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406)
마존현세강림기-1408화(1405/2125)
마존현세강림기 57권 (15화)
3장 종결하다 (5)
“가장 위대하신 분을 뵙나이다.”
“……그런 거 하지 말라니까.”
“입에 익어서 말입니다.”
싱글생글 웃는 혈마의 얼굴을 보 고 있으려니, 괜히 불쾌함이 차올랐 다. 저 미소가 절대 자연스러운 미 소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셨습니까?”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생색 이라도 낼 셈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들이 제공하는 자료의 반은 이쪽에서 넘 긴 것입니다. 마존께 드리는 것보다 는 저들에게 주는 것이 더 나을 것 이라 생각했습니다. 혹여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저를 벌해주십시오.”
말은 청산유수다.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의 반응은?”
“원하는 건 동맹입니다.”
“실제로는?”
“마존의 이름으로 저들이 삼왕계 를 제어할 때, 마존께서 부정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작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들에게 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나의 작은 것으로 상대에게 큰 은혜를 입 힐 수 있다면, 남는 장사가 아니겠 습니까?”
“작은 게 아니지.”
“예?”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를 죽이려 한 놈들을 용서하는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지.” 혈마가 미소를 지었다.
“용서하셨습니까?”
“아니면 용서하실 겁니까?”
강진호는 대답 않고 가만히 혈마 를 바라보았다.
혈마가 기이한 미소를 입에 머금 고는 낮게 키득였다.
“마존께서 용서하실 리가 없지요. 어차피 저들과는 언젠가 다시 싸우 게 될 겁니다. 그 시기를 조금 늦추 는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마존께서는 홍왕과도 동맹을 맺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동맹을 가장한 적이 하나쯤 늘어난다고 해 도 딱히 문제는 없지 않겠습니까?”
“잘도 지껄이는군.”
“저들의 죽음을 조금 연장하는 대 가로는 충분해 보입니다만?”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저곳에 빚을 졌 다. 그의 분노와 상쇄할 정도는 아 니지만, 도움이 되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가서 내가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전해.”
명이 떨어졌음에도 혈마는 대답하
지 않은 채 고개를 가만히 숙이고만 있었다.
그런 혈마의 반응을 본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네 공도 인정하지. 혈교 를 데리고 한국으로 넘어와. 방 한 칸은 내주겠다.”
“감사합니다, 마존이시여!”
“대신 하나는 명심해라.”
“예‘?”
“마교가 혈교를 받아들인다는 것 은 혈교의 체계가 아니라 사람을 받 는다는 뜻이다. 너희의 모든 것을 버릴 생각을 해라. 이곳에 오는 순
간부터 너희는 더 이상 혈교도가 아 니라 마교도가 된다.”
“각오하던 바입니다.”
“……이해를 못하는 모양인데, 여 기 오면 너는 더 이상 교주가 아니 라 일개 교도라는 뜻이다. 상사가 생긴다고.”
“마존을 모실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장로 자리 정도는 만들어주지. 그런데 장로 중 막내가 될 텐데?”
“저……
혈마가 살짝 걱정된다는 얼굴로
묻는다.
“혹시 해서 묻는 건데, 그 장민 노마괴가 아직 살아 있습니까?”
“백 년은 더 살 기세다.”
혈마가 눈을 딱 감았다.
장민의 이름을 혈교에서도 유명하 다.
강진호? 마존?
그건 그냥 역사에나 나오는 이름 일 뿐이다. 하지만 장민은 실존하는 위협이자 마도 제일인자로서 마를 숭상하는 자들에게 전설이나 다름없 이 전해지고 있었다.
“다섯 대 전에도 마교의 장로였던
것 같은데……
“다섯 대 후에도 그렇겠지.” 혈마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광경을 본 강진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자신에게도 목을 뻣뻣이 세우는 혈마가 장민이라는 이름에 과한 반 웅을 보이고 있었다.
“장민이 그렇게 두려운가?”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제가 태생적으로 농담이 안 통하 는 상대에게는 좀 약합니다.”
아, 그렇겠구나.
강진호야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실실 비꼬아도 넘어가 주지만, 장민 은 아랫놈이 그런 짓을 하면 그 자 리에서 간이 얼마나 튼튼한지 뽑아 확인해 버릴 것이다.
‘내가 굳이 입을 뗄 필요는 없겠 군.’
안 그래도 말투나 표정이나 거슬 리는 게 많아서 날 잡아 푸닥거리를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 는데, 그럴 것 없이 그냥 장민에게 맡기면 될 것 같다.
“생각을 바꾸려면 지금뿐이다.”
“……아닙니다. 교에 귀의하겠습 니다. 제가 좀 고생하면 교도들은 편해지겠지요.”
“교주다운 대답이로군.”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뒤로 기댔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 강진 호가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였다.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은 강진 호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혈마를 응시했다.
“ 혈마.”
“예, 마존이시여.”
“너는 무슨 생각으로 내게 왔지?”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너를 용서할 거라 믿었기에 내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저는 마존께 용서를 바라지 않았 습니다.”
강진호의 눈이 가만히 혈마를 응 시한다.
“그럼?”
혈마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 했다.
“저는 지금도 마존께서 언제든 저 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 지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마존께
서는 저를 죽이실지언정 혈교의 교 도들을 안정의 땅으로 인도해 주실 테니까요.”
“죽어도 상관없다라……
혈마가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제가 마존께 이득을 가져 다드리는 한에는 모든 거래가 끝나 기 전까지는 죽지 않으리라 확신했 습니다.”
“내가 이득을 우선시하니까?”
“언제든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 다. 그렇다면 급할 것도 없잖습니 까.”
