 번 들어와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어요. 가끔 기어
들어와 뭘 훔쳐 가서 그렇지.”
“그럼 여긴 안전한 겁니까?”
“지금까지야 그랬지만…… 세상에 영원히 안전한 장소가 어딨겠습니 까? 오늘까진 안전하던 곳도 내일이 되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후루룩.
장필재가 커피를 마시고는 피식 옷었다.
“뭐, 별 상관은 없을 겁니다. 이 제 여기는 못 쓰는 곳이니까.”
“예?”
“아마 지금쯤이면 눈에 불을 켜고
저를 찾고 있을 겁니다. 저도 이제 는 돌아가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는 거죠.”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들이 장필재를 찾을 이유가 뭔 가.
“좀 자세히 설명해 보세요. 같은 배를 탄 것 같은데, 우리도 이제는 알아야죠.”
“같은 배라……
장필재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배를 탔다는 말을 인정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말에 담긴 어 감이 장필재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이런 말이 나올 때는 보통 몰릴 때 까지 몰린 상황이니까.
“그 접선 장소 말입니다.”
“예.”
“그거 가짭니다.”
“••••••예?”
이현수가 이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이 장필재를 바라보았다.
“위로 보고된 접선 장소는 다른 곳이라구요. 저를 뺀 다른 놈들은 이미 거기로 다 갔습니다.”
장필재가 주머니에 든 휴대폰을 들었다. 휴대폰이 꺼져 있다.
“아마 지금쯤 저를 죽어라 찾고
있겠죠.”
이현수가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장 필재를 바라보았다.
“아니, 왜?”
“전들 압니까?”
콧김을 킁, 뿜은 장필재가 살짝 이를 갈았다.
“그거 받기 전까지는 저도 몰랐습 니다. 아니, 그걸 건네주기 전에도 몰랐죠.”
“그거라면?”
“드렸잖습니까, 스마트패드.”
“아••••••
“그거 물리적으로 박살 내라는 지 시를 받으셨죠?”
“받았죠.”
“중국에 넘어갈 게 우려돼서 그런 게 아니라, 이쪽에 회수될까 봐 그 런 겁니다. 그거, 특정 시점 기준으 로 파일 다 바뀌게 프로그래밍된 겁 니다.”
“확인할 때는 다른 곳으로 나와 있었죠. 제가 넘겨 드릴 때쯤에 바 뀐 장소가 표시된 겁니다. 무슨 소 린지 아시겠습니까?”
“이종욱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리 수작을 부려 놨다?”
“아뇨. 제가 엿 됐다는 거죠.”
이현수의 볼이 살짝 떨렸다.
“씨발, 말이라도 일찍 해줬으면 마음의 각오라도 하지. 상부 다 속 여 먹은 파일을 직접 전달하게 해놓 고, 이제 돌이킬 수 없다고 연락해 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지가 상사 면 상사지, 나이도 어린 게……
뭔가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말라 고 끊어버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홀
러나오는 말이 너무 서글프다.
“이제 와 나는 잘못 없다고 연락 해 봐야, 어차피 여기서 정보원 해 먹기는 글렀고,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은퇴해야 하는데…… 그럼 이 얼굴이랑 내 젊 음은 누가 보상해 줍니까. 썩을.”
“……인생 다 그런 거죠.”
장필재가 눈가를 흠쳤다.
말년이라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했 는데, 이건 쓰러진 나무에 끼인 정 도가 아니라 갑자기 바닥이 터져서 절벽으로 날려진 꼴이다. 손가락 하 나로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리긴 했
지만, 이 손가락에도 언제 힘이 빠 질지 모른다.
“한 배를 탔다고 하셨죠?”
“……그렇죠.”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장필재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어 렸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러분을 어떻게든 한국 까지 데리고 가는 것뿐입니다. 그럼 이 과장이 실권을 잡을 수도 있고, 설사 그렇게 안 되더라도 여러분이 저를 먹여 살려주시겠죠.”
장필재가 엄지와 검지로 동전 모
양을 만들었다.
“부탁합니다.”
장필재를 보고 있으면 해외 정보 원에 대한 이미지가 모조리 깨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니, 이런 사람이니까 해외에서 정보원 짓을 할 수 있는 거겠지.’
체면이고 나발이고 신경 쓰지 않 는 현실감각과 아슬아슬한 줄타기. 입 다물고 무게만 잡는 것보다 생존 률이 극도로 높을 건 당연한 일이 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쪽으 로 줄을 못 대면 회주님 비서라도 시켜 드리죠.”
