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62)
마존현세강림기-1564화(1561/2125)
마존현세강림기 63권 (22화)
5장 간절하다 (2)
“웬일이 냐?”
황정후가 뜬금없이 자신을 찾아온 이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재빨리 찌푸린 눈을 풀 었다.
‘아니, 이러면 안 되지.’
강진호가 했던 말이 머리에 자꾸
떠오른다.
그의 태도. 이런 태도가 그의 자 식들을 압박하고 힘들게 한다는 말 이.
“그저 얼굴 한 번 뵈러 들렀습니 다.”
황정후의 표정이 다시 살짝 일그 러졌다.
“놀러 왔다고?”
“음, 그게 맞겠습니다, 아버지.”
황정후가 허허 웃어버렸다.
그의 앞에 황민수가 앉아 있다. 하지만 지금 황정후는 그의 자식에 게 지금껏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황민수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려 있다.
항상 그를 볼 때마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황민수가 아니 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로군.’
아마 이게 평소 황민수의 모습일 것이다. 그 모습이 이토록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이 황정후의 가슴 한 구석을 푹 찔렀다.
“좋은 얼굴을 하고 있구나.”
“아, 요즘 좀 잘 먹습니다.”
“농담도 할 줄 알고.”
황정후도 피식 웃고 말았다.
편안해 보이는 황민수를 보고 있 으려니, 황정후도 마음이 풀리는 느 낌이다. 경직된 관계는 서로에게 부 담이 되는 법이니까.
“여하튼 무슨 일이냐, 아침 댓바 람부터.”
“아, 자식이 아버지 얼굴 보러 오 는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허? 이놈 보게?”
이제는 숫제 장난까지 칠 줄 안 다.
“사장이니 뭐니 하는 자리에 오르 더니, 허파에 바람이 좀 들어간 모
양이구나.”
“맞습니다.”
“•…”으음?”
“사실 그동안은 과도하게 쪼그라 들어 있었죠.”
“재경에서 쫓겨나면서?”
“아니요. 그전부터요.”
황민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제가 모자라서 평생을 그리 살았 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MK에 들어 가서 제가 할 것을 하며 살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제자리가 있고, 제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것만 으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을요.”
황정후가 못마땅한 듯 눈을 찌푸 렸다.
“별것도 아닌 카페 하나 성공시켜 놓고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구는구나?”
“성공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 다.”
“o O 흐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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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후가 말실수를 했다는 듯 안 색을 붉혔다.
그러고 보면 황민수와 말을 하다 가 이렇게 당황해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끄웅, 많이 크긴 했군.”
“나이야 이제 너무 많아졌죠.”
“헛소리하지 말거라. 네가 뭔
“아버지도 나이가 많아지셨습니 다.”
황정후가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황민수가 그런 황정후와 시선을 마 주쳤다.
“……아니, 얼굴은 회춘하신 것 같아서 감정이 잘 안 사는데.”
“이놈이 실성을 했나?”
황민수가 큭큭대며 웃었다.
‘황당하네.’
나이 든 아버지를 보며 짠한 감 정을 느껴야 할 상황인데, 정말 예 전보다 젊어 보여서 그런 감정이 조 금도 들지 않는다.
“아직은 정정하신 것 같아서 다행 입니다.”
“십 년은 끄떡없어, 이놈아!”
“그럴 것 같습니다.”
황정후가 앞에 놓인 차가운 커피 로 목을 축이고는 황민수를 바라보 았다.
“그래서 정말 무슨 일이냐? 네가 아무 일도 없이 찾아오지는 않았을 거고.”
황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경을 저희 회장님께 물려주실 작정이라고 들었습니다.”
황정후의 눈이 살짝 날카로워졌 다.
“그걸 따지러 온 거냐?”
“예.”
“네놈에게 물려주지 않아서?”
“아뇨. 그건 아닙니다.”
“••••••웅?”
할 말을 수도 없이 생각해 놓은 황정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민수가 손사래를 쳤다.
