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60)
마존현세강림기-1562화(1559/2125)
마존현세강림기 63권 (20화)
4장 호통치다 (5)
고급 레스토랑.
조금 차갑게 식어버린 스테이크 옆으로 와인 잔이 채워진다. 명주실 처럼 길게 늘어진 와인이 잔을 반쯤 채우자, 서버가 와인을 회수하고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정홍근은 그 말이 참 아이러니하 다고 생각했다.
좋은 시간이라…….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되겠지.
평소라면 그 말은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만한 이를 단 독으로 독대하는 자리는 그에게 막 대한 이득을 가져다주기 마련이니 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이 사람에게 얻어낼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정홍근이 눈을 가늘게 뜨고 건너
편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가르마를 타 넘긴 머리, 그 아래로 보이는 황금빛 실테 안 경, 부드러운 입매와 젠틀한 정장.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눈앞에 보 이는 사람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이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뿐이다.
총리.
대한민국의 총리.
실각한 김명찬을 대신하여 대한민 국의 총리 직을 맡고 있는 고한봉이 지금 그의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드시지요.”
“아, 괜찮습니다.”
“비싼 스테이크입니다만?”
“속이 불편한 것보다는 낫겠지 요.”
고한봉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기야 회장님이라면 이런 스테 이크쯤은 언제든 드실 수 있겠지요. 제게는 흔치 않은 기회라서……
“신경이 많이 쓰이시는 모양입니 다.”
“그렇지요. 예전에는 얻어먹기라 도 했을 텐데, 시대가 시대지 않습 니까? 고위 공무원이 함부로 얻어먹 고 다녔다가는 몰매를 맞습니다.”
“총리를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습 니까?”
“하하, 임명직도 공무원은 공무원 이지요.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 그게 공무원이지, 공무원이 뭐 별거겠습 니까?”
너스레를 떤 고한봉이 나이프를 들어 스테이크를 썰었다.
“너무 익히신 것 아닙니까?”
“나이가 드니 익힌 것이 좋더라고 요. 젊을 때는 다르지요. 젊을 때는 생고기를 씹어 먹어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패기가 있고, 뭐든 소화 할 수 있는 위장이 있으니까요.”
“그렇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먹을 때는 과거와 같아도, 위장에서 꼭 탈이 납니다. 다 익혀 먹지 않으면 속에 서 받아주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 까, 회장님?”
고한봉이 넌지시 물어왔다.
하지만 정홍근은 굳이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 말이 고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사다망하실 텐데.”
“하하, 그건 회장님도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
쁜 분 중에 한 분이시죠.”
고한봉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 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고 기를 먹은 그가 와인을 들어 살짝 목을 축이고는 정홍근을 똑바로 바 라봤다.
“그런데 요즘 영 다른 일을 하고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정홍근의 입술이 조금 더 맞물렸 다.
‘ 역시나.’
갑자기 총리가 식사나 하자고 연 락이 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총리가 그를 부를 이유가 없었다.
이 하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대체••••••
정홍근이 눈에 들어간 힘을 풀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놈이 뭐라고 다들 이러는 겁니 까‘?”
“하하,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그 저 회장님께서 쓸데없는 일에 시간 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우려가 되 어 모셨을 뿐입니다.”
“우려요?”
“당연히 우려가 되지요. 요즘 경 기도 영 좋지 않은데,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축 중 하나인 태광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한봉이 냅킨을 잡아 입가를 닦 았다.
“그분께서도 우려가 많으십니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집니다. 이럴 때 일수록 대기업들이 견인차 역할을 해줘야 하는 법이지요. 기대가 많으 십니다.”
고한봉이 눈을 찌푸렸다.
‘잘도 지껄이는군.’
대기업을 때려잡겠다고 온갖 정책 을 펼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저딴
말을 지껄인단 말인가.
하기야.
이건 고한봉의 문제가 아니다. 모 든 정치인은 그리 다르지 않다. 그 들은 사업가와 비슷하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은 어떻게든 잡으려 하고, 손해가 되는 일은 차갑게 손 절한다.
“태광은 문제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지요.”
고한봉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은 문제가 없습니다, 아직은. 하지만 회장님이 자꾸 이리 경영에 몰두하지 못하시고 다른 일들을 하
고 다니신다면, 태광이 어찌 되겠습 니까? 태광이라는 기업이 회장님의 힘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는 걸 모르 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 걱정 때문에 저를 부르신 겁니까?”
“이미 말씀드렸지만……
고한봉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분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태 광, 아니, 회장님을 콕 집어 말씀하 실 정도로요.”
“그분은 태광이 많은 역할을 해주 시길 바랍니다. 그럼 태광에도 좋은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서로 좋은 일이죠. 허허허.”
그분.
그 말이 의미하는 이가 누구인지 모를 수 없는 정홍근이다.
그렇기에 도무지 의문을 떨쳐 낼 수가 없다.
‘왜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놈을 비 호하는 건가.’
정말 대통령의 숨겨둔 자식이라도 되는 건가?
치밀어 오른다.
꾹꾹 내리누른 분노와 오기가 다 시 솟아올랐다. 평소의 정홍근에게
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 금의 정홍근은 끝까지 몰려 있는 상 태였다.
그러니 상대의 웃음을 웃음으로 받아넘길 수가 없다.
“제가……
정홍근이 와인 잔을 잡고 단숨에 들이켰다.
탁!
