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85)
마존현세강림기-1587화(1584/2125)
마존현세강림기 64권 (20화)
4장 요동치다 (5)
“보고서가 왜 이리 늦어!”
정홍근이 역정을 내며 책상을 내 려 쳤다.
그 살벌한 기세에 박상우 전무가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죄, 죄송합니다.”
“박 전무가 일처리를 이렇게 늦게
할 리는 없고! 무슨 일이야?”
“아닙니다. 제가 무능해서……
“박 전무!”
“예, 회장님!”
“처세는 좋은 거지만, 처세도 자 리를 봐가며 해야 할 것 아냐! 내가 지금 그 빤한 말에 장단을 맞추기라 도 해야 한다는 거야?”
박상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죄송합니다. 절대 회장님을 우롱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쯧쯧쯧.”
정홍근이 혀를 차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박상우를 노려보았다.
“무슨 일인지 말해봐!”
박상우가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사장단의 반대가 만만치 않습니 다.”
“ 뭐?”
박상우는 말하기가 너무 곤란하다 는 듯이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댔 다.
“사장단에서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왜 지금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법인을 합작하고 거기에 막 대한 돈을 투자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칩니다.”
“허.”
정홍근이 어이가 없다는 듯 탄식 했다.
“왜? 내가 노망났다는 소리는 안 나오던가?”
박상우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 뭇댔다.
농담으로 던져 본 말일 뿐인데, 정말 그런 반응이 있던 모양이다.
“거……
노기가 차오른 정홍근이 손에 든 펜을 꽉 움켜잡았다.
‘이놈들이!’
정신이 맑아지니 돌아가는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아마 이런 상 황은 이미 한참 전부터 만들어져 있 었을 것이다.
“아주 사람을 허수아비로 보고 있 었군.”
아무리 정홍근이 실무 회의에 참 석하지 않은지 좀 되었다지만, 설마 이런 취급을 받고 있을 거라고는 상 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놈들이 잘 끌어가고 있었는데, 왜 괜히 회장이랍시고 쓸 데없는 일을 벌이냐, 이 말이야?”
“……회장님.”
“허허허, 거참.”
정홍근이 피식피식 웃었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
“도둑이나 쫓으라고 마당에 풀어 놓은 개들이 이제는 저들이 들개인 줄 안단 말이지? 창고에 있는 사료 를 찾아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제 손으로 사냥이라도 한 듯이 말이 야.”
정홍근의 목소리가 낮고 차갑게 깔렸다.
박상우는 그런 정홍근을 보며 아 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목소리는 낮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분노가
똑똑히 느껴졌다.
“쯧쯧, 명철이 놈을 탓할 때가 아 니었어. 내가 먼저 등신짓을 하고 있었으면서…… 쯧쯧.”
정홍근이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정홍근의 판단력은 많이 흐려져 있었고, 아마 말도 안 되는 일로 우 겨 대는 일도 흔했을 것이다. 그러 다 보니 자연히 정홍근을 달래고 자 신들끼리 좋은 방향을 찾는 게 습관 화되어 있었겠지.
밥을 챙겨 주지 않은 주인은 개 가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탓할 자
격이 없는 법이니까.
“이번 일은 내가 노망나서 하는
일이 아니라 사운을 걸고 하는 제대
로 된 사업이라고 다시 한 번 설명 해.”
“……예. 하지만 회장님, 그런 말 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 다.”
“그렇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 예?”
“똑똑한 놈들이라면 내가 화를 내
지 않고 설명한다는 것에서 뭔가 다 르다는 걸 이해할 거야. 그렇지 않
은 놈들이라면 굳이 끌고 갈 필요가
없는 거지.”
“그럼…… 따르지 않는 사장들은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정홍근이 피식 웃었다.
담배를 꺼내 문 정홍근이 가만히 불을 붙이며 나직하게 말한다.
“잘라야지.”
“예. 그렇게…… 예?”
“자른다고.”
