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430)
마존현세강림기-1432화(1429/2125)
마존현세강림기 58권 (14화)
3장 회담하다 (4)
호텔 로비에 앉은 강진호가 멍하 니 밖을 바라보았다.
‘ 멍하네.’
여유롭다고 해야 할까, 지루하다 고 해야 할까.
여하튼 정말 오래간만에 별생각 없이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
다.
이현수가 말한, ‘이제는 쉬어야 할 때’라는 말이 실감이 간다. 항상 정신적으로 몰려 있다 보니 그게 정 상인 상태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모 양이다.
사람은 때로 휴식이 필요하다. 그건 강진호도 알고 있는 일이다. 억지로 굴린다면 어떻게든 따라오 는 게 인간의 육체고 정신이지만, 그만큼의 후유증을 감수해야 한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휴식을 취하고 환기를 시켜줘야 한다.
‘알고는 있는데 말이야.’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 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쉬려고 하면 자꾸 불안해져 뭔가를 하려고 움직이게 된다.
강진호가 바쁜 이유는 주변의 상 황이 그를 몰아가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 벌인 일을 스스로 감당해 내 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도 자주 다녀야겠어.’
그저 공간을 분리해 버리는 것만 으로도 일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 을 새삼 깨닫는 강진호였다.
“오래 기다렸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뛰쳐나온 최연하 가 살짝 미안한 얼굴로 강진호에게 말했다. 강진호는 그 말을 들으며 빙긋 웃었다.
“아뇨. 괜찮아요.”
“미안해요. 오늘따라 화장이 잘 안 먹어서.”
“늦은 것도 아닌데요, 뭐.”
강진호가 시계를 힐끔 바라본다.
겨우 5분 지났을 뿐이다. 이 정도 야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다.
……많이 늦었다고 타박할 형편도 아니고 말이다.
“가요.”
“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최연하와 함 께 호텔을 나섰다.
“그런데…… 이래도 돼요?”
“뭐가요?”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
“뭐 어때요, 미국인데.”
“그래도……
“괜찮아요. 설마 기자 놈들이 여 기까지 오겠어요?”
강진호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젊은 남녀가 팔짱을 끼 고 나오는 게 별일이겠냐마는, 그 사람이 최연하라면 가십거리가 된 다.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쓸 거면 안 놀아야죠. 오늘은 그냥 마음 편하게 놀려구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간만에 둘만 있는 건데, 이런 날 이 언제 또 오겠어요. 놀 수 있을 때 놀아야죠.”
강진호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 다.
그 말속에 바쁜 강진호에 대한 원망이 조금 담겨 있다. 이제는 이 런 말도 이해할 수 있는 강진호였 다.
“앞으로도 시간 자주 내볼게요.”
“네네. 그 거짓말, 진짜죠?”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으려는 순 간,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앞을 가로 막고는 빙그레 옷는다.
자신의 앞을 막은 이를 본 강진 호가 눈을 찌푸렸다.
“왜?”
“크으, 데이트 가시는 겁니까?”
“……그러니까, 왜?”
이현수가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 들었다.
“왜긴 왜겠습니까, 제가 모셔야 죠.”
“네가 왜?”
“이 실장님이 왜요?”
최연하가 눈에 살기를 띠고 이현 수를 노려본다. 간만에 둘만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하자마자 불순물이 끼어들고 있다. 정수기로도 걸러지 지 않는 불순물이 말이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도 이현수는 여유만만이었다.
이현수가 둘을 번갈아 보고는 씨 익 웃었다.
“데이트 가시는 거잖습니까?”
“그게 왜?”
“택시 타고 다니시게요?”
“네네, 좋습니다. 갈 때는 택시면
되죠
. 하지만 올 때는요?”
“차를 준비해 드리려니 국제 면허 가 없으시죠. 흐}, 이럴 때는 정말 곤란하다니까요. 저도 쉬고 싶고, 할 일도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제가 모 셔다 드릴 수밖에 없잖습니까?”
최연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강진호 를 돌아보았다.
‘저 양반, 스토커예요?’
‘좀 그런 것 같은데……
‘아, 소름 돋아.’
두 사람이 영 좋지 않은 표정으 로 이현수를 바라봤다.
“아니, 뭐, 굳이 두 분이 가신다 면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투어 버 스도 있고 좋죠. 다만……
이현수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 투어 버스 안의 절반은 한국 인일 거라고 제가 장담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데이트하는 모습을 생중계당하고 싶으시면, 편한 대로 하십시오. 오늘 SNS는 풍성하겠네 요.”
“이익!”
어쩌면 이현수 나름으로는 최대한 배려를 해주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배려를 이렇게 사람 열 받는 방향으로 할 수 있는 사람 도 혼치는 않을 것이다.
“이 실장님.”
“네?”
“죽빵 한 대만 갈겨도 돼요?”
“하하,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하 고 그러십니까. 저는 정말 도와드리 려는 마음……
그때 였다.
부우우우웅.
낮은 엔진음과 함께 호텔 정문으 로 두 대의 차가 들어온다. 한 대는 검은 세단이고, 다른 한 대는 검은 리무진이다.
“••••••웅?”
이현수가 = 크게 뜨고 리무진 을 바라봤다.
이미 한 번 당한 전력이 있는 강 진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현수
에게 말했다.
“또?”
“아, 아니요, 아닙니다. 이번에는 아니라구요.”
중국에서는 그가 리무진을 수배했 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애초에 그때 리무진을 부른 것도 돈 많은 재벌집 의 생각 없는 망나니 코스프레를 위 한 것이었지 않은가.
“제가 부른 거 아닙니다. 저희 차 아니에요. 저희 차는 저 옆에 렌트 한 게 따로 있습니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최악으로 가지 않아서 다
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이 열리 며 익숙한 얼굴이 차에서 내렸다.
