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402)
마존현세강림기-1404화(1401/2125)
마존현세강림기 57권 (11화)
3장 종결하다 (1)
이종욱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 분이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네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 는 일이잖은가.]“제가 아니면 못하는 게 아니라, 저도 못하는 일이라니까요. 막말로
제가 그쪽이랑 무슨 그리 큰 인연이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자네가 해줘야 하네.]
이종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건 뭐, 앵무새도 아니고……
세상에는 우겨서 되는 일이 있고, 우긴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이 일은 명백히 후자임이 분명하지 만, 저쪽에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애초에 이런 일이 저한테 떨어지 는 게 이상한 겁니다. 저는 일개 부 장 아닙니까?”
[국장이 파면됐는데, 부장이 뭔
상관인가?]
“부국장님들은 노신답니까? 그리 고 저는 해외 담당이지, 국내 담당 이 아닙니다.”
[지금 국내, 해외 따질 때가 아니 잖은가. 자네, 내가 지금 왜 자네에 게 매달리는지 몰라서 그러는 건가?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하지만 채 널이 없잖은가, 채널이! 내가 직접 가서 해결될 것 같으면 나도 새파란 후배 붙들고 사정 안 하네!]“하……
머리가 아파온다.
“저 지금 운전 중입니다.”
[너 혼자 쌍팔년대 살아? 아니면 차가 연식이 20년쯤 됐나? 운전한 다고 전화 못하는 게 말이나 돼?]“그게 아니라, 운전에 집중을 못 하겠다구요. 제가 사고 나면 책임지 실 겁니까?”
[아무튼 긴말하지 않겠네.]‘이미 긴말하고 계시거든요?’
[강진호 씨와 한 번 만 더 접촉해 주게. 윗선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선거도 얼마 안 남았는데, 여기서 더 터지면 수습이 불가능하 다는 거 자네도 알잖나.]“고작 선거 이기고 지고가 중요하
답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정권 뒤 닦아주는 놈들이 됐습니까? 어느 정 권이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 아닙니까?”
[말도 안 되는 이상론 설파하지 말고! 그리고 내가 지금 선거 이기 겠다고 이러는 것 같나? 선거 질 것 같으면 또 무슨 무리수를 둬서 상황 엿 같아질지 몰라서 하는 소리 아닌가!]“……여하튼 나중에 다시 연락드 리겠습니다.”
[부탁하네.]이종욱이 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
어 버렸다.
‘빌어먹을, 제멋대로 부려 먹는 군.’
사람을 감금해 놓고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몰아갈 때는 언제고, 이제 는 이종욱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듯이 굴고 있다.
아무리 눈 뜨면 바뀌는 게 이 판 이라지만, 사람이 최소한의 염치라 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기야 그런 게 있었다면 저 자 리까지 올라가지도 못했겠지.’
뻔뻔한 사람이어야 성공하는 세상 이니까.
이종욱의 눈에 커다란 아파트 같 은 건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상 좋아졌어.’
저게 구치소라는 걸 누가 믿겠는 가.
내부야 어떤지 몰라도 외부는 아 파트라고 해도 믿을 만한 모양새다.
하기야 아무리 구치소라고 해도 새로 짓는 건물을 일부러 허름하게 지을 수는 없으니까.
신분증을 제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세운 이종욱이 밖으 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구석 에 흡연 구역을 발견한 이종욱이 터
덜터덜 걸어가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였다.
‘끊어야 하는데……
최근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하다 보니 담배가 늘었다. 원래는 거의 피우지 않았는데…….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이던 이종욱 이 고개를 돌려 커다란 구치소 건물 을 바라봤다.
우습지도 않지.
저 삐까번쩍한 건물 안에 세상의 모든 고통이 녹아 있다니 말이다.
채 세 모금을 빨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 넣은 이종욱이 낮은
한숨을 쉬며 구치소로 걸어갔다.
“이쪽입니다.”
“감사합니다.”
“에, 이게 원래……
구치소장이 안경을 슬쩍 밀어 올 린다.
“접견실 이외에 면회는 허가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이 일 이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해주십 시오.”
“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치소장이 조심스럽게 이종욱의 눈치를 살폈다.
이종욱은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애써 불편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황당하겠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윗선에서 온 연락을 받았을 텐데, 막상 방문한 놈은 새파랗게 젊은 놈이니까.
“국정원에서 오셨다고……
“아•••••• 네.”
입도 싸지.
뭐 하러 그런 걸 일일이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
국정원이란 말에 구치소장의 얼굴 이 살짝 굳어졌다.
늘 이런 식이다.
소장이 아니라 교도관이었다면 국 정원이라는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이라는 이름 이 가지는 힘은 나이가 어린 사람보 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더 강 하게 작용한다.
‘물론 국정원이 아니라 안기부를 떠올리는 거겠지만.’
이종욱은 의식적으로 구치소장의 반웅을 무시했다. 지금은 이런 데까 지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 그에게 쌓인 문제만으로도 압사하기 일보 직전이니까.
“그런데 국정원에서 무슨……
“소장님.”
“예? 아, 예!”
“업무입니다.”
더 이상 관여하지 말하는 의미를 이해한 구치소장이 바로 고개를 끄 덕였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곧 모셔오겠 습니다.”
“그러시죠.”
구치소장이 짧게 목례하고는 밖으 로 나갔다.
소파에 앉은 이종욱이 가만히 주 위를 둘러보았다.
‘삭막하군.’
딱히 집기가 없어서일까?
아니, 삭막하다기보다는 휑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생활을 위한 장소로는 꽝이지만, 구치소로는 완벽할지도 모른다. 이 곳은 잃은 이들이 오는 곳이니까.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문이 열렸다. 그러자 열린 문으로 익숙한 얼굴을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퀭한 눈.