“나?”
강진호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 키며 되물었다. 강진호도 조금 억울 한 얼굴이었다.
“……여하튼 총회에서 일하게 해 드리면 되는 거죠.”
“연봉 많이.”
“거참.”
이현수가 웃고 말았다.
이런 뻔뻔함은 배워야 한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중국에 들
어와 있는 정보원들 중 당신만 이종 욱씨의 명령을 듣고 따로 행동하고 있다?”
“그렇습죠.”
“그리고 아마도 지금 다른 정보원 들은 그 사실을 알고 당신을 죽어라 고 찾고 있을 것이다?”
“정확하네요.”
“그럼 그 접선 장소에 우리가 갔 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장필재가 낮게 콧김을 뿜었다.
“그건 저야 모르죠. 다만, 한 가 지 확실한 건……
“예.”
“제가 연락을 끊기 직전까지 저쪽 이 움직이는 정황이 계속 포착되고 있었습니다.”
“저쪽이라고 하면?”
“ 인민해방군.”
장필재가 어깰 으쓱했다.
“익숙한 말로는 중공군?”
이현수가 이를 갈아붙였다.
“그러니까 우리를 잡으려고 중공 군에게 정보를 넘겼다? 그리고 심지 어 연대까지 한다?”
“그렇죠.”
“이 개새끼들이……
장필재가 이를 가는 이현수를 이 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왜 화를 내십니까?”
“당연히 화가 나죠. 할 짓이 없어 서 중국 놈들이랑.”
“중국 놈들이랑 협조를 하고 산 게 몇 십 년은 됐을 겁니다.”
“••••••예?”
“앞에서는 으르렁대도 뒤로는 쿵 짝하고, 뒤로는 욕하면서도 앞으로 는 웃으며 악수하고. 그게 정치고, 외교고, 국가 간의 관계 아닙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죠.”
장필재의 말이 맞다. 이현수도 타 인에게 벌어진 일이었다면 자연스레 받아들였을 것이다.
“원래 남이 맞으면 웃으면서 봐도 내가 맞으면 아픈 겁니다. 사람은 피해자가 되어보기 전에는 실감할 줄 모르는 법이죠. 직접 자기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기 전에는 말입 니다.”
이현수가 심호흡을 했다.
“몇 번 맞아본 듯이 말하네요.”
“수도 없이 맞았죠.”
장필재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 었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서 일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만큼 국가의 더 러운 면을 많이 보고 국가를 증오하 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제 목숨 같 은 건 그들의 입장에서는 장기판 위 의 말보다 못한 겁니다. 장기판 위 의 말은 쓸모가 없어지면 치워지지 만, 우리는 치워지고 나서가 시작이 거든요.”
장필재가 섬뜩한 눈빛을 흘린다.
“자기 목숨을 챙겨주는 곳은 세상 어디도 없습니다. 이 꼴이 되었으면 제 손으로 지켜야 하는 법입죠.”
이현수가 가만히 장필재를 바라보
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스꽝스러운 외모와는 다르게, 이 사람도 사선에서 살아가는 이다.
그리고 이제는 동료가 되어야 할 이다.
“제 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했나?” 그때,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렇죠.”
“그 말, 기억해 둬.”
그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 다.
“••••••예?”
“좋은 은신처는 아니었던 모양이 군. 아니면 저쪽에서도 그쪽이 배신
할 걸 염두에 두고 있었던가.”
장필재의 눈이 흔들렸다.
강진호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깨 달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장필재가 재빨리 상황을 정리한 다.
“건물 뒤쪽에 지프가 있습니다. 겉은 허름하지만, 속은 튜닝을 해둬 서 잘나갑니다. 일단 그쪽으로만 가 면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좋겠지.”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이쪽인가?”
“예. 문으로 나가 반대쪽으로……
“엎드려!”
이현수가 장필재에게 달려들어 그 를 안고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투투투투투투투!
영화에서 나왔으면 신명났을 만한 총소리가 고막을 쉴 새 없이 때린 다.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적루를 뽑아내고는 장필재가 가리킨 쪽을 겨누었다.
“이현수.”
“예! 회주님!”
“간다.”
“예!”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벽을 통째로 날려 버린 강진호가 건물 밖으로 몸을 날렸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하늘로 두 쌍 의 검은 날개를 펼친 악마가 날아올 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