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71)
마존현세강림기-1573화(1570/2125)
마존현세강림기 64권 (6화)
2장 대면하다 (1)
끼이이익.
교외에 위치한 커다란 한옥식 저 택 앞으로 검은 세단이 멈춰 섰다.
차가 멈추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종업원들이 부리나케 달려와 뒷문을 열고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열린 문으로 내린 이가 중절모를 잡고 끝을 살짝 내렸다.
“손님은 먼저 오셨나?”
“예. 한 분은 와 계십니다.”
“ 그렇군.”
보조석에서 내린 비서가 재빨리 앞장섰다.
“모시겠습니다.”
“가지.”
두 사람이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걸음을 옮기던 이, 고한봉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비가 오려는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껴 있다. 그 하늘이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고 느낀 고한봉 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고한봉이 방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정홍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반갑습니다, 회장님. 이렇게 빨리 다시 뵙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만.”
고한봉이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지 었다.
하지만 정홍근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듯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뵙기 힘든 분을 이리 자주 뵙게 되니, 저는 그저 좋을 따름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앉으시지요.”
“예.”
고한봉이 자리에 앉고 나자 정홍 근이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그가 태광의 회장이라고 하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의 총리다. 총리란 결국 임기가 끝
나면 힘이 빠지는 지위에 불과하지 만, 그렇기에 오히려 임기에 있는 동안은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
‘게다가 이 사람은 그리 만만한 양반도 아니지.’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총리의 지위에 오르는 이들이 다들 웬만한 운동 경력은 기본으로 보유하고 있 다.
이제 한두 대만 더 지나면 이런 이들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지 만, 고한봉은 운동권의 마지막 세대 와도 같은 사람이다. 그런 이와 척 을 져서 좋을 게 없다.
자리에 앉은 고한봉이 손을 뻗어 고급스러운 흰색 도자기병을 살짝 움켜잡았다.
“한 잔 받으시지요.”
“감사합니다, 총리님.”
술을 따른 고한봉이 술병을 들어 정홍근에게 넘겼다. 정홍근이 그 술 병을 받아 다시 고한봉의 잔에 술을 따랐다.
“바쁘실 텐데.”
“제가 감히 총리님 앞에서 바쁘다 는 말을 꺼낼 수 있겠습니까.”
고한봉은 정홍근의 태도가 많이 유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전에 만났을 때 잔뜩 가시가 돋아 있던 그의 모습이 아니다. 오 히려 여유로움까지 느껴졌다.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조 금 편해지신 것 같아 보입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정홍근이 빙그레 웃었다.
“사람이란 게 그런 거지요. 빤히 보이는 일도 어떨 때는 눈에 들어오 지 않는 게 사람 아닙니까?”
“그렇지요.”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된 것뿐 입니다. 그러니 편해지더군요.”
고한봉이 슬쩍 정홍근의 눈을 바
라보았다.
거짓말 같지는 않다.
‘사업가란 굉장하군.’
정치인들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데 익숙하다. 아무리 보기 싫은 사 람이라도 이득을 위해서라면 마주 앉아 웃을 수 있는 이가 바로 정치 인이다.
하지만 정홍근의 태도는 그런 정 치인들마저 뛰어넘고 있었다.
이득을 위해서 싫어하는 것을 감 수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이득이 되 는 일이라면 그 일 자체를 즐겨 버 리는 수준이다.
하기야.
이러니 대한민국 10대기업을 일 굴 수 있었겠지.
분야가 다르고 그 방식에 동의할 수도 없지만, 고한봉은 정홍근이 이 뤄낸 업적을 존중했다. 자신이 하지 못할 일을 해낸 이에게는 최소한의 존중이라도 보여야 하는 법이다.
“그럼 마음을 바꾸신 겁니까?”
“그러니 제가 이 자리에 있지 않 겠습니까.”
정홍근의 태연한 대답에 고한봉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대단한 결심을 하셨군요.”
“총리님 덕분입니다.”
“제 덕분이라됴?”
“총리님이 그리 말씀해 주시지 않 으셨다면 저는 아직 큰 실수를 저지 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총리님 덕분에 개안을 할 수 있었죠. 감사 드립니다.”
“허허, 제가 뭘 했다고.”
“보답을 하려면 좋은 선물이라도 드려야 할 텐데…… 이거, 요즘 공 직자분들은 선물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한다던데.”
“무서운 말씀 말아주십시오. 이제 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모가집니다, 모가지.”
고한봉이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그 너스레를 보며 정홍근이 나직 하게 웃음을 홀렸다.
“세상이 많이 변했지요.”
“그렇습니다. 이제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죠.”
정홍근이 말없이 술잔을 들어 입 가를 축였다. 그러고는 가만히 술잔 을 내려놓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홍근이 고소를 머금었다.
“물론 세상은 좋아졌습니다. 우리 가 고생하던 시대에 비한다면 지금 은 천국이나 다름없지요. 하지 만……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지 않 으십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정홍근이 고한봉을 빤히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세상은 좋아졌지만, 총리님이 살 기에 좋은 세상은 아니지요. 총리님 이 열심히 나라를 바꿔온 덕분에 총 리가 되어서도 다른 이들의 눈치나 보며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아이러니지요, 아이러니. 노력한 덕분에 그 대가가 줄어들다니.”
“위험한 말씀이십니다.”
