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94)
마존현세강림기-1596화(1593/2125)
마존현세강림기 65권 (4화)
1장 일어나다 (4)
끼익, 끼익.
강진호가 가만히 그네를 밀었다.
‘소리가 나네.’
강진호의 눈이 날카롭게 위쪽으로 향했다.
‘기름칠 좀 해야겠는데?’
그 외에도 여기저기 손볼 곳이
보인다. 그네 주변에 쳐진 울타리는 색이 바랐고, 여기저기 칠이 벗겨졌 다.
‘저것도 다시 칠해야 하고.’
보면 볼수록 할 거리가 늘어난다.
매의 눈으로 보육원 이곳저곳을 살피던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살 짝 웃고 말았다.
‘예전에는 이게 일상이었지.’
주말만 되면 자전거를 타고 언덕 길을 올라 보육원에 와서 혹시라도 할 일이 없나 어슬렁댔다.
박유민은 그 모습을 보며 항상 곤란해했고…….
‘원장 수녀님.’
– 진호 왔구나?
반겨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 다.
“무슨 생각 해요?”
시선을 내려다보니 최연하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냥.”
강진호가 살짝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옛 생각이 좀 나서요.”
“옛 생각? 예전에 이사하기 전에
보육원이요?”
“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이제껏 잘 보지 못 한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본 최 연하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좋았나 봐요?”
“네‘?”
“옛날 보육원이.”
“좋았다기보다는……
강진호가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추억이 많았죠.”
“예를 들면?”
“지금은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까.”
강진호의 말에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원장 수녀님 같은?”
강진호가 살짝 놀란 눈으로 고개 를 돌려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 알아요?”
“저는 모르죠.”
“그런데 어떻게?”
“애들 입버릇이거든요.”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뭐만 하면 원장 수녀님이 있었으 면 너는 혼났을 거야. 원장 수녀님 이 계셨으면 널 뭐라고 생각하셨겠
어? 원장 수녀님이 지켜보시고 계실 거야.”
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위로 올렸다.
검은 하늘이 그를 내려다본다.
“대단한 사람이다 싶었어요. 저 많은 아이들이 몇 년이나 지났는데 도 아직 이렇게 기억하고 있잖아 요.”
“‘대단한’이라……
조금 다르다.
강진호가 기억하는 원장 수녀님은 대단하다기보다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좋은 사람?”
“네. 그저 좋은 사람.”
굳이 이유가 붙지 않는, 좋은 사 람.
그저 옆에 있기만 해도 절로 마 음이 편해지는 사람.
죽음을 앞에 두고도 그저 담담하 던 사람.
‘어렵군.’
원장 수녀님을 말로 표현하기에는 강진호의 어휘력이 너무도 조악했 다.
“흐응.”
최연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어쩐지.”
“네?”
“나는 진호 씨가 유민 씨 때문에 보육원에 관심을 가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가면 갈수록 일을 크게 벌이기에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딱 히 크게 관심을 가지는 분야도 아닌 것 같고, 굉장히 봉사 정신이 뛰어 난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공감 능력 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 수준인데.”
왜 갑자기 딜을 넣지?
네?
“그런 사람이 보육원을 만들고, 애들을 학원에 보내고, 새로 보육원 을 또 만든다니까 이상하다 싶었 죠.”
“ Q ”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확실히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강진호는 타인에게는 무관심한 편이 었으니까.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 을 희생하는 데는 딱히 관심이 없 다. 그게 강진호의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하지만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 은 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들 은 강진호의 영향 아래 넣는 일이었 다. 평소의 강진호라면 결코 하지 않을 일이었다.
“부채감 같은 건가요?”
“ 아뇨.”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까운 마음은 있다.
그때 강진호가 조금 더 강했더라 면…… 원장 수녀님이 죽지 않게 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짐을 가 진 건 아니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강진호가 자신에 대해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화를 내고 안 타까워할 사람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데……
“ 네.”
« o ”
M…•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그가 원장 수녀님에게 가지는 감 정은 명확하게 하나로 정의하기 어 렵다. 그중 가장 비슷한 걸 굳이 끌 고 오자면…….
“동경 같은 거에 가깝네요.”
“동경이요?”
최연하가 눈을 크게 떳다.
“진호 씨가요?”
“……왜 놀라죠?”
“아니, 기본적으로 진호 씨는 사 람을 내리깔아 보는 사람이잖아요.”
“요즘 들어 궁금한 게 생기는
“네.”
“요즘 말만 하면 칼로 찌르는 것 같은데, 그 많은 단점을 가진 저와 왜 만나시는지……
“잘생겨서?”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누나가 애정이 있어서 까는 거 야. 애정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농담은 이쯤 하고, 진호 씨는 딱 히 타인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굳이 다른 이들을 닮고 싶다거나 대단하 게 여기지 않을 것 같은데……. 동 경이라는 말이 나오니 좀 생소하달 까? 어색하달까?”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설명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원장 수녀님은 그에게 있어서 세 상을 바꿔준 사람이니까.
‘달랐어.’
강진호는 오로지 강함에 집착하던 사람이다.
강한 이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오로지 강한 이만 이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원장 수녀님은 강진호의 삶과 반대 지점에 오롯이 서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거겠
죠.
최연하가 말없이 강진호를 올려다 봤다.
“전혀 다른, 그럼에도 강한.”
“대단한 사람이었나 보네요.”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대단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단한 거죠.”
