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30)
마존현세강림기-1532화(1529/2125)
마존현세강림기 62권 (15화)
3장 재고하다 (5)
정명철이 멍한 시선으로 병원의 천정을 바라보았다.
몸에 기력이 없다.
진정제 때문인지 너무 격하게 날 뛰어서 체력이 바닥나 버린 것인지 는 모르겠지만, 그저 멍하기만 하다.
“후우우욱.”
정명철이 낮게 심호홉을 했다.
분명 그는 침대에 등을 대고 누 워 있다.
하지만 자꾸만 등 뒤에서 뭔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기분이 난다. 절 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 서도 말이다.
“……나는 살았어.”
빠져나왔다.
이제 다시는 그놈들과 얽히는 일 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트라우마는 그를 쉽사리 풀어주지 않았다. 금방 이라도 그 하얀 얼굴을 한 이현수라
는 놈이 그를 찾아와 웃을 것만 같 다.
움찔.
이현수의 얼굴을 떠올리자 정명철 의 몸이 다시 경련을 일으켰다.
‘죽여 버릴 거야. 다 죽여 버릴 거야, 이 개새끼들.’
머릿속은 그를 잡아간 놈들에 대 한 분노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에 대한 공포도 함께 커 져만 갔다.
지옥같이 증오스러운 이들이 존재 하지만, 감히 그들에게 손을 댈 수 없다는 무력감. 그건 정명철이 살아
생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 었다.
“후우욱, 후욱……
정명철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켜져 있는 TV가 들어 왔다.
‘ 잊자.’
차라리 잊자.
그 이현수의 말대로 이제는 잊고 살 수 있다. 아니, 잊고 살아야 한 다.
다시 그들에게 관심을 돌리지 않 는다면, 그들과 얽힐 일은 없을 것 이다. 그렇다면 정명철은 다시 예전
과 같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않고, 누구 도 그를 괴롭히지 않는 평화로운 삶.
그 삶만 다시 얻을 수 있다면, 그 딴 놈들…….
그 순간, 정명철의 눈이 일그러졌 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TV에 강진호의 얼굴이 나온다.
카페를 배경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강진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정명철이 눈을 뒤집었다.
그러고는 손에 잡히는 것을 닥치 는 대로 TV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 다.
퍼어어어억!
휴대폰이 커다란 TV 액정을 박살 냈다.
거미줄처럼 금이 쩍쩍 간 TV가 강진호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후욱! 후우욱! 후욱!”
잊어?
잊는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세상 어디를 가도 저 얼굴이 보 이고, 그놈의 카페가 지금도 늘어나
고 있는데 무슨 수로 잊고 산단 말 인가.
길을 가다 카페 간판만 봐도 오 금이 저려오고, TV에서 우연히 강 진호의 얼굴만 보아도 발작을 일으 키는데.
“ 으흐흐혹……
정명철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던 이들에게 사로잡혀 있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뇌를 뜯어내 그 기억을 삭제해 버리 고 싶은 심정이다.
‘약…… 약이 필요해.’
정명철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 다.
현실에서 이 기억을 잊는 건 무 리다. 그렇다면 약물의 힘이라도 빌 려야 한다.
분명 집 침대 밑에…….
그때 였다.
벌컥.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하, 할아버지?”
평소 정명철이 노친네라고 부르던 태광 그룹의 회장 정홍근이 굳은 얼 굴로 걸어 들어왔다.
뚝
그의 발길이 멈춘다.
그의 시선이 정명철에게서 떨어져 옆으로 돌아가더니, 반쯤 부서진 TV를 확인했다.
“이, 이건……
정홍근이 지팡이를 움켜잡는다.
“이 망아지 같은 놈이!”
따아아아악!
“아악!”
정홍근의 지팡이가 사정없이 정명 철을 후려쳤다. 머리와 팔이 지팡이 에 맞아 부어오른다.
“아악!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 집안 망신만 시키는 쓰레기 같은 놈! 이 병신 같은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아악! 악! 아아아악!”
정명철이 비명을 질러 대며 몸을 옹크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감히 정홍근에게 반항할 생각은 하지 못 했다.
