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491)
마존현세강림기-1493화(1490/2125)
마존현세강림기 60권 (25화)
5장 이어지다 (5)
“대박 났습니다, 사장님!”
“그렇지? 이거, 매출 엄청 나오는 것 맞지?”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이 정 도면 초기 투자금은 일 년도 안 돼 서 다 회수할 수 있을 겁니다!”
“지, 진정하자고.”
황민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 다.
“이 기세가 계속 이어질 리가 없 잖아. 오픈발이 있겠지!”
“그걸 감안하고 말씀드리는 겁니 다. 다음 달쯤에 매출이 반으로 떨 어지고, 그다음 달에는 20% 더 깎 인 금액이 일 년 정도 유지된다는 가정하에요.”
“……진짜?”
황민수의 머릿속에서 잭팟이 터졌 다.
황금 동전이 우르르 쏟아지는 상 상을 하던 황민수가 재빨리 고개를
내저었다.
“진정하라니까!”
자신에게 외치는 말인지, 이사들에 게 외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황민수였다.
“들뜨지 마! 이제 개업한 지 일주 일도 안 됐어! 지금 우리가 이럴 때 야? 이 순간에도 분명 문제점들이 생기고 있을 거라고! 그걸 빨리 해 결하고 매출을 안정화시켜도 모자랄 판에 돈에 눈이 돌아서 될 일이야?”
“……아!”
이사들이 반성한다는 듯 들썩이던 엉덩이를 진정시켰다.
‘역시 사장님이시다.’
‘이 매출을 보고도 침착할 수 있 으시구나. 그릇이 다르네.’
‘하기야 예전에 만지던 돈을 생각 하면 이 정도는 별것 아니시겠지.’
새삼 황민수의 그릇에 감탄하는 모두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강진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황 민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 다.
“대박입니다, 회장님! 우린 이제 부잡니다!”
그릇은 개뿔이.
“보고드립니다.”
한차레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회 의실이 미묘한 긴장으로 가득 찼다.
이현주가 살짝 안경을 밀어 올리 고는 말을 이어갔다.
“매출은 예상 목표치의 여덟 배를 달성했습니다. 700% 초과 달성입니 다.”
“여덟 배. 세상에, 여덟 배. 이게 꿈이냐, 생시냐.”
황민수가 거의 넋이 나가서 중얼 거렸다.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자본금이 남달랐으니까.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든 가맹금을 올리고 최대한 절약을 해서 인테리어든 뭐 든 가성비를 따지지만, 이놈의 회사 는 현금이 넘쳐 나다 못해 썩어나는 수준이라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맛까지 확보를 했으니, 경 쟁력은 확실하다.
하지만 사업이란 원래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변수들이 함께하 는 것. 무조건 성공할 거라 예상한 사업이 엎어진 경우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잖은가.
그러니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내려 놓기 힘들었다.
그런데 여덟 배라니, 세상에.
“회사에 재신이 있는 거지, 재신 이.”
“스타트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 습니다. 아무래도 회장님과 이사님 이 직접 마케팅을 해주신 것과 CF 파급력이 좋았던 부분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오, 그거 난리더라구요.”
“회장님 실검에 이름 올라가셨던 데, 보셨습니까?”
강진호가 헛기침을 했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건 그리 반길 만한 일은 아니다.
“회장님.”
으 o ”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저희는 양 지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언제까 지 총회의 이름으로 어둠 속에서 살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지.”
이현주가 단호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MK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중 요하지만, 회장님의 이름이 알려지 는 것도 중요합니다. 회장님의 얼굴 이 TV에 나오고, 그 이름이 자연히 회자될 때, 총회의 회원들은 자신들 이 더 이상 가려진 채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자각하게 될 테니까요.”
“알긴 아는데, 좀 어색해서.”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사실 회장 님은 그동안 가진 힘에 비해서 너무 편히 사셨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어? 나 그거 영화에서 봤는데?”
생각 없이 구정범이 끼어들자 노 태광이 이를 갈았다.
“주둥아리 관리해라. 회장님 앞에 서 쪽팔리게 만들지 말고.”
“……아니, 그냥 봤다고.” 최병찬도 빙그레 옷는다.
“구 이사.”
“예?”
“입 다물어.”
“……예.”
이현주가 살짝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어갔다.
“여하튼 출발은 쾌조라고 해도 좋 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일
단 기본적으로 원두 공급량이 부족 합니다. 미리 만들어둔 원두 재고량 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그, 그야 그렇겠지.”