틀리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과거 강진호의 행동 원칙 중 결 코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자신을 노린 자들은 반드시 죽인다는 거였 다.
하지만 이 세상으로 돌아온 이후 로는 그 원칙이 여러 번 깨졌다. 이 현수가 그랬고, 바토르가 그랬다. 그 리고 이제는 혈마까지 그를 노리고 도 그의 앞에서 살아 입을 놀리고 있다.
어떨까?
과거, 그가 적천마존이라 불릴 때
에 비해 마음이 무뎌진 걸까, 아니 면 과거의 그는 지금처럼 용서하고 받아들일 만한 이들을 만나지 못한 걸까?
“확인해 보면 알겠지.”
장난스레 되물으려던 혈마가 강진 호의 얼굴을 보고는 머리를 깊이 숙 였다.
둥골을 타고 소름이 돋아난다.
‘잊지 마라.’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이는 마 왕. 세상의 모든 마를 종속시키고 지배하는 자였다.
구치소에는 어둠이 내리지 않는 다.
수형자의 감시를 위해 밤에도 불 을 끄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취침 시간에는 불이 켜진 전등의 수를 조 절해 밝기를 낮추기는 하지만, 수형 자들에게는 어둠에 묻힐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김명찬은 쇠창살이 박힌 창을 통 해 들어오는 불빛을 보며 반쯤 눈을 감았다.
야심한 시간이지만 잠이 오지 않 는다.
잠들지 못한 게 벌써 며칠째던가.
눈을 뜨면 지옥을 보고, 눈을 감 으면 그를 바라보던 강진호의 눈빛 이 떠오른다.
아직 그가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 이 신기할 뿐이다.
‘무엇이었던가.’
이제는 모든 것이 그저 허무할 뿐이다.
그가 지키려 한 모든 것이 그를 배신했다.
가족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돌아
섰다.
동료는 그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리고 그가 평생을 걸쳐 이룩한 명예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그의 이 름은 이제 부패의 상징이 되어버렸 다.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그를 부 정하고, 그와의 관계를 감추기에 급 급하다.
살아 있다.
김명찬은 분명 살아 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숨이 붙어 있 는 것에 불과하다. 김명찬의 몸뚱아 리는 비루한 숨을 이어갈지 모르지 만, 그를 구성하던 다른 것들은 모
조리 더러운 바닥에 처박혀 짓밟히 는 중이었다.
영혼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김명찬은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스스 로 목숨을 끊는 미련한 이들은 그저 의지력이 약한 자들일 뿐이라 내심 경멸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김명찬도 알게 되 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의지력이 약하 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니 라는 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에 빠진 이들은 절대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 상황에서, 이 고통에 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이 고통 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그게 죽음이었다.
이 목을 조여 이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다면, 김명찬은 아무런 주 저 없이 자신의 목을 조였을 것이 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이 고통은 설사 그가 죽는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자살한다면 그에게 쏟아지는 모든 의혹은 진실이 되어버릴 테니까.
이 빠져나갈 곳 없는 올가미는 결국 김명찬의 죽음으로 완성된다.
밤만 되면 그의 수감실에는 누구 도 접근하지 않는다. 시간이 되면 죄수가 잘 있는지 확인해야 할 교도 관들도 그의 독방 앞에서 되돌아갈 뿐이다.
아마 바라고 있겠지.
죄수복을 벗어 창살에 묶고, 다시
목에 감아 늘어지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을 끝내길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이 모든 것 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도, 죽은 자도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 말이 다.
하나 김명찬은 뜬눈으로 밤을 지 새우며 버티고 또 버텼다.
육체가 타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 밀려와도, 긁어 댄 얼굴의 피부가 벗겨져 시뻘건 피가 옷을 적셔도.
“아직은…… 아직은 아니야.”
그에게는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을 끝내지 못한다면, 죽어서 도 눈을 감을 수 없다.
흐느끼듯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그 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나는 아직 갈 수 없어……. 나 는, 나는 아직…… 아직은 아니야.”
하루하루 스스로가 미쳐 간다는 것을 느낀다.
가끔씩 들리는 환청.
드문드문 찾아오는 환영.
하지만 너무도 냉철하던 그의 머 리는 이 지경이 되어서까지 안식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스스로가 미쳐
가는 것을 생생히 느끼게 해주었을 뿐.
그건 또 다른 고통이었다.
머지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명찬은 더 이상은 이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광증이 그의 머리를 좀먹고 있다.
당연하겠지.
벌써 미쳐 버려도 이상하지 않으 니까.
그럼에도 어떻게도 이성의 마지막 끈을 부여잡고 있는 이유는 아직 만 나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김명찬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 어두워?’
시커먼 어둠이 방 안을 가득 채 우고 있다.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 보았지만, 불빛은 더 이상 새어 들 어오지 않는다.
구치소는 불을 끄지 않는다.
아무런 소란도 없이 이리 불이 꺼지는 일은 불가능하다.
“내가 완전히 미쳐 버렸는가?”
눈을 뜨고 이리 생생한 환영을 볼 만큼 미쳐 버렸다면…….
“아니.”
그때, 김명찬의 귀로 낮은 목소리 가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김명찬이 전신 을 부르르 떨었다.
쇠를 긁는 듯 날카로운 소리. 하 지만 그럼에도 낮은 저음을 유지하 고 있는, 기이한 목소리.
김명찬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 다.
수감실의 한쪽 구석.
그저 어둠.
너무 짙은 어둠이라 아무것도 느 껴지지 않는 그곳에서 핏빛의 불꽃 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직은 미치지 않았지.”
아직은 말이야.
어둠 속에서 악마가 천천히 그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