“아버지께 할 말은 아닌 것 같지
만, 지금 와서 저더러 재경 회장 자 리에 앉으라고 하셔도 전 안 할 겁 니다. 거길 제가 왜 갑니까, 독이 든 성밴데.”
“……재경 회장 자리가 어때서?”
“잘하면 회장님이 길을 잘 닦아놓 은 탓이고, 못하면 회장님이 해놓은 일을 망친다 소리만 듣는 자린데, 거길 미쳤다고 갑니까? 재경 회장 연봉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황정후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리고 돈은 이제 됐습니다. 저 돈 많이 법니다. 제 연봉이 회장님
보다 높을 겁니다.”
“……진호가 돈을 많이 주나?”
“그분은 통이 큰 건지, 경제관념 이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좀 말이 안 되게 주십니다.”
“예전부터 그랬지.”
과거, 황정후가 돈을 준다고 하자 필요 없다고 거절하던 강진호의 모 습이 떠올랐다. 억지로 쥐여 주긴 했지만, 확실히 평범한 반웅은 아니 었다.
‘여하튼 묘한 놈이지.’
황정후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럼 뭘 따지겠다고?”
“회장님의 어설픈 각오가 마음에 안 듭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재경으로 MK를 흡수시킬 작정 이시죠?”
황정후가 입을 다물었다.
“그럼 재계 순위도 오를 거고, 재 경의 재무 구조도 탄탄해질 거고, 이모저모로 재경에도 좋은 일이죠. 회장님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 시 기에 그런 말을 질렀다고는 생각하 지 않습니다.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이야기를 끝내고 슬슬 작업해 두시 려는 것 아닙니까?”
“그럼 안 되느냐? 어차피 한 놈 게 될 텐데.”
“재경은 낡았습니다.”
“회장님의 가장 위대한 점은 재경 을 만들어냈다는 거고, 가장 큰 약 점은 스스로 재경에 얽매여 있다는 겁니다. 재경은 회장님이 돌아가실 때 저승에 들고 갈 트로피가 아닙니 다. 수많은 직원들이 생계를 이어가 는 삶의 터전입니다.”
황정후는 말문이 막히는 걸 느꼈 다.
논리에 밀려서?
아니다.
그의 아들이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을 정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황민수가 그에게 이리 당당히 자신 의 의견을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던 가.
‘진즉부터 이랬어야 했는데.’
황정후가 살짝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예전부터 이런 모습을 내게 보여주었다면……
“아닙니다, 아버지.”
황민수가 빙그레 웃었다.
“예전에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 다. 주제도 모른 채 과한 자리에 앉 아 있었고, 주제도 모른 채 과한 것 을 노리고 있으니까요. 지금도 살짝 버거운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이젠 맞는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럴 수 있는 거겠죠.”
황정후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감 하나로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람이라는 건 그리 간단한 존재가 아니니까.
분명한 것은 수십 년간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노력해 온 황
정후는 자식들을 망쳤고, 강진호는 불과 몇 달 만에 그 망가졌던 황민 수를 이리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편하더냐?”
“예.”
“일이 편하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나는 너를 그리 키우지 않았으니까. 그걸 버렸다고 해도 다 버리지는 못 했겠지.”
“맞습니다. 요즘도 쉬는 건 영 불 편합니다. 다만, 일을 하면서도 편안 함을 느낍니다. 이건 바쁜가, 바쁘지 않은가와는 조금 다르죠.”
“그렇지.”
황민수가 살짝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말해라.”
“아버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 다. 설령 그게 내 실수와 잘못에 대 한 지적이 될지라도 그걸 피하는 이 는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없 다.”
“강진호와 나는 뭐가 다르더냐?” 황민수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어쩌면 이건…… 예. 그저 차이
일지도 모릅니다.”
“차이?”
“저희 회장님은 자신이 제가 하는 일을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 만 똑같은 일을 제안해도 아버지는 그렇지 않으시겠죠. 모든 것이 어설 퍼 보이실 겁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니까요.”