황민수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매출을 감안해서 500% 정도는 준비해 뒀지만, 설마 이런 기세로 팔려 나갈 줄은 몰랐다. 당연히 부 족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빠르게 생산량을 늘려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보름쯤 뒤에는 원두가 없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판입니다.”
강진호가 황민수를 바라보았다.
“대책은?”
“일단은 강 공장장님께 최대한 부 탁을 드리고는 있지만, 이게 인력의 부족이라 채근한다고 딱히 달라질 게……
“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유환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 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한계를 의지 로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강진호가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인력 충원하겠습니다. 지난번 지 원자 중 탈락한 이들을 추가로 고용
하면 됩니다.”
“훈련 시간이 있잖아.”
“사실 기술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사람이 할 수 없을 정도의 노동 강 도를 버티는 게 문제라서…… 교육 만 받으면 하루 만에도 투입할 수 있습니다.”
황민수들의 얼굴이 노래졌다.
‘아니, 사람이 못 버틸 정도의 노 동 강도라면, 그걸 투입하면 안 되 지.’
‘그럼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뭐지? 사람이 아닌가?’
무인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하
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것도 며칠은 걸릴 텐데?”
“안 재우면 됩니다. 지금 여덟 시 간 체재로 돌아가는 애들을 열두 시 간 맞교대로 잠시 돌리겠습니다. 추 가 작업에 임금을 300% 책정하고, 성과급도 따로 지급하면 불만은 없 을 겁니다.”
“음, 그러면 해결되나?”
“정 안 되면 저라도 가서 저어야 죠.”
저거,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 강진호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 일은 이 실장이 전권 가 지고 해결해 봐. 지원은 모두 해주 지. 내 이름 팔아도 상관없어.”
“회장님 이름 팔 수 있으면 열두 시간 맞교대가 아니라 열여섯 시간 체제로 돌려보고 싶은데요.”
“……내 이름 팔아도 된다는 건 일단 취소하지.”
“그렇습니까?”
이현주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 셨다.
‘얘는 갈수록 이현수 닮아가네.’ 부부는 닮는다더니.
아니, 아직 부부는 아닌가.
사실 이건두 사람이 비슷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기보다는 총회와 무 인들 특유의 ‘무인은 사람이 아니 다’의 개념과 ‘굴리면 모든 것이 해 결된다’ 주의의 합작품에 가까웠다.
감정을 모두 배재하고 이성적으로 만 생각해 보면, 지금 공장에 투입 되어 있는 무인들은 한 일주일 정도 는 잠 안 재우고 일 시켜도 고장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지.’
일단 회사의 탈을 쓰고 있는 이
상에는 최대한 노동법을 존중하고 복지를 신경 써야 한다. 수련이라면 말이 다르겠지만, 사람을 갈아 넣어 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열두 시간도 조금 껄끄러운 데……
“회장님, 그건 회장님이 꼭 옳으 신 게 아닙니다.”
“ 응?”
“휴식 시간과 개인 정비 시간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건 지급되는 보수가 애매할 때의 이야깁니다. 300% 추가 지급이면 저놈들이 먼 저 일을 하겠다고 달려들 겁니다.”
“장기간 그 체제를 유지하는 건 무리겠지만, 일주일 정도라면 얼마 든지 할 겁니다. 충분하고 합당한 보수만 있다면, 사람은 불만을 가지 지 않습니다.”
그게 총회의 사고방식이지. 어, 그렇지.
확실히 이현주는 이중걸의 손녀였 다.
“여하튼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게 해줘.”
“완전히는 무리겠지만, 노력해 보
겠습니다.”
일단 하나의 문제는 해결 방안을 찾았다.
“그런 다음?”
“인력 부족 문제가 있습니다. 생 각보다 손님이 많아서 지금 주문량 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르 바이트를 추가로 고용해야 하는데, 지금 알바를 뽑아서 교육을 할 여력 이 없습니다.”
사람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도 보 통 일은 아니다.
바빠 죽을 것 같은데 초보자를 가르치는 일까지 같이 하다 보면 일
이 두 배로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점주들이야 체력적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한정된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해결책은?”
“아르바이트생들도 본사에서 교육 을 받는 체제를 만든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시적으로는 매장 내 자 체 교육을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본사로 불러 교 육을 마치면 될 테니까요.”
“응? 시간이 없잖아.”
“폐점 시간 뒤에도 교육은 할 수
있고, 기계는 쓸 수 있습니다.”
“아르바이트생들이야 퇴근해야겠 지만, 점주들이야 남아서 교육할 수 있으니까요. 지침은 전달해 뒀고, 이 력서는 이쪽에서 선별하는 중입니 다.”
어…….
