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53)
마존현세강림기-1555화(1552/2125)
마존현세강림기 63권 (13화)
3장 도전받다 (3)
쪼르르륵.
정홍근이 가만히 술잔에 술을 따 랐다.
그러고는 술잔을 들어 입가로 가 져갔다. 잔에 든 고급 위스키를 한 모금 입에 머금은 정홍근이 살짝 눈 을 찌푸렸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야.”
그렇게 말했지.
그래,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정말 아닌가?
정홍근이 낮게 웃었다.
‘혓바닥이 길어졌어.’
예전이었다면 이런 일을 하는 데 굳이 이유를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박상우도 감히 그가 시키는 일에 토를 달지 않았을 것이다.
‘약해졌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나약해졌고, 더는 예전과 같 은 패기를 보일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구도 세월의 세례를 비껴 나갈 수는 없으니까.
신은 공평하지 않다.
타고난 재능도, 환경도 모두 다르 다. 선천적으로 장애인으로 태어난 이들에게 신이 공평하다는 말을 한 다면, 그들의 반응이 어떻겠는가.
공평한 것은 오직 하나.
세월뿐이다.
세상을 씹어뱉을 것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던 정홍근도 이제는 나이를
먹어 허리가 굽은 노인이 되어버렸 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지난 세 월 동안 일궈온 태광뿐이다.
그렇기에 용서할 수 없다.
태광을 무시한 이들을, 그리고 그 태광의 중심이 되는 정씨 가문을 함 부로 건드린 이들을 말이다.
‘자존심이 아니라고?’
아니. 이건 오직 자존심이다.
하지만 그게 뭐가 잘못되었단 말 인가.
애초에 태광을 여기까지 만든 것 도 정홍근의 자존심 덕이다. 그가 자존심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면 그
토록 열심히 일을 했겠는가.
태광은 그의 자존심이 만들어낸 기업이다.
여기서 자존심을 굽힌다는 것은 그의 근본이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내게 이제 자존심을 빼면 뭐가 남는단 말인가.’
태광은 그의 전부다.
그리고 태광은 그의 자존심이었 다.
남들이 보면 유치하다고 할지 모 르겠지만, 정홍근은 그 유치함을 손 에서 놓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건드린 이는 어떻게든 철저하게 짓밟고, 자신의 자존심을 세운다.
그게 정홍근의 방식이었다.
쩌적.
그 순간, 정홍근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위스키를 채운 잔에 금이 가 있 다. 그 금이 간 잔을 가만히 내려다 보던 정홍근이 눈을 찌푸렸다.
‘오래 쓰긴 했지.’
이 잔도 낡았다.
언제부터 쓰던 잔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낡은 것은 새것으로 갈아 치우는
게 이 세상의 당연한 법칙이겠지.
‘나는 늙었어.’
잔을 내려놓은 정홍근이 주먹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아직 낡지는 않았다.‘ 이번에 그 사실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삼 일 뒤.
출근을 한 정홍근은 아침부터 회 장실을 찾아온 박상우를 바라보았 다.
“ 알아냈나?”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누가 정명철 사장님을 시해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럼 뭐 하러 아침부터 얼굴을 들이밀어?”
“누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음?”
정홍근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 놈이 아니라는 말이로군.”
“예.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봤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 서 역으로 압력이 들어오는 곳을 역 추적해 봤습니다.”
“생각 잘했군.”
“그랬더니 한 가지 이름이 나오더 군요.”
박상우가 손에 든 서류를 정홍근 에게 내밀었다.
“MK?”
“예. 접근하지 말란 말을 하는 이 들에게서 그 이름이 두 번 나왔습니 다. 그것도 어렵게 알아냈습니다만.”
“여기가 뭐 하는 데야?”
“일단은 부동산과 카페 쪽 사업을 하고 있는 작은 중견 기업입니다.”
“중견 기업?”
“예. 대기업은 아닌데…… 이게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파보면 파볼수록 좀 기이합니다.”
