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69)
마존현세강림기-1571화(1568/2125)
마존현세강림기 64권 (4화)
1장 파악하다 ⑷
철컹!
끼이이이익!
쇠창살이 거슬리는 소음을 만들어 내며 활짝 열렸다.
고한봉은 앞장선 교도관을 따라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불쾌한 냄새.
쇠 냄새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향, 그리고 락스 냄새가 제멋대로 뒤섞여 코를 찔러 댔다.
처음 와보는 것도 아니건만, 이 교도소의 냄새는 언제나 고한봉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과거, 교 도소에 투옥된 경험이 그에게 트라 우마를 남긴 건지도 모른다.
‘영광의 상처라……
모르겠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항하 고 투쟁하고 마침내 쟁취하기 위해 서 감옥에 가는 정도는 당연한 일이 라고 말이다.
글쎄.
그 기억이, 그 상처가 고한봉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그가 쟁취하려 한 것을 지금 고 한봉은 손에 넣었는가? 그의 손으 로?
글쎄.
글쎄.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억의 잔재를 털어버린 고한봉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코 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이 불 쾌한 향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코는 금방 마비되어도 불
쾌함은 영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그건 지금 그가 대면해야 하는 존재 가 그의 많은 것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깁니다.”
고한봉이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 열게.”
“총리님, 그건……
“ 열어.”
“••••••예.”
교도소장이 눈짓을 하자, 교도관 이 열쇠를 들고 문을 딴다. 그러고 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교도관과 함께 들어가시는 것
이……
“아무도 들어오지 말게. 자네들은 자리로 돌아가. 듣는 사람이 없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교도소장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 다. 그 눈치 빠른 행동을 보면서 고 한봉이 살짝 시선을 돌렸다가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불쾌한 향.
그리고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 은 소리.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작은 몸 을 한 노인이 탁자에 앉아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일정하게 들려오는, 규칙적인 소 리.
탁자 옆으로 보이는, 높이 쌓아 올린 문서 더미들이 고한봉의 시선 을 잡아끌었다.
아니.
문서 더미로 향한 시선은 이내 노인의 둥으로 향했다.
작다.
너무도 작다.
한때, 고한봉은 이 등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등이라고 여겼다. 저 등 은 언제나 그를 이끌고, 그들을 이 끌었으며, 나라를 이끌었다.
민주화의 등불.
너무도 찬란해서 그저 뒤를 따르 기만 해도 벅찼던 사람.
이 나라의 모든 이에게 빚을 남 긴 사람.
하지만 그 사람의 말년은 이토록 초라하고 서글프다.
대가를 바란 적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이끌 어온 사람의 말년이라기에 이건 너
무 가슴 아픈 모습이 아닌가.
“선배.”
김명찬 전 종리는 고한봉의 말에 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열 심히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을 뿐 이다.
고한봉은 김명찬이 무엇을 쓰는가 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관심 을 둘 수가 없다.
지금 써 내려가는 것이 무엇이든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무너져 버릴 것 같으니까.
“선배, 접니다. 한봉이.”
김명찬의 손이 멈췄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김명찬의 눈을 본 순간, 고한봉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광인이 되었다는 사람.
미쳐 버렸다는 사람.
그 소문의 주인공의 눈이라기에 김명찬의 눈은 너무도 맑고 투명했 다. 예전 그가 보고 흠모하던, 그 열정 넘치는 눈은 아니지만, 세월과 함께 김명찬의 눈은 더욱 깊어져 있 었다.
“웬일인가?”
“……제가 선배를 찾아오는 데 이 유가 필요합니까?”
“그렇지. 그래, 그랬지.”
김명찬이 탁자를 옆으로 치운다. 탁자에 부딪쳐 문서 더미가 우르르 쓰러졌지만, 김명찬은 귀찮다는 듯 이 문서 더미를 발로 쭉 밀어버렸 다.
