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01)
마존현세강림기-1603화(1600/2125)
마존현세강림기 65권 (11화)
3장 침략하다 (1)
“계열사 설립은 거의 완료되었습 니다.”
“흐음.”
정홍근이 다리를 꼰 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서늘한 눈빛을 본 박상우가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피바람.
그 말이 아니고서야 최근 태광에 서 벌어진 일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 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잘려 나간 사 장만 다섯이 넘는다.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 사장단 을 교체하는 것이야 그동안 빈번히 있어온 일이지만, 이리 짧은 시간 동안 이리 대규모로 숙청이 벌어진 적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덕분에 태광은 지금 떨어지는 볼 펜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해진 상태 였다.
그 조용한 회사의 가장 꼭대기 층에서 정홍근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 대고 있었다.
“ 반발은?”
“당연히 없습니다.”
“줏대 없는 놈들.”
정홍근이 쯧쯧, 혀를 차댔다.
“사내새끼들이 한 번 생각을 정했 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관철을 해 야지, 그거 좀 얻어맞았다고 납작 엎드리는 꼴이라니. 애초에 큰일 하 기는 틀린 것들이야.”
박상우는 굳이 ‘그럼 정말 목을 쳐버리시잖습니까’라는 생각을 입으
로 내뱉지는 않았다.
‘놀랐겠지.’
생각해 보면 저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정홍근이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웬만한 결 정은 사장단과 부사장에게 일임해 왔다.
스스로가 무능력해졌다는 것을 인 정한 게 아니라, 귀찮고 골치 아픈 일에 매달리기 싫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기조가 몇 년 이상 지속되 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면에 나서서 회사를 뒤엎고 있으니, 당황하지 않
을 도리가 있겠는가.
박상우야 바로 옆에서 모시고 있 으니 정홍근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 지만, 정홍근을 대면하지 못하는 그 들이 무슨 수로 이런 사실을 알겠는 가.
살짝 동정마저 생길 정도였다.
“그래서 계열사는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고?”
“예. 지분 문제만 처리하면 됩니 다. 한데 회장님……
“왜?”
“계열사를 설립해 같이 사업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그
대가로 태광의 지분을 양도한다는 건 좀……
쯔쯔쯔느쯔 ”
우、허、우、으、•
정홍근이 혀를 차기 시작하자 박 상우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저로서는 회장님의 고견을 따라 가기 어렵습니다.”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듣나. 임 자, 내가 저번에 뭐라고 했지?”
“무슨 말씀이신지……
“거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냐.”
정홍근이 눈을 찌푸렸다.
“우리 쪽이 유리할 수 있게 이득 을 얻어오는 거래? 좋지, 아주 좋
지. 그런데 그래서 우리한테 남는 게 뭔가?”
“……이득입니다.”
“더 명확하게.”
“돈입니다.”
“그래. 돈은 충분히 있어.”
정홍근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지금 내가 돈 몇 푼 벌자고 이러 고 있는 것 같나? 태광 같은 건 아 무것도 아니야. 지금 당장 회사가 망해도 내 아래로 5대는 황제처럼 살 수 있어.”
박상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 로 정홍근을 바라보았다.
회사가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뭘 추구한단 말인가.
“우리가 처음부터 잘나갔나? 돈도 안 되는 과자나 팔아댄다고 무시받 던 시절은 다 잊었어?”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요즘 보면 말이 야……
정홍근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태광이 하던 짓이 예전에 우릴 무시하던 놈들과 별다를 게 없단 말 이지. 세상은 자꾸 바뀌고 시간은 흘러가는데, 하는 짓이라고는 수성 밖에 없어. 자네도 잘 알겠지만, 지
키는 이는 절대 뚫는 이를 막지 못 해.”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만은 공감한다.
세상은 항상 같은 역사를 반복해 왔다.
앞에 선 자는 언제나 자신의 위 치를 수성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얼 마나 수성하느냐가 달라질 뿐, 결국 은 자신의 자리를 내주게 되어 있 다.
