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460)
마존현세강림기-1462화(1459/2125)
마존현세강림기 59권 (19화)
4장 농락하다 (4)
이제는 놀랄 힘도 없었다.
레지 머서는 그저 반쯤 죽어버린 눈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강진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벙커는 그의 뒤에 있다.
강진호가 벙커를 노리기 위해서는
레지 머서가 있는 지휘부를 거쳐야 한다.
저벅.
저벅.
‘사신 같군.’
길다란 낫 대신 장검을 들고, 얼 굴이 해골이 아니라는 점만 뺀다면 지금 강진호의 모습이 사신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사신의 정의가 인간의 죽음을 관 장하는 자라는 걸 의미한다면, 지금 강진호의 모습은 그 정의에 더없이 걸맞았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이들의 목숨
은 지금 이 순간 강진호에게 달려 있으니까.
“……사, 사단장님.”
부관의 떨리는 목소리가 레지의 귀를 파고든다.
“사, 사격합니까?”
레지가 웃고 말았다.
참 재미있는 질문이지 않은가.
명백한 적이 접근하고 있는데, 사 격을 할지 물어본다. 이미 몇 번이 나 발포는 명령 없이 자체적으로 하 라고 말해둔 뒤인데도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겠지.’ 사격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격을 하는 순간, 이 기묘한 소 강상태가 끝나고 다시 전투가 시작 될 테니까.
그게 두렵다는 소리다.
어쩌면 부관 자신도 자신의 말에 숨은 뜻을 모를 수 있다. 저건 생각 하고 하는 말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건 긍정적이기보다는 오 히려 부정적인 신호였다. 직접 전투 에 참여하지 않는 지휘부가 공포에 휩싸여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 한다는 건, 일선에서 저 괴물을 맞 아 싸우는 이들은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 증거로…….
‘ 고요하군.’
무언가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낮 은 신음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조금 전까지 이곳을 가득 메운 폭발 음과 사격음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 았다.
그 대신…….
저벅저벅.
낮은 강진호의 발소리만이 주변의 소음을 제압하며 레지의 귀를 파고 든다.
무의미하다.
상대의 포격을 버티기 위해 연구
에 연구를 거듭하여 만들어낸 두꺼 운 장갑도, 상대의 장갑을 꿰뚫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과 자금을 쏟아 부어 만들어낸 대전차탄도…….
저 피와 살로 만들어진 한 인간 앞에서는 그저 무력할 뿐이다.
‘끝났다.’
레지의 고개가 미묘하게 아래로 꺾였다.
지켜보는 이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움직임. 하지만 그 움 직임은 레지의 마음이 꺾였다는 것 을 의미했다.
저벅.
저벅.
그 와중에도 강진호는 여전히 심 드렁한 표정으로 레지를 향해 다가 오고 있었다.
부관들이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레지는 바닥에 붙인 발을 떼지 않았다.
군인으로서 그가 받은 명령은 강 진호를 막아내는 것. 이미 공격을 포기했다는 것부터 그는 명령을 어 긴 것이다.
레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목숨이 아깝냐고?
천만에.
물론 목숨은 아깝다. 하지만 그가 지금 아까워하는 것은 그의 목숨이 아니라 부하들의 목숨이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공격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라 도 그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 날 수 없었다.
강진호가 다가온다.
불이 붙은 전차들과 시커멓게 하 늘로 치솟는 검은 연기를 뒤로하고.
강진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 온다.
그제야 레지는 강진호를 근거리에
서 볼 수 있었다.
‘평범하군.’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느껴진 다.
이미 강진호의 모습을 눈으로 몇 번이나 보았음에도, 강진호의 머리 에 뿔이 달리지 않았다는 게 어색하 고 이상하다.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는 느껴지지 않으니까.
차라리 뭐랄까…….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군.
강진호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 지 않는다.
전투를 치르고 있는 이에게서 느
껴지는 흥분도, 고양감도, 자신들에 대한 적의조차 없다. 그는 그저 이 곳에 존재할 뿐이다.
레지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문득 그는 저자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가 궁금해졌다.
그가 보는 강진호는 괴물이다.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썼지만 인 간이 아닌 자.
저자가 자신처럼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는 것을 도무지 이 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괴물의 눈에 인간은 어떻게
보일 것인가.
언제든 부러뜨려 버릴수 있는 플라스틱 장난감?
아니면 클레이 점토로 만들어진 조잡한 조각?
알 수 없지.
그는 강진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으니까.
하나 확실한 것은, 저자가 바라보 는 인간과 그가 바라보는 인간 사이 에는 어마어마한 괴리가 있을 거라 는 사실이다.
‘벌레처럼 보이겠지.’
손가락으로 짓눌러 죽여 버릴 수
있는 작은 벌레.
말을 하고 생각을 하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죽는다는 것조차 인 식하지 못하게 죽여 버릴 수 있는 벌레.
레지가 웃어버렸다.
그렇다. 그는 벌레다.
하지만 벌레라고 해서 반드시 인 간을 보고 떨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벌레에게는 벌레의 자존심이 있는 법이다.
레지가 핏발 선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저벅저벅.
무심하게 걸어오던 강진호의 눈이 가만히 레지를 응시한다. 레지의 다 리에 힘이 풀린다.
느껴진다.
등 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의 부관과 호위병들은 다가오는 괴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달아났다. 하지만 딱히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레지 역시 사령관이 아니라 부관 정도의 위치였다면 지금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달아났을 것이다. 그가 저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고, 더 많
은 돈을 받는 것은 이럴 때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레지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풀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진호를 노려본다.
저벅저벅.