강진호와 이현수에 대한 공포가 이제 갓 만들어진 생생한 공포라면, 그가 정홍근에게 느끼는 공포는 철 이 들 때부터 지금까지 뼛속에 새겨 진 공포다.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회장님!”
안으로 들어온 김상호가 기겁을 하며 정홍근에게 달려들어 그를 끌 어안았다.
“회장님!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비켜! 당장 나오지 못해?”
“고정하십시오, 회장님. 이리 홍분 하다가 건강을 해치실까 봐 걱정됩 니다! 혈압도 있지 않으십니까!”
“이……
정홍근이 지팡이를 내렸다.
그러고도 진정이 되지 않는지 한 참을 씩씩거리던 정홍근이 몸을 홱 돌리더니, 병실 한가운데 마련된 소
파로 가 앉았다.
“물 가지고 와.”
“예!”
김상호가 부리나케 뛰어 물을 따 라 왔다.
“냉수로!”
“회장님…… 노령에 찬 물은 좋지 않습니다.”
“ 이놈이?”
“바, 바꿔 올까요?”
정홍근이 살짝 이를 갈더니, 김상 호가 내민 물을 받아 꿀꺽꿀꺽 들이 켰다.
타악!
물잔을 던지듯 테이블에 내려놓은 정홍근이 노기 어린 눈으로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정명철을 바라봤다.
“당장 이리로 오지 못해?”
“예! 할아버지!”
정명철이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침대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해서 정홍 근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도 감히 소 파에 앉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집안 망신이나 시키는 머저리 놈 을 그래도 건사해 보겠다고 했더니, 이제는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누구냐?”
“예?”
“너를 건드린 놈이 누구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누구야!”
정명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 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본 정홍근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이것 봐라?’
정명철은 요악하다.
적어도 정홍근이 본 정명철은 그 랬다. 정명철은 요악하기 짝이 없는 자고,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하게 재고 살
아가는 타입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가 마음 내키 는 대로 막 살아간다고 보겠지만, 적어도 정명철의 머릿 속에는 이 정 도까지 사고를 치는 걸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있다는 의미 였다.
그런데 지금 정명철이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은?
‘적어도 저놈의 머릿속에서는 이 일을 벌인 놈들을 내가 감당하지 못 할 거라 생각한다는 거로군.’
정홍근이 살짝 침음을 홀렸다.
물론 정명철 같은 머저리가 계산 을 제대로 했을 리는 없겠지만, 적 어도 이번 일을 벌인 이들이 조무래 기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말해봐.”
“……하, 할아버지.”
“이놈이 그래도?”
정홍근이 지팡이를 움켜잡자, 정 명철이 기겁을 하며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살려주세요! 주, 죽이지 마십시 오. 살려주세요! 뭐든 다 하겠습니 다. 그러니 제발…… 살려주세요. 제 발!”
정홍근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건?’
단순히 얻어맞은 이의 반응이 아 니다.
‘대공분실에라도 다녀온 것 같군.’ 몇 번 본 적이 있다.
정권에 저항하던 이들이 잠시 사 라졌다 돌아오더니 세상 그 누구보 다 순해지던 모습을 말이다. 그들이 트라우마를 자극당했을 때, 딱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더욱 정홍근의 노기를 불러일으켰다.
“어느 놈이냐! 대체 어느 놈이 감
히 너를 이리 만들었어? 감히 누가 정씨 집안의 사람을 건드린 것이냐! 당장 말하지 못해?”
“끅…… 끄윽, 끅.”
정명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 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 으며 옆으로 넘어갔다.
“ 엇?”
“과, 과호홉 같습니다! 의사! 밖 에 누구 없어?”
“벨을 눌러, 이 멍청한 놈아!”
“아! 아! 예!”
김상호가 재뺄리 호출벨을 누르 자, 의료진들이 우르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이 정명철을 수습해 침대에 눕히고는 호흡을 진정시키기 시작했 다. 정홍근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 고 그 광경을 모조리 지켜보았다.
‘감히!’