“말 빙빙 돌리지 말고 정확하게 해봐. 뭐가 문제라는 거야?”
“기업이 가진 자본금은 대기업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매출이 워낙 많지 않고, 법인을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중견 기업으로 분 류되는 모양입니다.”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자금의 출처를 모르겠습니다.”
정홍근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자금의 출처?”
“예. 이건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
진 기업입니다. 이만한 크기의 기업 이 생기려면 시작점이 있어야 하는 데, 도무지 그 시작점을 알 수가 없 습니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여기가 대체 어떻게 출범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정홍근이 서류를 한 손으로 툭툭, 쳤다.
“여기가 누군가의 뒷돈을 가지고 정치권의 비호를 안고 시작한 기업 일 수도 있다?”
“……그것도 조금 애매합니다.”
“뭐가 애매하다는 거야?”
정홍근이 답답하다는 듯이 책상을 내려쳤다.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봐!”
“그, 그런 곳이라면 여야가 동시 에 비호해 줄 이유가 없습니다. 그 리고 어디 요즘 세상에 그런 게 가 능하겠습니까?”
“……동시에 비호를 한다고?”
“예. 여당과 야당에 동시에 접촉 을 해봤지만, 두 쪽이 동시에 말을 아꼈습니다.”
“허어……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그 MK라는 곳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막대한 돈을 뿌리고 있든가, 그게 아니면 둘 모두에게 이득을 안 겨줄 만한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 다.
세 번째 가능성도 존재한다.
둘 모두를 짓누르고 있을 가능성.
하지만 이건 현실성이 없다. MK 가 뭐라고 저 쟁쟁한 정치권을 한 손으로 잡고 혼든단 말인가.
“그러니까……
정홍근이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 이 MK라는 곳에서 우리 명철이를 끌고 갔다?”
“그런 아마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MK의 누가 명철이를 끌고 갔는지는 모른다?”
“예.”
정홍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안 거군.”
“……예?”
“그중 누가 명철이를 건드렸는가 가 뭐가 중요하지? 이 MK란 곳에 서 건드린 건 확실하다는 뜻이 아닌 가.”
“하, 하지만 회장님. 그들 전체
“회사 차원에서 건드린 게 아니라 면, 거기서 MK라는 말이 나왔겠는
가.”
박상우가 입을 닫았다.
이건 정홍근의 말이 맞다.
“결론만 보자면 겨우 중견 기업밖 에 안 되는 곳에서 감히 우리 명철 이를 건드리고, 그걸 묻기 위해서 전 방위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 이 말이로군.”
“회, 회장님……
“쯧쯧쯧, 나도 참 우습게 보였어. 이런 꼴을 당하다니.”
정홍근이 피식피식 웃었다.
워낙 호들갑을 떨기에 뭔가 대단 한 것이 나오는가 싶었더니, 겨우
중견 기업이 아닌가.
“이래서 세상 물정 모르는 것들 O 휴
“회장님, 아무래도……
“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은 게……
정홍근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좋지 않기는 뭐가 좋지 않단 말 인가. 겨우 이런 놈들을 보고 꽁지 를 말라, 이 말이야?”
“전 방위적인 비호가 너무 이상합 니다. 비상식적일 정도가 아닙니까.”
“줄을 잘 댔겠지.”
“……그것만으로 이게 가능하겠습
니까?”
“이보게, 박 전무.”
“예, 회장님.”
“자네는 정치권의 힘을 너무 우습 게 보는 측면이 있어. 특히나 저것 들은 제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한 몸으로 뭉치지. 서로 비호하고 함께 압력을 넣는단 말일세.”
“하지면 여야가 같이……
“그 인간들, 밖에서는 으르렁대고 같이 사우나 가서 형님 동생 하는 것들이야. 이득만 맞는다면 언제든 힘을 합치고도 남을 것들이지.”
박상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야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박상 우는 이 일련의 사태가 이상하기 짝 이 없었다.
‘회장님의 총기가 흐려지셨어.’