근본적으로 공장의 해결책과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강진호는 새삼 이놈의 MK라는 기업이 차별화된 기술 같은 건 하나 도 없고, 오로지 차별화된 인력을 갈아 넣어 돌아가는 회사라는 걸 깨
달았다.
그러니 생산량을 늘리거나 매출을 늘리려면 인력을 갈아 넣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MK의 주축을 이루는 이 들은 거의가 무인 출신이라, 이현주 가 사람을 갈아 넣는 데 조금도 거 리낌이 없다.
“음, 점주들이 힘들겠군.”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봅니까?”
“아니. 힘들겠다고.”
강진호가 ‘다른 방법을 왜 찾아?’ 라는 눈으로 이현주를 바라본다.
이현주에게는 잔소리를 해 대지 만, 사실 사람은 굴릴수록 강해진다 의 원조는 강진호나 다름없다.
이중걸 시대의 무인들은 더러운 일을 해 대기는 했지만 나름 여유로 운 생활을 했다면, 강진호가 회주가 된 이후의 총회는 말 그대로 폭주기 관차처럼 달리고 있지 않은가.
사람을 갈아 넣는 데 조금이라도 죄책감이 있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다만••••••
“예, 회장님.”
“지금 이런 방식이 가능한 건 무
인들이 점주로 있고, 노동자로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MK가 언제까 지 무인들만으로 돌아갈 수는 없잖 아?”
“물론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평범한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줘.”
“유념하겠습니다, 회장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문제는 없나?”
황민수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마케팅 쪽에서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고 싶답니다. 그와 관련해서
회장님의 추가적인 승인이 몇 가지 필요합니다.”
“응? 승인?”
“별건 아닙니다. 그냥 구매자들에 게 몇 가지 사은품을 주는 정도죠.”
“그게 굳이 승인까지 필요한가?”
“하하하, 그러니까 말입니다. 여 기, 여기에 사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어쨌든 회장님의 재가가 필요한 부 분이니까요.”
강진호가 대수롭지 않게 사인을 했다.
그리고 황민수는 강진호가 서류의 내용을 보기 전에 슬그머니 서류를
아래로 내려 버렸다.
‘됐다!’
‘잘하셨습니다, 사장님!’
‘매출! 매출이 나온다! 이걸로 매 출이 또 나온다!’
의미심장한 이사진들의 눈빛에 강 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 어지는 이현주의 보고에 강진호는 금세 이 사실을 넘겨 버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강진호는 알게 되었다.
사인이라는 건 절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대체 저 사람은 어디까지 가는 거지?”
TV에 나오는 광고를 보며 한진성이 멍한 얼굴을 했다. 이제는 강진호의 얼굴이 TV에서 나온다.
물론 전에도 TV에 나오기는 했다. 그 강진호가 흑역사라 생각하는 드라마가 있으니까. 뭐, 한은솔은 나름 잘 보긴 했지만.
하지만 이번은 그 드라마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과거에 출연한 드라마에서 강진호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CF는 누가 뭐래도 강진호를 주역으로 찍은 CF다.
받는 느낌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와! 오빠, 잘생겼다.”
“연하 누나가 예쁘지 않냐?”
“둘 다 진짜 선남선녀네. 세상 참 불공평하다.”
“ 뭐가?”
“누구는 저런 남자랑 같이 커피 마시는데, 나는 이런 오징어랑 과자먹고 있어야 하고.”
조미혜의 말에 한진성이 발끈하여 노려보았다.
“야! 나도 연하 누나 같은 사람이랑 과자 먹고 싶거든?”
“애초에 같이 과자를 먹고 싶다고 말하는 시점에서 오빠는 아웃이야.”
“•…”어‘?”
“됐다. 어차피 못 알아들을거, 내가 소 귀에 경을 읊고 말지.”
조미혜가 답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한진성은 뭔가 강한 억울함을 꼈지만, 여기서 괜히 말을 더 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슬며시 TV 쪽으로 시선을 돌린 한진성이 무안하다는 듯 볼을 긁었다.
“근데 진짜 진호형도 대단하다.”
“ 뭐가?”
“처음에 여기 왔을 때는 그냥 유민이 형 학교 친구였잖아. 사람이 좀 뭐랄까, 어수룩? 아니, 어수룩하 다기보다는 뭔가 좀, 음……
“여하튼, 뭔가 나사 하나 빠진 느낌이었지.”
“그것도 미묘하게 다른데……
한진성이 기억하는 강진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보육원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자신이 잘못을 해도 마지막까지 자 신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타인이 자신을 어떤 눈 으로 바라보는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슬픈 일이지만, 이것만큼은 아무리 좋은 보육원에서 자라더라도 사 라지지 않는 습성이다.