무언가를 써 내리긴 했지만, 그 쓴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
이해하기 어렵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앉게.”
“예, 선배.”
고한봉이 벽에 기댄 김명찬의 반 대편에 좌정하고 앉았다.
“……이관을 거부한다고 들었습니 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이제 사람들도 관심을 두지 않습 니다. 조금 더 좋은 시설로 옮겨 드 릴 수 있습니다.”
“그럼 뭐가 달라지나?”
김명찬의 말에 고한봉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퉁명한 게 아니다.
그저 사실만을 말할 뿐이다.
“시설이 좋아진다고 해도 교도소
일 뿐이지. 이곳에서 몸이 편하고 아니고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선배님.”
“배려는 고맙네. 하나……
김명찬이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 다.
“내게는 지금 그런 배려가 필요 없네.”
고한봉이 고개를 푹 숙였다.
진즉에 찾아와야 했다.
하지만 올 수가 없었다. 김명찬이 이곳에 갇혀 있는 모습 따위는 보고 싶지 않다.
그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칼날
아래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이런 시절에 뒤처져 몰락하는 모습 은 죽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선배님.”
“총리가 되었다지?”
“……예. 선배님이 있었다면 감히 제가 오를 수 없는 자리입니다.”
“겸손이 과하네. 내가 천년만년 그 자리에 있을 것도 아니고. 그리 고 총리로서는 자네가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야. 나는 그릇이 안 됐 어.”
“그렇지 않습니다.”
김명찬이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말을 끌고 싶 지는 않군. 총리는 어려운 자리야. 지금은 더욱 어려운 자리지. 자네의 짐이 막중할 걸세.”
“예, 선배님.”
“그래. 덕담은 그 정도면 됐고, 왜 찾아왔는가?”
“제가 선배님을 찾아오는 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 총리 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던가. 그렇다 면 자네가 지금 일을 잘 못하고 있 겠군.”
고한봉이 고개를 숙였다.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쉰 고한봉 이 고개를 들어 김명찬을 바라봤다.
“조언을 구하러 왔습니다.”
“조언?”
“예, 선배님. 생각보다 더 어려운 자리라……
“강진호군.”
고한봉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 술을 살짝 깨물었다.
하지만 그 침묵 자체가 김명찬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어려운 일이지, 어려운 일이야.”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
다, 선배님.”
고한봉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는 이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자는 이 국가의 지배를 벗어나 있습니다. 물론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국 가의 힘이 강해서 개인을 종속시켜 야 한다고 믿는 제국주의자나 정부 주의자는 아닙니다. 차라리 자유주 의자에 가깝죠. 하지만 그는……
“범주를 벗어나 있지.”
“예.”
고한봉이 고개를 내저었다.
“선배님이 여기 계시는 동안 상황
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선배님의 일 당시에 중국과 자체적으로 거래를 한 그들이 이제는 알아서 미국과 딜 을 하고 주한미군의 수를 늘리고 있 습니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게 새로 운 미군 사단이 주거할 땅을 내놓으 라고 겁박하고 있습니다.”
“으음.”
김명찬이 살짝 눈을 감았다.
이건 뉴스에서도, 신문에서도 볼 수 없는 소식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아는데, 이제는 제가 총리로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국
민이 제멋대로 타국과 뭔가를 시도 하고 있는데, 저희는 아무런 중재도, 간섭도 할 수 없습니다.”
“무력한가?”
“……예. 무력합니다.”
김명찬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본 고한봉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김명찬을 바라보 았다.
뭐가 우스운 걸까?
“미안하네. 조금 재미있어서 말이 야.”
“……어떤 점이 재미있으시다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의 말대로 자네는 제국주의 자도 아니고, 정부주의자도 아니지. 우리는 사람을 제멋대로 통제하려는 군사정권에 목숨을 걸고 대항했네.”
“예.”
“그런데 이제는 국민이 국가의 통 제를 따르지 않는다고 곤란하다 하 는군. 우습지 않은가? 서는 높이가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진다더니, 옛 말이 틀린 게 없군.”