“다시 뵙습니다, 회주님.”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대충 상황을 눈치챈 최연 하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뭔 데이트 한 번 하는 게 이렇게 빡세냐.”
차에서 내린 윌리 리스가 빙그레 웃으며 강진호에게 다가왔다.
“웬일로?”
“두 분이 데이트를 나가시는 것 같더군요.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
니다, 최연하 씨. 저는 윌리 리스라 고 합니다. 윌리라고 불러주십시오.”
“뭐래요?”
강진호가 윌리의 말을 통역해 주 었다.
“……저를 아세요?”
“한국의 유명 배우를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솔직하게.”
“……강진호 씨 때문에 알게 되었 습니다.”
“쯧, 좋다 말았네.”
여기에도 나름 인지도가 생긴 건 가 하고 슬쩍 올라갔던 어깨가 다시
내려온다.
“무슨 일이지?”
윌리 리스가 빙그레 웃는다.
“미국을 관광하는 가장 좋은 방법 이 뭔지 아십니까?”
“글쎄?”
“미국인에게 안내를 받는 거죠.”
어, 내가 그걸 몰랐네.
설마 그런 대답이 나올 줄은 말 이야.
“그래서 안내를 위해 준비했습니 다. 그저 회주님을 조금 더 배려해 드리고 싶다는 저희의 마음으로 생
각해 주십시오. 귀빈을 대접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강진호가 헛웃음을 홀렸다.
“나도 발이 있고, 차 정도는 수배 할 수 있어.”
“지금 어디를 가셔도 기본적으로 줄만 한 시간은 서야 합니다. 하지 만 저희와 함께하시면 그 모든 것이 프리패스죠.”
최연하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그리고 프리패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이현수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아무 데나요?”
“물론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그
랜드캐니언을 헬기 타고 돌아보시는 코스와 놀이공원을 도는 코스를 추 천드립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원하 시는 곳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윌리 리스가 고개를 돌려 차를 바라보자, 운전수가 창문을 열더니 차 지붕 위에 붉은 사이렌을 올렸 다.
“막히는 도로도 뚫어드리죠.”
강진호가 얼떨떨한 눈으로 윌리 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유럽이라든가 중국이라든
가, 나름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협상을 해봤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 는 놈들은 또 처음이다.
이현수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공권력을 이런 데다 써도 되는 겁니까? 미국은 자유주의의 나라라 고 들었는데?”
“하하하, 이상한 말씀이시군요. 국 가에 이득이 되는 일에 공권력을 투 입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닙니 까? 그렇게 따지면 외국의 국빈들이 방문할 때 활주로를 비우는 것도 문 제죠. 하지만 아무도 그런 걸 지적 하지는 않잖습니까?”
“끙.”
할 말이 없어진 이현수가 침음을 홀리자, 윌리 리스가 한 걸음 더 다 가와 속삭였다.
“아침부터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 놈들이 있더군요. 입국한 자들 이나 지부의 기자들인 모양인데, 싹 다 잡아들였습니다.”
“일반인까지 저희가 통제하기는 어렵지만, 미국 내의 일이 기사로 나가는 것은 최대한 막아드릴 수 있 습니다. 이것 역시 저희의 작은 성 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강진호는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말 그대로 성의로군.”
“그렇습니다. 이 이상 가버리면 조건이 되어버리지요. 받아도 부담 이 없는 정도가 성의의 마지노선 아 니겠습니까?”
강진호가 힐끔 최연하를 돌아보았 다.
“어떻게 할까요?”
“으음.”
최연하가 윌리 리스를 힐끔 보고 는 물었다.
“데이트 내내 뒤에서 따라다니는 건 아니겠죠?”
“저희는 에티켓을 굉장히 중요하 게 여깁니다. 두 분을 불쾌하게 만 들 만한 일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흠, 그래요?”
최연하의 삐딱한 시선이 누군가에 게로 향한다.
“그거, ‘누구’랑은 달라서 참 좋네 요.”
이현수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제가 언제……
“갈게요.”
최연하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 스토커 씨에게서 멀어질
수 있으면 그걸로 됐어요. 줄 안 서 도 된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그럼 이쪽 으로.”
윌리 리스가 앞장서 리무진 쪽으 로 걸어가더니, 리무진의 문을 열었 다.
“음료는 뭘 좋아하실지 몰라 루이 로드레 크리스탈로 준비했습니다. 빈티지는 82년산입니다.”
최연하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뭐라는 거예요?”
“맛난 건가 보죠.”
“그……. 음, 네. 괜찮은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결국 준비하는 것도 상대가 알아 줘야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윌 리 리스였다.
강진호가 미묘한 표정으로 물었 다.
“콜라 있어요?”
“코, 콜라는 제가…… 아니, 아니 지요! 콜라는 준비하면 됩니다! 지 금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빨간 걸로.”
“그, 그러죠.”
강진호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최연하와 함께 리무진에 올랐다.
“저번 거보다 큰 거 같은데?”
“좀 부담스러운데. 이 나라는 뭐 든 커요, 여하튼.”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닫으며 윌리 리스가 식은땀을 흘렸다.
이현수가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 같은 얼굴로 윌리 리스를 바라 봤다.
“잘도 이런 짓을!”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죠.”
“끙.”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쁜 생각 같지는 않지만, 그렇 다고 좋은 생각 같지도 않네요. 저 분들을 모신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죠.”
빙긋 웃는 윌리를 보며 이현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저는 뭐 없습니까?”
“네?”
“아니, 뭐, 극장표라도……
뚱한 얼굴로 이현수를 바라보던 윌리가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출발한다.”
홀로 남겨진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거, 사람 각박하게.”
그런 이현수를 남겨두고 두 대의 차량이 미련 없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