정홍•근이 담담하게 말했다.
“회, 회장님?”
“뭘 놀라? 지들도 노망난 놈 밑 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 잘 된 것 아닌가. 나가서 제 사업을 하
든가, 좋은 회장 찾아가든가 둘 중 하나겠지.”
“사, 사장단을 자르시겠다고요?”
“그럼 뭐 별수 있어?”
정홍근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그놈들이 뭐 노동법에 걸리는 놈 들도 아니고…… 차라리 잘됐지. 안 그래도 쇄신이 좀 필요하던 찰나였 는데, 싸그리 정리해 버리면 되지.”
“회장님, 지금 사장단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장 없으면 회사 망하 나?”
“••••••예?”
“사장 없으면 회사가 망하냐고?” 박상우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사장이 회사에서 큰 역할을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이 말에 그렇 다고 대답을 해버리면, 그 밑에서 일하는 수많은 직원들의 노력을 폄 하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만……
“누구는 날 때부터 사장이었어? 지금 사장입네 뭐네 하고 거들먹거 리는 놈들도 다 밑에서부터 기어 올 라온 놈들 아니야?”
“그건 그렇습니다.”
“저놈들이 할 수 있는 일이면 아 랫사람들도 다 할 수 있어. 자리란 그런 거야. 못해본 일은 두렵기 마 련이지만, 막상 주어지면 어떻게든 해내는 게 사람이지.”
정홍근이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슬슬 물갈이를 한 번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잘됐군.”
박상우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
“왜‘?”
“회장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태광은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런 식으로 물갈이를 하며
살아남았으니 까요.”
“그런데?”
박상우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때는 모두 명분이 있었 습니다. 이번에는 그 명분이 너무 빈약합니다.”
정홍근이 박상우를 보며 피식 웃 었다.
“ 명분?”
“예.”
“그런 건 필요 없어.”
“••••••예?”
정홍근이 심드렁한 눈으로 박상우 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명분이라는 게 왜 필요하 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추진하는 일의 당위성을 얻 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 당위성은 왜 필요한데?”
“그야••••••
박상우가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이익이 된다 는 의식이 있어야 열심히 하지 않겠 습니까?”
“그럼 이익이 안 될 것 같으면 일 을 안 한다는 소린가?”
“그건 아니지만……
박상우가 입을 닫았다.
정홍근이 뭔가 다른 할 말이 있 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면피용이야.”
“••••••예?”
정홍근이 혀를 끌끌 차고는 말했 다.
“예전에는 아니었겠지. 예전에는 명분이라는 게 쓰임새가 있었으니 까. 하지만 요즘은 아니야. 요즘 세 상에서 명분이라는 건 그저 그 일이 실패했을 때, 내가 이 일을 한 게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면피를 하기 위해 쓰이는 게지.”
극단적인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박상우는 정홍근의 말에 그리 틀린 게 없다고 생각했다. 적 어도 기업의 총수들이나 사업가들은 명분을 저런 식으로 쓰고 있으니까.
“사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냐. 일 을 벌였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 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그러니 따라오기 싫은 것들은 나가면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 회장님.”
“사장단들에게 내 말 전해. 그리 고 사직서 받아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박상우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정홍근이 깊게 담배를 빨았다.
‘멍청한 놈들.’
사람이란 제자리에 만족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 의 역할만 한다? 그건 부품으로 살 아갈 이들에게나 쓸모 있는 말이다.
이끌어가는 자는 그런 것에 연연 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갈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든 그 방법을 쟁취해 야 하는 법이다.
“시끄러운 것들.”
박상우가 나가는 것을 본 정홍근
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의 눈에 강진호의 모습이 떠올 랐다.
‘기회, 명예……
그의 상황을 안다면 혹자는 그에 게 미쳤다고 할지 모른다. 왜 굳이 이런 짓을 해야 하냐고. 정홍근이 뭐가 부족해서 강진호에게 복종하느 냐고.