“선배님, 그런 게 아닙니다.”
고한봉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이미 사람이라고 할 수 없 습니다. 국민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
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체계 안에 서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세 워 살고 있는, 괴뢰국의 수장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지.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
“대한민국의 총리로서를 떠나, 대 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그 사실을 인 정하라는 말입니까? 다른 국민들이 알지 못하게 쉬쉬하면서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라는 말씀이십니까?”
“이보게, 한봉이.”
“예, 선배님.”
“투정 부리지 말게.”
고한봉이 멍한 눈으로 김명찬을 바라보았다.
“지금 자네가 하는 말은 자연인이 나 할 소리야. 대한민국의 총리가 할 말이 아니라는 거지. 총리든 대 통령이든, 국가를 운영할 책임을 진 이들에게 고민은 허락되어도 투정은 허락되지 않네. 언제 어떤 때든 감 정을 떠나 최선의 선택을 하려 애써 야 하는 법이지.”
“그걸 지키지 못한 이가 어찌 되 는지 내가 내 입으로 말해야 할까? 자네가 지금 직접 그 두 눈으로 보
고 있는데?”
“변명하지 말게. 그냥 마음에 들 지 않을 뿐이야. 거슬릴 뿐이지. 이 만큼 기어 올라왔는데도 내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없는 이가 있다는 사 실이, 그리고 그 자리는 내가 차지 할 수 없다는 게 거슬리고 짜증 날 뿐이잖은가.”
“선배님!”
“나는 그랬네.”
김명찬이 싸늘하게 말했다.
“나는 그랬어.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댔지만, 이곳에 처박혀 있으
니 알겠더군. 내가 왜 그랬는지. 그 냥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고한봉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선배님, 대체……
“그때는 뭐가 달랐는가?”
“예‘?”
“거국적인 대의, 미래를 위한 열 의. 끌끌끌, 웃기는 소리지. 나는 그 저 저 군사정권 놈들이 싫었을 분이 야.”
“미래를 위해서 목숨을 희생하는 이들? 물론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 니야. 나는 그저 그놈들의 얼굴에
똥물을 끼얹고 싶었을 뿐이야. 그 열의 하나로 엿을 처먹이다 보니 어 느새 내가 민주화의 상징 같은 존재 가 되어 있더군. 우습게도 말이야.”
“선배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 는 겁니까?”
“포장하지 말란 이야길세.”
“스스로를 포장해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 여기게 만들지 마. 스스로 최면을 걸지 말게. 자네나 나나 그 냥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별것 아닌 이유로 사람을 트집 잡아 괴롭히는 하찮은 인간일 뿐이야.”
고한봉은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김명찬의 말이 충격적이어서?
아니.
김명찬의 말이 그의 어딘가를 너 무도 아프게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 다.
“간단하게 결론을 내려주지.”
김명찬이 웃으며 말했다.
“대항하지 말게.”
“저항하지 말고, 싸우지 말게. 납 작 엎드려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 게. 그는 그런 사람이야. 건드리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지. 자네가
그를 거슬려 할 이유가 없어. 그가 대체 자네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 가.”
“선배님, 하지만……
“알고 싶나?”
“예?”
김명찬의 얼굴이 천천히 변해갔 다.
떨리는 눈.
창백해지는 안색.
갈 곳을 모르고 덜덜 떠는 손끝.
“알고 싶나? 알고 싶어? 그런 것 도 모르고 그에게 대항한 자가 결국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알고 싶나? 살
아서 보는 지옥이 뭔지 알고 싶나? 나와 같은 꼴이 되어야 이해하겠나?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지 알고 있 나?”
“서, 선배님?”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놈이 뭘 알겠다고 지껄이고 있어! 이 병신 새끼야! 아아아아아아악!”
김명찬이 갑자기 고한봉을 향해 덮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