퍼석한 피부.
정리되지 않아 헝클어진 머리와 안경.
이종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내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이종 욱을 바라봤다.
이종욱이 주먹을 꽉 쥐었다.
반개한 눈이 그를 바라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딱히 눈빛에 독기가 보인다든가 그 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앉으시지요, 총리님.”
김명찬이 가만히 이종욱을 보고 있다가 말없이 건너편에 앉았다. 이 종욱이 가방을 열어 담배와 텀블러 를 꺼내 김명찬의 앞에 내려놓았다.
“뭐지?”
“커피입니다. 앞의 카페에서 한 잔 가져왔습니다.”
김명찬이 피식 웃었다.
“자백제라도 탔나?”
“그런 저급한 짓은 안 합니다. 뒷 감당을 할 자신도 없구요. 무엇보 다……
이종욱이 가만히 김명찬을 보며 말했다.
“지금의 총리님에게 자백제를 사 용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알아낼 것이 없겠
지.”
김명찬이 말없이 손을 뻗어 텀블 러의 뚜껑을 열었다. 향긋한 커피 향이 방 안으로 퍼진다.
주저 없이 커피를 들어 한 모금 을 마신 김명찬이 살짝 눈을 찌푸렸 다.
“쓰군.”
“시럽이라도 좀 탈 걸 그랬나 봅 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것도 감 지덕지겠지. 나는 도통 쓴 커피를 먹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겠어. 커피 는 달달해야지.”
김명찬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자리
에서 일어났다. 소장실 정수기 위에 놓인 스틱 설탕을 들고 온 김명찬이 커피에 설탕을 탔다.
“이제 좀 먹을 만하구만.” 텀블러를 내려놓은 김명찬이 담배 를 집어 들고는 입에 문다. 그러고 는 천천히 불을 붙였다.
“후우우우.”
담배까지 두어 모금 빤 이후에야 김명찬의 시선이 이종욱에게로 향했 다.
“왜 왔는가?”
“그냥 한 번 들러봐야 할 것 같았 습니다.”
“싸움의 진 개를 보고 싶었다? 침이라도 뱉을 셈인가? 악취미구 만.”
이종욱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으 로 김명찬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거슬렸는지, 김명찬이 낮게 혀를 찼 다.
“그런 눈으로 볼 것 없네. 나는 구치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던 사람 이니까. 요즘은 참 좋아졌어. 이런 좋은 시설에 따뜻하기까지 하고. 예 전에는 구치소 한 번 들어오면 손발 이 시려서 잘라내고 싶을 정도였는
데.”
김명찬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름 호텔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네.”
“몸은 그렇겠죠.”
“마음은 지옥에 있지 않습니까?” 김명찬이 대답 없이 이종욱을 바 라보았다.
“왜 왔는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똑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이었다.
김명찬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길게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인 그가 느긋하게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물어보게나. 대답 못해줄 것도 없지.”
이종욱이 잠시 망설이는 듯 입술 을 살짝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왜‘?”
김명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김명찬을 가만히 노려보던 이종욱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몇 번이나 경고드렸잖습니까, 그 러면 안 된다고! 그러면 모든 게 무
너진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 까! 이해했다고 하셨잖습니까! 다른 해결책을 찾겠다고!”
이종욱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총리님쯤 되는 사람이 왜 그러신 겁니까! 그때만 멈췄어도 여기까지 는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만!”
김명찬이 가만히 이종욱을 바라보 았다.
흥분으로 달아오른 이종욱과는 다 르게 김명찬의 얼굴은 더없이 평온 해 보였다.
“저는 당신을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 판단을 내리셨는지. 저 는……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보게, 이군.”
김명찬이 빙그레 웃으며 이종욱을 불렀다. 이군은 그가 이종욱을 중용 할 때 사용하던 호칭이다.
“방금 나를 존경했다 그랬나?”
“……그랬죠.”
김명찬이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민주화 투사라서?”
“그게 아니면 대한민국의 총리여 서? 아니면 내가 모진 고문을 받으 면서도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를 포 기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것도 아 니면 내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라 서?”
“저는••••••
“이보게. 왜 모르는가.”
김명찬이 빙그레 웃는다.
“그 모든 것이 내가 포기하지 않 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걸 말일세.”
이종욱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 다.
그저 입술을 질끈 깨물었을 뿐이 다.
“거기서 멈췄다면 사태가 여기까 지 오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애초에 포기라는 걸 모르는 족속일 세, 포기해야 했다면 이미 예전에 포기했겠지. 나 같은 인간의 마지막 은 둘 중 하나뿐일세. 포기하지 않 아 성공하든가, 포기하지 않아 지옥 까지 가든가.”
“……총리님.”
김명찬이 가만히 담배를 빨고는 천천히 내뿜었다.
“보통은 모두 지옥을 보지. 나는
그동안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뿐 이야. 그 시절에 죽어간 이들 중 나 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을 것 같나? 다들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람 들이었어. 나는 적당히 물렀고, 적당 히 눈치를 볼 줄 알아서 바퀴벌레처 럼 살아남은 것에 불과하지.”
“이보게, 이군.”
김명찬의 얼굴에 회한이 들어찼 다.
“나는 존경할 가치가 없는 사람일세.”
“존경할 가치가 없어.”
김명찬이 씁쓸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종욱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 고 말았다.
담담하다.
담담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담담 하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종욱은 더 확 실하게 알 수 있었다.
김명찬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것이다.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시 대의 거인이 지금 이곳에서 무너지 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