그런 한진성이 보기에도 강진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 어린 나이에 이곳으로 들락거 릴 때부터 그들에게 조금의 편견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만, 뭐랄까…….
“나사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하고, 여하튼 뭔가 좀 결여된 사람 같은 느낌이 있기는 했지.”
“그게 그거 아냐?”
“나사 빠졌다고 하면 뭔가 멍청해 보이잖아. 그런 건 아니었어.”
“음, 그렇지. 진호 오빠 똑똑하 지.”
당시의 보육원은 이렇게 큰 곳이 아니었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오로지 원장 수녀님만을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원장 수녀님이 워낙 큰 애정을 보여줬기에 다른 보육원들보다는 훨씬 밝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었지.’
부족한 돈과 지원은 애정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당시에 보육원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박유민을 생각하면, 기억나는 것은 축 처진 어깨밖에 없다.
그런 곳에 어느 날 갑자기 강진호가 나타났다.
그러고는 원래 살던 이처럼 자연 스럽게 보육원의 한 편에 스며들었다.
“생각해 보면 진짜 이상한 형이야.”
“ 뭐가?”
“보통은 자기 친구가 보육원에 산다고 거기 와서 죽치고 노나?”
“••••••아니지.”
생각해 보면 한진성도, 조미혜도 교우관계는 그리 나쁜 편이 아닌데도 그들의 친구가 이곳에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두 사람이 친구를 이곳에 데려오지 않으려 한 것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런 말을 꺼낼 만한 이도 없었다. 더구나 예전 그들의 보육원은 달동네 제일 꼭대기에 있지 않았던가.
그런 곳을 자전거를 타고 오르던이가 강진호였다. 그것도 뒷자리에 박유민을 태우고 말이다.
“정상은 아니야.”
“여러모로 말이지.”
박유민은 지금도 강진호라면 끔찍하게 생각한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강진호가 위기에 처하면 대신 죽는걸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다.
누군가는 그게 오버라고 하겠지만, 한진성은 그런 박유민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 기분은 아무도 모르지.’
세상 밑바닥에서 다른 이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받던 사람이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이를 만났을 때의 기쁨 같은 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진성 역시 그런 강진호의 시선에서 구원받았으니까.
그래서 보육원 사람들은 강진호를 좋아한다. 이제는 예전 같은 미묘한 어려움도 사라지다 보니 동네 바보 형처럼 놀려먹는 사이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것 역시 친근함의 표현이다. 강진호가 조금이라도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면, 이곳의 누구도 강진호를 그리 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뭐랄까…….
“조금 그러네.”
“뭐가?”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할 것 같기는 한데……
“오빠는 원래 좀 이상하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고맙다. 눈물나게 고맙네.
한진성이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저렇게 TV 화면에 진호 형이 나오는 걸 보니, 조금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뭘……
한진성을 타박하려던 조미혜가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미혜도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지.
얼마 전에 함께 미국까지 다녀왔 는데 말이다.
“물론 진호 형이 저런데 나온다 고 우리한테서 멀어질 사람이 아니 라는 건 알지. 당연히 알지. 진호 형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데…… 음, 내가 마음이 좀 불편하네.”
한진성이 머리를 긁어댔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 드는 불편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이건 어쩌면 강진호에 대한 아쉬움이 라기보다는 한진성 자신에 대한 실망일지도 모른다.
한진성이 아무리 노력해도 강진호 의 삶에 영향을 주는 건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빚을 조금은 갚고 싶었는 데……
강진호가 들으면 ‘네가 나한테 빚 진 것은 전혀 없다’라고 말할 게 빤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 던가.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진호 오빠 가 어디 그럴 사람이야?”
“진호 형이야 그러지 않겠지.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그렇잖아. 진호 형도 사업하고 이것저것 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텐데, 예전처럼 여기르…”
그때 였다.
벌컥!
문이 확 열린다 싶더니, 한진성과 조미혜의 눈에 커다란 박스의 탑이 들어왔다.
“응‘?”
“엥?”
차곡차곡 쌓인 박스. 그 박스의 정체가 쌓아 올려진 피자 박스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흐음.”
안으로 들어온 이.
강진호가 겹겹이 쌓여 있는 피자 박스를 내려놓고는 몸을 홱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간다.
“혀, 형! 형, 어디가?”
한진성이 다급하게 강진호를 불렀다.
그러자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한진성을 바라봤다.
“콜라 가지러 가는데?”
“아••••••
“왜?”
“아, 아니, 아무것도.”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간다.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진성을 향해 조미혜가 옅은 미소를 보였다.