절대 함락될 것 같지 않은 난공 불락의 성도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 어 있다.
“예전에는 누가 더 성벽을 높이 쌓느냐의 싸움이었지. 그런데 그 싸 움이 박살 난 이유가 뭐야?”
“저는 잘……
“대포가 등장해서 성벽을 부쉈지. 그래서 더 두껍게 성벽을 쌓았더니, 이제는 비행기가 날아와 머리 위에 서 폭격을 해버린단 말이야.”
“수성은 그래서 어려운 거야. 아 무리 효율적으로 체제를 정비해도 개념이 바뀌면 한순간에 그 모든 것 이 무용지물이 되지.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터 가진 것을 지키자고 사업
을 했냐, 이 말이야.”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홍근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는 없지만, 지금 정홍근이 아무 생 각 없이 일을 벌이는 게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태광의 지분? 그런 게 무슨 의 미가 있나. 나는 이미 번 것에는 관 심이 없어. 앞으로 벌 게 이렇게 많 은데.”
정홍근이 낄낄대며 웃었다. 싸늘하면서도 열정적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진행해. 회사가 보유한 주식쯤 적당
히 넘긴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저 양반들이 태광 경영권에 관심 이나 가질 것 같나?”
“……회장님.”
정홍근이 고개를 내저었다.
“자네는 그렇게 오래 살고도 아직 사람을 모르나? 우리가 중요하게 생 각하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휴지 조 각만도 못할 수도 있는 게야.”
정홍근이 혀를 찼다.
하기야…….
강진호를 겪어보지 못한 박상우로 서는 저리 생각하는 게 당연할 것이 다.
“여하튼 차질 없이 진행해.”
“예, 회장님.”
박상우가 살짝 정홍근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회장님, 그런데……
“뭐?”
“계열사 사장으로는 누굴 앉힐 생 각이십니까? 아무래도 아드님이
“자네가 앉아.”
“……예?”
“자네가 하라고.”
박상우가 눈을 끔뻑였다.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회장님, 저는 적임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자네가 적임자야. 내 아들 놈들은 그만한 그릇이 아니 야.”
“학력도 좋고, 경영 성과도 좋으 시잖습니까.”
“그래. 회장 자리를 물려받기에는 적당한 놈들이지. 하지만 개척되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데
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이 야. 그런 자리에는 자네 같은 이가 적임이지.”
박상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회장님, 저는 이제 늙었습니다. 그런 자리를 맡을 능력도, 체력도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 대부분의 일은 저 쪽에서 알아서 할 거야. 아마 공동 사장 체제가 될 테니, 자네는 저쪽 과 우리 쪽을 조율하는 업무를 맡아 주면 돼.”
박상우가 입을 닫았다.
그 정도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
다.
“이보게, 박 전무.”
“예, 회장님.”
“회사의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일 이야. 나는 거기에 가장 믿을 수 있 는 이를 앉히고 싶네.”
박상우가 살짝 몸을 떨었다.
“회장님, 저는……
“도와주게나.”
박상우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래그래.”
박상우가 감동한 듯 몸을 떠는 모습을 보며 정흥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러니 큰일은 못하는 거지.’
박상우는 좋은 사람이다.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지만, 성실하고 사람에게 호감을 준다. 저 런 사람이니 MK와도 큰 트러블을 만들지 않고 잘해줄 것이다.
다만, 그게 전부다.
박상우에게는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적당한 인물이니 적당 한 곳에 끼워넣을 뿐이다.
의리? 신뢰?
웃기는 소리.
정홍근에게 남아 있는 것은 탐욕
과 명예뿐이었다.
“대충 정리가 끝난 것 같습니다.” 이현수가 서류를 뒤적이며 피식 웃었다.
“이 할아버지, 의욕이 넘쳐 나네 요. 아주 제대로 준비하는 모양입니 다.”
