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84)
마존현세강림기-1586화(1583/2125)
마존현세강림기 64권 (19화)
4장 요동치다 (4)
부우우우웅.
액셀을 밟은 발이 살짝 떨렸다.
‘운전하기 힘들군.’
대미지가 너무 크다.
육체적인 손상이 큰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너무 큰일을 겪었다.
육체에 난 상처는 이미 회복이
되고 있는 중이지만, 소모된 정신력 이 쉽사리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 는다.
그 나른한 감각 속에서 강진호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얼마 만이지?’
실전이 아니라 수련을 통해 이런 감각을 느껴보는 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너무 까 마득해서.
‘이러면 부정하기가 힘들군.’
평화에 젖어버렸다는 적천마존의 말이 폐부를 찔러온다.
과거, 그가 중원에 있을 때는 최
고의 자리에 올라서도 수련을 게을 리하지 않았다. 명상뿐 아니라 온갖 방법을 통해 어떻게든 강해지려 애 썼다.
현대이기에 다르다는 변명은 통하 지 않는다.
그는 이미 알지 않는가.
이 세상도 중원과 그리 다를 바 가 없음을.
약한 자는 빼앗긴다. 모든 것을 잃는다.
이미 그의 손에 총회가, 원탁이, 그리고 일본이 자신의 삶을 잃었다. 강진호라고 해서 그 입장이 되지 않
는다는 법이 있는가.
이전에는 그렇다 치고, 삼왕의 존 재를 알게 된 뒤에도 수련을 게을리 했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 다.
꾸우욱.
강진호가 액셀을 조금 더 밟았다.
차가 고속도로를 과격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날카롭게 곤두선 강진호의 감각은 이 속도마저 슬로 우 모션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 나는••••••
모든 것은 하나에서 시작한다.
살아남는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강진호를 지배 하는 가장 큰 행동 원칙은 이것이었 다. 그리고 현대의 삶을 겪으면서 하나의 명제가 더 추가되었다.
‘모두와 함께.’
적천마존은 나약하다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걸 놓을 수 없다. 아무도 없이 홀로 살아간 적 천마존은 절대 그와 공감할 수 없 다. 누군가와 감정을 나누며 사는 법을 알아버린 강진호이기에 결코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배는 더 어려운 길.
그 길을 관철하는 방법은 하나뿐 이다.
과거의 그가 자신의 힘으로 홀로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면, 지금의 그 는 그의 힘으로 다른 이들마저 지켜 야 한다. 그걸 가능하게 만들려면 과거보다 두 배는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 멀군.’
강진호가 왼손으로 자신의 옆구리 를 꾹 눌렀다.
살을 찢어내는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의 털을 곤두서게 만든다.
적천마존은 강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적천마존의 무 위는 그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 았다. 지금의 강진호도 충분히 적천 마존과 승부를 겨룰 정도는 된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처 발렸지.’
무위는 차이가 나지 않지만, 도저 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과거, 중원 의 정파들이 이런 괴물을 상대했다 고 생각하니, 자신을 죽인 그놈들에 게마저 동정심이 들 정도였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무위가 전부가 아니야.’
새삼 깨닫는 것.
원래 가지고 있기에 굳이 알 필 요가 없던 것.
승부를 가르는 것은 무학의 강함 을 넘어 인간의 강함도 중요하다. 그 인간의 강함에서 적천마존은 강 진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 있었다.
다만…….
“하••••••
강진호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 보인다.’
길이.
그 적천마존에게 다다를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지금 그의 무위와 그가 새로이 정립하고 있는 무학을 유지한 채로 과거 적천마존의 승부감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면, 강진호는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것이 다.
‘멀어도 길이 보인다면 언젠가는 도달한다.’
지금부터 강진호가 해야 할 일은 그 시간을 좀 더 당기는 것뿐이다.
안개 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던 배에서 먼 곳의 등대를 발견한 기분 이었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앙 !
강진호의 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 했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차 들을 날카롭게 추월하며 차가 내달 리고 또 내달렸다.
“다녀왔니?”
현관을 열고 들어간 강진호가 소 파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백 현정을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안 주무셨어요?”
곧 해가 뜰 판이다.
“아들내미가 연락도 없이 안 들어 오는데, 잠이 와야지.”
“죄송해요. 전화드린다는 게 주무 실까 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별일 없던 거지?”
“예.”
백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네 아버지도 주무시 겠구나.”
“……안 주무세요?”
“네 아버지 모르니? 지금 누워서 눈만 뜨고 계신다.”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제가 애도 아닌데.”
“그래, 알아. 그래서 아무 말 안 하잖아?”
백현정이 빙그레 웃었다.
“우리 아들 다 잘 알아서 하는 건 엄마도 알지. 그런데 진호야.”
“예.”
“잘난 자식이라고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 백현정을 바라보았다.
“어떨 때는 오히려 잘난 자식이라
더 걱정이 될 때도 있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너도 신경 안 써도 돼. 이건 내 가 너를 걱정해서 기다리는 게 아니 니까.”
“ 예?”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그런 거란다. 네가 별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알고, 분명 잘 알아 서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고 해서 자식을 걱정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은 거야.”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입
술을 깨물었다.
백현정이 그런 강진호를 보며 미 소를 지었다.
“요새 엄마는 참 행복하다. 우리 아들은 뭘 하는지 몰라도 즐거워 보 이고, 네 아버지는 이제야 자기 할 일을 찾은 것 같고, 네 동생은…… 네 동생은……
백현정의 미간이 좁아졌다.
“쟤는 뻬자.”
“예.”
