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75)
마존현세강림기-1577화(1574/2125)
마존현세강림기 64권 (10화)
2장 대면하다 (5)
태광 그룹 사옥, 1층 로비.
정문이 활짝 열리며 문을 연 경 비가 소리쳤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그 말을 들은 사원들이 정문 쪽 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그 자리에 멈 춰 섰다.
‘오늘따라 일찍 오시네.’
‘좀 더 빨리 출근할걸.’
태광은 꽤 구태연연한 기업이다.
선진 기업 문화들이 판을 치는 지금의 세태에서도 태광은 여전히 옛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정확하 게 말하자면, 아직도 상급자의 권위 가 과할 정도로 살아 있는 곳이 태 광이었다.
그런 태광에서 회장이 가지는 권 위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속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겉으로는 완벽한 존중을 보여야 한 다. 그게 대한민국 10대기업인 태광
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굳은 자세로 서 있는 사원들의 눈에 정문으로 다가오는 정홍근의 모습이 보였다.
‘빠른데?’
‘왜 저러시지? 바쁜 일이라도 있 으신가?’
사원들이 살짝 의아한 눈을 했다.
보통 정홍근은 이런 상황에서 최 대한 천천히 걸어온다.
바쁘기 짝이 없는 사원들이 자신 의 권위를 존중하여 그 자리에 서 인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충족
감을 느끼는 게 정홍근의 악취미였 다.
하지만 오늘 정홍근은 그런 것에 는 관심이 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정문을 돌파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정홍근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손을 내저었다.
“좋은 아침이다. 가서 일해!”
사원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러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정홍근 을 바라보았다.
보통이럴때 정홍근은 대답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걸으면서 그들 이 고개를 숙인 채 불편해하는 걸 즐기고는 했다. 입사한 이래 단 한 번도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 일이 익 숙해져 있던 사원들은 해가 서쪽에 서 뜨기라도 한 듯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저러시지, 진짜?’
‘오늘 회장님이 좀 달라 보이시는 데?’
태도만 달라진 게 아니다.
겉모습도 뭔가 달라 보였다.
살짝 구부정하던 허리는 쫙 펴져
있고. 항상 손에 들고 다니던 지팡 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 에 힘이 담겨 있다.
조금씩 달라진 부분들이 하나로 합쳐지니, 십 년쯤은 젊어진 것 같 다.
“인사받았으니, 가서 일들 봐.”
“예, 회장님!”
“좋은 하루 되십시오!”
단호하게 손을 내젓는 정흥근을 보며 사원들이 슬그머니 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래도 영 찝찝하다는 듯 이 슬쩍슬쩍 눈치를 살피던 이들은
정홍근이 이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입을 살 짝 벌렸다.
뭔가 달라졌다.
짧은 변덕일 수도 있지만, 저 나 쁜 쪽으로는 상록수 같던 정홍근이 짧게라도 변덕을 부린다는 것 자체 가 큰 변화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 아닐까?’
‘불안한데……
기업이란 거대한 배 같은 것.
거대한 배를 몰기 위해서는 수많 은 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제 역할 을 해주는 게 중요하지만, 결국 배
의 항로를 정하는 것은 선장이다. 기업에서 선장은 당연히 회장이었 다.
그 선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태광이 요동 치기 시작했다.
“박 전무.”
“예, 회장님.”
“일본 유통 관련 정보를 다 뽑아 와.”
“예!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어! 다 뽑아 오 라니까!”
박상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자료량이 너무 방대합니다.”
“상관없어. 모을 수 있는 자료는 모두 모아. 조사팀 만들어서 조사시 키고, 필요하다면…… 아니, 팀을 만 들어 일본에 보내서 현지 조사시 켜.”
“예!”
머리로 판단을 내리기 전에 대답 이 먼저 나왔다.
박상우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눈 으로 정홍근을 바라봤다. 정홍근의 눈이 더없이 맑고 또렷하다. 마치 이십 년 전,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
던 그를 보는 것 같았다.
“각 부서별로 똘똘한 놈들 뽑아서 팀 새로 만들고, 새 계열사 추진 준 비해.”
“에이스급들로 말입니까? 그럼 각 부서에 타격이 있을 겁니다.”
“상관없어.”
“하지만 회장님……
“내가 상관없다고 하는 말 못 들 었나?”
화를 내지 않는다.
그저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주지시킬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박상우가 몸을
떨었다.
과거의 정홍근은 저랬다.
정홍근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친일파.
군사정권의 개.
이득을 위해서는 영혼까지 팔아먹 는 장사꾼.
하지만 그 모든 부정적인 평가를 짊어지고서도 태광이 여기까지 올라 올 수 있던 이유는 정흥근이라는 이 가 가진 카리스마가 적어도 자신의 조직만은 확실하게 찍어 누를 수 있 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고 열정이 사라지며, 그 저 목소리만 크고 쓸데없는 것으로 화를 내는 자존심 강한 노인네가 되 어버렸지만, 그가 모셔온 정홍근의 모습은 원래 이랬다.
“이건 총력전이야.”
정홍근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사운을 비롯해 모든 것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지.”
“일본 유통망에 손을 대볼 생각이 십니까?”
“그래.”
“……회장님, 제 주제에 감히 회 장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외
람된 일이겠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도박입니다. 저희가 한국에서는 대 기업이라 불린다지만, 일본에서는 100대기업도 간당간당합니다. 뱀이 코끼리를 집어삼킬 수는 없는 법입 니다.”
박상우가 바로 고개를 확 숙였다.
“고려해 주십시오.”
고개를 숙여 자신의 구두를 시선 에 담은 박상우의 이마로 땀이 배어 났다.