“돈이 되는 일이니까.”
“그 이상도 좀 보입니다.”
“음‘?”
이현수가 낄낄대며 웃었다.
“드라마 좀 보셨습니까?”
“……갑자기 웬 드라마?”
“주인공이 재벌집 하인으로 나오 는 드라마의 끝은 보통 주인공이 그 재벌집의 모든 것을 빼앗고, 그들을 짓밟는 것으로 끝납니다. 겉으로 보 기에는 사악한 재벌을 응징한다는 권선징악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한 가지 요소가 더 들어가 있죠.”
“뭔데?”
“내가 모시던 놈을 내가 짓밟는 것.”
이현수가 눈을 빛냈다.
“이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은밀한 욕망입니다. 직장인치 고 상사 싸대기 후려치는 상상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을 겁니다. 자발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이들도 언젠가는 이 관계를 역전시 키고 싶다는 생각은 반드시 하기 마 련이죠.”
“……정홍근에게는 그게 일본이라 는 건가?”
“그렇죠.”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정홍근에게 있어서 일본은 본받 을 만큼 좋은 곳은 아니었을 겁니
다. 그저 가까운 곳에 있는 강자였 을 뿐이죠. 그 앞에서 꼬리를 흔들 면 자신에게 가장 살이 많이 붙은 뼈다귀를 던져 줄 수 있는 강자.”
강진호가 흥미롭다는 얼굴을 했 다.
이런 식으로는 생각해 보지 못했 다.
“그런데 이제는 지금까지 꼬리 치 던 그 강자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 회가 온 거죠. 평생 동안 친일파로 서 일본을 모시고 살아온 정홍근에 게 이렇게 흥분되는 일은 흔치 않을 겁니다.”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정말 사람이 싫어질 정도로군.”
“사람은 다 그런 겁니다. 인간의 도덕성을 쓸데없이 높이 잡지 말아 주십시오.”
“아니, 그건 도덕성이라기보다
강진호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여하튼 정말 장난 아니네요. 제 대로 해볼 생각인 모양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만드십니까?”
그거,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 데…….
나는 널 데리고 올 때도 네가 이 렇게 과하게 일할 줄은 몰랐지.
“여하튼 이 정도면 저쪽 준비는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이제는 MK에서 어떻게 준비하는가가 중요 합니다.”
“잘하고 있나?”
“……지옥을 보고 있죠.”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이번 일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한국은 윗선에서 쪼아대
기 때문에 급하게 일처리를 한다는 게 완전히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알 아서 하라고 했더니, 알아서 TF 구 성해서 24시간 돌리던데요?”
“뭐, 핏줄이 핏줄이니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이현수가 고소를 머금었다.
나름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MK 의 사무직으로 간 이들이 가엽게 느 껴진다. 어쩌면 여기서 수련하고 사 는 이들이 훨씬 더 편안할지도 모르 겠다.
“여하튼 최대한 완벽하게 처리해
보겠습니다. 대신 회주님이 일본에 두어 번 다녀오셔야 할지도 모르겠 습니다. 야쿠자 새끼들 통합해서 지 원하게 하는 게 영 잘 풀리지가 않 아서.”
“그 정도야 뭐……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이면 도착 하는 곳이다. 출국 수속도 따로 필 요 없는 강진호에게는 잠깐 시간을 내는 정도에 불과했다.
“다른 문제는 없나?”
“하나 있기는 합니다만…… 이현수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건 우리가 아니라 정권이 풀어
야 할 일이겠죠. 그리고 뭐, 굳이 풀리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대신 사업을 해줄 일본인들은 넘쳐 나니까요. 괴뢰정부 하나 세워보죠.”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 했는 데……
“예?”
“……너는 이런 일 할 때는 표정 부터 달라지네.”
“오해십니다. 저 따뜻한 남자라고 요.”
너무 따뜻해서 타 죽겠네. 타 죽겠어.