마침내 강진호가 그의 바로 앞에 도달했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던 강 진호가 고개를 든다. 길게 자란 그 의 앞머리 아래로 동양인의 검은 눈 동자가 드러난다.
레지가 숨을 죽였다.
확고한 죽음.
지금 그의 앞에 확고한 죽음이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막을 텐가?”
레지는 순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마음이 정해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저자가 자신을 향해 말을 걸 거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 이다.
벌레에게 말을 거는 인간은 없는 법이니까.
강진호의 입에서 나온 부드러운
영어에 당황한 것도 잠시. 레지는 배에 힘을 꽉 주고 입을 열었다.
“……모르겠소.”
듣는 이는 없다.
그의 주변에 있던 이는 모두 달 아나 버렸으니까.
그렇기에 레지는 솔직한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소. 나도 머리가 있으니까. 다만…… 여 기서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할 뿐이 오.”
강진호가 웃는다.
그러면서 강진호의 입가에 하얀
이가 드러난다.
레지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그 웃음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 남자라면 그래야지..”
강진호가 마음에 든다는 듯 가볍 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다.”
강진호가 손을 뻗는다. 그러더니 레지의 어깨를 가볍에 움켜잡았다.
은근한 힘.
손가락으로 개미를 집어 드는 인 간이 죽이지 않게 조심하듯, 신중함 이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그 은근한 손길이 천천히 레지를
밀어낸다.
레지는 그 힘에 저항할 수 없었 다.
그가 무슨 발악을 하더라도 강진 호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 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저항을 한 단 말인가.
레지를 자신의 앞에서 가볍게 밀 어낸 강진호가 그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강진호가 자신을 스쳐 가려 하자 레지가 이를 악물었다.
“나를 모욕하려는 거요?”
강진호의 걸음이 멈춘다.
강진호가 걷던 자세 그대로 가만 히 고개만 돌려 레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당신의 등 뒤에 총알을 박 아 넣을 거란 생각은 안 하는 거 요?”
무표정한 얼굴로 레지를 바라보던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기 분 좋다는 듯 웃은 강진호가 여전히 옷는 낯으로 레지에게 말한다.
“ 해봐.”
“그건 그때 가서의 일이지.”
“나는……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지휘는 나름 괜찮았어. 순간 당 황할 때도 있었지.”
“여기는 전장이 아니야. 전장이었 다면 너는 이미 죽었어. 하지만…… 전장이 아닌 곳에서 굳이 죽이지 않 아도 될 이를 죽일 필요는 없겠지.”
전장이 아니다라…….
이만한 짓거리를 해놓고도 전장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가.
그 스케일에 감탄해야 할지, 그 뻔뻔함에 화를 내야 할지 알 수 없 는 레지였다.
“목숨이라는 게 그렇게 가치 있는 게 아니라지만, 굳이 이런 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필요는 없지.”
가볍게 레지를 일별한 강진호가 그를 지나쳐 벙커로 향했다. 레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의 등 을 그저 바라보았다.
‘완패로군.’
차라리 후련할 정도다.
힘에서도, 그릇에서도 완전히 박 살이 났다. 이만한 패배감을 느낄 날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하 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깔끔하게 인 정할 수 있었다.
벙커로 다가가는 강진호를 지켜보 던 레지가 주먹을 쥐고 몸을 돌렸 다. 전투는 끝났다. 하지만 그가 해 야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뭐 하는 거냐!”
레지의 목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 다.
“부상자를 수습해라! 사상자 역시 마찬가지다! 불을 끄고! 엔진에 불 이 붙은 곳에서 부상자를 구출해 내! 움직여라!”
얼어붙어 있던 병사들이 레지의 목소리에 움찔하고 반응한다. 수도 없이 명령을 따라온 그들은 머리가
이해하기도 전에 그 명령에 반응했 다.
“여기! 여기 부상자가 있다!”
“이쪽에 지원! 당장!”
죽은 이의 몸에 생기가 돌아오듯, 얼어붙어 있던 사단이 다시 움직이 기 시작한다. 레지가 그 광경을 보 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피해가 크지 않았으면 좋겠는 데……
저 철 덩어리들이야 아무래도 좋 다. 지금 그를 괴롭히는 것은 저 철 덩어리 안에 들어 있는 그의 부하들 이었다. 기계는 고치고 새로 받으면
그만이지만, 죽은 이는 돌아올 수 없으니까.
“여기, 살아 있습니다!”
“여기도 살아 있습니다! 지원! 끌 어내야 합니다!”
“이쪽도 무사하다!”
레지의 눈이 살짝 크게 떠진다.
‘살아 있다고?’
저렇게 박살이 난 전차 안에서 사람이 살아 있다고? 두 동강이 난 곳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괴사에 레지가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강진호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느긋하게 벙커로 걸 어가는 중이었다.
“사단장님, 벙커를…… 공격을 해 야 합니다.”
“내버려 둬.”
“사단장님?”
어느새 돌아온 부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레지를 바라본다. 하 지만 레지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우리의 역할은 끝났다. 싸움에서 진 개는 꼬리를 말고 투견장에서 떠 나야 하는 법이지.”
“남은 건 저들이 알아서 할 거 다.”
이윽고 벙커 앞에 도착한 강진호 가 천천히 적루를 들어 올린다.
그러고는…….
파아아아아앙!
허공에 검은 선이 나타났다가 환 상처럼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특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벙커의 윗부분 이 반듯하게 잘려 뒤로 튕겨 나갔 다.
“아…… 아아……
날아간 천장을 보며 필 버튼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강진호가 가
만히 벙커 안에 든 이들을 바라보다 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탁.
손가락을 튕겨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연기를 뿜어내며 입을 열 었다.
“누가 차관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