이건 박상우 나름의 실험이었다.
그가 한 말은 바른말, 그리고 올 곧은 말이었다. 지금까지의 정홍근
이라면 아무리 바른말을 했다고 해 도 그의 의견에 토를 달았다는 사실 만으로 불호령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정홍근이 변했다 면…….
찰칵.
그 순간, 라이터가 켜지는 소리가 났다.
“흐으으으음 ”
긴 탄식과 같은 소리가 새어 나 오고, 담배 냄새가 코를 찔러온다.
“고개 들어.”
“예, 회장님.”
“잘 말해줬어.”
박상우의 눈에 희열이 들어찼다.
‘ 되찾으셨다.’
대체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홍근은 단 하룻밤 사이에 예전 자신의 모습 을 완전히 회복했다.
“이봐, 박 전무.”
“예, 회장님. 말씀하십시오.”
“좋은 말이야. 앞으로도 내가 뭔 가를 하려 들면 그런 식으로 지적을 해. 그러려고 박 전무가 돈을 받고 있는 거니까.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다만, 이번 일은 박 전무가 생각 하는 것처럼 대책 없이 벌이는 일은 아니야. 이건 검토해서 정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야. 그리고 태광 혼자서 어떻게 해보겠 다는 것도 아니니 노망난 놈 보는 눈으로 볼 것 없어.”
“아, 그럼 합작을……
“그래.”
박상우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 다.
그렇다면 말이 다르다. 태광이 가 진 힘만으로는 어렵겠지만, 다른 십 대기업 중 두셋이 참여한다면 최소
한의 지분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 다.
그걸 키워 나갈 수 있느냐는 별 개의 문제겠지만.
“외람되지만, 어떤 기업과 말이 오가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MK.”
“예?”
“MK의 강 회장님과 합작을 할 거야. 그쪽이 주가 되고, 우리 쪽은 실무를 맡게 되겠지.”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지금 MK라고 하셨습니까?”
“따로 보청기는 필요 없겠군. 아
직은 귀가 잘 들리는 모양이야.”
“회, 회장님, 하지만……
박상우가 말을 잇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도 많지만, 대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MK?
다른 곳도 아닌 MK?
물론 박상우도 바보가 아니다. MK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머 리로는 몰라도 가슴으로는 알고 있 다. 그러니 정홍근이 업무도 내팽개 치고 강진호를 설득하러 다니는 것 에 동조한 게 아니던가.
하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권력이라는 것은 기반과 함께 작 용한다. MK가 국내에서 막대한 권 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정권과의 합의가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합의는 해외에서는 발 휘되지 않는다. 일본에서 MK의 힘 이 먹힐 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데 그 MK와 손을 잡고 일본에서 사업을 하겠다니.
이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꼴이 아닌가.
박상우의 표정 변화를 읽었는지, 정홍근이 피식 웃었다.
“이보게, 박 전무.”
“예, 회장님……
“내가 지금 미친 것 같나?”
박상우가 정홍근을 바라보았다.
고집스레 다문 입매와 확연하게 빛나는 두 눈을 본 박상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회장님.”
“그래, 아니지. 나는 제정신이야. 근 십 년 내에 이보다 더 정신이 맑던 적은 없어.”
정홍근이 나직하게 웃었다.
“박 전무, 사업이라는 건 때로는
무모할 필요가 있지. 특히나 큰 변 화를 겪을 때는 항상 제정신이 아니 다 소리를 듣기 마련이야.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래왔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태 광은 커져 왔다. 남들처럼 빤한 길 을 걸어갔다면, 지금의 태광은 결코 대기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상우는 그게 아슬아슬한 줄타기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한 번만 삐끗하더라도 태광은 공 중분해되었을 것이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고.
“배에 힘을 주게.”
“예?”
“겁쟁이처럼 덜덜 떨지 말란 말이 야. 예전에 나더러 겁이 나 죽을 것 같아도 사원들 앞에서는 어깨를 펴 고 웃으라고 조언하던 천하의 박상 우는 어디로 갔나!”
호통과도 같은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한 번 나아갈 때야. 내가 무모한 것 같으면, 자네가 내 밑에 안전장치를 깔아야지. 그게 기본 아
니었던가?”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해. 일단은 시작해 놓고 말 하세. 모든 것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건 우리의 방식이 아니지. 시도하다 안 되면 손을 털면 그만 아니겠는 가.”
“알겠습니다, 회장님.”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박상우는 알고 있었다. 정홍근 회장은 절대 시작한 일을 대충 털어내고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어쩌면 태광의 운명을 가를 일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팀을 구성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박상우가 몸을 돌리자 정홍근이 나직하게 말했다.
“아, 그리고……
“예, 회장님.”
“명철이 말인데.”
“……정 사장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놈 해직시키고, 그룹에서 물러나라고 해. 앞으로 태광 관련 일은 맡기지도 말고.”
“회, 회장님?”
박상우가 놀라 입을 벌렸다.
그렇게나 잘라내자고 할 때는 정 가의 핏줄을 운운하며 반대하던 정 회장이 아니던가. 그런데 하루아침 에 입장을 바꾸다니.
“뭘 그리 놀라나. 원래 그리했어 야 할 일이야. 내가 멍청해서 그동 안 질질 끌어왔을 뿐이지. 핏줄이 뭐라고.”
“……알겠습니다.”
“그래. 나가봐.”
“예. 그럼.”
박상우가 깊게 인사를 하고 밖으 로 나가자, 정홍근이 피식 웃고는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정홍근이 가라 앉은 눈으로 의자를 빙글 돌렸다.
전면 유리로 만들어진 창으로 서 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시작이라……
정홍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