이가 갈린다.
사람이 저리 정신이 나간다는 것 은 평범한 이들은 겪을 수 없는 어 마어마한 경험을 했다는 뜻이다. 그 리고 누군가 감히 정명철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뜻이다.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정홍근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
랐다.
단순한 사고거나 원한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정명철의 신분을 알고 도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은 그를 상대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정홍근이 흥분한 것을 본 김상호 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회장님.”
“경찰.”
“예‘?”
“경찰에는 신분만 확인하라고 해. 잡지 말라고! 내가 직접 잡을 테니 까.”
“감히 이런 짓을 벌인 놈이 편안 하게 교도소에서 콩밥을 먹는 꼴은 못 보지. 내 말대로 해.”
“ 그게••••••
정홍근이 고개를 들었다.
뭔가 어긋났다는 뜻이다.
“겨, 경찰에서 연락이 왔는데, 범 인을 특정하지 못했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CCTV가 모두 삭제되어 있고, 사장님이 납치당하는 장면은 포착한 카메라가 없다고 합니다. 위치 추적 도 실패해서 범인을 찾는 게 난해하 다고……
“뭐?”
정홍근이 눈을 부라렸다.
“세금 받아 처먹고 일하는 대한민 국 경찰이! 백주 대낮에 벌어진 일 도 제대로 못 알아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정말 방법이 없다는거야, 아니면 돈이라도 더 뱉으라는 소리야? 어느 쪽이야?”
“후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정홍근이 이를 갈았다.
“검찰청장하고 통화 연결해.”
“회장님…… 요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함부로 그쪽과 접촉하는 것은 문제를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분위기?”
정홍근의 지팡이 끝이 정명철이 누워 있는 침대를 가리켰다.
“지금 분위기라고 했나?”
“나가. 지금 당장.”
“예”
“가서 내 비서들 불러와. 그리고 너는 더 출근할 필요 없어.”
“회, 회장님!”
김상호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둥 뒤에 의료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그에게는 체면 따위를 따질 정신이 없었다.
“제, 제가 건방졌습니다. 제가 주 제를 모르고 감히 회장님의 말씀에 토를 달았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꺼지라고 했어!”
“회장님 한 번만! 단 한 번만 기 회를 더 주십시오. 뼈가 가루가 되 도록 일하겠습니다.”
“멍청한 놈이.”
퍼어어억!
정홍근의 지팡이가 김상호의 등을 내려쳤다. 하지만 김상호는 신음조 차 내지 않았다.
“마당을 쓸던 노비 놈에게 문지방 을 두어 번 허락하면, 나중에는 제 편할 대로 넘어다니는 법이지. 그런 노비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주제를 알아야 돼. 사람은 주제 를 알아야 하는 법이야. 너뿐만 아 니가 모두가 제 주제를 알아야 하는 법이지. 그런데 감히 일개 경찰 놈 들이 뭐가 어쩌고 저째?”
정홍근의 눈이 새파란 빛을 발했다.
“검찰총장 연결해. 그게 안 되면 당대표라도 연결해. 나는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반드시 알아야겠
어.”
정홍근이 침대위에 누워 있는 정 명철을 바라보았다.
‘병신 같은 놈.’
무슨 꼴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 만, 정가의 피를 이었다는 놈이 저 런 꼴이라니.
‘친일파니 어쩌니 외치는 놈들에게 테러를 당하고 칼에 찔렸을 때도 다 음 날 출근하고 업무를 본 게 나다.’ 그게 정씨를 잇는 이의 자세였다.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잊은 모양이군. 이래서 문제야. 조선 놈들은 적당할 때 한
번씩 두드려 주지 않으면 주제를 넘 어서거든.”
정홍근이 지팡이를 바닥에 내던지 며 싸늘하게 일갈했다.
“연결해, 당장!”
“예! 회장님!”
김상호가 눈을 질끈 감고는 휴대 폰을 꺼내 들었다.
‘일이 너무 커진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끝이 아닐지 도 모른다.
김상호는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만한 커다란 폭풍이 다가오고 있음 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