와인 잔을 내려놓은 정홍근이 살 짝 붉어진 눈으로 고한봉을 노려보 았다.
“제가 계속 이러면 뭐가 어떻게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회장님.”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도록 검경을 압박한 것이 그쪽 아닙니 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 다.”
“허허, 모르시겠지요! 아무것도 모르시겠지요!”
정홍근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셔야지요!” 이제는 정명철 같은 것은 아무래 도 좋다. 누가 정명철을 건드렸는가 도 이제는 문제가 아니다.
이건 이미 정홍근과 태광의 문제
였다.
“저희가 말을 듣지 않으면 목줄이 라도 채우시겠습니까? 그동안 그토 록 지원을 했건만, 그건 다 없던 일 로 하고 저희를 박살이라도 내겠다 는 겁니까?”
고한봉은 아무런 말 없이 정홍근 의 고함을 듣고만 있었다.
“해보십시오! 태광이 그리 만만한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홍근이 마지막으로 일갈하자, 고한봉에 앞에 있는 냉수를 내밀었 다.
“드시지요.”
정홍근이 고한봉을 노려보다가 물 을 잡아채 쭉 들이켰다.
그가 물을 내려놓자 고한봉이 한 숨을 쉬었다.
“뭔가 깊은 오해가 있는 모양인 데……
“오해요?”
“예. 오해입니다.”
“지금까지 벌어진……
“그게 아니라!”
고한봉이 처음으로 정홍근의 말을 끊었다.
“저희는 정말 태광을, 그리고 회 장님을 걱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홍근의 눈에 의혹이 차올랐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그게 사 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쪽을 비 호하지 않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 오, 회장님. 이건 우리와 태광의 싸 움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럴 이유가 없어요.”
“생각하시는 것처럼 모종의 이유 가 있어서 우리가 그쪽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처음부터 말씀 드렸다시피!”
고한봉이 껄끄럽기 짝이 없다는 듯이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계속해서 좋을 게 없습니다.”
톤이 낮아진다.
말도 알맹이가 살짝 빠져나갔다. 다시 두루뭉술한 어조가 이어졌다.
“그분은 정말 회장님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도 회장님을 걱 정하고 있습니다. 복귀하십시오, 회 장님. 아직은 괜찮습니다. 이쯤에서 손을 떼고 본업으로 돌아가신다면, 모든 것이 평화로워질 겁니다. 그 정도는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
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된다 는 말씀이십니까?”
“몰라서 물으십니까?”
정홍근이 입을 닫았다.
모른다?
아니, 모를 수가 없다.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 정명철 의 반응, 그리고 총리까지 직접 나 서서 대통령을 운운하며 해오는 은 근한 압박.
그 모든 것이 단 하나의 결과를 가리켰다.
“……뭐 하는 놈들입니까?”
“아실 필요 없습니다. 아셔도 안 됩니다. 회장님, 세상에는 돈이나 권 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이들이 존 재합니다. 그들을 상대로 돈을 풀고 권력을 쓰는 것은 무의미한 짓입니 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한봉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 나 왔다.
“폭력만은 안 됩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회장님이 할 수 있는 수는 몇 가지 남지 않았습니 다. 그리고 그 어떤 수도 사용해서 는 안 됩니다. 회장님, 역린을 건드
리지 마십시오. 이미 회장님은 수위 를 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은 그리 자비롭지 않습니다.”
정홍근은 놓치지 않았다.
그들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순 간, 고한봉의 눈에 은은한 두려움이 어리는 것을 말이다.
대체 누가 있어 대한민국의 총리 를 겁먹게 한단 말인가.
“김명찬 총리 때문입니까?”
“회장님이 아시는 그 일은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사실은 더 많은 일이 있었지요.”
“……어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일의 결과지요. 회 장님은 그와 같은 결과를 맞이할 용 기가 있으십니까?”
정홍근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김명찬이 어찌 되었던가.
저 차가운 교도소의 독방에 갇힌 김명찬은 정신이 나가 버렸다. 매일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고, 알 수 없는 것들을 끝없이 써 내려가는 광 인이 되어버렸다.
그런 결과를 감당할 수 있겠냐 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저는 경고를 하러 온 게 아닙니 다. 충고…… 아니, 당부를 하러 온 겁니다. 회장님, 거기까지만 하십시 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다 신 얼굴을 마주할 수 없게 될 겁니 다. 제가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닙니 다. 그걸 명심하십시오.”
고한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홍근이 가만히 테이블을 바라보 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 강진••••••
“쉿!”
정홍근이 입을 다물었다.
“……함부로 그 이름을 입에 올리
지 마십시오. 모두 잊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것도 모른다는 듯이 사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아직은 태 광이 해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직은 태광이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태광이 무너질 수 도 있다는 뜻이다.
농담 같은 이야기.
현실성 없는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총리의 입에서 나왔다면 농담은 농 담이 아니게 되고, 없던 현실성이 생겨난다.
“꼭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 니다, 회장님.”
그 말을 남긴 고한봉이 뒤도 돌 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홀로 남겨진 정홍근이 아무 말 없이 테이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어깨가 미미하게 떨렸다.
‘대체 뭐란 말이냐?’
고개를 든 그에게 검은 어둠이 보이는 것 같다.
실체도 없고, 닿지도 않는.
하지만 한없이 깊고 또 깊어 도 저히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그게 지금 정홍근이 잡으려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가게의 문을 닫기 위해 서버가 다시 방을 방문할 때까 지…….
정홍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