“뭔 말이 그래요?”
“그러게요.”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최연하가 피식 웃으며 그네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도 감사해야 겠네요. 보
아하니 그나마 진호 씨에게서 사람 같은 부분은 그 원장 수녀님이랑 유 민 씨가 다 만들어준 것 같은데.”
“으 ”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최연하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본다.
“지금 하는 모든 일이 다 그 원장 수녀님처럼 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따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강진호 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처럼 될
수는 없으니까.
다만…….
“그저••••••
강진호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신경 쓰이는 거죠.”
“응?”
미묘한 머뭇거림을 보인 강진호가 한숨 쉬듯 말했다.
“부끄럽지 않고 싶을 뿐이에요. 그래도 ‘너도 노력했구나’ 정도는 듣고 싶은 거죠. 제가 아무리 잘못 한다고 해도 절 나무랄 분은 아니지 만……
그래.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나는 노력했다고.
당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 다고.
그 말 한마디를 당당하게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묘한 표정으로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던 최연하가 손을 뻗어 강진 호의 등을 쓰다듬었다.
“어구, 기특해라.”
강진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최연 하를 돌아봤다.
“왜? 칭찬받고 싶은 것 아니었어
요?”
“아니, 거……
“됐어요, 됐어. 내가 칭찬해 줄
게.”
거, 미묘하게 다른 것 같습니다 만…….
가만히 강진호의 등을 쓰다듬던 최연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강진호의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말려 올라갔다.
“말로는 누구나 노력하고, 마음만 으로는 누구나 봉사하는 거예요.”
“하지만 진짜 하겠다고 나서서 노 력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요. 진호 씨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그럴까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적어도 내가 아는 강진호라는 사 람은 이런 일을 생색내기로 할 사람 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더 믿을 수 있는 거죠. 당신, 정말 힘든 일을 해내고 있다고.”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육원을 늘리고, 더 많은 아이들
을 받으려 하는 이유는 강진호도 모 른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머리로 알고 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그냥…….
어느 순간 자연스레 그리 움직이 고 있을 뿐이었다.
‘속죄?’
아니겠지.
사람을 죽인 일을 사람을 돌보는 일로 갚을 수는 없다.
강진호가 저지른 죄악을 갚으려면 열 개의 보육원이 아니라 수천 개의 보육원을 만들어도 모자란다.
애초에 사람이 사람을 죽인 죄는 씻어낼 수 없으니까.
그저…….
그저 뭐랄까…….
“누군가는……
“네‘?”
강진호가 살짝 머뭇거렸다.
열린 입을 닫고 가라앉은 눈으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호 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이 보육원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유민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여길
오지 못했을 거고, 그럼 아이들도 만나지 못하고, 원장 수녀님도 뵙지 못했겠죠.”
“그렇겠죠?”
그럼…….
강진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지금 강진호가 손에 넣고 지키려 고 하는 이 모든 행복이 그 작은 선택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건 정말 우연이었거든 요.”
단 한 번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강진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 이다.
아마도…….
방진훈도, 이현수도, 위긴스도. 모두 그의 손에 죽었겠지.
그리고 최연하와도 만날 수 없었 을 것이다.
그럼 뭐가 남는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는 이전 삶의 반복일 뿐이 다. 강진호가 아닌 적천마존이 자신 만이 아닌 가족까지 지켜내며 현대 를 살아갈 뿐이다.
뭐가 다른가.
어쩌면 이곳과 다른 세상에서는 피에 절은 강진호가 표정 없는 얼굴
로 세상을 활보하고 있을지도 모른 다. 그저 손안에 든 것을 지킨다는 생각뿐인 강진호가…….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다르다. 이곳에서 그는 ‘다름’을 얻었다. 이곳에 왔기에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강진호가 조금은 멍한 듯한 목소 리로 말했다.
“나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 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 겠어요. 그게 어쩌면 제가 세상에 갚아야 할 빚인지도 모르죠.”
최연하가 아무 말 없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조금 이상하다.
지금까지 강진호를 수도 없이 봤 지만, 지금 같은 얼굴을 한 강진호 는 처음 본다.
조금 어색하고, 조금은 떠는 듯하 고, 그리고 오히려 더 단호한.
어쩌면 이곳이 아직까지 그녀가 가보지 못한 강진호의 가장 깊은 곳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최연하 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걸로 됐어요.”
“당신 잘하고 있으니까. 그럼 된 거예요.”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그런 강진호의 어깨를 최연하가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저는 잘하고 있는 겁니까?’
한 번씩은 묻고 싶다.
인생이라는 먼 길. 방향이 보이지 않는 그 길을 헤맬 때, 그의 손을 잡아주던 그 사람에게.
내가 잘하고 있냐고.
내가 잘살고 있냐고.
아마 대답은 영원히 들을 수 없 겠지.
그렇지만…….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 라봤다.
먼 밤하늘에 원장 수녀님의 얼굴 을 그린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다시 눈을 감았 다.
‘원장 수녀님, 저는……
지키는 게 아니다.
따라가는 게 아니다.
이제는 그 말이 강진호의 삶이 되었다.
‘저는 먼저 손을 내밀어 줄 수 있 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새벽의 공기가 내려앉는다.
정적이 감도는 어둠이 포근하다.
그 포근한 어둠 속에서 강진호는 최연하의 온기를 느끼며 한동안 말 없이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