‘멍청한 것들.’
실상은 반대다.
정홍근이나 되기에 감히 강진호를 따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 다. 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멍청한
것들은 평생을 가도 감히 그분과의 인연 같은 걸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따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의미다.
‘이해 못하겠지.’
정홍근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 라보았다.
저 아래 천만이 넘는 사람이 산 다. 하지만 그 많은 이들 중 이걸 기회라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 는가.
‘그러니 너희는 아직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정홍근은 올라갈 것이다.
더 높이.
지금보다 더 높이.
* * *
투투투투투투투투 .
“……너무 높은 거 아냐?”
“헬기가 다 그렇죠. 처음 타시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십니까?”
“그때는 전쟁 중이었으니까.”
“떨어진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습 니까.”
“나야 안 죽겠지.”
“저는 회주님 바짓가랑이 잡고 늘 어질 거니까 괜찮습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의 눈에 장난감처럼 작아진 차 들과 높은 산들이 들어온다.
무섭냐고?
그럴 리가.
강진호가 걱정하는 것은 이 헬기 가 추락했을 때 이곳의 모두를 살릴 수 있는가 뿐이었다.
‘애초에 추락을 걱정한다는 것 자 체가 문제지만.’
현대 문물의 이기는 아직 강진호
를 안심시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적은 비 행기에서는 관심이라도 끌 수 있지 만, 발아래에 모든 광경이 보이는 헬기에서는 미묘한 불안함을 어찌하 기 힘들었다.
저 위에 돌아가고 있는 프로펠러 가 톡 떨어지기만 해도 바로 추락인 데.
‘이걸 대체 뭘 믿고 타는 거지?’ 이게 아직 현대에 적응이 덜 되 어 나오는 생각인지, 그게 아니면 강진호가 천성적으로 기계에 약한 건지 모를 일이었다.
“이제 곧 도착합니다.”
“ O ”
“자꾸 그런 표정 하지 마십시오. 앞으로도 오갈 일이 많을 텐데, 차 타고 이동하면 시간이 너무 소모된 다고요. 그래서 특별히 헬기도 산 것 아닙니까?”
“……산 거라고?”
“아,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장기 대여라고 하죠.”
이 새끼, 산 것 같은데?
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아니, 뭐, 총회에 돈은 넘쳐 나니 헬기 한 대 산다고 부담이 될 정도
는 아니겠지만…… 돈이라는 건 쓸 곳에 써야 하는 법이다. 돈이 많다 고 아무렇게나 써 제끼다가는 금세 바닥나는 게 돈이다.
“그래도 그렇지, 헬기를 사는 건……
“아, 저깁니다. 도착했습니다, 회 주님.”
말 좀 들어, 인마!
강진호가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이현수는 그런 강진호를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 켰다. 그곳에는 산을 깎아 만든 커 다란 평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평지의 한곳에서는 지금도 공 사가 이어지고, 그 앞으로 커다란 야전 텐트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그러니까 저기가 미군 기지라는 거지?
지금 우리는 그 미군 기지에 헬 기를 타고 접근하는 중이고?
이쯤 되면 당연한 걱정 하나가 솟아오른다.
“격추당하는 것 아닌가?”
“농담도 심하십니다. 허가는 당연 히 받았죠. 설마 저놈들이 그런 미 친 짓을 하겠습니까? 다 뒈지려고.”
“누가 죽이는데?”
“회주님이요.”
강진호의 한숨을 뒤로하며 헬기가 무심하게 기지로 들어섰다. 연병장 한가운데 내려선 헬기가 강풍을 일 으키며 사방으로 먼지를 날려 댔다.
투투투투투투투.
프로펠러 소리가 잦아들자, 이현 수가 헬기 밖으로 내려섰다.
“도착입니다.”
“ 알아.”
강진호도 한숨을 내쉬고는 헬기에 서 내려섰다. 그의 눈에 익숙한 이 들의 모습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