황정후이기 때문이다.
그가 훌륭한 기업인이기에 그의 아들들이 제안하는 것이 눈에 찰 수 가 없다. 그러니 항상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예. 아버지의 잘못은 아닙니다.” 황민수가 웃어버렸다.
“흔한 일이죠. 훌륭한 선수인 아 버지를 둔 이들이 의외로 재능을 펼 치지 못한다든가, 대단한 업적을 남 긴 아버지들 아래에서 망나니가 태 어난다거나. 제 일일 때는 고통스러 웠는데, 한 발 물러서니 그저 우습 더라고요. 뭐 그리 대단한 일이었 나.”
“이제 저는 편안합니다. 아버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버지도 이제 그만 미안함을 버렸으면 좋겠
습니다.”
“미안해? 내가?”
“아닙니까?”
황정후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 았다.
황민수가 눈을 살짝 감았다.
“저도 몰랐던 거지요.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어릴 적 제 눈에는 아버지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도 다 할 수 있 는, 기계로 만들어진 슈퍼맨 같았죠. 하지만 결국 아버지도 자식을 키우 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한
사람에 불과했던 거죠.”
황정후의 어깨에서 힘이 풀렸다.
다른 사람이 감히 이런 말을 했 다면 황정후는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황민수만은 이 말을 할 자격 이 있다.
그는 황정후의 자식이니까.
‘그래, 내 아들이지.’
황정후는 새삼 그 사실을 실감했 다.
그 조그맣던 놈이 어느새 이렇게 자라 그의 앞에서 이런 말을 늘어놓 고 있다.
그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조금만 더 이해할 수 있었다면 더 좋은 방향이 있었겠지만…… 뭐,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지요. 저희 회장님이 그 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지나간 일을 붙들고 있어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맞는 말입니다. 후회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회하느 라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도 놓친 다면, 천하의 멍청이가 되겠죠. 그러 니……
황민수가 황정후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낚시라도 같이 한 번 가시겠습니
까?”
“••••••낚시?”
“예.”
“내가 낚시는 해본 적이 없어.”
“제가 가르쳐 드리면 되지요.” 황정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거, 땡볕에 나가서 낚싯대 보고 있는 게 뭐 재밌다고 낚시를 가느 냐!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얼 마나 많은데!”
“자식이랑 낚시를 가는 것도 중요 한 일입니다.”
황민수가 황정후를 타이르듯 말했
다.
“손주 놈들도 데리고 한 번 가시 지요. 낚시가 아니면 등산도 좋고, 그냥 드라이브도 좋습니다. 그 저…… 지금까지 하지 못한 걸 조금 은 해보자고요, 아버지.”
황정후의 손이 살짝 옷을 움켜잡 았다.
“그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황정후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몇 번이고 입을 달싹이다가 다시 닫 아버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황정후 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많이 컸구나.”
“제 나이가……
“정말 많이 컸어.”
황정후가 조금 아련한 눈으로 말 했다.
“이제 와 네놈과 같이 낚시나 다 니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이 아니야.”
“……그렇습니까?”
황민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는다. 첫술 에 배부를 수는 없다. 강진호가 알 려줬으니까. 중요한 건 목표를 잡고
끊임없이 부딪히고 들이대는 것이 다.
“ 다만••••••
하지만 황정후의 말은 끝나지 않 았다.
“손주 놈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 지. 데려오너라. 애비 노릇을 제대로 못했으니, 할아비 노릇이라도 제대 로 해야지. 손주 놈들이 가고 싶다 는 곳으로 가자.”
“걔들, 낚시 좋아하는데……
“애들을 뭐 어떻게 키웠는데 낚시 를 좋아해, 이놈아!”
황정후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웃음이 터져 버린 황민수와 얼굴 을 붉게 물들인 황정후가 서로에게 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황민수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 였다.
‘이리 쉬운 것을.’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너무 먼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