“압니다, 밖에서 할 말은 아니라 는 것. 하지만 명백한 사실이지요.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면 어디 일개 기업 의 총수 따위가 대한민국의 총리와 겸상을 하겠습니까.”
고한봉이 어색한 얼굴을 했다.
“괜히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습니다.”
고한봉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알 것 같습니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등병, 일병 때는 부조리에 저항하고 군대 를 바꾸기 위해 온갖 불이익을 감수 했더니, 막상 병장이 되고 나서는 내가 바꿔놓은 것들 때문에 내 손발 이 묶이는 상황. 그때는 이둥병이 리모컨을 집어 던져도 그냥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 법이지요.”
정홍근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보며 고한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가서 하지 못할 말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비슷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나 성난 군중들이 그에게 삿 대질을 하고 욕을 하는 상황을 마주 할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당신들이 그렇게 화를 내고 소리 를 지를 수 있게 만든 이가 누구인 지 아느냐고. 해서는 안 되는 생각 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고한봉도 사람인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이 나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정치하는 분들을 존 경하지요.”
정홍근이 미묘한 표정으로 정홍근 을 바라봤다.
“결국은 내 노력이 ‘나’의 과실로 이어지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사업을 하는 사 람들은 남 좋은 일을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저 성향이 다른 거겠죠.”
고한봉이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이 대화는 불편하다.
정홍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 한봉의 속내를 찔러드는 것 같은 기 분이 든다. 내심을 보이고 싶지 않 은 이가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내
심을 찔러드는 게 기분 좋을 리 없 다.
“힘드시겠습니다.”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어디 정치만 그렇겠습니까. 사업도 마찬 가지지요. 사람은 하나를 가지면 또 하나를 가지고 싶어집니다. 어디에 서 만족하느냐는 결국 그 사람이 정 하는 거지요.”
정홍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고개를 끄덕이는 정홍근을 보며 고한봉이 내심 혀를 찼다.
‘당신에게 만족이라는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치가가 아집과 위선의 결정체라 면, 기업가는 탐욕의 결정체다. 저들 은 끊임없이 아귀처럼 탐하고 또 탐 한다. 그러다가 손에 쥔 것을 제대 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게 기업가 의 인생이다.
어느 분야든 간에 남다른 성과를 내는 이들은 다 이런 법이다. 겉으 로 보기에는 더없이 화려하고 보람 찰 것 같은 삶이지만, 그 안은 기이 할 정도로 뒤틀려 있는 경우가 많 다.
그런 뒤틀린 이들이 서로를 알아
보고는 이리 술잔을 나누게 되는 법 이다.
물론 이 자리는 그들이 자의적으 로 만든 자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좋은 시절입니다. 제가 회장님과 이리 술잔도 나누고 말입니다.”
살짝 뼈가 있는 말이었다.
“다 총리님께서 저를 어여삐 봐주 셔서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정홍근이 능수능란하게 고 한봉의 말을 받아넘겼다.
“그분께 이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예.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립니 다.”
그 이름에 한 푼의 가치나 있을 까 싶지만, 고한봉은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만큼 멍청이는 아니었 다.
“그럼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분께 서도 무척이나 기꺼워하실 겁니다.”
“다행이네요.”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은 두 사 람이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정홍근이 슬쩍 고개를 들며 말했 다.
“오늘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 이 자리는 제가 만든 게 아 닙니다.”
“예‘?”
“제가 회장님을 모신 건 사실이지 만, 또 올 사람이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고한봉이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늙은 너구리 같으니라고.’
이미 테이블 또 한 사람의 자리 가 세팅되어 있는 게 빤히 보이는데 짐짓 모르는 척 저딴 말을 하고 있 다. 이래서 그가 정홍근을 좋게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오시는지?”
“MK에서 한 분이 오실 겁니다.”
“그럼 회장님께서 직접?” 회장님이라…….
고한봉은 여러 의미에서 정홍근에 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얼마 전에 만났을 때는 ‘그 놈’이라 부르던 이를 ‘회장님’이라 지칭하는 데 조금의 어색함도 느껴 지지 않는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리 불러왔다는 투다.
소름 돋을 정도의 자연스러움.
이 한마디만으로도 정홍근이 어떤
이인지 아는 데 부족함이 없다.
“회장님은 아니고, 다른 분이 오 실 겁니다.”
“다른 분이라고 하시면……
“미리 말씀드리지만…… 아니, 이 건 경고로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경고요?”
고한봉이 낮게 헛기침을 했다.
“지금 올 사람은 오히려 강 회장 님보다 더 상대하기 껄끄러운 사람 입니다. 회장님의 입장에서는 더더 욱 그럴 겁니다. 그러니 강 회장님 을 상대할 때보다 더욱 입조심을 해 주십시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 일 에 관해서는 농을 하지 않습니다. 과장도 하지 않습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만 말씀드립니다. 정부 차원 에서도 오히려 강 회장님보다 더 조 심하는 사람입니다.”
“아니, 그게……
그때 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밟는 소리 가 난다. 두 사람의 고개가 닫혀 있 는 문 쪽으로 돌아갔다.
“손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어서 들이시게.”
“예.”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정장을 빼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젊은 사내가 들어왔다.
정홍근이 이채를 띠며 안으로 들 어온 이를 바라보았다.
사내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고개 를 숙인다.
“안녕하십니까, 이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