예전이었다면 정홍근도 저리 강경 하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은 귀신같이 피해 가는 사람이었고, 더 강한 자의 냄새는 어떻게든 맡아서 달라붙는 사람이었으니까.
예전의 정흥근이었다면 차라리 이 기회에 저 MK라는 곳과 좋은 관계 를 만들어보겠다며 선물을 싸 들고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정홍근은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 밟아봐.”
“회, 회장님.”
“짓밟아. 동원할 수 있는 건 모두 동원해서 박살을 내버려. 그리고 그 쪽 회장이 여기에 와서 대가리를 조 아리면 물어보자고. 누가 우리 명철 이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왜 감히 우리 태광을 건드렸는지 말이야.”
그때 였다.
쾅!
문이 벌컥 열렸다.
“어느 놈이!”
감히 회장실의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이에게 분노하던 정홍근이 고개를 갸웃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그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명철이?”
정명철이 사색이 된 얼굴로 정홍 근에게 달려들었다.
“아, 안 돼요, 할아버지! 안 돼 요!”
“이거 놓지 못해? 뭐가 안 된다 는 말이냐?”
자신의 무릎 어림을 잡고 늘어지 는 정명철을 보며 정홍근이 역정을
냈다.
“거, 거긴 안 돼요! 거긴 절대 건 드리면 안 돼요! 죽어…… 죽는다 고! 내가 죽는다고, 이 미친 늙은이 야!”
“뭐, 뭣‘?”
“당장! 당장 그만둬! 당자아아아 아앙! 당장! 당장! 당자아아아아아 앙!”
정홍•근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옆 에 높은 지팡이를 들어 정명철의 머 리를 내려쳤다.
퍽퍽, 소리가 나도록 내려치고 있 지만, 자신의 다리를 움켜잡은 정명
철의 손에서는 힘이 빠지지 않았다.
“이놈! 당장 이놈을 떼어내! 뭐 해!”
박상우가 달려들어 정명철을 잡고 끌어당겼다. 하지만 힘이 얼마나 강 한지, 정명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건드리면 안 된다고! 그 새끼들 은 건드리면 안 된단 말이야! 절대!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 제발 살려주세요! 쥐 죽은 듯이 살 겠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 요! 제발!”
“이, 이 미친놈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정명철이 갑자기 두 손으로 자신 의 목을 잡더니 바닥에 드러누워 조 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니 천하의 정 홍근도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 었다.
“끄륵, 끄르르륵, 끄륵!”
정홍근의 입에서 게거품이 새어 나온다.
“의, 의사! 빨리 의사를 불러! 빨 리!”
박상우가 문밖으로 고함을 치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들이 크게 대답 을 하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정홍근이 지팡이를 들어 정명철을 가리켰다.
“자네가 불렀지?”
“보게. 한 번 보라고. 애 꼴이 어 떻게 됐는지.”
박상우가 입을 다물었다.
정홍근의 말대로 정명철을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모든 일을 이렇게 만든 이가 정명철이니, 정홍근을 말리는 역할도 정명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내가 하나 묻겠는데……
정홍근이 씹어뱉듯 말했다.
“저 꼴을 보고도 내가 참아야 한 다고 생각하는가?”
박상우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 다.
“저놈의 할애비로서, 그리고 정가 의 어른으로서, 그리고 태광의 회장 으로서 내가 이걸 참아야 한다는 건 가? 어디 한 번 대답을 해보라, 이 말이야!”
박상우가 고개를 숙였다.
“이건 내가 자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야.”
정홍근이 눈을 부릅떴다.
“그 MK인지 나발인지 하는 곳을 박살 내. 그리고 거기 회장을 내 앞 으로 끌고 와.”
“……회장님.”
“그게 아니면 다시 이 방으로 들 어올 생각을 하지 마. 알겠어?”
박상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가봐.”
“예, 회장님.”
정홍근과 정명철을 번갈아 본 박 상우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의 눈에 천장이 무너지는 듯한 환영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