“진호 오빠가 뭐 어떻다고?”
아니, 뭐…….
음.
우적.
강진호가 살짝 한이 맺힌 사람처럼 피자를 입에 쑤셔 박았다.
“자고 간다고?”
“안 돼?”
“안 될 건 없지. 오빠가 여기서 잔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불편하면 갈게.”
“쟤들이 불편해 보여?”
방바닥에 반쯤 드러누워 피자를 먹고 있는 애들을 보니, 확실히 ‘불편’과는 삼만 광년쯤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왜 집에 안 가고?”
“오늘은 좀 쉬고 싶어서.”
“그게 뭔 소리야?”
“아니, 그게……
출근하면 이현주와 사장단에게 시달려야 하고, 집에 가면 호들갑을 떠는 강은영과 칼날 같은 눈빛을 보내는 백현정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아버지 눈을 볼 수가 없어.’
강유한은 지금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카페가 잘되도 너무 잘되어 버린 관계로 원두의 소모량이 상상 이상으로 치솟았고, 당연히 원두 생산을 총괄하는 강유한이 그 바쁨에 있는 그대로 얻어맞아 버렸다.
강유한이 직접 원두를 볶는 건 아니지만, 볶아져 나온 원두의 상태를 확인하고 공급할지 폐기할지를 결정하는 검수를 해줘야 한다.
원래라면 적당히 하루에 한 번 정도 들러서 볶아져 나온 원두만 확인하면 될 일이지만, 물량 부족과 일선 점장들의 성화로 볶아져 나온 원두를 바로 실어 나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강유한은 거의 5분대기조처럼 공장에서 볶아진 원두를 그 자리에서 확인한 후, 곧바로 반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게다가 지금 공장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새벽에 만드는 원두를 조금 쌓아 놓기로 하고 잠을 잘 시간은 확보했지만, 이런 스케줄을 평범한 사람이 버틸 수 있을리가 없다.
새벽 늦게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 는 강유한을 보고 자식밖에 모르는 백현정이 ‘아들놈 하나 잘못 낳았더 니, 이놈이 지 애비 잡아먹는다!’를 외쳐 댔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 가.
문제는 강유환의 장인 정신이었 다.
“뭐? 검사하지 말고 내보내라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 꼴 못 본다. 쟤들이 원두를 일정하 게 볶는 줄 알아? 안 돼!”
그 말을 하면서 흥삼 엑기스를 물처럼 들이켜지만 않았어도 나름 멋있었을 텐데.
여하튼 그런 사정으로 인해 강진 호는 지금 집에 들어가기가 굉장히 민망해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곳까지 찾아 오게 된 것이다.
대충 사정을 들은 한진성과 조미 혜가 더없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강 진호를 바라본다. 강진호가 그들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피자를 입으로 쑤셔 넣었다.
“콜라 줄까?”
« o ”
..흐.
콜라를 받아 마신 강진호가 한숨 을 푹 내쉬었다.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니었 는데……
“인생이 다 그런 거야, 형. 인생 이 계획대로만 됐으면 나도 한국대 갔지.”
“……위로가 되네.”
한진성이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 았다.
강진호의 사정은 정말 어이없지 만, 어쨌거나 강진호가 집 다음으로 편안하게 생각하는 곳이 이 보육원 이라는 사실이 은근히 한진성을 기 분 좋게 만들었다.
강진호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쉴 곳이 필요하면 호텔에 가도 될 텐데, 굳이 이렇게 보육원을 찾아와 주지 않는가.
“갈아입을 옷은 들고 왔어?”
“……속옷은 사 왔는데.”
“저 안에 애들 트레이닝복 있어. 그러고 있지 말고 옷부터 갈아입어, 형.”
“어. 알았어.”
머리를 긁으며 방으로 들어가는 강진호를 보고 있으려니, 먼 곳에 취직한 큰형이 간만에 집에 돌아온 분위기가 난다.
조미혜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저 오빠를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
“왜?”
“아니, 가끔씩 진지할 때나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참 멋진 사람인 데, 평소에 보면 진짜 빙구 같아.”
“……어.”
그렇지. 그건 분명 그렇지.
하지만…….
“그게 좋은 거 아냐?”
“……그렇긴 하지.”
조미혜도 결국에는 웃고 말았다.
강진호는 하루하루 바빠져 가고, 어쩌면 이곳에 들를 시간도 갈수록 줄어갈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진호의 마음이 이곳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 라는 걸 확인한 기분이었다.
벌컥!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 이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진호 여기 왔어?”
들뜬 얼굴로 들어온 박유민을 보 며 두 사람이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가 둘이네, 바보가 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