그건 동의합니다, 어머니.
“여하튼 다들 즐거운 것 같아서 나도 행복해. 그래서 한 번씩 불안
할 때가 있어. 이 행복이 한순간에 깨져 버릴까 봐 말이야.”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지.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같지 않 다. 이건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 같 다.
백현정의 말이 강진호가 최근 겪 고 있는 고민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 었다.
“그래서 엄마도 다음 주부터는 주 부 교실에라도 나가볼 생각이야.”
“예?”
“뭘 놀라?”
“안 그러시다가……
백현정이 빙그레 웃었다.
“카페 일도 돕고, 살림도 하지 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건 아 니었잖니. 네 아버지가 벅차하니까 돕는 거고, 너희를 먹여야 하니까 살림도 하는 거고.”
“예.”
“내가 불안한 건, 내 손으로 내 행복을 만들 수가 없어서인 것 같 아. 누군가가 뭔가를 해주길 바라고 있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안 그 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다들 즐거워 보이니까, 내 즐거움도 찾아야지. 언제까지 네 아버지나 너희만 보고 살 수는 없으 니까. 엄마 응원해 줄 거니?”
“잘 생각하셨어요.”
“그래. 내가 늦게 들어온 애 너무 오래 잡아두고 있었네. 얼른 씻고 자. 알았지?”
“예.”
백현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진호 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강진호는 백현정이 사라진 거실에 서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공교롭다.
오늘 강진호가 생각한 것을 백현 정도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겠지.
결국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고민 을 안고 산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 는 이들의 고민은 다들 비슷할 수밖 에 없다.
‘행복이라……
어쩌면 강진호가 좇으려고 하는 것도 다른 이름을 가진 행복일지도 모른다. 그가 사람들을 놓지 못하는
것도 모두와 함께 살아남고 싶은 것 도…… 그들과 함께했을 때 느끼는 행복을 놓고 싶지 않은 거니까.
‘무리하는 게 아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얻으려고 하는 것이 있으면 노력 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주어지는 것은 없다.
지금의 백현정처럼 말이다.
옷을 벗고 욕실로 걸어 들어간 강진호가 샤워기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피부를 때리기 시작하자, 상처 입은 몸이 비명을 질러 댄다.
그 욱신거림을 느끼며 강진호가
욕실 벽에 머리를 기댔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한다.’
그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 * *
다음 날 아침.
“다녀오겠습니다.”
철컹.
현관문을 열고 나온 강진호가 살 짝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모시러 왔습니다, 회장님!”
집 앞에 세단을 댄 이현수가 깍 듯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그를 향해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뭐냐고?”
“에이, 보조를 좀 맞춰주셔야지.”
이현수가 피식 웃고는 차를 가리 켰다.
“타십시오.”
“옹?”
“정말 모시러 왔습니다. 회로 바 로 가실 것 아닙니까?”
“그럴 생각이긴 한데……
강진호의 시선이 살짝 차고로 향
했다.
“내가 차가 없는 것도 아니고, 손 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물론 발도 있으시겠죠. 하지만 지금 회주님께는 그 운전을 할 여력 까지도 수련에 쏟아붓고 싶으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현수가 씨익 옷었다.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뻐끔대던 강진호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시간이 남아도는 모양이네.”
“물론 눈 코 뜰 새 없이 바쁩니
다. 하지만 회주님의 지상과제가 강 해지는 것이면, 제 지상과제는 회주 님을 보좌하는 겁니다. 그에 비하면 다른 것들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 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 이라 하셨죠. 저도 마찬가집니다. 저 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니……
턱!
차의 뒷문을 연 이현수가 허리를 숙이며 차 안을 가리켰다.
“타시죠.”
“어서요.”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굼벵이같이 느려서 타고 싶지 않 은데.”
“5분 빨리 가려다 오십 년 먼저 가는 법입니다.”
“우린 안 가잖아.”
“대신 다른 사람이 갈 수도 있죠. 언제나 정속 운전. 규범을 지키는 아름다운 사회.”
“알았어, 알았어.”
강진호가 손을 내젓고는 차에 올 랐다.
“닫습니다.”
탁!
문을 닫은 이현수가 쪼르르 달려 운전석에 올랐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회장님.”
“……근데 왜 아까부터 회장님이 야?”
“원래 이런 차 탈 때는 회장님 소 리 들어야 합니다. 회주님이라고 하 면 뭔가 동호회나 동창회 회주 같고 영 폼이 안 살잖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안락하게 모시겠 습니다.”
이현수가 휘파람을 불며 차를 몰 기 시작했다.
‘피곤할 텐데.’
어제 강진호가 퇴근할 때까지도 이현수는 일을 끝내지 못했다. 이현 수의 성격상 일이 끝나기 전에는 멈 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일을 끝 내자마자 여기로 차를 몰고 왔다는 뜻인데…….
“괜찮겠어?”
“며칠 잠 안 잔다고 안 죽습니다. 이래 봬도 저도 무인입니다.”
“뭡니까, 그 반웅?”
“아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시트에 등을 기댄 강진호가 콧노 래를 부르며 운전을 하는 이현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약육강식.
그래, 약육강식.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약육강식은 강진호 와 이 세상을 관통하는 가장 큰 진 리일지도 모른다.
다만…….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적천.’
그 세상 속에 이들이 있다.
강진호가 만나온 사람들이 있다.
눈을 감은 강진호의 귀에 이현수 의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처럼은 되지 않는다.’
더 강해질 것이다.
주변 모두를 버리고 오로지 혼자 만의 강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될 만 큼.
더욱.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